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5화 (5/69)

EP.5 가슴이 시키는 대로

다음 날은 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아니, 평범한 하루일 줄로만 알았다.

깊은 저 바닷속 스폰지 정도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싫어할 수밖에 없는 월요일 아침.

어제의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탓에, 나는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늘 하던 대로 씻고,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평소처럼 수업을 듣고, 식사를 하고, 다시 수업을 들었다.

어제, 내 파티원들과 끝내 결별을 선언했기 때문일까.

오늘은 진짜로 하루 내내 혼자서 있었다.

그나마 아이네 정도만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하루 종일 내 곁을 맴돌았으나.

차마 먼저 말을 걸 염치는 없는 것인지.

결국 그녀는 내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아이네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마음 같아서는 그녀를 붙잡고 왜 그랬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어차피 그녀들에 대한 건 이제 신경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결국 아이네에게 끝까지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의 수업을 끝마치고서.

다시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참, 내가 생각해도 단조로운 일상이었다.

그러나, 그 평범할 것만 같았던 하루는 나를 이대로 다음 날로 보내주지 않으려나 보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누군가 내게 달려왔다.

“헉, 허억…”

숨을 몰아쉬는 교복 차림의 금발 여학생.

너무나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내게 달려온 펠리체 안스베르크가 입을 연다.

“잠깐, 루이 발렌슈타인, 잠깐만…”

그녀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고, 피부는 창백했다.

눈가에는 숨길 수 없는 눈물자국이 있었고.

그 꼴을 보자,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가고일 떼가 쳐들어왔구나.’

“무슨 일이지?”

나는 그녀에게 차갑게 대답했다.

“가, 가고일 떼가 우리 영지에 쳐들어왔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근데, 어쩌라고.

이제 나는 그녀들을 신경 쓰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 했으나, 펠리체는 내 양 어깨를 붙잡았다.

솔직히, 조금 불쾌했다.

그녀가 내게 소리지른다.

“어떻게 알았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냐는 말이다!”

“하…”

나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저번에 다 설명했잖아. 너는 레오 새끼 신경 쓰느라 내 말은 듣지도 않았겠지만.”

“아, 아니다. 그렇지는…”

“시끄럽고, 꺼져. 지금 너랑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불쾌하니까.”

내 원래 성격이 이렇지 않은데.

파티원들 때문에 성격도 더러워지고, 욕설도 자꾸만 느는 것 같다.

그녀를 위해서 그 개고생을 해 가며.

그렇게 다쳐 가며 가고일을 잡으려 했다.

그래, 이유야 어쨌든 결국은 실패했으니까 고맙다는 말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노력했다는 것을 아는 그녀가 지금 나를 오히려 추궁하고 있다.

진짜로 불쾌했다.

이번에야말로 가려고 했으나, 그녀는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놔주지 않았다.

그녀의 손을 강제를 떼어내려고 마음먹었을 때.

그녀가 다시 내게 소리를 지른다.

“그, 그러면! 그렇게 확신했더라면 우리 영지에 경고라도 해 줄 수 있었잖냐!”

나는 잠시 진정하려 노력했다.

애초에 지금 그녀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고.

만약 원작 게임처럼 영지가 박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정신이 나가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니, 그 울분을 내게 푸는 것일 수도 있지.

그걸 내 머리로는 어찌어찌 이해하려고 해도.

내 가슴은 그녀의 면상에 주먹을 꽂으라고 나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그러니, 조금은 타협해서.

짜악!

나는 그녀의 뺨을 갈겼다.

“경고했잖냐! 너는, 너는 안스베르크가 아니냐? 너한테 충분히 설명했잖아!”

그녀에게 고함을 지른다.

펠리체는 방금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반대로 물어보자. 내가 그렇게까지 자세히 말했는데, 너는 니네 영지에 말이라도 전하기는 했냐?”

굳이 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지금 그녀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하, 그러시겠지. 어차피 반역자 발렌슈타인이 하는 말, 들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그녀에게 쏘아붙였다.

그녀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었지만, 아무래도 내가 쌓인 게 많았나 보다.

“넌 늘 그랬잖아? 내가 뭘 하든, 어차피 반역자 발렌슈타인.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고, 발렌슈타인이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걸 판단했잖아!”

“웃기지 마라! 나, 나는 그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내게 소리를 지르는 펠리체.

우리가 싸우는 소리가 커질수록, 주변의 시선이 우리에게 몰려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결국 우리 둘의 싸움은, 누군가의 난입으로 인해 끝나고 말았다.

소녀 하나가 우리 둘의 사이로 들어와, 내게서 펠리체를 떼어냈다.

그녀가 외친다.

“그만해, 언니! 뭐 하는 거야!”

“루, 루시?”

펠리체가 눈을 부릅뜬다.

“무사했…”

“죄송해요, 공자님.”

그러나, 루시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서는 고개를 돌려 내게 말한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루시 안스베르크.

펠리체의 여동생.

원작 게임에서는, 펠리체의 스토리를 깨다 보면 만나게 되는 서브 히로인.

현실이 된 이 세계에서는, 나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뒤에서 펠리체가 소리친다.

“루시, 어째서 그 남자에게 사과를 하는…”

“언니야말로 왜 이분한테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거야! 공자님이 아니었으면 나랑 어머님까지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뭐…?”

얼빠진 목소리를 내는 펠리체를 뒤로 하고.

루시는 다시 나를 보며, 이번에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공자님이 미리 경고해 주신 덕에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어요.”

그녀가 내게 그리 말한다.

그래, 이거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남들을 도와줄 때에는 대가를 바라지 말라고들 하지만.

도움을 준 누군가가 나를 욕하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나는 그저 고맙다는 말 한 마디면 충분한데.

내가 도움을 준 사람에게서 감사의 말을 듣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뭐…?”

옆에서 펠리체가 얼빠진 소리를 낸다.

“어, 고, 공자님?”

루시가 당황했다는 듯이 나를 본다.

나는 뒤로 돌았다.

“잠깐, 루이!”

당황한 펠리체가 내 이름을 부른다.

방금까지 펠리체와 싸우고 있었지만, 이제 다 부질없다.

어차피 펠리체가 아니라 루시, 그리고 영지의 사람들을 위해서 했던 일.

그녀의 감사도 들었으니 이제는 됐다.

나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

루시는 어제 밤,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발신자가 루이 발렌슈타인이었기에, 재빨리 편지를 뜯어본 그녀.

도대체 무슨 내용일지 약간 기대도 한 그녀였으나.

편지의 내용은 그녀가 상상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게 무슨…?’

그녀는 재빨리 자신의 부모님에게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니, 루시?”

루시는 편지에 적혀 있던 경고.

가고일 떼가 영지를 습격한다는 사실을 그녀의 부모님에게 알렸다.

“그게 무슨…”

“펠리체 언니가 한 말이에요. 방금 편지를 받았어요.”

그녀는 편지에 적혀 있던 내용을 떠올렸다.

자신의 말을 들을 사람은 가문에 너 말고는 없으니, 누가 묻거든 펠리체의 이름을 대라고.

슬프게도, 그건 사실이었다.

황실의 검.

혹은, 몇몇 사람들한테는 황실의 개라고 불리는 안스베르크 백작가였다.

자신의 부모님들은 그런 안스베르크 백작가에 꼭 걸맞은 인물들이었고.

반역자인 발렌슈타인 백작가의 이야기는 절대로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펠리체가 전하는 말이라고 하자 자신의 부모님들은 이를 믿었다.

그들은 나름 대비를 하려 했으나.

문제는, 당장 몇 시간 후의 새벽에 가고일 떼가 습격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미리 한 대비로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으나.

영주성은 파괴되었고 백작은 중태.

자신과 어머니는 역시 그 편지 덕에 미리 피신할 수 있었다.

가고일 떼의 습격으로 영지가 박살나고.

당장 루시를 신경 쓸 여력이 되지 않으니, 백작부인은 펠리체에게 소식도 전할 겸 루시를 포함한 몇몇 인원을 아카데미에 보냈다.

루시가 아카데미에 처음 도착해서 찾기 시작한 사람은 펠리체가 아니었다.

아카데미 직원들에게 펠리체를 불러내게 하는 자신의 시녀들을 놔 둔 채로.

그녀는 루이 발렌슈타인을 찾아 아카데미를 헤맸다.

그러던 와중, 아카데미 한복판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말싸움을 하는 것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고.

놀랍게도, 그 당사자는 루이 발렌슈타인과 펠리체 안스베르크였다.

그녀는 기겁해서 즉시 달려들었다.

루이 공자님이 가문을 살린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루, 루시? 무사했…”

펠리체가 그녀에게 말한다.

하, 언제 신경을 썼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루시는 그녀를 무시하고, 우선 루이에게 사과를 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그에게 소리를 지르다니.

계속 떠드는 펠리체를 뒤로 하고.

그녀는 루이에게 응당 해야 할 감사인사를 했다.

그 직후.

그의 표정이 참 이상하게 변했다.

방금까지 얼굴을 가득 채웠던 분노는 사라지고,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

그녀가 느끼기에는, 굉장히 슬퍼 보이는 표정이었다.

“어, 고, 공자님?”

그녀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최소한 감사인사를 들은 사람이 지을 표정은 아니었으니.

루이는 아무런 대답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루시.

이윽고, 그녀는 자신의 언니를 노려본다.

결심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들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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