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 부담스러운 관심
“교수님!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성녀, 에스더 칼트가 단호히 말한다.
평소 레오를 대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지금 그녀의 옆에는 교단에서 나온 사제가 있었다.
그만큼, 이번 결투의 결과는 그 파장이 컸다.
“음, 그게… 에스더 양? 우선 진정하고…”
그들의 앞에 선 이안 덱스터 교수가 쩔쩔맨다.
원칙적으로야, 아카데미 내에서는 모든 생도가 평등하다.
또, 생도들은 교수들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를 들어 어디 평범한 교수가 현재 2학년인 황녀에게 함부로 대할 수가 있겠는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 눈앞에 있는 성녀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지체 높은 집안의 생도에게 그보다 신분이 낮은 교수들이 함부로 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생도 본인이 그걸 받아들이고, 아카데미의 규칙에 따라 교수에게 존경을 보이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이 아카데미의 총장이 교수들의 권위를 보장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총장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성녀가 뒷배로 둔 교단.
교단은 아카데미 총장 이상의 힘을 가진 단체이며.
또한, 에스더는 현재 아카데미 규칙에 따라서 순순히 결투의 결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이안 교수로서는 피가 마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교단에서 나온 사제가 말한다.
“성녀, 에스더 님이 저희 교단에 어떤 의미이신지 모르십니까. 그런 성녀님이 다른 이도 아니고 반역자 발렌슈타인에게 공개적으로 사과를 한다는 것은…”
사제가 경고하듯이 말한다.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단의 권위가 실추되는 일입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걸 나한테 따지지 말고 총장한테나 따지라고!’
교수가 속으로 외친다.
그러나, 어쨌든 이번 결투의 책임자는 자신.
그는 속으로 짜증을 삼키며 둘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글쎄, 그건 또 그렇지만서도… 용사 후보 역시 교단에 있어서는 그 의미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성녀뿐만 아니라, 용사 후보에게 문제가 생기더라도 교단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결투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굉장히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만약 그런다면, 용사 후보의 명예가 얼마나 실추될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저 성녀님만 제외해 달라는…”
“잠시만요.”
에스더가 사제를 제지한다.
레오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라는 말에, 그녀는 마음을 바꿨다.
“괜찮아요, 사제님. 어쩔 수 없잖아요? 제가 참고 그에게 사과할게요.”
“그게 무슨! 성녀님,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에요. 저 때문에 레오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는 없어요.”
에스더는 단호했다.
교단에서 특별히 보낸 사제는, 자신의 말에 반항하는 에스더를 향해…
잠깐, 불쾌한 눈빛을 했으나.
순식간이었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우선은, 교단을 생각해 이러는 것 같으니.’
순순히 입을 다문 사제였다.
성녀는 레오가 자신을 칭찬해 주기라도 바란 모양이었으나.
레오에게서는 큰 반응이 없었다.
결투에서의 패배 이후로, 주욱 이런 식이었다.
그만큼, 그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으니 말이다.
다음으로는, 엘린이었다.
본래 대수림의 엘프가 공개적으로 인간에게 사과한다는, 그런 자존심 상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겠으나.
최소한 루이에 한해서는, 엘린은 그에게 사과할 수 있었다.
동시에, 여기에서 사과를 거절했다가 레오에게 밉보일 수 있다.
자신이 사과를 거절해 레오의 명예가 실추된다면, 그가 자신을 싫어할 수도 있으니.
그건 절대로 안 된다.
그렇기에, 엘린은 굳이 반대하지 않고 루이에 대한 공개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손쉽게 치욕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레오가 그녀를 의심 섞인 눈초리로 쳐다봤다.
‘대수림의 엘프가, 이런 굴욕을 망설임도 없이 받아들인다고?’
결투가 끝나고, 루이가 자신에게 했던 말.
당연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엘린 니디아가 루이 발렌슈타인을 대하는 것을 봤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문제는, 물약에 관해 아는 것은 자신과 가문 사람들.
그리고, 엘린 니디아가 유일했다.
그렇다면, 루이 놈은 과연 어디서 정보를 알았을까?
거기에 오늘, 놈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까지.
레오의 마음에 한번 뿌리내린 의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아무튼, 그 다음으로 아이네 역시 별다른 거부를 하지 않았다.
애초에 결투 전에, 레오의 요청에 따라 미리 서약을 한 파티원들이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아무런 뒷배가 없는 아이네는 거부할 수가 없었다.
펠리체의 경우, 결투 신청을 할 때에 아카데미에 없었기에 결투 조건에서도 빠졌고.
마지막으로는 베로니카였으나.
베로니카는 결투 이후 루이와의 대화로 마음이 복잡했다.
여전히, 자신이 먼저 나서서 사과를 할 각오는 없는 그녀였다.
차라리 이번 일을 핑계로 그에게 사과를 하자는 마음으로, 베로니카 역시 받아들였다.
이렇게, 모두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레오만 빼고 말이다.
공개 사과에 관한 건이 우선은 일단락되자, 레오는 이안 덱스터 교수를 데리고 나왔다.
여유고 나발이고 전부 잃어버린 레오였다.
“교수, 조건 이행 기한이 어떻게 되지? 아니, 상관없다. 적어도 이주일 정도 후에 검을 넘겨야겠어.”
자기 할 말만 하는 레오.
교수가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게 노력하며 입을 연다.
“이주일 후면 이미 학기가 끝난 뒤…”
“검을 빼앗기면! 아버지가 가만히 계실 것 같은가? 너도 계속 돈 받아먹으려면 똑바로 처신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공작가의 후계자라고 해도 선을 넘는 발언이었다.
…교수가 지금까지 공작가에서 받은 돈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도, 최소한 한마디라도 하려던 와중.
“가문의 보검을 다른 놈도 아니고, 발렌슈타인에게 넘길 수는 없어. 최대한 빨리 모조품을 만들어서…”
그렇게 말하는 레오의 입을 이안 교수가 막는다.
그야, 발소리가 들렸으므로.
이윽고 나타난 사람은, 존 헤이튼 교수였다.
평소처럼 느긋한 존 교수와, 그와 대비되듯이 안절부절못하는 이안 교수.
‘설마, 방금까지의 대화를 들은 것은 아니겠지?’
“크흠… 무슨 일이지요, 존 교수?”
“아, 이안 교수! 여기 있었군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 결투에 관해서 말인데요…”
우선 방금까지의 대화를 듣지는 못한 것 같다.
이안 교수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이어지는 말은 경악스러웠지만.
“공개 사과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이 미리 조율되지 않았었지요.”
“에, 확실히…”
“공개 사과라고 해도, 뭐 전교생을 전부 불러 모아 그 앞에서 시킬 것도 아니고…”
존 교수의 섬뜩한 농담에는,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교단부터 시작해서, 공작가, 마탑…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존 교수가 말을 이어갔다.
“뭐, 솔직히 말해서 당사자들이 어디 보통 생도들도 아니지 않습니까. 내일, 그냥 적당히 같은 반 생도들 앞에서 수업 때 사과하는 걸로 하시지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이안 교수도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머지 조건이었던 검도, 내일 사과와 같이 넘기는 걸로 하고요.”
“그걸 어째서 교수님이 정하십니까!”
레오가 소리친다.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퇴학보다야 나을 뿐이지, 가문의 보검을 넘기는 것 역시 절대로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 검을 들고 다니는 것이 발렌슈타인의 후계자라면.
사람들이 엡실트 공작가를 어떻게 생각할지 눈에 훤히 보였다.
이안 교수 역시, 존 교수의 말에 반대를 한다.
“굳이 그렇게 서둘러서…”
“참고로, 이건 제 의견이 아니라 총장님의 의견이십니다.”
그 말에는, 이안 교수는 전부 포기했다.
암, 총장의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지.
여전히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레오도 제지했다.
헬론 아카데미의 총장, 루이사 팔켄.
‘그 괴물이 어째서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이지?’
의문이었다.
당사자들에게는 중대한 일이라도, 총장에게는 신경을 쓸 가치조차 없는 일이었을 텐데.
지난번 파티 추방도 그렇고, 이번 결투도 그렇고.
레오 엡실트, 루이 발렌슈타인, 그리고 다른 파티원들.
그들이 총장이 직접 신경을 쓸 만한 인간들인 것인가?
아무튼, 총장이 직접 관여한 이상.
자신이 아무리 공작가에서 돈을 받아먹더라도, 여기에 관여하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이안 교수는 이번 결투에서 이제 손을 떼기로 결심했다.
존 교수, 그리고 이안 교수까지 자리를 떠나고.
혼자 남은 레오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다.
‘루이 발렌슈타인,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가 처절하게 맹세한다.
동시에, 그를 짓밟을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레오는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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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가 끝났다.
레오 놈의 퇴학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대신해서 건 조건 역시 충분히 가혹하다.
혹시 저쪽에서 인정할 수 없다고 뻗대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어제, 존 교수가 내게 직접 오늘 1교시에 조건의 이행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어째서 결투 담당인 이안 교수가 아니라 존 교수가 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너무나도 상쾌한 기분으로, 평소보다도 조금 일찍 기숙사를 나섰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분 좋게 교실 문을 열고.
그 즉시,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젠장, 부담스럽다.
‘아, 그냥 평소처럼 올 걸. 괜히 일찍 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