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23화 (23/69)

EP.23 전투 실습 담당, 존 헤이튼 교수

“응응, 진짜라니까?”

“기숙사 근처에서 말이야?”

“그래! 무슨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교실에 들어오니, 오늘따라 시끄러운 기분이다.

“근데, 생도복을 입고 있었다고?”

“응. 이상한 건,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 같았어.”

“뭐지? 괴한인가?”

“아카데미 생도라며?”

어젯밤에 마주친 여학생이 소문을 냈나 보다.

뭐, 내 정체는 들키지 않았으니까 괜찮다.

‘아니지, 혹시 누군가 내가 매점에서 고양이 가면을 잔뜩 샀다는 걸 조사한다면…’

그러면 들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 할 일 없는 잉여가 그러겠냐.

애초에, 인식 저해 마법 때문에 고양이 가면이라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무언가 훔친 게 있다면 누군가 조사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저 편지만 확인했을 뿐이다.

전부 원래 그대로 정리했기에, 우체국 직원들도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혹시나 우체국에 누군가 침입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레오가 결투 신청을 무르지 않을까 싶어, 특히나 주의했다.

편지를 받을 공작이 이상함을 느끼면 안 되니까, 흔적이 남지 않게 개봉해서 내용만 확인했고.

아무것도 바꾸거나, 흐트러트린 것은 없다.

레오의 계획을 어그러뜨리기보다는, 모른 척하고서 이용하는 편이 낫다.

이제 내가 주의할 부분은, 편지에 적혀있던 물약을 제외한 나머지 재료들이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1교시를 흘려보내고.

이제 다음 수업은, 바로 전투 실습이었다.

반 생도들은 모두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가 본 것은, 연무장 의자에 늘어져 코를 골고 있는 한 남자.

전투 실습 담당 교수, 존 헤이튼이었다.

그를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한량.

평소 하는 짓만 보면, 어떻게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나 싶은 인간이다.

솔직히 가끔 보여주는 실력만 아니었다면, 총장과 모종의 인척관계가 있지는 않은가 의심되는 인간.

“흐아암… 다 왔냐? 오늘은 자습이다.”

그가 귀찮음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도’ 자습이겠죠, 교수님.

마법 수업 담당 교수처럼, 학년의 마지막까지 열심히 수업을 하는 교수도 있는 반면에.

지금 내 눈 앞의 이 인간처럼 어차피 학년도 끝나가는데 알아서 놀라고 하고, 시간이나 때우는 교수도 있다.

아무튼, 연무장을 사용하는 전투 실습 과목.

거기에 수업시간마다 자습을 시키는 교수까지.

결투를 하기에는 최적의 수업이었다.

레오도 그걸 알기에 전투 실습 시간에 결투를 하자 제안한 것이겠지.

고개를 돌리자, 역시 나를 보고 있던 레오와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표정을 찡그린 우리는, 다시 모자로 얼굴을 덮고 낮잠을 시도하는 교수에게로 향했다.

“교수님.”

그렇게 말하자, 인기척을 느낀 존 헤이튼 교수가 한쪽 눈을 뜬다.

“엉? 니들은 뭐냐.”

“결투를 신청하고 싶습니다.”

레오가 말했다.

그 말에는, 방금까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을 하던 교수가 벌떡 일어났다.

존 헤이튼 교수의 악취미였다.

평소에는 만사 귀찮아하면서, 이런 재밌어 보이는 일에만 흥미를 보이는 것이.

특히, 누구 하나가 곤란해질 것 같은 일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호오, 결투라.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잘 됐네.”

아니, 그니까 댁이 심심한 것은 수업을 안 하니까 그런 거겠죠.

“좋다, 당연히 승인이지. 신청서를 가지고 올 테니까 기다려라.”

그 말만을 남기고, 교수는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교수님, 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이다.

아니, 왜 결투를 벌이는지 이유도 안 듣고?

이렇게 그냥 승인한다고?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레오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왜, 갑자기 겁이 나나? 멍청한 자식.”

“네가 멍청한지, 내가 멍청한지는 결과가 말해주겠지.”

나는 무심하게 대꾸하다가, 순간 멈칫했다.

‘잠깐, 방금 거 플래그는 아니었겠지?’

레오가 웃는다.

“하, 거 참 오글거리는군. 네놈은 검사가 아니라 광대나 하지 그랬나.”

그렇게 우리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와중.

신청서를 가지러 갔던 교수가, 사라졌을 때만큼이나 순식간에 다시 나타났다.

“자, 어서 작성해라! 대충 쓰고, 바로 결투를…”

그의 재촉하는 말에, 나는 다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레오는 진심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 교, 교수님? 저희가 다음 전투 실습 시간에 결투를 하기로 이야기를 한 터라…”

레오가 말을 더듬는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최대한 얄미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바로 해도 상관은 없는데?”

물론, 진짜로 오늘 바로 결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레오 놈이 당황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그건 그렇고, 존 교수는 무슨 생각으로 바로 결투를 하자고 하는 거지?

“아, 그, 그게… 교수님, 우선 교수님들 중에 참관인도 정해야 하고… 그 뭐냐, 더 위에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레오의 횡설수설하는 말에, 교수가 김이 샜다는 얼굴을 한다.

“참, 그랬었지. 까먹었네.”

까먹은 거였냐!

“에이, 아깝네. 아무튼, 결투는 다음 전투 실습 시간이라는 거지?”

레오가 안도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결투의 일시, 이유, 대가 등등.

레오야 내가 그와 다른 파티원들을 모욕했다고 하고.

나는 그 반대라고 적었다.

어차피,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결투에서 이기는 자의 말이 곧 진실이니까.

전부 작성한 신청서를, 우리는 교수에게 제출했다.

당장 결투를 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인지.

아까는 잔뜩 흥미를 보였던 교수였지만, 지금은 다시 늘어져 눈을 감는다.

그런 모습을 약간은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나는 자리를 떴다.

저 빌어먹을 레오 놈과는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했으니까.

연무장 한구석으로 향해,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스왈린 양피지, 마나 잉크, 연금용 용해제…’

아무리 고민해도, 내가 가진 지식으로는 무슨 용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전이라면, 아마 베로니카에게 물어봤으려나.

베로니카가 평소 하는 행동은 조금 멍청해 보이기는 해도, 무려 적색 마탑주가 선택한 후계자이다.

마법에 관련된 한, 그녀라면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나는 말도 아니고 그저 생각만 했을 뿐인데, 내 앞에 베로니카가 나타났다.

나는 기분이 나빠져, 그냥 자리를 뜨려고 했다.

저번처럼 또 싸우고, 기운을 빼기는 싫었으니까.

“야, 루이! 어디 가!”

그러나, 베로니카는 그럴 마음이 없나 보다.

그녀가 내게 소리친다.

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베로니카가 움찔하지만, 이윽고 그녀는 내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어제 나 때린 거, 사과해!”

그녀의 태도가 너무 당당해서, 순간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 건가 헷갈릴 정도였다.

“하아… 또 사과 타령이냐. 꺼져.”

그러나 그녀가 사라질 기색이 없길래,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그냥 내가 꺼지고 말지 뭐.

“자, 잠깐! 내 말 끝까지 들어!”

끝까지 고압적인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베로니카는 자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 레오랑 결투를 하기로 했잖아? 저번에도 너한테 진 레오가 먼저 결투를 신청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그녀가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건 딱 봐도, 레오에게 뭔가 비열한 속셈이 있는 거라고!”

베로니카가 ‘어때, 이건 몰랐지?’ 하는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근데, 뭐 어쩌라고.”

내 반응이 신통치 않자, 베로니카의 말이 다급해진다.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사과만 한다면, 레오의 속셈을 알아내서 너한테 알려주겠다고! 그, 그리고… 나도 사과를…”

끝부분은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탓에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러나, 충분히 이해했다.

내가 자존심을 버리고, 그녀에게 숙이고 사과하면 레오의 속셈을 알려주겠다는 거지?

끝까지 자기 자존심을 세우려는 것이 참 그녀다웠다.

평소에는 나를 그렇게 깎아내렸으면서, 자기가 맞은 건 또 그렇게 억울했나.

“싫어.”

내가 간단히 답했다.

“그래, 그래야지! 후후, 어서 사과를… 응? 뭐라고?”

베로니카가 ‘내가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런 시나리오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는 듯이, 굳어버린 베로니카.

베로니카가 알려주겠다는 레오의 속셈, 이미 어젯밤에 내가 확인했다.

그게 끝이 아니라, 새로 얻은 아이템을 이용해서 결투 전까지는 계속 그를 감시할 예정이었다.

뭐, 확실하게 하자면 베로니카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겠지만.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기도 싫고, 또 무엇보다 베로니카를 믿을 수도 없다.

편지에 적혀있던 세 재료의 쓰임새를 베로니카에게 물을 수야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대안이 있다.

그걸 물어볼 만한 사람은, 베로니카 말고도 하나 있으니까.

아카데미 공식 아싸찐따인 나였지만, 최근에 친해진 사람이 하나 있다.

그녀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나름 학생회장씩이나 되고, 심지어 선배인데 아마 알 것이다.

“용건 전부 끝났으면 이제…”

이제 꺼지라고 말하려다, 그냥 내가 자리를 떴다.

어차피 쟤는 남의 말은 절대 안 들어먹는 인간이니까.

뒤늦게 베로니카가 나를 다급히 부르지만, 나는 다시 연무장 구석의 처박힐 자리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