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 그럴듯한 오해
레오가 빠득, 이를 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어우, 야 이빨 부서지겠다.
그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을 허리춤에서 푼다.
엡실트 가를 상징하는 문양이 박혀있는 보검.
놈이 그걸 내 쪽으로 힘겹게 건넨다.
“네놈… 이걸로 끝이라 생각하지 마라.”
그렇게 나를 협박하는 레오였으나, 별 상관은 없다.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로, 놈이 내미는 보검을 잡았다.
그걸 잡고서, 가져가려 하는데.
가져가려 하는데…
부들부들.
‘응?’
어째서인지, 검이 움직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레오 놈이 검을 꽉 잡고서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진짜, 추하게.
나는 팔에 약간의 마나를 불어넣어, 검을 확 당겼다.
놈이 우스꽝스럽게 검을 놓치고.
엡실트 가문의 보검을 받아든 나는, 놈에게 감사를 표했다.
“음, 고맙다?”
물론, 놈은 내 진심 어린 감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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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는 교실 앞에 있는 루이 발렌슈타인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이안 덱스터 교수가 그녀들을 부르고.
베로니카는 교실 앞으로 향하며, 결투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결투가 벌어지기 전, 그녀는 이미 레오 엡실트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가 직접 그의 계획을 거들었으니까.
진짜로 하기는 싫었지만, 어차피 자신이 아니더라도 할 사람은 많았으니.
대신에, 결투 전에 레오의 계획을 루이에게 알려주자는 생각이었다.
둘이 결투를 신청한 날에, 루이에게 제안을 했었다.
그가 자신에게 먼저 사과만 한다면.
레오의 속셈을 알려주고, 자신 역시 사과를 하겠다고.
그녀는 진심이었다.
그녀가 루이에게 얻어맞은 날, 베로니카는 마침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만큼, 루이가 자신을 때렸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으니까.
그제서야 베로니카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었다.
자신이 루이에게 심하게 말한 것, 그에게 심하게 대한 것.
전부 장난이라는 생각이었다.
루이가 장난처럼 받아들이기에, 루이는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러나 제대로 돌이켜 보면,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자신의 행동은 장난이라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심했던 것 같으니까.
그러니, 사과를 해야 하는데.
베로니카는 누군가에게 먼저 사과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너무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루이에게는 괜찮았다.
만약 그가 저번에 때려서 미안하다고.
딱 그 한마디만 해준다면, 레오의 계획도 전부 알려주고.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할 생각이었다.
근데 결투 직전까지도, 루이는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루이와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 만약 이전의 관계로 돌아간다면 그에게 더 상냥하게 대해주리라.
이전처럼 시답잖은 장난을 치고, 같이 붙어 다니고 싶었다.
지금처럼 그가 자신에게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만약 앞으로도 영원히 그런다면, 그건…
‘끄, 끔찍해. 루이, 제발…’
그러나 그녀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루이는 자신을 찾지 않고.
마침내 결투 시간이 다가왔다.
이대로 결투가 진행되고, 만약 자신이 만든 스크롤 때문에 루이가 패배해서 퇴학을 당한다면.
베로니카는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결국, 먼저 루이에게 다가갔다.
혹시나 결투가 시작되버릴까, 급하게 대기실로 달려갔다.
“루이! 너, 나한테 할 말 없어?”
대기실에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지만.
그는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과를 하지 않는 그가 조금은 원망스러웠지만.
최소한 자신에게는 그를 원망할 자격이 없다는 것쯤은, 베로니카도 알고 있었다.
결국, 베로니카는 그에게 전부 털어놨다.
레오가 속박 스크롤을 준비했다는 것을.
그러고서, 베로니카는 내심 기대했다.
사과는 몰라도, 최소한 루이가 감사 정도는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대신에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싸늘한 축객령.
“나가.”
단호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서.
꼭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아, 베로니카는 재빨리 대기실을 뛰쳐나갔다.
터덜터덜, 다시 생도들 사이로 돌아가는 길.
베로니카는 너무나 슬펐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루이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둘의 사이가 틀어지기 전.
루이가 자신에게 얼마나 잘 해줬었는데.
자신은 그에게 한 번이라도 제대로 감사를 표한 적이 있었던가?
항상 부끄럽다는 이유로, 낯간지럽다는 이유로 제대로 고맙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항상 고마웠으면서도, 툴툴대면서 제대로 감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루이도 지금의 자신과 같은 기분이었을까.
그렇게 기분이 우울해진 채로, 둘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검술은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확실해졌다.
루이가 레오를 농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궁지에 몰린 레오가 스크롤을 발동하려 했다.
미리 그 사실을 예상하고 있던 베로니카는 알 수 있었다.
‘피해, 루이!’
그녀가 속으로 외쳤다.
그러나, 루이는 어째서인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안타까워하던 베로니카에게 순간 떠오른 생각.
‘설마, 나를 믿지 못해서?’
만약 진짜 그런 이유로 루이가 결투에서 패배한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분명 속박 마법에 맞았을 루이가 멀쩡히 움직이고.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못 챘겠지만, 마법에 관한 한 천재적인 베로니카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몸을 약간 움찔거린 레오야말로, 속박에 걸렸다는 것을.
그 직후, 루이가 정면으로 레오를 박살내는 멋진 장면이 있었다.
베로니카 역시 그 장면을 보고서 감동을 받았으나.
여전히 그녀의 마음속에는 의문이 잔뜩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방금 박살이 난 레오에게는 물어볼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결투가 끝나고 그녀가 다시 찾은 사람은, 루이 발렌슈타인이었다.
“루이, 어떻게 된 일이야! 너 분명 피하지도 않았…”
루이는 경멸의 표정을 베로니카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속박 저주 스크롤 말이지.”
“저주…?”
얼빠진 표정의 베로니카를 향해, 루이가 말한다.
“전부 알고 있었어. 놈이 저주 스크롤을 만들려는 걸, 내 머리카락을 놈의 것으로 바꿔치기했지.”
베로니카가 입을 벌렸다.
그러니까, 루이는 레오의 계획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인가?
자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고?
그에게 감탄하는 베로니카였으나, 여전히 의문은 있었다.
어째서, 루이는 자신을 저런 표정으로 바라보는가.
지난번에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때, 루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내가 속을 줄 알았어? 네 계획이 안 통한 게 그렇게 놀랍냐?”
“무, 무슨 소리야… 루이, 왜 그래?”
“하, 왜 그러냐니.”
그가 웃는다.
“도대체 이 함정의 의미가 뭐였을까 생각을 했거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 루이.
“끝까지 비밀로 하면 되는 것을, 어째서 자신의 계획을 일부 드러냈을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루이…”
“다시 생각해 보니까, 스크롤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틈이 필요하잖아. 전투 도중에 그런 짓을 했다가, 잘못하면 스크롤을 발동하는 동안에 나한테 공격받을 수도 있고.”
잘은 모르겠지만, 무언가 큰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베로니카는 재빨리 해명을 하려 했지만, 루이의 말이 더 빨랐다.
“근데, 만약에 네 거짓말을 내가 믿었다면? 놈이 스크롤을 발동하는 틈에, 나는 놈을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피하려고 했겠지.”
“루이, 잠깐만. 나도 그게 저주 스크롤인 줄은 몰랐…”
“내가 레오 놈의 계획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진짜로 큰일 날 뻔했어.”
그가 감탄한다.
“이야, 설마 이렇게까지 머리를 굴릴 줄이야. 레오 놈, 멍청한 줄로만 알았는데…”
베로니카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 혹시 나쁜 짓에 한해서만 머리가 잘 돌아가는 건가?”
그리 비웃는 루이를, 베로니카는 아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일이 너무나 잘못 돌아가고 있다.
루이가 큰 오해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자신이 들어도 조금 그럴듯하다.
“아니야, 루이! 나는 진짜로 몰랐어! 너를 걱정해서, 아는 건 전부 말해준 거라고!”
그녀가 필사적으로 호소한다.
그러나, 루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베로니카의 간절한 호소가, 루이에게는 더 가증스럽게 느껴진 듯했다.
루이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아, 몰랐다고? 진짜 나를 생각했으면, 왜 결투 직전에야 말해준 건데? 조금이라도 미리 말해줄 수 있었잖아?”
그의 외침에, 베로니카는 말문이 막혔다.
“뭐, 뻔하지. 결투 직전에 말해야, 내가 제대로 생각할 시간도 대비할 시간도 없을 테니까. 안 그래?”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그가 먼저 사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뻔뻔한 말을, 도대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다급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그녀에게 루이가 말한다.
“됐어, 뭐. 네가 이 정도까지 할 줄은 나도 몰랐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루이는 다시 떠났다.
베로니카는 느꼈다.
이대로 있으면, 진짜로 루이와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녀는 이번 결투의 조건을 이용해서.
그걸 핑계로, 그에게 먼저 사과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늘이었다.
앞으로 나서서, 에스더가 그에게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하는 것을 보고.
엘린의 다음으로, 그녀가 나섰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을 담아, 그녀가 말했다.
“루이… 너에 대해서 거짓말을 한 거, 너를 파티에서 추방한 거, 지금까지 심하게 대한 거 전부 사과할게. 진심이야.”
제발, 자신의 진심이 루이에게 조금이라도 닿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