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17화 (17/69)

EP.17 연애 지침서

베로니카가 입학하게 된 헬론 아카데미.

대외적으로 보자면, 대륙 최고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고.

베로니카에게 있어서는, 그녀 세상의 대부분이었던 마탑을 벗어나 처음 겪어보는 사회생활이었다.

그녀의 아카데미 입학 소식을 들은 샐리는 엄청 걱정했었다.

스칼렛 같은 사람이야, 본인의 성격이 도대체 뭐가 문제냐 하겠지만.

샐리는 마법사들의 성격이 하나같이 괴짜 같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베로니카의 학창생활과 교우관계를 심각하게 걱정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간과한 게 두 가지가 있었다.

우선, 헬론 아카데미 출신이 아닌 그녀는 이 아카데미가 다른 아카데미와 다르다는 것을 몰랐고.

다음으로, 적색 마탑주의 후계자라는 신분은 생각보다도 더 대단했다.

대인관계의 표준을 ‘마법사’로 배워 버린 베로니카는 아카데미에서도 그대로 행동했다.

그러나,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사람들도 마법사라는 족속이 기본적으로 오만하고, 특이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거기에 상대는 훗날 적색 마탑주가 될 인물이었으니까.

아무도 그녀의 언행을 문제삼지 않았다.

이 아카데미에서의 인맥이 얼마나 중요한지 부모들로부터 미리 교육받은, 어찌 보면 나이답지 않게 영악한 아이들.

베로니카가 ‘하, 멍청하게! 그것도 몰라!’같은 무시의 발언을 하더라도.

그들은 화를 내거나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역시 적색 마탑주의 제자.”

“천재라는 소문이 진짜였어.”

따위의 반응이 나왔다.

솔직히 말해서, 베로니카는 시시했다.

마탑에서는 그녀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욕하는 이들도 많았다.

근데 이 아카데미에서는, 그런 이들보다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이들의 비중이 훨씬 늘어났다.

당연하지만, 순수한 호의일 리가 없었다.

전부 자신에게 무언가를 원하는, 속셈이 있는 호의였다.

베로니카에게 있어서 그걸 구별하기는 쉬웠다.

이미 마탑에서 수두룩하게 겪은 후였으니까.

그녀가 겪은 순수한 호의란, 샐리와 스승님.

그 둘이 전부였다.

솔직히 말해서, 부끄러움 탓에 아무에게도 밝힌 적은 없지만.

아카데미에 들어와서 친구란 걸 사귀기를 기대한 베로니카였다.

그러나 한숨이 나올 정도로 전부 시시했고, 그녀는 실망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카데미에서는 생도들에게 파티라는 것을 짜줬다.

그녀가 속하게 된 파티의 구성원들은, 그 면면들이 대단했다.

엡실트 가의 후계자이자 용사 후보, 교단의 성녀, ‘황실의 검’ 안스베르크, 대수림에서 온 지체 높은 엘프.

거기에, 적색 마탑주의 후계자인 자신까지.

베로니카는 나름 좋았다.

최소한, 전부 자신에게 굽신거릴 위치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여기에서도 그녀의 친구는 없었다.

성녀라는 년은 용사 후보에게 항상 달라붙어 있었고.

안스베르크인가 뭔가 하는 가문의 년은 원체 말이 없었고.

레오 엡실트라는 기분 나쁜 놈은, 애초에 그녀의 쪽에서 사양이었다.

엘린 니디아?

그 엘프 년이 항상 ‘하등한 인간’을 말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게 빡쳐서, 하루는 대수림에다 메테오를 떨궈서 세계수 위에서 불꽃놀이를 구경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대차게 싸운 뒤로는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파티에서 그녀보다 지위가 낮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둘이었다.

평민인 아이네와, 반역자 가문이라는 발렌슈타인 백작가의 루이 발렌슈타인.

우선 아이네로 말하자면, 천한 평민답지 않게 활기찬 소녀였다.

몇몇 귀족가 자제들은 아이네를 보고 천하다니 어쩌다느니 욕을 해댔다.

물론 베로니카도 마법사들에게서 배운 말버릇으로 그런 말을 자주 하고 다녔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아이네를 싫어하지는 않았었다.

평민들이 천하다느니 어쩌니 하는 것은 진심이었지만.

아이네는 조금 다르게 보였으니까.

다음으로는, 루이 발렌슈타인.

아카데미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베로니카는 그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반역자 가문이니 뭐니, 마탑에서 자란 베로니카는 잘 모르기도 했고.

그런 걸로 사람을 판단하는 베로니카도 아니었다.

상대가 평민이든, 공작가의 후계자든 예외 없이 싸가지는 밥 말아먹은 태도로 대하는 베로니카.

루이 발렌슈타인은 조금 특이했다.

크게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지 않았다.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것들은 자신이 욕을 하면 앞에서는 웃더라도, 참는 기색이 느껴졌었는데.

루이는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자연스레, 베로니카는 루이 발렌슈타인에게 약간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도 그에 대한 소문은 들었다.

생도들이 그에게 보이는 반응도 보았다.

그러니, 남들처럼 베로니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겠지 했지만.

루이는 다른 이들처럼 자신에게 굽신거리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루이는 자신에게 호의를 보였다.

남들처럼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건네는 호의는 샐리나 스승님의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으니까.

그 이해할 수 없는 모습에 답답해진 베로니카.

하루는, 루이에게 대놓고 물었다.

도대체 뭘 원하는 것이냐고.

그때, 해맑게 웃던 루이의 대답이 압권이었다.

“친하게 지내자고!”

사실, 몇 달 후에 루이는 펠리체에게도 같은 말을 하지만.

아무튼 그 말은 베로니카에게 있어 특별하게 다가왔다.

다른 생도들이 말하는 ‘친하게 지내자’와는 느낌이 달랐다.

“흐, 흥! 내가 네까짓 거랑?”

또 싸가지없는 말투였다.

베로니카가 항상 말하는 방식이었고.

그날 이후로, 둘의 사이는 제법 가까워졌다.

아직 그를 완전히 믿지 못한 베로니카는 몇 번 시험도 했었다.

혹시 돈 필요하냐, 아니면 스승님을 소개해 줄까…

사실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베로니카였기에, 참으로 허접한 시험이었지만.

아무튼 루이는 전부 통과했다.

실제로 다른 생도들 중에는, 베로니카의 말에 덥석 스칼렛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렇게 또, 그 욕망에 절여진 눈빛으로 베로니카를 실망하게 만드는 이들도 있었으니까.

루이와 친해졌다고 해서, 그에게 갑자기 착하게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남들에게와 같이, 그녀의 평소 말투로 말하고.

그러나 루이는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신분이 낮은 이들 중에서 그녀에게 감히 되받아치는 이는 루이가 유일했다.

“야, 불쟁이.”

“므, 뭐? 불쟁이?!”

“내가 항상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말이지. 애들은 불장난하면 밤에 오줌 싼다는 소리가…”

“죽어! 죽으라고! 뭔 헛소리야! 애초에 내가 왜 앤데!”

“악, 아파! 아니, 너 키가! 미안!”

“죽어버려, 이 멍청아!”

신기하게도, 그가 욕을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와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게 이상하게 좋았다.

루이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간질간질해지고, 계속 같이 떠들고 싶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루이와 같이 지낼수록 그녀의 상태가 이상해져 갔다.

‘이런 건, 배운 적 없는데…’

막히는 게 있으면 늘 찾던 스승님이었지만, 이번 일은 왠지 아무한테도 말하기가 싫었다.

도서관으로 향한 베로니카가, 혹시나 하고 뽑아든 책.

‘그를 볼 때마다 가슴이 간질거립니까?’

베로니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와 떨어져 있어도 그의 생각이 납니까? 혹시, 눈을 감아도 그의 모습이 떠올라 잠을 설칩니까?’

정확했다.

흥분한 베로니카는 재빠르게 나머지를 읽어나갔다.

‘그의 앞에 서면 얼굴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재빠르게 뛰지는 않습니까?’

“네에…”

자기도 모르게 대답을 하는 베로니카였다.

그러나, 다음 문장.

‘그렇다면, 당신은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응? 뭐? 사, 사랑?’

베로니카의 얼굴의 그녀의 머리카락만큼이나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도서관이라는 것도 잊은 채로,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는 베로니카.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녀의 손에 들린 책은 이미 잿더미가 된 후였다.

사서에게 잔뜩 혼나는 와중에도, 방금 읽은 책의 내용으로 머리가 꽉 찬 베로니카였다.

다음 날, 루이를 만나러 가는 길.

잔뜩 다짐을 했지만, 그를 보자 얼굴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악! 아냐!”

“깜짝이야! 무슨 문제 있냐, 베로니카?”

“닥쳐, 멍청아!”

그와 헤어져도, 루이의 잘생긴 얼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를 반역자라고 욕하는 여생도들도 인정하는 것이 루이의 미모였다.

‘확실히, 얼굴은 반반하죠.’

‘발렌슈타인만 아니었어도…’

베로니카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하, 뭐라는 거야? 평소에 루이를 그렇게 욕하는 주제에. 게다가, 잘생겨? 사내새끼가 여자같이 생겨가지고는…’

아무튼, 베로니카는 자신이 루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루이에게 평소보다도 더 심하게 대했다.

이유야,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는 베로니카를 평소처럼 대했고, 베로니카의 마음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루이 주변의 여자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것이.

아이네야 뭐, 원래부터 루이와 친했었다.

그러나 문제는, 늘 하등한 인간 어쩌고를 떠들던 엘프 년이 루이에게 관심을 가진다.

아닌 척하지만, 베로니카는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베로니카를 가장 신경 쓰게 만든 것은, 의외로 펠리체였다.

늘 무뚝뚝하던 펠리체였는데, 요즘따라 이상하게 루이와 친해진 것 같았다.

결정적인 일은 다음이었다.

여전히 루이 생각으로 잠이 오질 않아, 교정을 산책하던 어느 밤.

베로니카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뭐야, 저 둘. 이 야밤에 어디를 가는 거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