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 프란츠 발렌슈타인 백작
프란츠 발렌슈타인 백작.
그는 말 안 듣는 아들을 잡기 위하여, 아카데미까지 직접 행차했다.
이전 같았으면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을 아들이었으나.
최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괜찮았기에, 제법 신경을 쓰고 있는 그였다.
백작이 아카데미 교정에 들어서고.
그는 곧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뭐, 그리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추억이었다.
그 역시 제국의 귀족답게 이 헬론 아카데미 출신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졸업생은 아니었다.
그가 아카데미 생도였던 시절에는, 나름 교수들도 주목하는 인재였다.
뛰어난 실력.
거기에, 제국 3대 공작가 중 하나의 후계자라는 뒷배경.
누가 보더라도 수려한 외모까지.
인기가 없기가 오히려 어려운 인간이었고, 미리부터 인맥을 만들려는 생도들 사이에서 친구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생도의 표본이었지만.
그런 그에게 더없이 큰 시련이 찾아왔다.
다름 아닌, 당대의 발렌슈타인 공작.
프란츠의 아버지의 반역 소식이었다.
무려 황제의 암살 시도까지 포함된 반역 계획이라던가.
당연하지만, 당시의 프란츠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당시의 프란츠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가 소식을 들었을 때쯤엔, 이미 발렌슈타인 공작은 반역이라는 명목으로 체포된 후였으니까.
프란츠는 아무것도 들은 게 없었고, 아는 것도 없었다.
최소한 아버지를 만나기라도 하려 했으나, 황실에서는 그것조차 불허했다.
반역의 증거라 하는 것들이 계속해서 나왔지만, 프란츠는 믿지 않았다.
그러던 때에, 그를 도와준 친구들이 있었다.
발렌슈타인 공작가라는 뒷배경을 보고서 프란츠에게 접근하던 이들.
그런 이들은 프란츠의 가문이 반역 사건에 휘말리자, 전부 그를 버렸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프란츠라는 인간을 보고서 그와 친해진 친구들.
그들은 끝까지 프란츠를 돕기로 했다.
프란츠는 감격해서, 그들과 같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예 아카데미를 때려치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만큼 진심이었으나, 큰 소득은 없었고.
황실에 대한 반역이라는 사건은, 일개 아카데미 생도들이 손을 대기에는 너무나 중대하고 또 위험한 일이었다.
각자의 부모님들이 처음으로.
그 다음으로는, 황실에서 직접 프란츠를 돕던 이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물론, 프란츠 본인에게 온 경고는 한층 무시무시했다.
계속해서 이런 행동을 한다면, 공범으로 생각하고 그 역시 체포하겠다는 경고.
사실상, 협박이었다.
그리고 그 협박을 받은 프란츠는, 비웃음을 내뱉었고.
황실의 말을 무시하고, 아버지의 결백을 밝히려 했으나.
프란츠에게는 그럴 시간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전부 미리 짜맞춘 것처럼.
발렌슈타인 공작의 유죄는 확정되었고, 그 형벌 또한 수상하게도 빠르게 집행되었다.
공작에게 내려진 처벌은, 사형.
가문의 영지와 재산은 대부분 몰수.
공작위 역시 백작위로 강등.
공작의 반역 시도가 유죄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제국 3대 공작가라 그런지 황실에서도 자비를 보였다고 떠들어댔으나.
그의 결백을 믿고 있는 프란츠로서는, 그냥 전부 죽여버리고 싶었다.
최소한, 처형 집행 직전에는 공작을 가족과 만나게 해주었다.
그 자리에서,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공작을 보고서 프란츠의 어머니는 혼절.
그 이후로 그녀가 깨어나는 일은 없었다.
공작은 자신의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는 심지어 제대로 말조차 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프란츠가 유일하게 알아들은 말은.
공작이 자신은 무고하다고 말한 것.
그때 그의 눈빛을, 프란츠는 잊지 못한다.
처형은 빠르게 집행되었다.
가산은 대부분 몰수되었다.
가신들도 대부분 가문을 버리고 떠났고.
그의 어머니 역시 죽어버렸다.
프란츠의 흑발은, 그때부터 충격으로 하얗게 세 버렸다.
황실에서는 아카데미 측에 프란츠의 퇴학을 요구하였으나.
어째서인지, 총장은 황실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프란츠가 계속해서 아카데미를 다니는 일은 없었다.
이제 가문을 맡을 이는 그 말고는 없었으니.
아카데미를 자퇴하고, 가문으로 돌아온 그에게 남은 생각은 둘이었다.
아버지의 결백을 증명하고, 가문을 이런 꼴로 만든 이들에게 복수한다.
누구에게 복수를 할지는 모르겠다.
공작을 처형한 황실.
황실을 도와 발렌슈타인 가문을 공격한 또다른 3대 공작가인, 엡실트 공작가와 류리케 공작가.
발렌슈타인 가의 멸문을 주장한 제국의 수많은 귀족들.
과연, 그중 공작에게 누명을 씌운 이는 누구일까.
모르겠다.
그냥 다 죽이고 나도 뒤져버릴까 생각한 적도 많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목표는 모호해졌다.
누명을 벗기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복수를 하고 싶은 것인지.
확실한 것은 단 하나였다.
반역은, 분명 누명이라는 것.
공작의 마지막 말은 프란츠의 뇌리 깊숙이 박혔다.
제국 전체에서 발렌슈타인 공작의 반역 시도가 사실로 받아들여졌지만.
프란츠는 신경 쓰지 않았다.
복수를 위해서는, 우선 가문의 힘을 키워야 했다.
당장 발렌슈타인 공작가… 아니, 백작가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으나.
프란츠는 그 능력으로 기어코 가문을 소생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래봤자, 여전히 귀족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정도였으나.
그 즈음에, 그는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처형당한 반역자의 아들과 결혼을 할 귀족 영애는, 제정신이 박혔다면 이 제국에 없었으나.
오히려 그런 큰 흠 때문에, 신분 상승을 노리는 몇몇 사람들의 시도가 있었다.
백작과 평민의 결혼.
본래라면 이루어질 수 없으나, 반역자의 아들이었기에 가능했다.
상대는 돈 많은 상인의 딸.
프란츠는 상대의 돈으로 가문을 부흥시킬 요량이었고.
상대는 신분 상승을 위해 비록 반역자 가문이더라도, 백작위만을 보고서 딸을 보냈다.
서로 사랑은 없었다.
그야말로 정략결혼의 표본.
결혼 덕에, 그나마 귀족 꼴은 갖출 수 있었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여자 쪽은 프란츠에게 별다른 애정을 보이지 않았고.
그렇기에, 루이를 낳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죽었을 때에도 프란츠는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프란츠는 루이에게도 별다른 애정을 가지지 않았다.
루이의 망나니 같은 성정은 괜찮았다.
그러나 루이가 자기 할아버지에 관한 일을 듣고서도, 크게 분노하지 않았을 때에.
백작이 몇 번이고 아들에게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걸고서 누명을 벗기고 복수를 해야 한다는 말에, 굳이 그래야 하냐는 말에.
그는 아들에 관한 것을 전부 포기했다.
그래서, 아들이 2년 전쯤 병으로 쓰러졌을 때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죽든지 말든지, 딱히 걱정이 되지 않았다.
분명 그랬었는데.
병이 낫고, 다시 일어난 루이는 꼭 다른 사람 같았다.
그 망나니 같던 성격은 사라지고.
훨씬 총명해지고, 심지어는 혼자서 수련을 하는 것도 보았다.
다시금, 흥미가 생긴 백작이었다.
그가 다시 루이에게 전대 발렌슈타인 공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루이 발렌슈타인은 누명을 벗기고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프란츠는 루이를 아들로 인정했다.
쓰러지기 전과, 다시 일어난 후의 루이는 꼭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근데 뭐, 진짜로 다른 사람이더라도 별로 상관은 없었다.
전의 것보다는, 이번 아들이 더 마음에 들었으므로.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경악할 소리였으나, 이미 마음이 닳아버린 백작에게는 큰 문제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그가 교정을 두리번거리고 있자, 마침 그를 발견한 직원 하나가 다가온다.
생도복을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동안이라 할 수 있는 외모 덕에 그를 생도라 착각한 직원이었다.
‘이야… 옷이 낡았긴 한데, 되게 고급이네. 어디 가문 생도지?’
그에게 다가가, ‘무슨 일 있습니까, 생도?’ 하고 묻는 직원.
그런 직원을 괴상한 것 쳐다보듯이 보던 백작이, 이윽고 입을 연다.
“프란츠 발렌슈타인 백작이다. 아들을 보러 왔으니, 안내하도록.”
그 말에는, 직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생도가 아니라, 학부모였나?
거기에, 발렌슈타인 백작?
직원은 재빨리 그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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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가주님. 도대체 왜 장례식을 가는 겁니까? 평소에 안스베르크라면 질색하셨으면서.”
“그래서 가는 거다.”
“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백작이 다시 입을 연다.
“그래도 제국의 백작이 죽었는데, 가서 축의금이라도 내고 와야 하지 않겠나.”
“…조의금이겠죠.”
“아무튼 말이다. 이런 것도 다 후계자 수업이라고 생각해라.”
어째서일까, 약간 불안해진다.
그를 오래 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느낀 바로는, 이 프란츠 발렌슈타인 백작.
루이 발렌슈타인의 아버지는, 살짝 맛이 간 인간이었다.
정정한다.
약간이 아니라, 굉장히 불안해서.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경고를 했다.
“저, 가주님. 그래도 장례식장인데, 깽판은 치시면 안 됩니다?”
이 인간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딴 짓을 했다가는, 발렌슈타인의 명예가 아주 낙하산도 없이 추락하고 말 것이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 발렌슈타인에는 더 떨어질 명예도 없는 것 같긴 하다만.
늘 밑바닥에도 바닥이란 게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상당히 불안한 눈빛으로, 대답이 없는 발렌슈타인 백작을 바라보며.
나는 그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