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너무 늦은 사죄
워낙 다급하게 전해진 편지였다.
영지가 가고일 떼의 습격을 받았다.
피해가 심하고, 백작은 중태에 빠졌다고 한다.
곧 가문의 사람을 보낼 것이니, 대기하고 있으라는 말까지.
대충 봐도 다급함이 느껴지는 글씨체였다.
펠리체는 편지를 읽자마자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아버지가 중태에 빠졌다.
영지의 피해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았으나, 그 구절만으로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심지어 어머니나 여동생에 대해서는 언급도 되어있지 않다.
그것이 둘이 멀쩡하기에 굳이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이기를 빌며.
동시에, 그녀가 편지를 읽자마자 떠올린 것은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가 가고일을 공격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파티원들이 부상을 입은 레오에게 신경을 쓰고 있을 때, 혼자서 처절하게 가고일을 잡던 그의 모습이.
그 노력이, 펠리체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도대체 어째서?’
자신은 그에게 그리도 매몰차게 대했는데?
결국 가고일을 잡지 못하고 절망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안스베르크 영지를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는 그리도 절망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그에게 뭐라고 했더라?
‘평판을 바꾸기 위해서인지, 포상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대 때문에 우리 모두가 위험에 처할 뻔했다.’
“아냐, 아니야…”
그녀가 자괴감에 시달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가능하다면, 당시의 자신에게 달려들어 입이라도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카데미에서의 평판도.
과제 점수도.
혹은 포상금 때문도 아니었다.
펠리체, 자신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자신은 그에게 그따위 폭언을 쏟아냈던 것이다.
이게 사실이어서는 안 됐다.
만약 진짜라면, 버티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그녀는 한달음에 밖으로 달려나갔다.
루이를, 루이를 찾아야 한다.
운이 좋게도, 식당 근처에서 그를 곧 발견할 수 있었다.
그와 어울린다는 소문이 나면 안 된다는 이유로, 남들의 앞에서는 그에게 사적인 이유로 말을 걸지 않았으나.
지금 그딴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루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얼굴로 자신에게 묻는다.
“무슨 일이지?”
“가, 가고일 떼가 우리 영지에 쳐들어왔다.”
그렇게 말해도,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자리를 떠나려 했다.
펠리체는 그런 그의 어깨를 잡았다.
“어떻게 알았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냐는 말이다!”
그건 절규에 가까웠다.
차라리, 그가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기를.
그가 그날 한 말은 그저 핑계였고, 자신을 위해서 가고일을 잡은 것이 아니기를.
그래서, 자신이 그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없기를.
치사하지만, 바랐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가 진짜로 자신을 위해서 그랬던 것이라면 좋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저번에 다 설명했잖아.”
그의 대답이었다.
결국, 전부 알고 있었고.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처절하게 싸운 것이 맞았다.
멍청한 자신은 루이의 설명을 들었어도 진짜 가고일의 침략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나.
그는 알고 있었다.
펠리체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번에야말로 루이는 가려고 했다.
그러나 펠리체는 그를 보내주지 않았다.
“그, 그러면! 그렇게 확신했더라면 우리 영지에 경고라도 해 줄 수 있었잖냐!”
웃기지도 않는 투정이었다.
그러나 분명, 이전의 친절했던 루이라면 그래주었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말이었기에, 내뱉고도 흠칫했다.
루이는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뺨을 갈겼다.
펠리체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루이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듯.
그가 그녀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펠리체는 묵묵히 감내했다.
그러나.
“넌 늘 그랬잖아? 내가 뭘 하든, 어차피 반역자 발렌슈타인.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고, 발렌슈타인이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걸 판단했잖아!”
“웃기지 마라! 나, 나는 그런…”
그것만은 아니었다.
방금의 말은, 둘이 함께 어울렸던 시간을 부정하는 것만 같아서.
펠리체의 가슴에 너무나도 아프게 다가왔다.
만약 자신이 진짜로 그랬다면, 애초에 발렌슈타인과 어울릴 일이 없지 않았겠는가?
자신은 발렌슈타인이 아닌 루이라는 사람을 봤기에, 그와 친해진 것이었다.
그가 발렌슈타인이라는 이유로 쳐낸 것은, 아버지의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소리를 지르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의 명령이었다 해도, 결국 나는 그의 가문 때문에 그를 쳐낸 것이 맞지 않은가? 어차피 루이에게는 똑같은 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
여기에서 멈추면, 진짜로 쓰러질 것만 같았으니.
헛된 자존심이었고, 용서받지 못할 고집이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결국 둘의 싸움을 멈춘 것은 그녀의 여동생, 루시 안스베르크였다.
루시가 말했다.
“그만해, 언니! 뭐 하는 거야!”
또, 루이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공자님.”
펠리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녀가 자신을 말리고.
왜 그녀가 루이에게 사과를 하는가.
그 의문은 곧 풀렸다.
“언니야말로 왜 이분한테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거야! 공자님이 아니었으면 나랑 어머님까지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루시의 말을, 펠리체의 머리는 순간 이해를 거부했다.
저 말은 꼭, 루이가 미리 경고를 해줬다는 소리 같지 않은가…?
“뭐…?”
펠리체가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공자님이 미리 경고해 주신 덕에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어요.”
루시가 그에게 고개를 숙인다.
진짜였다.
“뭐?”
펠리체는 그저 그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 영지에 미리 경고를 해 줄 수는 없었냐고 화를 냈는데.
그를 파티에서 추방시킨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미리 경고까지 했었다고?
머리가 새하얘졌다.
너무나도 슬픈 표정을 한 루이는, 뒤로 돌았다.
“잠깐, 루이!”
그를 불렀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차마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루이가 떠났다.
펠리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보고 있었지만, 상관없다.
“아아아…”
그녀가 비통한 절규를 내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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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공자님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루시가 옆에서 소리친다.
그러나 펠리체는 도저히 대답할 상태가 아니었다.
가문의 사람들은 그녀가 얼이 빠져 있는 것이 가고일의 습격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은 루이 때문이었다.
“아가씨, 어서 출발하셔야 합니다.”
그들이 말한다.
백작이 의식을 잃은 이상, 영지에는 펠리체가 필요했다.
그걸 알지만.
펠리체는 힘겹게 말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다오.”
여태껏 루이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루이는 착하고 친절한 인물이니까.
여지껏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에게 구역질이 났다, 펠리체는.
펠리체의 머릿속은 그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까 루시가 그에게 감사 인사를 했을 때, 자신은 사과를 했어야 한다.
아니, 그가 자신을 위해서 가고일을 잡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과를 했어야 한다.
아니, 그를 파티에서 추방했을 때.
아니, 아버지의 명령으로 그를 밀쳐냈을 때.
아니, 그에게 검술을 배우기 시작했을…
이제야 펠리체는 깨달았다.
자신은 그에게 잘못한 것이 너무나 많았으나, 제대로 사과를 한 적은 없었다고.
심지어 검술을 가르쳐주겠다는 그에게 화를 냈을 때도, 그 일에 대해서만 사과했었다.
그 전에, 이유 없이 그에게 매몰차게 대했던 것에 대해서는 사과를 한 적이 없었다.
그녀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너무 늦었다는 것을.
그래도 펠리체는, 지금이라도 그에게 사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무엇을 시키든, 무엇을 요구하든 망설임 없이 할 것이다.
최소한 지금만큼은 아버지의 명령조차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동시에, 루이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절대 들키지 않으려 했던 감정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 늦었지만, 그녀는 루이가 자신의 사과를 받아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싸늘하게 대해도,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던 루이였으니까.
결국 그의 친절에 기대려 한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는 펠리체였으나.
그녀는 힘없이 아카데미의 기숙사로 향했다.
아카데미의 남자 기숙사.
루이의 방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방 안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이, 나다. 펠리체 안스베르크다.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부탁이다.”
약간의 침묵 뒤.
“…꺼져.”
여전히 힘없는 목소리였다.
루이가 볼 수도 없건만, 펠리체는 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루이, 미안하다. 내가 그대에게 사죄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핑계라고 생각하겠지만, 조금만 들어줄 수는 없겠는가?”
핑계.
가고일 떼가 안스베르크 영지를 침공할 것이라 말하는 루이에게, 그녀가 한 말이었다.
“제발, 미안하다. 진짜로 미안하다…”
그녀는 문 앞에서 계속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끝까지, 문은 열리지 않았다.
결국 펠리체는 자리에서 힘없이 일어났다.
“다음에는, 다음에는 꼭 이야기하자.”
그렇게 펠리체는 비척비척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