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머저리 같은 장난
어안이 벙벙했지만.
우선은 그녀가 이끄는 대로 발을 놀렸다.
베로니카는 나를 다시, 방금 대화를 나누던 인적 없는 구석으로 데려갔다.
거기까지 나를 끌고 간 베로니카를, 우선은 아무런 말도 없이 지켜봤다.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기도 잠시.
밑도 끝도 없이 베로니카가 내게 빼액, 소리를 지른다.
“루이 발렌슈타인,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나더러 무슨 생각이냐고 소리를 지르는 그녀.
저건 뭐에 대한 말일까.
“왜 일을 이렇게까지 만드는 거냐구! 그냥 나한테 적당히 사과하면 됐잖아!”
“…뭐? 내가 일을 이렇게까지 만들었다고?”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에게 되물었다.
베로니카는 잠시 흠칫했지만, 다시 소리를 지른다.
“그래! 네가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우지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거 아냐!”
빠드득, 이빨이 갈린다.
진짜로,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잘못한 것이 있는 것인지.
나는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그래, 물어보기나 하자. 내가 뭘 잘못했다고 너한테 사과를 해야 하는데?”
“……”
잠시 입을 열지 못하는 그녀.
“…네, 네가 우리랑 상의도 없이 가고일을 잡으러 갔잖아! 과제는 분명 둥지를 조사하는 것으로 끝이었는데!”
마치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그녀가 나를 몰아친다.
“너 때문에 쓸데없이 시간도 낭비하고, 위험에 처할 뻔…
“넌 진짜로 쓰레기다.”
내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도무지 들어줄 수가 없었다.
나 역시 그녀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래. 워낙 급해서 그랬다지만, 그때 당시에는 내가 설명도 없이 가고일을 공격했어. 직후에 한 설명도 너희들에게는 추측으로 느껴질 수 있었겠지.”
내가 소리를 지르자, 베로니카는 겁먹은 표정이다.
지금까지 베로니카에게 이렇게 진심으로 화를 내 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때 나한테 욕한 건, 짜증나도 참을 수 있어! 근데!”
나는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가고일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잖아! 우리가 그걸 못 잡아서 사람들이 그렇게 죽었는데, 어떻게 아직도 그딴 소리를 할 수가 있냐!”
당시에는 먼 길을 달리고,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둥지 조사까지 끝마친 후였다.
그러니 돌연 나타난 가고일을 공격하는 나에게 불만이 있을 수도 있었다.
다들 지쳐 있었고, 생도 수준으로 잡기도 버거웠고, 애초에 과제 내용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때 당시에는 나를 욕할 수도 있었다는 소리다.
근데 실제로 가고일 떼가 안스베르크 영지를 습격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걸 알면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야.”
나를 비웃고, 비아냥거리고, 레오 새끼와 비교할 때에도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다.
원래 그녀의 성격이 그랬고, 짜증나더라도 티격태격대며 그녀 나름의 친근함을 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나를 파티에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추방했을 때 그게 착각이라는 걸 알아챘고.
오늘 그녀의 말에는, 이렇게까지 실망한 적이 없었다.
“그 사람들이 죽은 데에는 네 책임이 없는 것 같아? 뭐, 마나 많이 쓰면 머리가 아프다고?”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걸 잡으려고 만신창이가 된 나는 도대체 뭔데?”
앞의 베로니카는 답지 않게 겁먹은 모습이었지만, 알 바 아니다.
“그래. 네가 평소에 그렇게나 자랑하던 고위 마법 하나만 상처에 대고 쐈어도, 너 머리 조금 아픈 걸로 그 사람들 전부 살 수 있었다고! 이 쓰레기 같은 년아!”
그녀가 평소에 늘 천한 것들이니 어쩌니 해도, 그냥 말버릇인 줄 알았다.
내가 처음에 안스베르크 가의 소식을 듣고 느낀 것은, 약간의 죄책감이었다.
펠리체에게 화가 났다는 이유로, 가고일의 습격을 경고하지 말까 잠시 고민했던 나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었다.
내가 경고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사람이 죽었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근데 내 눈 앞의 이 마법사는, 그딴 건 진짜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약간의 충격, 그리고 맹렬한 분노를 느꼈다.
원작 게임에서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며, 그냥 말만 그렇게 해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녀는, 진짜로 쓰레기였나 보다.
내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느라 입을 다물고 있자.
그녀가, 쥐어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다시 소리친다.
“그… 그게 왜 내 탓이야! 나 말고도 죄다 가만히 있었잖아!”
그래, 그랬다.
그나마 펠리체 정도가 가고일의 몇몇 공격을 받아냈지만, 그녀도 진심으로 싸우지는 않았다.
아이네도 무언가 하려고는 한 것 같지만, 애초에 약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아무튼, 베로니카는 지금 억울하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진짜로 어이가 없다.
“야, 설마 남들도 가만히 있었는데 왜 네 탓인지… 억울하다는 거냐?”
내가 싸늘하게 물었다.
진짜로 화를 꾹꾹 눌러 참고 있어서, 말을 조금 조심해 주면 좋겠는데.
그러나 그건 베로니카에게는 무리한 요구였나 보다.
“그, 그래! 왜 나한테만 그러냐구!”
베로니카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네가 끝까지 자존심을 세운 게 문제잖아! 가고일을 잡을 때도, 파티에서 추방당할 때도!”
나를 향해 소리치는 그녀.
“평소처럼 숙이고 부탁했으면, 나도 들어줄 생각… 꺄악!”
콰직, 내 주먹이 그녀의 배에 처박혔다.
방금까지 뭐라 말을 하던 그녀였으나, 어차피 그 내용은 들리지도 않았었다.
그녀가 기어코 내 탓을 하는 순간, 내 이성이 잠시 날아갔으니까.
새된 비명을 지른 그녀가, 바닥에 엎어져 숨을 쉬려고 노력한다.
“끄, 끄으…”
부들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설마 그녀를 때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심지어 그녀가 나를 파티에서 추방하던 날에도.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됐다.
신기하게도, 후회는 없다.
대신에 후련한 기분은 들었다.
“으으으…”
여전히 신음을 흘리고 있는 그녀에게, 내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거 알아? 나는 네가 나를 욕하는 것도, 그냥 장난인 줄 알았어. 조금 심한 장난.”
베로니카는 여전히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네 평소 성격도 오만하고. 맨날 다른 사람들보고 천하다 어쩌다 하고. 그러니까, 나한테 하는 것도 네 평소 성격다운 조금 심한 장난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방금까지 치솟았던 화는 어디로 가고,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진다.
“그게 아니었네. 너는 그냥,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나를 놀리고, 비웃고, 비아냥거리고, 레오와 비교하고.
전부 진심이었다.
“으, 아, 아냐…”
그녀가 중얼거린다.
도대체 뭐가 아니라는 걸까.
나 따위에게 맞았다는 사실이 믿기 싫은 걸까?
“내가 멍청했지, 이걸 파티에서 추방당하고 나서야 깨닫다니. 그동안 옆에서 얼마나 우스웠냐?”
나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신이 나간 상태로,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갑자기, 이 모든 게 짜증났다.
여기 있으면 그녀를 걷어차기라도 할 것 같아서, 나는 뒤로 돌았다.
자리를 떠나는 내 뒤로, 베로니카가 힘겹게 말을 내뱉는다.
“자, 잠깐… 끄으…”
힐끗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팔을 부들부들 떨며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게 맞은 게 생각보다 많이 아팠나 보다.
굳이 사과는 하지 않았다.
“이해해 주라.”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뒤에 있을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나한테 욕할 때마다, 그냥 넘기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장난으로 받고. 장난식으로 화내기도 하고. 그렇게 장난식으로 되받아치기도 했는데.”
전부, 그녀가 친한 사람에게 하는 장난이라 받아들이며 넘겼는데.
“나도 많이 아팠거든.”
여전히 끙끙거리는 그녀를 뒤로하고.
나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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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흐윽…”
루이 발렌슈타인이 떠난 자리에는, 이윽고 울음소리가 흐른다.
“흑! 끕, 흐으…”
베로니카 엘트윈은,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로 흐느끼고 있다.
고통 때문은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에게 맞아보는 것이었다.
그녀의 스승님조차 그녀를 때린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고통 때문도 아니었고, 맞았다는 억울함 때문에 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우는 이유는, 그녀를 때린 사람이 루이 발렌슈타인이었기 때문이다.
상상도 한 적 없었다.
그가 자신을 때릴 것이라고 상상도 한 적 없었고.
그가 자신을 떠날 것이라고 상상도 한 적 없었다.
아무리 욕해도, 그는 진심으로 화내지 않았다.
웃고.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자신에게 욕을 되받아칠 때면, 베로니카는 겉으로는 화를 내면서도 내심 즐거웠다.
그가 자신을 욕할 때에도 진심으로 화나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베로니카였다.
그러니까, 루이도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까지고 장난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애초에, 루이의 추방 따위에 동의하는 게 아니었다.
그딴 머저리 같은 장난을 계획하는 게 아니었다.
남들이 이상하게 보더라도, 아무리 부끄럽더라도.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끝까지 루이를 지켰어야 했다.
자신의 멍청한 실수 때문에, 루이가 떠났고.
루이는 이제 자신에게 진심으로 화가 났다.
‘어, 어떡하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두려움에 웅크린 채로 손톱을 물어뜯는다.
베로니카는 처음부터 떠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