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4화 (4/69)

EP.4 발렌슈타인 백작가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깜빡 잠들었었나 보다.

일어나면, 시간은 이미 저녁이었다.

꼬르륵.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잠든 탓일까.

나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아카데미의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은 일요일.

보통 파티에게 주어지는 대부분의 과제는 주말에 처리를 해야 한다.

당연하지만, 평일에 있는 아카데미의 수업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황금 같은 휴일의 시간을 뺏기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과제 완수 실적이 곧 점수로 환산되어 평가에 들어가기에, 이를 게을리하는 생도는 거의 없었다.

물론, 주말에 끝마칠 수 없는 과제의 경우에는 특별히 결석도 인정이 되지만.

식당에는 평일과 같이 사람이 많았다.

일요일 저녁쯤 되면 과제를 하러 떠난 이들도 대부분 돌아오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뭐 사교성이 떨어진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저.

“저기 봐, 루이 발렌슈타인이다.”

“반역자 가문의 놈이로군.”

“뻔뻔하게 아카데미에는 왜…”

저렇게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놈들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걸 참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저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정도는 이제 익숙했지만.

저렇게 남이 다 듣는 데에 험담을 하다니, 예의라고는 대체 어디에 팔아먹은 것이려나.

그들을 무시하려고 노력하며, 나는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처지에 대해 생각을 했다.

루이 발렌슈타인.

발렌슈타인 백작가의 후계자.

그리고 게임 스토리 상, 주인공 파티의 빌런.

나는 발렌슈타인 백작가에 대한 설정을 떠올렸다.

발렌슈타인 가문은 본디 루치아 제국의 유서 깊은 명문가였다.

겨우 백작가 따위가,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발렌슈타인은 공작가였고 말이다.

내가 빙의한 루이의 할아버지, 즉 바로 전대의 가주였던 발렌슈타인 공작.

그가 제국에 대항해 반역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유는 모른다.

게임에 안 나와 있었으니까.

뭐, 딱히 알 필요도 없다.

그 양반이야 뭐, 공작 오래 해먹다 보니 황제도 해 보고 싶었나 보지.

그 덕에 내가 지금 이렇게 경멸받는 아카데미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참고로, 루이의 아버지.

이제 내 아버지가 된 발렌슈타인 공작은 나보고 그게 전부 누명이라고 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힘이 황실에 대적할 정도가 되면 그 일에 대해서도 한번 알아볼 것이다.

아무튼, 원래 반역자의 가문은 멸문하는 것이 원칙이나.

문제는, 아까도 말했듯이 발렌슈타인 공작가가 유서 깊은 명문가라는 것이다.

그냥 역사가 오래된 정도가 아니다.

제국의 초대 황제를 도와 이 루치아 제국을 세운 세 공작가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당대의 공작만 처형하고 가문의 영지와 재산은 대부분 몰수.

거기에 공작위를 백작위로 강등시키는 대가로, 우리 가문은 멸문을 피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우리 가문에 대한 설정.

다음으로, 내가 빙의한 루이 발렌슈타인에 대한 설정을 떠올렸다.

게임 내에서 루이는 악당 그 자체였다.

일단은, 성격이 끔찍하다.

자기보다 못한 자들을 멸시하고, 평민들을 괴롭힌다.

거기에 그는 주인공인 레오 엡실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문도.

재력도.

실력도.

심지어 레오 엡실트가 용사 후보라는 것까지.

모든 면에서 그는 레오 엡실트에게 뒤떨어졌다.

그나마 외모 하나는 루이 역시 레오 급의 미소년이었으나.

마기에 타락하며 후반에는 그 외모조차 추악하게 변한다.

아무튼, 무슨 짓을 해도 레오를 이길 수 없었던 루이는 결국 마기에 손을 대고.

그렇게 타락해서 추악하게 변한 루이를 주인공과 파티원들이 막는 것이 스토리 중 하나였다.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하필이면 이딴 캐릭터에 빙의해서…

내가 그렇게 생각에 잠겨 음식을 끼적대고 있는 와중.

갑자기 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딱히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앞의 사람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지, 시비인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들자.

내 앞에 있는 것은, 아까 낮에 학생회실에서 본 황녀였다.

“앞에 앉아도 되겠는가?”

그녀가 말한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 여기에는 나밖에 없는데?

애초에 내 옆에 앉아 밥을 먹을 사람이 없었으니, 당연한 거였지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나에게, 그녀가 다시 말한다.

“그대에게 말한 게 맞다.”

“예, 뭐 앉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녀가 어디에 앉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으니.

들고 있던 음식을 식탁에 놓은 황녀.

나는 그런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음식이나 먹기 시작했다.

음, 역시 내 고등학교 시절 급식과는 비교가 안 되는 맛이다.

아니, 감히 비교하는 것조차 실례다.

그래도 가끔은 김치나 쌀밥이 그립…

“잠시 이야기 괜찮겠나?”

앞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보니, 황녀는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지만…

“그대에게 말한 게 맞다, 이번에도.”

도대체 뭘까?

여태껏 황녀와 나 사이에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는데 말이다.

아, 설마 아까 그 일 때문인가?

겨우 그런 농담 좀 했다고?

나는 약간 긴장한 채, 침을 꿀꺽 삼켰다.

“중요한 일입니까?”

잠깐의 침묵 후, 황녀가 고개를 젓는다.

“식사하며 가볍게 잡담이나…”

황녀에게는 되게 안 어울리는 말인 것은 둘째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식사를 끝마친지라.”

“어, 어?”

나는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떠났다.

“어어?”

뒤편에서 황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무시하자.

---

오늘 낮에는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

심지어는, 그 주인공이 바로 아카데미의 유명 인사.

루이 발렌슈타인이었고.

물론,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사실 황녀 자신은 그런 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판단하는 스타일이었으니.

그 남자가 학생회실에 영상 녹화 아티팩트와 두 장의 종이를 제출하고 몇 시간 후.

그와 같은 파티였던 나머지 6명이 아카데미에 돌아왔다.

그들의 면면 역시 루이 못지않게 유명했다.

사실 황녀로서는, 교수님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들을 같은 파티에 집어넣은 것인가 궁금할 정도로.

아무튼, 그들 역시 각자의 목걸이와 한 장의 종이를 제출했다.

그들이 각자 목걸이를 벗던 와중.

파티의 백발 도적, 이름이 아이네였나?

그녀가 작게 ‘아, 맞다’ 라고 중얼거리며 목걸이의 작동을 멈췄다.

가끔 저런 이들이 있기는 했다.

끄는 것을 잊고, 아티팩트를 계속 녹화 중인 상태로 제출하는 자가.

뭐, 황녀도 별다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녀가 집중한 것은, 그들이 제출한 종이.

굳이 보지 않아도 내용은 예상이 갔지만.

역시, 루이 발렌슈타인의 추방을 신청하는 문서였다.

그들은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것인지, 앞에서 그대로 서 있었다.

황녀는 그런 그들에게 가라고 손짓했다.

“아, 알겠습니다.”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학생회실을 떠나는 그들.

황녀는 자기 책상에 놓인 목걸이들을 집어들었다.

“어디 가십니까, 회장님?”

누군가 그녀에게 묻는다.

“그렇다. 잠시 볼 일이 있어서. 참, 저건 아무나 치우도록.”

그녀가 책상 위에 널브러진, 방금 그들이 제출한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의아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누군가를 뒤로 하고, 황녀는 학생회장에게 제공되는 집무실로 향했다.

목걸이의 내용을 확인하고 과제를 평가하는 것은 아카데미 교수들의 일이다.

그러나 회장은 자기 권력을 이용해 그걸 미리 확인하는 정도는 할 수 있었고.

그런데, 일곱 개의 목걸이들을 확인하던 황녀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까 그 백발 도적이 들고 있던 목걸이야, 방금 끄는 것을 봤으니 길이가 길겠지만.

문제는 다른 목걸이들보다 녹화된 영상의 길이가 긴 목걸이가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그 목걸이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아까 루이 발렌슈타인이 제출한 목걸이였다.

황녀는 루이의 것과 아이네의 것을 차례대로 감상했다.

그렇게 제법 긴 시간이 지나고, 황녀가 한마디를 내뱉는다.

“재미있군.”

평소 자신에게 붙어 다니던 학생들을 놔 둔 채로.

혼자서, 그녀는 우선 양호실로 향했다.

아까 봤던 그의 몸에는 상처가 가득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미 사라진 루이 발렌슈타인.

다음으로 그녀는 기숙사로 향했다.

그렇게 아카데미의 남자 기숙사 방향으로 가던 길.

그녀는 학생식당으로 향하던 루이 발렌슈타인을 발견했다.

식당으로 들어간 그를 따라, 황녀 역시 적당히 음식을 주문했다.

혼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그.

아무리 아카데미 내에서 평판이 나쁘더라도 같이 밥을 먹을 친구 한둘쯤은 있을 터인데.

역시, 그도 자신처럼 혼자서 식사를 하는 편을 좋아하는 것이려나.

황녀는 음식을 들고 그의 앞에 앉았다.

이야기 괜찮냐고 물어보는 그녀에게, 중요한 이야기냐고 되묻는 루이였다.

역시, 특이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과 한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려고 혈안이었는데 말이다.

황녀는 잠시, 자신이 하려던 이야기가 중요한 것인지 고민했다.

뭐, 적당히 중요한 이야기였지만.

황녀는 순간 학생회의 여자 생도들이 말한 것이 떠올랐다.

남들과 이야기할 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거나, 식사할 때 아무런 수다 없이 진짜 밥만 먹는 습관은 고쳐야 한다고.

그렇기에, 그녀는 나름 용기를 내서 말했다.

“식사하며 가볍게 잡담이나…”

“죄송합니다, 회장님. 식사를 끝마친지라.”

…어?

루이는 떠나갔다.

진짜로, 가버렸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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