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22화 (22/69)

EP.22 배은망덕

방 안에는 침묵만이 흐른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할 수 없는 침묵이었다.

백작부인과 루시의 조용한 압박이 펠리체의 목을 시시각각 조여온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지금 펠리체는 차라리 다시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가 루이에게 들었으면서도 경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루이가 아니었다면 피해가 더 컸으리라는 것을 말하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거기에, 그 이야기를 꺼내면 결국 가고일 토벌 당시의 일까지 말이 나올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강인한 기사라 할지라도, 아직 아카데미조차 졸업하지 못한 소녀였다.

자신 때문에 영지가 박살나고 아버지가 죽었다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또, 그 이후에 이어질.

어머니, 여동생.

백작가의 가신과 사용인들.

가족을, 친구를, 동료를 잃었을 가문의 병사와 영지민들.

그들 모두의 원망과 증오를 도저히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펠리체는.

이미 아버지의 죽음과 루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펠리체였다.

그러니, 성인조차 견디기 어려울 이런 압박감에서 그녀가 도피하려 한 것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으니…

결국 펠리체가 선택한 것은, 거짓말이었다.

“…저도, 편지로 미리 경고를 했습니다.”

부끄러움, 그리고 루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펠리체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간다.

그러나, 둘에게는 충분히 잘 들렸고.

루시가 분개한다.

“그게 무슨…”

“조금 늦게 보내서, 아마 가고일 떼의 습격 때문에 편지가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루이 발렌슈타인의 경고가 제때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한 번 거짓말을 하자, 그 다음부터는 거침없었다.

방금 펠리체가 한 말 중에, 진실이라고는 딱 하나.

루이가 보낸 경고가 제때 도착해 다행이라는 부분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루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언니가 이럴 줄은 몰랐다.

루시가 화가 나 소리친다.

“거짓말하지 마! 진짜 그랬다면, 왜 내가 편지를 꺼내기 전까지 아무 말도 안 했던 건데!”

“아카데미에서 네가 루이 공자에게 감사 인사를 했기에, 그가 보낸 편지가 제대로 전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굳이 내가 또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지.”

펠리체가 덧붙인다.

“어머니도 아시는 줄 알았다. 설마 그가 내 이름으로 경고를 전하라 할 줄은 나도 몰랐으니.”

루시가 다시 펠리체에게 무어라 쏘아붙이려 하지만, 이번에는 백작부인의 말이 빨랐다.

“루이 발렌슈타인이 편지에서 말한 혹시 모른다는 것이, 편지가 전해지지 못할 상황을 예상한 것이었나 보군.”

루시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편지에 써 있지 않았나.

자신의 말을 들을 사람은 너 말고 없으니, 누가 묻거든 펠리체의 이름을 대라고.

그 문장을 읽었다면, ‘펠리체 안스베르크에게 이미 경고를 했지만, 혹시 모르니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라는 문장의 뜻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저건 혹시나 펠리체의 경고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것을 염려한다는 뜻이 아니라.

펠리체가 루이의 말을 무시해 경고를 하지 않을 것을 염려한다는 뜻이다.

루시가 다시 반박하려 한다.

그런 루시의 모습이, 펠리체로서는 너무나도 얄미웠다.

펠리체가 거짓말을 한 이유에는, 자신에게 쏟아질 원망이 두렵다는 것이 주요했으나.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한 펠리체의 원망도 약간은 있었다.

굳이 지금, 자신에게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편지를 공개한 루시가 얄미웠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루시를 펠리체는 조금 원망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쓸데없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날의 식사 자리에서 괜히 자신이 루이와 어울린다는 말만 안 했어도, 아버지에게 들킬 일도 없었고.

이렇게 루이와의 사이가 틀어져, 그의 말을 무시해서 가고일 떼가 습격하는 결과가 없었을 수도 있다.

비록 사실관계를 따져보자면, 백작이 루이와 어울리지 말라고 한 것이 문제다만.

펠리체에게 있어 아버지의 말은 절대적이었고, 또 이제 백작은 죽었다.

그러니 루이와 어울리지 말라고 명령한 아버지보다,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들키게 한 어머니를 원망하는 펠리체였다.

그런 둘에게 너 때문에 영지가 박살나고 아버지가 죽었다고 원망을 듣는다면, 조금 억울할 것 같았다.

자신도 잘한 것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언니, 진짜 양심이 있어? 사실대로 말하라고!”

루시가 계속해서 화내지만, 펠리체는 그녀를 무시했다.

“언니가 루이 공자님 말을 무시한 거 맞잖아! 공자님이 아니었으면…”

루시의 말이 펠리체의 가슴을 난도질한다.

‘제발, 제발 그만…’

펠리체는 속으로 그녀에게 애원했다.

루시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고, 또 방금의 거짓말까지 해서 죄책감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으니까.

“그만, 루시.”

“하지만…!”

“그만하라고 했다.”

펠리체의 마음이 닿은 것일까, 백작부인이 우선은 루시를 제지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백작부인의 질문은 다시 펠리체를 괴롭게 했다.

“펠리체. 루이 발렌슈타인은 어떻게 가고일의 습격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

다시, 펠리체의 말문이 막혔다.

어째서 미리 경고를 하지 않았냐는 질문은, 거짓말로 어떻게 넘겼다.

그래, 사실대로 털어놓을 기회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

펠리체는 이번 질문도 거짓말로 모면하기로 했다.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로, 그녀는 가고일 토벌 당시의 일을 각색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둥지가 난장판이 된 가고일은 무리를 이끌고 가까운 마을을 공격할 것이라고 루이가 예측했고.

그걸 들은 파티원들은 힘을 합쳐 가고일을 처리해, 놈이 무리에 가지 못하게 막으려 했다.

그러나 결국 가고일을 놓쳐버렸고, 일이 일어났다.

‘그래, 최소한 루이의 공적을 축소하지는 않았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최소한의 자기합리화를 하는 펠리체였다.

자신이 한 거짓말은 너무나도 비겁한 것이었다.

대신에, 어떻게든 루이 발렌슈타인에게 사죄를 하고.

입은 은혜를 갚고.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하리라 마음먹은 그녀였다.

이제는, 뭐라 할 아버지도 없으니까.

만약 아버지가 살아있었더라도, 안스베르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한 루이를 박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우선 시작으로는, 가문 차원에서 그에게 가능한 한 많은 보상을 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약간이지만 죄책감이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펠리체의 설명을 들은 백작부인이 대충 알겠다는 얼굴을 한다.

펠리체는 이제 한계였다.

더 이상 대화를 하다가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아, 그녀는 이만 물러가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지만.

“그래, 너도 충격이 컸겠지. 우선은 들어가서 쉬거라.”

방금 쓰러졌다 겨우 깨어난 펠리체였기에, 백작부인은 그녀를 걱정하며 그리 말했다.

펠리체가 힘없이 방을 나선 후에.

여전히 불퉁한 얼굴의 루시는 계속해서 따지려 한다.

그러나, 백작부인이 그런 루시를 제지한다.

“루시. 지금 가문의 상황이 이런데, 꼭 너까지 힘들게 해야겠니. 언니도 많이 힘들거다.”

마지못해 수긍하는 루시였다.

그녀의 어머니도 굉장히 지쳐 보였으므로.

“네, 알겠어요…”

그렇게 얌전해진 루시와 백작부인이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루시는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던, 루이 발렌슈타인에 대한 보상 이야기를 꺼냈다.

“공자님이 아니었으면 지금보다도 더 피해가 클 수도 있었잖아요. 저나 어머니도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고.”

“그렇지.”

“공자님에게는 가문에서 최대로 감사의 표시를 해야겠죠?”

루시의 말은 당연한 것이었다.

실제로, 미리 경고를 받았으니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

그의 경고가 없었다면 얼마나 더 죽었을까.

분명 그럴 터인데, 루시의 말에 답을 하지 않고 고민하는 백작부인이었다.

백작부인 또한 닳아빠진 귀족이었다.

“…루시. 이번 일로, 어쩌면 가문이 몰락할 수도 있다.”

과장이 아니었다.

“당장 영지민들의 구호는커녕, 박살 난 영지의 복구조차 돈이 모자라다.”

루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본다.

“그의 공적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그에게 해야 할 보상은 막대하다. 차라리 그럴 돈으로 가문의 사람들을 치료하고, 영지민들을 돕는 게 낫지.”

“엄마!”

“그는 발렌슈타인이야. 우리가 그의 공적을 인정한다면, 그걸 빌미로 어디까지 뜯어내려 할지 모른다.”

루시는 아연해졌다.

자신의 부모님이 발렌슈타인을 싫어한다는 것은 그녀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자신의 어머니가 은혜조차 보답하지 않으려는 사람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공자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를 도와준 것을 보면 알잖아요!”

“그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그의 가문은 다르지. 반역자 발렌슈타인 가문이 황실의 검인 안스베르크에게 빚을 지운다… 너무 공교롭지 않니?”

백작부인이 편지를 들고서는 일어난다.

“마침 루시 네가 처음에 펠리체가 경고했다고 말한 덕에, 가문의 다른 사람들도 이 일에 발렌슈타인이 연관된 것은 모른단다.”

루시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본다.

그리고, 루시의 예상이 맞았다.

“펠리체도 우리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했지. 루시, 명심하거라. 우리가 받은 경고는, 루이 발렌슈타인이 아니라 펠리체가 보낸 것이었다.”

그리 말하며.

백작부인은, 루시에게서 받은 편지를 벽난로에 던져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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