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 영원한 17살, 앨리스 쉴러
“응, 어림도 없지.”
나는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며 중얼거렸다.
오늘 웬일로 발렌슈타인 백작에게서 편지가 왔길래 봤더니, 안스베르크 백작의 장례식이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예의상 장례식에 참석해야 하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안 그래도 요즘 펠리체 안 봐서 좋은데, 내가 거기를 왜 간다는 말인가?
힘겹게 가고일을 잡으려던 내게 화를 내던 그녀를 생각하면…
‘어우, 또 빡치네.’
결국, 그녀는 가고일 떼의 습격이 실제로 일어나고 나서야 내 말을 믿었다.
그제서야 내 기숙사까지 와서 사과하려 한 것 같지만.
뭐, 이미 늦었다.
나는 이미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으니.
장례식이야 아버지 혼자서만 가도 충분하다.
“후욱, 후욱…”
숨이 차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오르고 있는 것은, 아카데미 한구석에 있는 언덕이었다.
누군가는 이걸 산이라고 말하지만.
아무튼, 건물도 여럿 있고.
매점도 몇 개씩이나 있고, 심지어 우체국도 따로 있는 거대한 아카데미이다.
심지어는 아카데미 내에 숲,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작은 언덕도 있을 정도였으니.
역시 거대한 아카데미이다.
그리고 이 언덕 꼭대기의 작은 동굴에는, 전설의 생도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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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제가 무서운 이야기 하나 해드립니까?”
“응? 갑자기 무슨 소리냐?”
“아니, 날도 더운데 뒷목 싸늘해지는 이야기나 해드리겠다는 거죠.”
“…제자야, 지금은 한겨울이다만?”
“아무튼 말입니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헬론 아카데미 2학년 A반에는… 존재하지 않는 13번 학생이 있습니다.”
음산하게 목소리를 깔고서 말을 한다.
“듣기로는 십수년 전 입학한 학생이라는데…”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평생 소원은 이 헬론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그만 목표를 이루지 못하게 되고…”
“……”
“결국 그녀는 아카데미의 지박령이 되어, 비 오는 13일의 금요일마다 나타나 학생들을 데려간다는…”
“…제자야.”
“예?”
“혹시 그거, 내 얘기더냐?”
“에이, 착각이십…”
퍽, 퍼억!
“아, 아픕니다!”
“이게, 일주일도 넘게 코빼기도 비치지 않더니 와서 한다는 말이 스승 놀리기냐!”
약간 작은 체구, 다 해진 아카데미 생도복.
머리 위에 불쑥 올라와 있는 고양이 귀와, 치마 뒤편에 빠져나온 꼬리.
게임 내에 이벤트로 등장하는 기연이자, 내 스승님.
고양이 수인, 앨리스 쉴러.
그녀가 내게 날리는 냥냥펀치는, 꽤나 아팠다.
“자, 잠깐만요!”
그녀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나는 어서 아카데미 매점에서 사온 음식들을 보여주었다.
“흥! 나를 음식으로 사려는 게냐! 날 모욕할 셈이… 암냠냠…”
라고 꾸짖기에는 너무 맛있는 음식이었다.
곧 그녀의 냥냥펀치는 멈추고, 대신 내가 가지고 온 음식이 순식간에 그녀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우물우물… 암냠냠…”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약간은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여기 언덕 동굴에 숨어서.
쥐나 새를 잡아먹거나, 삵 뿌리를 캐서 먹었다고 한다.
게임 내에서는 몇 번이고 그녀를 찾으며 제자로 받아달라 부탁을 해야 하지만.
여기는 게임이 현실로 바뀐 세상.
첫 만남 당시 우연찮게 그녀의 식사 장면을 본 나는, 곧바로 매점에서 음식을 잔뜩 사서 왔고.
그 즉시 나는 그녀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음식을 입 안에 욱여넣는 그녀의 모습을 약간은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외모는 나보다도 어려 보이는데…’
앨리스 쉴러, 그녀는 십수년 전 모종의 사고를 치고서 제국의 아카데미로 도피성 입학을 한다.
수인들 측에서는 그녀를 잡으려 혈안이었지만, 이곳은 제국의 아카데미.
멋대로 사람을 보내 아카데미 생도를 체포하거나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물론, 그들은 황실 측으로 혹은 총장에게도 직접 부탁을 하였으나.
양쪽 모두, 현 아카데미 생도를 건드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야, 헬론 아카데미는 제국의 자랑.
아카데미의 생도를 멋대로 건드는 것은, 제국의 위신과도 관련이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수인들 측은 포기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앨리스는 방학 때 아카데미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졸업하고 나면 결국 그들에게 잡힐 운명.
그런 계산 끝에,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유급’이었다.
그녀는 십 년도 넘게, 모두의 마음속에 영원한 2학년으로 남았다.
…물론, 학적도 마찬가지.
십몇 년째 유급에 유급을 반복하는 중인 그녀다.
기숙사를 이용할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아카데미 내의 숲으로 숨어들었다.
숲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언덕, 그 꼭대기의 작은 동굴.
스승님의 새로운 기숙사였다.
그녀의 표현으로는, 수련을 위해 산을 오른 것이라던가.
아, 참.
이 게임에서, 수인들은 제국 저 멀리 동쪽에 나라를 이루고 산다는 설정이다.
동쪽이라 함은, 역시 무림.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로 괴상하긴 하지만, 뭐 아예 이해를 하지 못할 것도 아니니.
어느새 음식을 해치운 스승님이, 내 측은한 눈길을 보고서는 귀를 쫑긋거린다.
“무엇이냐? 어째 기분이 나쁜 눈빛이구나, 제자여.”
“기분 탓입니다.”
“뭐, 아무튼. 오랜만에 왔으니, 우선 실력이 녹슬지 않았는지부터 확인해야겠구나. 어서 보법을 펼쳐보거라!”
그녀가 내게 근엄하게 말한다.
참고로 내가 레오 놈을 미행할 때 유용하게 써먹었던 것이 바로 스승님에게서 배운 보법이다.
다리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나는 외쳤다.
“암영신보 제1식, 섀도우워크!”
따악!
“내가 초식명에 제국식 이름 붙이지 말라고 했지, 제자야!”
나는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서는, 그녀의 앞에서 보법을 펼쳤다.
그녀의 표정이 흐뭇하게 변한다.
“뭐, 나쁘지 않구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어.”
그녀가 내게 늘 하던 말을 한다.
“누누이 말하는 것이지만, 이 보법을 끝까지 익힌다면 그 어떤 강적의 앞에서라도 몸을 숨길 수 있을 것이야.”
“정말입니까?”
“그래. 바로 눈앞에서도, 대충 0.1초 정도…?”
“쓸모없어…”
따악!
역시 고양이답게, 귀가 좋다.
진짜 작게 중얼거렸는데…
“이건 됐고. 어째서 이제야 온 것이냐? 너무 늦지 않았느냐.”
“아, 그게…”
나는 그녀에게 근 며칠간 있었던 일을 전부 털어놓았다.
가고일 토벌부터 시작해서, 파티 추방, 결투의 승리까지.
그녀도 나에게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었기에.
내가 게임 속에 떨어졌다는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다른 이야기들은 유일하게 그녀와 나누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전부 들은 그녀가, 시원하다는 듯이 말한다.
“아핰! 차라리 잘 됐구나! 애초에, 네가 어째서 그런 놈들을 돕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됐었다!”
그녀가 웃고.
나 역시 약간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야, 히로인들의 구원이니 마왕 부활을 대비하니.
그런 미래 이야기들을 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사실을 빼놓고 말했기에, 그녀는 늘 그런 나를 답답해했었다.
근데 이제 그럴 일은 없으니.
그녀의 표정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시원해 보인다.
“그래도 뭐, 앞으로 파티 활동을 어떻게 할지라든가… 그런 건 고민입니다.”
내가 말하지만.
“아학학핰! 그걸 오히려 반대로 추방시켰다고! 결투에서는 아예 쳐바르고! 아핰핰!”
너무 시원했는지,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그녀였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오늘도 그녀에게 수련을 받고서, 땀으로 몸이 흠뻑 젖은 채로.
나는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아, 스승님. 곧 방학이라, 그동안에는 여기 올 수 없습니다.”
“뭣이! 제, 제자야!”
그녀가 나를 다급히 부른다.
다급하게 부른 것치고는, 어째서인지 잠시 망설이더니.
“제자야… 차라리 방학 동안에 이 스승님과 동굴에서 같이 폐관수련을…”
“안녕히 계십쇼!”
“아 앙대!”
그녀의 간절한 외침을 뒤로하고, 나는 재빨리 언덕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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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한 놈…”
앨리스가 중얼거린다.
물론, 자신의 제자 이야기였다.
동굴에서 같이 폐관수련을 하자는 것은, 자신도 나름 용기를 내서 제안한 것이었는데…
설마,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갈 줄이야.
“흥!”
아무튼, 그녀는 오늘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제자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파티원들에게 이유도 없이 잘 해주었다.
그녀는 늘 그게 불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이에게서 듣는 파티원들의 행동은 치가 떨릴 정도였으니.
마침내 제자가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버린 것 같아 속은 시원했지만.
혹시나 제자가 다시 그들을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그게 걱정인 앨리스였다.
거기에, 아까 그가 파티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것도 들었다.
하긴, 아무래도 혼자라면 파티 활동은 어려울 테니…
그녀는 제자를 위해 결심을 했다.
마침, 자신도 2학년이고 제자도 이제 2학년이 된다.
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으면, 아마 자신에 대한 추적도 이제는 멈췄으리라.
그래,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말이다.
자신이 파티에 들어가준다면, 제자가 감격하겠지?
“후후, 제자가 아주 놀라겠구나.”
마침내, 수련을 끝내고 하산할 결심을 한 앨리스였다.
비록 하산이라기에는 산이, 아니 언덕이 조금 많이 낮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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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짜로?”
나는 어이가 없었다.
원래 가주라는 자리가 이렇게 한가한 자리인가?
진심, 의문이다.
내가 장례식에는 갈 생각이 없다고 몇 차례 답장을 보냈더니.
마침내, 발렌슈타인 백작이 나를 직접 데리러 왔다.
그래, 여기 아카데미까지 직접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