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13화 (13/69)

EP.13 파티원들의 명예를 걸고!

“방금 그 말…”

“그 말, 취소하라고?”

나는 한껏 이죽거리며 에스더의 말을 잘랐다.

“어쩌냐, 나는 나보다 약한 놈의 말 따위는 듣지 않아서.”

나 역시 그녀에 맞서, 내 마나를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 참고 참다가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위험할 정도로 높아진 느낌이다.

“방금 그 말, 확실히 책임지게 해 드리죠.”

성녀는 전투 자세를 잡으며 내게 위협적으로 말했다.

나는 오히려 그게 기뻤다.

“바라던 바다. 지금까지 파티 분위기 개판 날까 봐 참았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잖아?”

“하, 참았다고요? 아까부터 자신이 희생이라도 한 듯이 말하는데, 그거 기분 나쁩니다?”

“정했다. 성녀고 뭐고, 너는 진짜로 니네 여신 곁으로 보내줄게.”

우리가 충돌하기 직전.

옆에서 레오가 소리를 질렀다.

“잠깐, 에스더!”

“레오, 그치만 방금 이 자가 지껄이는 걸 들으셨잖아요!”

“나도 알아. 그것까지 전부 포함해서 책임지게 할 것이니까, 우선은 진정해.”

나는 그 둘이 내 앞에서 떠들고 있는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흥미가 돋기는 했다.

과연 이 레오 엡실트는, 도대체 어떻게 내가 책임지게 한다는 것일까.

성녀 대신에 레오가 앞으로 나선다.

“어이, 루이 발렌슈타인.”

그가 후우, 하고 숨을 내쉰다.

“네놈에게 결투를 신청하지.”

“내가 잘못 들었나?”

레오 엡실트의 이번 수에는, 나도 진짜로 당황했다.

그야, 지난번의 대련에서 그는 나에게 철저하게 능욕당했다.

그런데 결투라니?

오늘부터 뼈빠지게 노력한다 해도, 근 시일 내에 나를 이기기는 불가능하다.

“설마 도망치지는 않겠지?”

그가 심지어는 나를 도발한다.

참고로 이 아카데미에서의 결투란, 귀족들 사이의 결투를 교칙으로 명문화한 것이다.

어느 한쪽 혹은 양쪽의 명예와 관련하여, 사죄와 대가를 놓고 교수의 참관 하에 결투를 벌인다.

아카데미는 기본적으로 신분과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나.

이 결투는 아카데미 밖에서와 같이 귀족이 귀족에게만 신청 가능하다.

진 쪽은 이긴 쪽에게 사죄를 하고, 따로 정한 조건이 있다면 이를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결투를 받아들일지의 여부는 강제가 아니기에, 내가 원한다면 그의 신청을 받지 않아도 된다.

물론 결투에 응하지 않는 것은 명예에 큰 손상을 입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생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원치도 않는 결투에 임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가 레오 엡실트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도망치거나 그의 결투에 응하지 않을 리는 없다.

그런데 어째서 그가 결투 신청을?

나는 우선, 그에게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물었다.

“무슨 명분으로 결투를 신청하는 거지?”

“그야 물론, 네놈이 나와 내 파티원들의 노력을 폄하하며 우리를 욕보였다. 거기에 방금, 성녀에게 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불경한 말까지. 설마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지?”

물론 할 말은 많았으나.

상황이 점점 흥미롭게 흘러가기에, 나는 우선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무엇보다도, 아까 내 멱살을 잡을 때까지만 해도 흥분했었던 그가 지금은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분명 이전부터 생각했었던 것이리라.

“원래는 네가 제출한 그 웃기지도 않는 추방 신청서를 취소하고, 우리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정도로 봐 줄 생각이었다.”

그가 꼭 큰 선심을 쓴다는 듯이 말한다.

“그러나 오늘 네놈의 말을 듣고 있자니, 역시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그가 외친다.

“방금 너의 발언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성녀와 우리에게 공개 사과를 해라. 그 후에는, 아카데미를 자퇴해라!”

미리 이야기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인지, 레오 뒤의 파티원들도 놀란 표정이다.

성녀는 감동받은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지만, 당장 엘린만 해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보고.

베로니카는 이미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저 말의 뜻은, 나를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밟겠다는 소리다.

아까 내가 에스더에게 한 말은 엄밀히 따지자면, 교단 그 자체가 아니라 부패한 사제들과 성녀만을 욕하는 것이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할 만한 말은 절대 아니다.

나도 여기에 우리밖에 없으니 그런 것이지, 이런 말을 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면 교단에서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조사가 들어올 수도 있다.

거기에 나더러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내 명예를 짓밟아 귀족 사회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내가 공개 사과를 하는 순간, 아마 몇 년 동안은 이에 대한 소문이 돌아다닐 테니까.

마지막으로, 아카데미 자퇴.

이 세계에서 귀족이 헬론 아카데미를 졸업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 타격이 크다.

반쪽짜리 귀족이라고 불릴 정도.

상위 귀족가에 시집을 가는 것이 꿈인 귀족 영애들조차 아카데미는 무조건 졸업한다.

그런 이들을 위해 일부러 활동이 거의 없는 파티에 지정해 주기도 하니 말이다.

특히 나처럼 가주가 될 예정인 후계자는, 그 후계자 자리를 박탈당하는 것도 당연하다.

만약 아카데미를 정상적으로 졸업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이 제국의 귀족 사회가 아카데미의 학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결국, 저 셋 중 어느 쪽이든 내게 치명적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궁금했다.

저런 조건을 건다면, 비슷한 수준의 조건을 감내해야 하는데?

“네가 진다면?”

나는 그에게 떠보듯이 물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면 내가 네놈에게 사과하고 아카데미를 자퇴하지!”

다른 파티원들이 경악하지만.

나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애초에 저 조건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 저 글러먹은 용사 대신에 내가 마왕을 처치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결국 마왕을 완전히 죽이기 위해서는 용사만이 다룰 수 있는 성검이 필요하다.

아직 그를 대체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니, 레오 엡실트는 제대로 스토리를 따라 아카데미를 졸업해야 한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용사 후보가 아카데미를 자퇴한다?

아무리 결투의 내용이더라도,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위에서부터 나서서 막으려 하겠지.

내게는 적당한 다른 보상을 제시하며 말이다.

어쩌면 그도 이걸 예상하고 저런 조건을 내지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딴 거 말고.”

나는 짧게 고민했다.

불가능한 것도 말고, 내게 이득이 될 법한…

“우선, 내가 공개 사과를 걸었으니 니들도 내게 공개적으로 사과해라. 레오 너는 네 파티원들의 명예를 걸고 결투에 임하는 것이니, 패배했을 시에 사과도 니들 모두가 해야겠지.”

딱히, 사과는 받고 싶지 않다.

어차피 진심이 담겨있지 않다는 것을 아니까.

그러니 그냥 사과가 아니라 공개 사과여야만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들의 사과가 아니라, 이들이 굴욕을 받는 것이니까.

“그게 무슨…!”

성녀가 다시 발끈하지만.

“괜찮아, 에스더. 받아들이지.”

레오가 자신만만하게 성녀를 안심시킨다.

“물론 끝이 아니다. 나는 자퇴까지 걸었다고?”

그가 말한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나였다.

나는 다음 조건을 말했다.

“만약 네가 패배한다면, 네 검을 나한테 넘겨라.”

앞의 것이 내 정신적 만족감을 위한 조건이었다면.

이번 건 내 이득을 위한 조건이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레오 엡실트를 대신하여, 게임에 나오는 기연을 긁어모아 성장한 나였으나.

아쉽게도 이 게임에는 검에 관련된 기연이 없었다.

주인공이 용사 후보일 적에는 가문에서 들고 온 보검을 사용하고.

용사가 된 후에는 교단의 성검을 사용하니 말이다.

굳이 다른 검이 필요가 없기에, 내가 먹을 숨겨진 검 같은 것도 없었다.

방금 내가 조건으로 건 검은, 바로 그 보검이었다.

기연이 없는 대신에 그 검에 관련해서도, 숨겨진 힘을 깨우는 이벤트가 있지만.

저 한심한 놈은 아직까지 그 힘을 깨우지도 못했다.

차라리 내가 써 주는 것이 낫지.

아무리 그래도 엡실트 가문의 보검, 심지어 이름도 알려진 검이기에 레오가 잠시 망설이지만.

“나는 아카데미 자퇴를 걸었다.”

내가 말했다.

“검사에게 검은 분신과도 같은 것. 거기에다 가문의 보검이라니, 그 정도는 되어야 격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렇게까지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 어차피 용사 후보인 내가 네놈 따위에게 질 일은 없으니. 좋다, 전부 받아들이지.”

그 자신감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 무언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결투는 돌아오는 전투 실습 시간에 교수님에게 신청하고, 그 다음 전투 실습 시간에 실행하는 것으로 하지.”

그가 말한다.

그가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다면, 수를 쓸 틈도 없이 곧바로 결투를 해야겠으나.

이건 우선 신청하고, 서약서도 쓰고, 참관인도 정해야 하고, 또 교수님들의 허락도 구해야 하는 등.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바로 결투가 불가능하다면 의미가 없다.

차라리 시간을 넉넉히 잡아 그의 속셈을 알아내는 편이 낫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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