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28화 (28/69)

EP.28 이간질

‘어째서! 어째서냐!’

다시 한번, 마나가 담긴 검을 크게 휘두른다.

쾅!

검이 다시금 바닥에 충돌하고.

묵직한 진동이 주변을 울리지만.

목표로 했던 루이 발렌슈타인은, 이번에도 가볍게 뒤로 물러난 후였다.

그리고 또다시, 놈의 검이 오른팔을 후려친다.

“젠장!”

이쯤 되면, 레오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물약은 통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놈이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보이길래 수가 통한 줄 알았다.

놈이 자신의 검을 피하는 것은 진짜로 아슬아슬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놈은 그저, 자신을 놀리는 것이다.

레오가 입술을 짓씹는다.

이대로 가면, 결국 지난 대련의 재현이다.

놈이 쥐새끼처럼 움직이며 자신을 구타하던, 지난 대련의 재현.

후웅!

레오의 검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쇄도하지만.

이번에도, 검은 그저 허공을 가를 뿐.

루이의 중단을 횡으로 베려던 검은, 결국 그에게 닿지 않았다.

그리고 정해진 듯이, 다시 루이의 검은 레오를 타격한다.

베는 것이 아니라, 구타.

방금의 공격으로, 관중의 사이에서는 몇 번째인지 모를 탄성이 터졌다.

“으아, 아슬아슬하네.”

“엄청 치열한데?”

“레오 님이 이길 줄 알았는데, 루이 발렌슈타인도 제법 잘 피하네.”

“그래봤자 한 대만 맞으면 끝일걸? 봐봐, 발렌슈타인의 공격은 레오한테 타격을 못 주고 있잖아.”

그렇게 제멋대로 떠드는 이들은, 전투 실력.

최소한 검술 실력이 보잘것없는 생도들이었다.

반면에, 조금이라도 검술에 조예가 있는 이들에게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너무나 잘 보였다.

참으로 경악스러웠고 말이다.

“…루이 발렌슈타인의 실력이 이리도 뛰어날 줄이야.”

“루이 놈은 전투를 끝낼 생각이 없는 것인가? 그것보다도, 용사 후보라는 자가 생각보다 실력이 형편없지 않은가.”

“말조심해라, 엡실트 공작가의 후계자다.”

“악취미군. 신성한 결투장에서 상대를 저렇게 농락하다니, 역시 반역자 가문다워.”

그들에게는 루이의 실력이 레오를 압도한다는 것.

동시에, 루이가 일부러 결투를 끝내지 않고 있음이 전부 보였다.

둘이 이전에 했던 대련은 파티원들만 있던 곳에서 했기에.

실제로 다른 생도들에게 둘의 격차를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고.

양쪽 모두, 다른 생도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콰직!

또다시, 레오의 검이 애꿎은 바닥을 긁는다.

“허억, 허억…”

레오가 숨을 몰아쉰다.

‘젠장, 어쩔 수 없군.’

이런 중요한 결투에, 그가 겨우 물약 하나만을 믿고서 그리 당당하게 나온 것은 아니다.

물약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들고 온, 혹시 모를 보험.

마침내, 그는 스크롤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괜찮다. 어차피 증거도 남지 않고, 참관인도 내 편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레오.

무엇보다도, 다시 자신을 향해 느긋하게 걸어오는 루이가.

그 빌어먹을 루이가 미치도록 죽이고 싶었다.

모두의 앞에서, 저 자식의 역겨운 미소를 깨뜨리고 싶었다.

분노로 인해 눈이 반쯤 돌아간 레오가, 결국 스크롤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

타닷!

나는 경쾌하게 발걸음을 놀렸다.

거의 내게 닿을 뻔한 레오의 검은, 이번에도 바닥에 내리 찍혔다.

내 검은 여지없이 놈의 오른팔을 타격하고, 나는 뒤로 물러났다.

놈의 괴물 같은 근력 덕뿐일까.

그렇게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검을 놓지 않을뿐더러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물론 내가 전력으로 때리지 않기도 했지만.

그렇다 해도, 별다른 노력 없이 타고난 근력만으로도 저 정도라니.

역시 원작 주인공은 주인공인가.

그건 그렇고, 이제는 슬슬 쓸 때가 되지 않았나?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계속해야 하나 싶었을 때쯤.

뭐, 솔직히 말해서 즐겁기는 했지만.

결투 시작부터 지금까지 내내 이성 잃은 야수처럼 날뛰던 레오가, 드디어 움직임을 멈췄다.

분노로 가득 차 있던 놈의 눈빛이었지만.

그 사이에 일말의 기대가 섞이는 것으로.

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으로, 나는 확신했다.

나는 결투 시작 직후 처음으로, 검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레오 놈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마나였지만, 상관없다.

나를 어떻게든 한 대만 때릴 수 있다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놈.

그런 놈의 생각이 가증스러웠고, 굉장히 짜증났다.

그런 놈의 생각을 박살내고 싶었다.

그래서, 놈에게 절대로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처음부터, 그러기 위한 기다림이었다.

지난 대련과는 다르다.

이번 결투는, 놈이 그렇게도 원하던 힘과 힘의 대결로 끝마칠 것이다.

놈의 입꼬리가 한껏 끌어올려지고, 이어지는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놈이 마침내 스크롤을 발동했다는 것이, 감이 왔다.

계속해서 마나를 불어넣으며, 천천히 앞으로 향한다.

놈의 표정을 나는 보았다.

그 굳어버린 표정이, 얼빠진 표정이 미치도록 즐거웠다.

마나를 모으며, 동시에 검을 위로 치켜든다.

점점 빨라지던 내 다리는, 이윽고 놈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고.

마나가 모이고 있는 내 검은 머리 위로 치켜들렸다.

이제서야 속박에서 풀린 것일까.

그런데 어쩌나, 이미 피하기는 늦었는데.

놈 역시 그걸 직감한 것인지, 검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막는 자세를 취했다.

놈이 순식간에 불어넣은 마나가 내 마나보다 많은 것을 보고서, 조금은 씁쓸해졌다.

이게 원작 주인공이 가진 재능과, 내 몸의 재능 차이인가.

나는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말이다.

놈이 불러일으킨 저 마나가,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도 경계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걸 보고서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나 역시, 방금의 틈으로 검에 마나라면 충분히 모았다.

내 마나로 놈의 검을 뚫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라도, 그걸 잡고 있는 사람이 나약하다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처럼.

검을 잡고 있는 놈의 오른팔은, 결투 시작부터 내게 타격당했다.

마침내 검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서며, 나는 확신했다.

놈의 팔은, 이 공격을 버텨내지 못한다.

‘검째로 찍어 눌러주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놈을 향해 정직하게 검을 내리찍었다.

이것은 나의 검이 아니라, 레오가 늘 휘두르던 검로였다.

콰앙!

무식하게 맞부딪힌 우리 둘의 검, 마나는 주위로 비산하며 웅장하게 공명한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검 아래의 신체가 허물어지는 것을.

마침내, 마나의 폭발로 인한 눈이 멀 것만 같은 빛이 사그라들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나.

바닥에 처박혀 움찔거리고 있는 것은, 레오 엡실트였다.

“하아…”

결투를 시작하고 처음, 나는 깊은 숨을 내뱉었다.

이것으로, 전부 끝이다.

파티원들을 구원하고 그들과 동료가 되어, 마왕을 처치하는 것도.

레오를 잘 구슬려, 마왕의 토벌 때에 놈이 성검을 들고 활약하게 하는 것도.

처음부터 위태로운 관계이자, 위태로운 목표였지만.

오늘에 와서야 제대로 끝을 맺었다.

내 손으로 직접 파탄을 냈다.

모두의 앞에서 내게 처절하게 박살 난 레오 엡실트도.

이제 곧 패배의 대가로 내게 공개 사과를 하게 될 파티원들도.

전부, 내가 처음 꿈꿨던 관계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승리의 기쁨보다도.

어떻게든 용사의 대안을 찾아야만 한다는 고민이었다.

그를 대체할 것이 인물일 수도 있고, 혹은 방법일 수도 있다.

내가 근 며칠간 확인한 놈의 비열한 성정.

그리고 오늘 제대로 느낀 놈의 형편없는 실력.

나는 확신했다.

놈이 용사인 이상, 절대로 마왕을 처치할 수는 없다고.

‘하, 젠장. 일이 귀찮아지겠네.’

뭐, 어쩌겠나.

미래를 아는 내가 더 노력해야지.

이쪽 세계에서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결과를 선언해야 할 이안 덱스터 교수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서, 존 헤이튼 교수가 그에게 이죽거린다.

“뭐 하십니까, 이안 교수? 어서 승자를 선언해야지요.”

존 교수가 내게 즐겁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제법 호감이다, 존 교수.

결국, 이안 교수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승자, 루이 발렌슈타인!”

좌중은 고요했다.

결투 직전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로 인해, 분위기는 싸늘하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또다시, 조금 쓸쓸해졌다.

만약 레오 놈이 이겼다면, 즉시 환호가 쏟아졌을 텐데.

약간은 외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인파의 속에서, 작지만 또렷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면, 황녀가 천천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황녀와, 그녀의 옆에 있던 사샤가 승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심지어는 같은 학생회 생도들조차 그런 둘을 이상하게 보았다.

그걸 시작으로, 다른 학년으로 보이는 몇몇 생도들도 내게 박수를 보낸다.

여전히 분위기는 싸늘하고, 환호는 없었지만.

됐다, 이걸로 충분했다.

내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아까부터 꿈틀거리던 레오 놈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놈… 죽여, 죽…”

잘은 몰라도, 뼈 정도는 무조건 부러졌을 텐데.

집념 하나는 대단했다.

마침, 좋은 생각이 났다.

나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놈을 향해 뒷짐을 지고 허리를 숙였다.

그의 귓가에 대고, 나는 작게 속삭였다.

“레오, 이번에는 조금 위험했어? 쇠약의 물약이라니, 당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예상만큼의 동요는 없었다.

물약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쯤이야, 놈도 알고 있었을 테니.

근데, 이게 끝이 아니다.

나는 다시 속삭였다.

“엘린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그녀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나, 진짜로 졌을수도?”

그리 말하고, 나는 결투장 밖으로 향했다.

놈이 내 말을 믿든 말든, 일단 의심의 씨앗은 심어뒀다.

레오 엡실트에게 매달리는 엘린을 위한, 내 작은 선물이었다.

둘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 마지않는 나였으니.

무얼,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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