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고마움의 표시
루이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갑자기.”
그야, 호의를 베푼 상대가 갑자기 저렇게 나온다면 누구나 당황할 것이다.
그러나 펠리체는 계속해서 싸늘하게 말을 이어갔다.
“방금 말 그대로다. 애초에 가문의 비전 검술을 남에게 가르쳐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군.”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머리가 차가워진 펠리체는, 조금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가문의 비전 검술을 다른 가문의 사람, 심지어 후계자에게 알려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사실 루이는 원래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런 쪽의 상식도 부족하고, 발렌슈타인 가문에 큰 애착도 없어 그리 제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펠리체로서는, 무언가 속셈이 있다고 의심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펠리체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 이게 맞다.
애초에 자신은 발렌슈타인 백작가의 사람과…
“야.”
뒤편에서, 루이 발렌슈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는 펠리체의 발목을 잡았다.
평소의 유쾌한 말투와는 달리, 지금은 그 목소리가 많이 슬프게 들렸으므로.
“네가 나를 싫어하는 건 알고 있는데, 그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거든?”
이유야 당연하다.
그가 발렌슈타인 가문이니까.
“내가 그냥 싫은 게 아니라면, 이유라도 좀 알려 줘. 그래야 내가 고칠 수 있지.”
아니, 고칠 수 없다.
이건 그의 잘못이 아니니까.
펠리체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입을 열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못박힌 듯이 서서, 그의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방금도 무슨 속셈이 있는 게 아니라,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노력하는 거였다고. 우리 3년 내내 같은 파티로 활동할 텐테, 계속 이런 사이로 지낼 수는 없잖냐.”
아니, 아니다.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루이의 말이 너무나 진실되게 들려서.
마침내 말을 멈춘 그를 뒤로하고, 펠리체는 도망치듯이 연무장을 떠났다.
그 다음 날.
펠리체는 계속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사실 전날 밤에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루이 발렌슈타인의 말이 그녀의 마음을 괴롭혔다.
수업을 듣는 동안에도 자꾸 그의 쪽을 힐끔거리게 되었다.
평소와는 달리,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걸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건 분명 그녀가 원하던 바였으나.
어째서인지, 조금 허전했다.
‘그래, 이대로 신경을 끄자.’
그렇게 마음을 먹은 그녀였으나.
루이의 슬프고, 진실되고, 또 약간은 처절하게 들리던 그 목소리는 그녀의 머릿속을 떠날 줄을 몰랐다.
자연스레,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루이에게 대했던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가 아무리 친절하게 대화를 시도해도 무시하고.
어제는, 친절을 베풀려던 그를 욕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발렌슈타인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행동은 또한, 아버지가 말한 기사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평소보다 시무룩해 보이는 루이를 보고, 그녀는 결심했었다.
기사로써, 자신이 어제 한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다.
그에게 사과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만약 그게 어떤 비열한 속셈이었다면, 그의 계획을 깨부수면 될 뿐.
아버지도 좋아하실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게 어떤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자신과 친해지고 싶었던 것이라면…
‘그건 나중에 생각해야지.’
수업이 끝나고, 펠리체는 남들의 눈을 피해 루이를 불러냈다.
교사의 뒤편에서 그녀는 루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제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사과하지.”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로, 그녀는 루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럴 이유가 없었지만, 조금 떨렸다.
잠시의 침묵 후에 들리는 그의 대답.
“아냐, 뭐. 사람이 살다 보면 가끔 급발진 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아하하!”
급발진… 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평소와 같은 장난기 많은 목소리였다.
오히려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서인지, 과장되게 말하는 느낌이었다.
역시 이유는 모르겠지만, 조금 안도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 어제 내 제안은…”
“음, 받아들이지.”
그날부터, 그녀는 루이에게서 발렌슈타인 가문의 검술을 배웠다.
그와 어울리는 것이 남들의 눈에 띄는 것이 싫어, 일부러 밤 늦게 연무장에서 만났다.
그걸 분명 알고 있을 텐데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던 루이.
펠리체의 예상과는 달리.
루이의 제안에는 아무런 속셈도 없었다.
그저 검술을 가르치고, 시시한 수다나 떨었다.
주로 루이가 말하고 자신은 듣는 편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건, 꽤나 즐거웠다.
즐거운 이유가 새로운 검술을 배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루이와 어울리는 것이 즐거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서로 어울리며, 둘은 점점 친해졌다.
이전처럼 루이가 말을 걸어도 무시하지 않았고.
둘만 있을 때에는, 펠리체도 그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기본적으로 말수가 없고 무뚝뚝한 펠리체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펠리체는 루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보다 더 가까워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평소와 같이 그에게 검술을 배우던 날.
“일어나라. 사내가 되어가지고 겨우 이 정도로 뻗다니.”
“아, 몰라. 난 쉴 거야. 힘들어.”
“흠, 쓸모없군.”
“얌마! 기껏 가르쳐줬더니 말이 심하네!”
“농담이었다.”
“정색하고 농담하지 마라, 임마!”
“그렇게 소리 지르는 것을 보니, 충분히 쉬었군.”
펠리체는 이제 루이와 장난을 치고 농담도 할 정도로 친해져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에게 검술을 가르쳐 줘서 고맙다고 말하거나.
혹은 이전에 무시해서 미안했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낯간지러웠다.
펠리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본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
대신, 그녀는 루이에게 말했다.
“어서 일어나라. 그리고…”
“응?”
“…내가 다 배우고 나면, 다음에는 우리 가문의 검술을 가르쳐 주지.”
펠리체가 얼굴을 붉혔다.
이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사과이자, 동시에 고마움의 표시였다.
하지만, 결국 그녀가 루이에게서 발렌슈타인의 검술을 다 배우는 일은 없었다.
그녀가 루이에게 가문의 검술을 가르쳐 주는 일도 없었고.
그녀가 주말에 시간을 내, 본가에 내려갔을 때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식사를 하던 펠리체.
아카데미 생활을 어떻냐는 둥,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엡실트 공작가의 자제와 같은 파티가 되었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어떻더냐. 그와는 친해졌느냐?”
펠리체는 잠시 고민을 하다, 조심스레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 그리 성실하거나 훌륭한 인간은 아닌 듯 보였습니다.”
“말조심하거라. 제국을 세운 세 공작가 중 하나이니, 그에 마땅한 존경심을 보여라. 혹여 무례를 저지른 것은 아니겠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르게 ‘그건 발렌슈타인 가문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고 되물을 뻔했지만 말이다.
동시에, 자신이 아버지에게 말대꾸를 하려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 그와는 친하게 지내도록.”
그러던 와중, 그녀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참! 그러고 보니 저번에 다과회에서 들었는데, 발렌슈타인의 아이와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식당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저건 무슨 소리냐.”
백작이 싸늘하게 말한다.
사실이 아니라고 하거나, 혹은 죄송하다고 하거나.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그중, 펠리체는 루이를 변호하기를 택했다.
이전의 그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꼭 그러고 싶었다.
동시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면 자신의 아버지가 생각을 바꾸시지 않을까.
그런 희망도 약간은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루이 발렌슈타인은 듣던 것처럼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본인의 가문과는 다르게…”
쾅!
펠리체는 창백하게 질려, 입을 다물었다.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는 내 귀에 저딴 말이 들어오지 않게 해라. 명령이다.”
백작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그 이후로, 펠리체와 루이의 사이는 서로 친해지기 이전으로 돌아갔다.
아니, 그때보다도 더 나빴다.
루이는 펠리체가 왜 그러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어 했지만.
펠리체는 그런 루이를 밀쳐내고, 아버지의 명에 따라 오히려 레오 엡실트와 대화를 시도했으므로.
원체 무뚝뚝한 그녀였지만, 그 차이는 루이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자신에게 달라붙는 루이에게 밀쳐내기 위해 일부러 못되게 굴었다.
결국에는 루이도 그녀에게 실망한 것 같았다.
그 사실에 어째서인지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얼마 전, 루이와 사사건건 충돌하던 레오 엡실트가 그의 추방을 제안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기 싫었다.
그와 이전처럼 친하게 지내지는 못하지만.
그가 파티에서 나가게 된다면, 진짜로 끝인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반대를 할 수 없었다.
루이를 파티에서 추방시키는 것에 그녀가 반대를 했다는 말이 돌아다니도록 할 수 없었다.
다시 아버지를 실망시킬 수는 없다.
혹시 실망한 백작이 자신에게 가주 자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하면, 지금까지의 그녀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면서도 그녀는 내심, 마지막까지 반대하던 아이네를 응원했다.
결국에는 아이네도 찬성으로 돌아섰지만.
그에게 추방을 선언한 날에는, 펠리체도 루이에게 약간 실망했었다.
잡을 이유도 없었던 가고일을 일부러 건드려서, 파티원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그래, 그렇게 실망한 채로 모든 것을 끝내자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그녀에게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영지가 가고일 떼에게 습격당했음을 알리는 편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