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 적색 마탑 최후의 양심
자신의 부모님은 마법사였다고 한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녀가 떠올리지도 못하는 어린 시절에, 두 분 모두 돌아가셨다고 들었으니까.
그럴 경우에, 운 좋게도 부유한 친척이 있다면 입양이 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보통 제국에서 고아라고 하면, 길바닥에서 굶어 죽거나.
혹은 잘 풀려도 고아원으로 가게 될 것이다.
베로니카의 경우에는, 그녀를 받아 줄 친척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이 불우해질 리는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두 분 모두가 마법사.
그것도 적색 마탑 소속의 마법사였으니까.
콧대 높고 사회성이나 인간관계가 파멸적이기로 유명한 마법사들이다만.
그녀의 부모님들은 예외적으로 성격이 친절했다고 한다.
거기에 실력까지 뛰어났으니, 마탑 안에서도 인망이 높은 둘이었다.
베로니카는 적색 마탑 마법사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마탑 내부에서 남부럽지 않게 생활할 수 있었다.
의식주에는 모자람이 없었고.
그녀를 특히 아껴주던 한 마법사 덕분에, 부모가 없다고 해서 애정결핍을 느끼거나 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탑이 아이의 성장에 좋은 곳은 절대 아니었지만.
차라리 그 반대였으면 몰라도 말이다.
베로니카가 조금 나이를 먹고 나서, 그녀는 자연스레 마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전부 마법사뿐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샐리, 마법! 응? 샐리이~”
평소 베로니카를 특히 아껴주던 마법사, 샐리는 오늘도 칭얼거리는 베로니카에게 마법을 시연한다.
“우와!”
눈을 반짝이며 그녀의 마법을 구경하는 어린 베로니카.
샐리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샐리는 내심 베로니카가 마법에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색 마탑이 언제까지고 그녀를 키워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녀의 부모님도 나름 뛰어난 마법사였으니,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그녀가 마법사가 된다면 적색 마탑에 언제까지고 남아있을 수 있다.
언젠가 그녀에게 마법을 가르치겠다고 생각한 샐리였다.
물론, 아직은 아니었지만.
아직 저렇게 어린 애가 무슨 마법이라는 말인가?
대신에, 그녀는 베로니카에게 조금 다른 마법을 보여주었다.
평소 그녀를 위해 시연하던 화려하고 눈이 즐거운 마법이 아니었다.
기본 중의 기본.
동시에, 이 적색 마탑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마법.
영창 따위 필요도 없는 마법이지만, 그녀는 중얼거렸다.
“파이어.”
샐리의 손가락 끝에, 찬연한 불꽃이 피어난다.
아름다운 불꽃이었다.
간단한 마법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완벽에 이르기가 어렵다.
샐리가 만들어낸 불꽃의 진가를 알아본 것일까.
아니면, 그저 마법이라면 다 좋은 것일까.
평소 보여주던 불꽃놀이 같은 화려한 마법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지만.
베로니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해서 그 작은 화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그녀가 고개를 돌려 샐리의 얼굴을 바라본다.
“샐리!”
“응?”
“나, 이건 할 수 있을 거 같아!”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그녀.
샐리는 베로니카가 너무나 귀여워서, 볼이라도 깨물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결심했다.’
베로니카가 화를 낼 것 같기는 하지만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로니카의 귀여움에 굴복한 샐리는, 그녀의 볼을 꼬집어보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그렇게 잠시 딴생각을 하던 샐리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하마터면 놀라 쓰러질 뻔했다.
“어때, 샐리?”
칭찬해달라는 듯이 그녀를 부르는 베로니카.
그녀의 손가락 위에는, 작지만 찬란한 불꽃이 피어나 있었다.
“마탑주님! 마탑주님!”
샐리는 그 길로 즉시 베로니카를 들고, 마탑주의 연구실로 향했다.
“샐리! 왜 그래!”
뒷덜미를 붙잡혀 대롱대롱 매달린 베로니카가 묻지만, 샐리는 지금 급했다.
쾅!
“마탑주님!”
적색 마탑주, 스칼렛 마르슈.
그녀는 감히 자신의 연구실에 노크도 없이 침입한 샐리를 노려보았다.
원래 마법사가 제일 싫어하는 일 중에 하나가 멋대로 남의 연구실을 기웃거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연구 도중에 방해를 받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샐리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감히 마탑주의 연구실에 멋대로 들어올 만큼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손에 마나를 모으던 스칼렛은, 샐리가 들고 온 베로니카를 보고서는 일단 참았다.
딱히 마탑주와 베로니카 사이에 접점은 없었다만.
아무리 그래도 아이 앞에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대신에, 스칼렛은 싸늘하게 물었다.
“샐리, 지금 이게 뭐 하자는 짓이지?”
그녀의 기세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것인지, 우선 사과부터 하는 샐리.
“죄송합니다, 마탑주님! 그치만 이건 꼭 보셔야 할 것 같아서…”
샐리는 지금 극도의 흥분 상태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감히 멋대로 상급자의 방에 들어오다니, 따위의 말을 하겠지만.
스칼렛은 마법사.
그녀는 곧 무엇이 샐리를 저렇게 흥분하게 만들었나에 더 관심을 가졌다.
샐리가 베로니카를 향해 말한다.
“베로니카, 방금 그거 또 보여줄 수 있어?”
지금 상황에 당황한 베로니카였지만.
샐리의 말에, 베로니카는 다시 불꽃을 피워냈다.
아까보다는 쉽다고 생각하면서.
스칼렛이 그 모습을 보고서는 눈을 크게 뜬다.
“…이건 놀랍군. 샐리, 언제부터 마법을 가르친 거지?”
설마 이렇게 어린 아이가 마법을 배울 수 있을 줄이야.
스칼렛은 그녀답지 않게 감탄을 했지만, 샐리는 고개를 저었다.
“가르친 적 없습니다. 그냥 앞에서 마법은 시연했을 뿐인데… 베로니카가 그걸 따라서…”
샐리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직접 말을 하면서도,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스칼렛이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확인하지만, 샐리는 전부 진실이라고 했다.
“베로니카, 샐리가 말한 것이 진짜냐?”
“네! 왜여?”
그날, 적색 마탑에는 역사상 최연소 마법사가 탄생했고.
베로니카는 스칼렛의 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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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몇 년이 지났다.
베로니카의 마법에 대한 재능은 진짜였다.
몇몇 사람들은 그녀가 제2의 스칼렛 마르슈가 될 것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몇몇 사람들은 그런 말을 불쾌하게 느꼈다.
중요하지 않았다.
스칼렛이 직접, 베로니카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으니까.
명실상부한 제국, 아니 대륙 최고의 마법사 중 하나인 스칼렛이었다.
그런 그녀의 밑에서 베로니카는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흔히들 천재는 남들을 가르치는 데에 있어 약하다고들 하지만.
베로니카 역시 스칼렛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천재였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문제라고 한다면, 조금 다른 쪽에 있었다.
애초에 괴짜들이 대부분인 마탑이었다.
베로니카가 그 안에서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배우고, 사회성을 기를 기회 따위는 없었다.
심지어는 자신과 같은 나이대의 또래 친구조차 없는 상황.
그나마 정상적이라 할 수 있는 샐리는, 베로니카가 마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만나는 시간이 적어졌고.
적색 마탑주, 마탑 내 마법사들의 왕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
그녀의 스승인 스칼렛은 괴팍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베로니카가 어린 나이에 꿰차게 된 스칼렛의 후계자라는 자리는, 절대 가벼운 위치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직접 제자를 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스칼렛이었다.
그녀의 제자에 이어, 후계자.
좋든 싫든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그녀를 시기, 질투하며 욕하는 이들도 많았고.
그녀에게 의도가 있는 호의를 베풀며 적색 마탑주와, 혹은 미래의 적색 마탑주와 연줄을 만드려는 이들도 많았다.
어느 쪽이든, 아직 어린 베로니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이들은 아니었다.
비록 괴팍한 성격의 스칼렛이었지만, 그녀도 베로니카를 아꼈다.
베로니카가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스칼렛은 그녀에게 충고를 했다.
“베로니카, 지금 우리 마탑에서 너를 욕하는 것들치고 너보다 뛰어난 놈은 하나도 없다.”
베로니카가 스승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한다.
“전부 너보다 뒤떨어지는 것들이다. 우리 같은 천재들은 그딴 하등한 놈들의 말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알았냐?”
끄덕끄덕.
스칼렛은 단지 베로니카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베로니카에게 있어, 자신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어린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이의 가치관 형성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다시 몇 년이 지나고, 베로니카는 마탑의 마법사들과 함께 밖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마탑에서만 살았던 베로니카였기에, 바깥 사회는 처음 구경하는 것이었다.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성격이 나쁘고 오만하다.
베로니카와 함께 다니던 마법사들은, 평민들을 무시하고 오만하게 행동했다.
천한 것들.
마법사들이 베로니카의 곁에서, 평민들을 향해 늘 떠들던 단어였다.
베로니카는 생각했다.
스승님이 말한, 자신보다 덜떨어지는 마법사들조차도 저 평민들에게 저렇게 대하는데.
애초에 저 평민들부터가, 아무런 힘도 없이 약해빠진 것들 아닌가?
어쩌다 다른 마법사가 자리를 비우고, 소녀인 베로니카만 남은 자리에서.
그녀의 힘을 모르는 평민들은 자기네들끼리 떠들어댔다.
콧대 높은 것들, 건방진 족속들, 싸가지 없는 마법사들.
제 딴에는 목소리를 낮춘 것이겠으나, 베로니카에게는 잘만 들렸다.
그녀가 평민들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을지, 뻔한 일이었다.
베로니카의 엇나감을 막아줄 적색 마탑 최후의 양심, 샐리는…
“샐리! 꼭 가야 돼?”
“히잉… 미안해, 베로니카! 올 때 선물 사 올게!”
그녀는 다른 마탑에 파견을 가버렸다.
그렇게, 베로니카는 그리 올바르지 못한 사회성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제국의 귀족들 중에서도 평민들에 대해 베로니카와 유사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제법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그렇게 따지고 보면, 베로니카가 크게 엇나간 것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조금은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베로니카는 마침내 아카데미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