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 차인 건가
이튿날.
나는 여전히 레오 엡실트를 감시 중이다.
어제 그가 검술 담당 교수와 만난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다.
나는 재빨리 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절대 눈앞의 황녀가 부담스러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빨리 먹고 레오를 감시하러 가야 하기도 하고.
오늘 아침에야 눈치챘는데, 식당에서 교묘하게 기둥 뒤 자리에 앉아 나를 힐끔거리던 백발 도적이 신경 쓰이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황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상하게도, 평소의 자신만만하던 모습과는 달리 조금 주저하는 기색이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내가 입 안의 음식을 꿀꺽, 삼키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 루이…”
그녀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내게 말한다.
“혹시 식사 후에, 시간이 되겠나?”
아, 그건 좀 곤란한데.
레오 놈이 언제 일을 벌일지 모른다.
근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녀가 말하는데…
나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중요한 일입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산책이라도 잠시…”
뒷부분은, 그녀답지 않게 잔뜩 얼버무리는 탓에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하여간에, 뭐 중요하지 않다면야.
“아무튼, 저녁을 먹고 나와…”
“죄송합니다, 회장님. 오늘은 제가 일이 있어서.”
“어, 어?”
마침 저편에 식사를 끝마친 레오가 일어서는 것이 보인다.
나는 황녀에게 짧게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 식사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만.
지금은 중요한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지.
나는 식당에서 나와 조심스레 건물 뒤편으로 향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품 속에서 고양이 가면을 꺼내들었다.
진짜 고양이가 뭐냐, 고양이가.
차라리 흑표나 뭐 이런 멋들어진 걸로 해주지.
게임 제작사의 발렌슈타인 혐오에 치를 떨며, 나는 가면을 썼다.
곧 해가 지면, 들킬 확률도 더 낮아질 것이다.
저번처럼 정신 놓고 걷다가 누군가를 맞닥뜨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가면을 쓴 채로, 나는 보법을 운용해 식당 외벽을 타고 올랐다.
옥상에서 아래를 확인하면.
레오 놈은 심지어 늘 달고 다니던 성녀조차 없이, 혼자서 움직이고 있었다.
감이 왔다.
이건, 또 무언가 일을 벌이려는 것이다.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성녀의 위치도 확인한 후에.
다리에 마나를 불어넣은 채로, 나는 다시 놈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
황녀, 칼리아 슈펠츠는 식사를 마저 하는 것도 잊은 채로.
그저 황망히 눈앞의 빈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나름 용기를 내서 한 말이었는데.
‘학생회 아이들은, 이런 걸 두고 차였다고 하던가?’
아니아니, 그런 의미는 절대 아니었지만.
아무튼, 루이 발렌슈타인과는 제법 친분을 쌓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그의 반응은, 황녀에게 있어 조금 상처였다.
자신이 제안한 산책은 거절당했다.
어디 그뿐인가?
산책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루이는 다급하게 일어났다.
꼭, 자신을 피하는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어째서…? 아니,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본녀가 너무나 대단한 인물이라, 부담스러웠던 것이겠지.’
그렇게 위로를 하는 황녀였다.
학생회 사람들이 말한 대로.
자신은 분명 뛰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다가가는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서투른 듯하다.
---
레오는 재빨리 발을 놀렸다.
딱히 재촉하는 사람도 없었건만, 마음이 급했다.
그야, 결투를 신청하고 난 후에는 웬만해선 무를 수 없으니까.
사실 생각해 보면, 제대로 전부 준비를 하고 나서 그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당시의 자신은 약간 감정적이었다는 것을 레오는 인정했다.
그래도, 뭐 큰 상관은 없다.
어차피 용사 후보인 자신이 루이 발렌슈타인 따위를 짓밟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계획이 틀어질 일은 절대로 없다.
어제와 같이, 교수와는 인적이 드문 건물 뒤편에서 만났다.
바로 옆은 아카데미 내의 숲이었기에, 누가 올 일은 거의 없었다.
그가 교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전부 잘 됐다네. 내가 결투의 참관인을 맡게 되었어.”
레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혹시 모를 불안 요소에도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부탁한 물건은요?”
“여기 있다네.”
교수가 주머니에서 빛나는 은색의 무언가를 꺼냈다.
열쇠였다.
“감사합니다.”
레오가 열쇠를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그런데, 그건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교수님이 알 필요는 없으십니다.”
“크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지.”
이야기가 전부 끝나고.
다시 습관적으로 주위를 둘러본 뒤에, 레오는 만족한 기색으로 자리를 떠났다.
이번에도, 나무 사이에서 그를 감시하고 있는 한 쌍의 눈은 발견하지 못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레오는 지시에 따라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성녀를 만났다.
파티원들 중에서도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바로 성녀 에스더 칼트였다.
아무튼,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성녀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루이 발렌슈타인은?”
“연무장 쪽으로 가는 걸 확인했어요!”
“하, 멍청한 놈. 겨우 며칠 연습하는 것으로 뭐가 달라질 것 같나.”
성녀가 그에게 묻는다.
“레오, 무슨 일인가요?”
“에스더,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뭐든 시켜만 주세요!”
둘이 향한 곳은 아카데미의 기숙사였다.
기숙사 건물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드물게 마주친 생도 중에는, 어째서 남자 동에 여자가 온 것인지 의아해하는 시선도 있었으나.
상대가 공작가 후계자와 성녀였기에, 아무도 뭐라 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루이의 방 근처에 다다른 둘.
“뭐야, 전등이 나갔나? 복도가 왜 이렇게 어두워?”
레오가 그리 말했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쓰지는 않고, 에스더에게 당부한다.
“에스더, 망을 보다가 혹시나 루이 놈이 오면 바로 문을 두드려.”
“네, 알았어요!”
에스더가 씩씩하게 대답하고서는, 모퉁이 너머로 달려가 망을 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레오는 이안 교수에게서 받은 열쇠를 꺼내 루이의 기숙사 방 열쇠구멍에 집어넣는다.
끼익, 문은 손쉽게 열렸다.
레오는 방 안에 들어가, 침대부터 시작해서 바닥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바닥에서 검은 머리카락 한 가닥을 집어 들었다.
들고 온 유리병에 조심스레 머리칼을 집어넣고, 그는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고개를 내밀어 복도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영락없이 도둑의 그것이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레오는 재빨리 방 밖으로 나왔다.
“전부 끝났어요, 레오?”
“응. 이제 너는 어서 돌아가.”
레오가 에스더를 재촉한다.
혹시나 성녀가 여기에 있는 것을 루이 놈이 보기라도 한다면, 이상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렇게 성녀를 보내고서, 레오는 자신의 기숙사 방으로 향했다.
둘이 사라지고, 이내 조용해진 복도.
어두운 복도 한편에 놓인 화분 뒤에서, 인영 하나가 스리슬쩍 움직인다.
---
황녀와의 식사마저 중간에 나온 대신, 나는 레오 놈을 미행할 수 있었다.
레오 엡실트는 어제 교수를 만났던 장소로 향하고.
성녀는 한자리에 못박혀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단지 그녀가 레오를 찾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녀의 모습에 약간의 이상함을 느꼈다.
레오 놈이 어디를 혼자 가려고 해도, 최소한 성녀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겠는가?
행선지나 목적은 제외하고서라도 말이다.
또, 만약 성녀가 레오를 찾고 있는 것이라면 저렇게 가만히 서서 두리번거릴 것이 아니라.
최소한 움직이기라도 하며 그를 찾지 않겠나?
아무튼, 우선은 레오를 쫓아야 한다.
고민은 잠시 뒤로 미루고, 나는 레오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어제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인물을 레오는 만났다.
아카데미의 검술 담당 교수, 이안 덱스터.
레오는 그에게 열쇠를 넘겨받았다.
‘열쇠, 열쇠라…’
나는 잠시 고민했다.
사샤가 말한, 저주 스크롤과 대상의 신체 일부.
교수에게서 비밀리에 건네받은 열쇠.
아까 본 성녀의 수상한 움직임.
그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퍼즐처럼 맞물렸다.
‘흐음, 설마…?’
둘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보법을 운용하며 아까 성녀가 있던 곳으로 달렸다.
가면을 벗어 품 속에 넣고, 다시 인파의 사이로 몸을 드러낸다.
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성녀가, 순간 나를 보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의 시선이 느껴진다.
나는 대충 연무장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위치에서는, 연무장과 기숙사의 방향이 반대였으니.
그녀가 사라진 걸 확인하자마자, 나는 다시 기숙사 건물로 달렸다.
놈들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가야 한다.
기숙사 건물 뒷문으로 들어간 나는, 재빨리 내 방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아직 놈들이 도착하기 전이었다.
복도는 갇힌 공간인데 밝기까지 해, 숨기에는 약간 위험했다.
나는 급히 복도 전등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티가 안 나도록, 내부만…
‘총장님, 죄송합니다! 등록금 엄청 내니까 봐주세요!’
그렇게 내 방 주위의 복도를 어둡게 만들고.
나는 복도에 있던 화분 뒤로 몸을 숨겼다.
고양이 가면의 소음 차단과 인식 저해 마법 덕에, 아마 들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대기하고 있었을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설마 했던 두 인간이 진짜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