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4 안스베르크 백작의 장례식
안스베르크 영지로 향하는 마차 안.
백작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허리춤을.
그의 시선을 따라 내 허리춤을 확인하니.
나도 모르게 레오한테서 뺏은 검을 차고 나왔더라.
“루이 발렌슈타인.”
“예, 가주님.”
“지금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 검에 엡실트의 문양이 박힌 것으로 보이는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디 한번 보자.”
그의 말에 따라, 나는 조심스레 검을 내밀었다.
동시에, 백작의 표정이 무시무시해진다.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는다면, 네놈의 목을 날려버리겠다.”
거 무슨 그런 잔인한 말을.
“하하, 농담이시죠…?”
“농담으로 보이나?”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아니, 왠지 제가 엡실트 가에 넘어갔다거나 그런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정확하다.”
“다시 말하지만, 오해입니다.”
나는 그에게 레오 엡실트와 있었던 결투에 관한 일을 재빨리 설명했다.
“…그렇게 된 일입니다. 이 검은, 놈이 결투의 조건으로 걸었던 것이고요.”
“호오… 훌륭하군. 역시 발렌슈타인의 후계자다워.”
방금까지의 무서운 표정은 사라지고, 그가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백작이 내 검을 들고서는 천천히 살핀다.
“흐음, 보통 검이 아닌 것 같은데.”
예리하군.
예, 그거 진짜로 보통 물건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에게 검에 숨겨진 힘 어쩌고를 설명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냥 간단히 말했다.
“엡실트 공작가에 대대로 전해지는 가문의 보검이라고 합니다.”
“아주 좋아! 역시 후계자 자리를 네게 맡기기를 잘했어.”
“어차피 저는 외동…”
“조용.”
아무튼, 그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검을 살폈다.
엡실트 공작가에 한 방을 먹였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은가.
백작의 기분이 좋아 보이기에, 나는 이 틈에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가주님? 제가 놈과의 결투도 이겼는데, 용돈을 좀 올려…”
“닥쳐라.”
“넵.”
…젠장.
잠시 뒤.
우리가 탄 마차는 천천히 멈췄다.
백작을 따라 마차에서 내리자, 난장판이 된 안스베르크 영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압권은, 박살이 난 안스베르크 영주성이었다.
가고일 떼의 습격 이후로 제법 시간이 지났기에.
영지도 어느 정도 복구가 되어 있으리라 예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내 착각이었나 보다.
특히 파괴된 영주성은 복구하려면 수리가 아니라 거의 재건을 해야 할 수준이었다.
백작과 나는 천천히 영주성 쪽으로 향했다.
다른 가문도 아니고, 무려 안스베르크 백작가 가주의 장례식.
같은 백작가이지만, 몰락한 우리 발렌슈타인 백작가와는 그 위세가 차원이 다르다.
그 덕인지, 제국 곳곳에서 귀족들이 장례식을 위해 모여들었다.
반파된 영주성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화려한 마차들의 모습이 사뭇 어색했다.
영주성의 입구.
손님들을 안내하기 위해서인지, 기사가 앞에 나와 있었다.
그런 기사에게, 발렌슈타인 백작이 묻는다.
“무슨 축제가 열리고 있는 건가요?”
그 사탄도 경악할 도발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이 발렌슈타인 백작은 사이코패스가 분명하다.
기사는 핏발 선 눈으로, 빠드득 이를 갈며 대답한다.
“…축제가 아니라 장례식입니다.”
“아이고, 참. 이런 실수를. 하핫!”
그 웃음을 남기고서, 백작은 초대장을 넘기고 기사를 지나쳐 들어간다.
나는 백작을 따라, 기사에게 작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이 죽었는데…
우리는 영주성 내에 마련된 빈소 쪽으로 향했다.
안스베르크 백작가의 위세답게, 영주성 안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대부분은 귀족들이었고.
아카데미 내에서 몇 번 마주친 생도들도 제법 보였다.
귀족 집안 자식들이 다들 여기로 왔다면, 오늘 아카데미는 한가하겠구먼.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무리 여기가 무공이니 뭐니 그런 것까지 존재하는 근본 없는 판타지 세계라고 해도.
설마 판타지 세계의 장례식에서도 절을 두 번 한다든가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러니 나는 적당히 발렌슈타인 백작을 따라 하려 했건만.
백작은 딱히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역시 발렌슈타인답게, 우리는 그럴 일이 없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기를 잠시.
백작이 내게 말한다.
“잠시 여기서 기다려라. 나는 안스베르크 백작을 구경하러 다녀올 테니.”
나는 이번에도 입을 떡 벌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방금, 시체를 ‘구경’하고 온다고 말한 건가?
내가 잠깐 충격에 빠져있는 사이.
발렌슈타인 백작은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아니, 잠…”
그는 이미 갔다.
아니, 나 혼자서 뭘 하라고…
아카데미 생도들은 다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거나, 혹은 부모를 따라 인사를 하러 다녔다.
그리고, 나는 혼자였다.
차라리 그것뿐이면 괜찮겠다만.
사람들은 아닌 척하면서 나를 힐끔거렸다.
자기들 딴에는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속닥거리는 것 같다만, 내겐 다 들린다.
“맞지?”
“응, 루이 발렌슈타인.”
“발렌슈타인이라도 오기는 했네…”
특히, 그들은 발렌슈타인 백작과 마찬가지로 내가 차고 온 검에 눈길을 주었다.
“저거, 엡실트 가문의 보검이 아닌가?”
“저게 어째서 저 자에게?”
그런 귀족들의 의문은, 같이 온 자식들.
즉, 아카데미 생도들이 풀어주었다.
“예, 아버님. 둘이 결투를 해서…”
“결투의 조건으로 공개 사과와, 가문의 보검을…”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을 보고서, 나는 속으로 웃었다.
레오 놈, 과연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는 있을는지.
특히, 이 보검은 게임 설정 상 엡실트 공작가의 초대 가주로부터 내려오는 검이다.
만약 레오가 이 사실을 자기 아버지한테 말하지 않았고.
공작이 그걸 이 장례식에서 처음 알게 된다면?
‘기대가 되는군.’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나는 겨우 참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기에, 나 역시 그들을 따라 이동했다.
대충 듣기로는, 안스베르크 백작을 매장할 차례라고 한다.
자연스레, 화제는 안스베르크 가문과 가고일 떼의 습격으로 넘어갔다.
사람들이 제각기 떠들기 시작한다.
“세상에, 설마 안스베르크 백작이 이렇게 가리라고는…”
“듣기로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남아 가고일 떼에 맞섰다는군요.”
“흑, 너무 영웅적이에요.”
백작에 대한 칭찬.
“그런데 백작까지 전사할 정도였는데, 생각보다는 영지가 멀쩡하네요.”
“이렇게 박살이 났는데 멀쩡하다고 말하기에는…”
“아니, 어디까지나 비교적으로 말이죠. 백작이 죽을 정도면, 영지도 아예 무너질 줄 알았는데.”
그거야, 내가 미리 경고를 한 덕분이리라.
분명 그랬을 터인데.
“펠리체 안스베르크 영애가 미리 경고를 한 덕에, 조금이지만 대비를 할 수 있었다네요.”
“펠리체 영애가요? 아니, 어떻게 알고…”
“글쎄 말이에요. 아무튼, 역시 펠리체 영애에요. 원래부터 뛰어나기로 소문났다지만…”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물론 내가 루시더러 나 말고 펠리체의 이름을 대라고 하기는 했었다.
그래도, 루시가 내게 감사 인사를 하길래.
적어도 일이 다 끝난 후에는 사실대로 말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조금, 루시에게 실망을 했다.
비록 나는 루시를 포함해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미리 경고를 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심지어 끝까지 나를 욕하던 사람이 내 공적을 가져갔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이대로 입을 다물까.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안스베르크를 엿먹일까.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참, 그리고 방금 느낀 것인데.
내가 꼭 그렇게 착하기만 한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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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는 크게 슬프지가 않았다.
뭐 눈물이 메말라서 나오지 않았다,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별로 슬프지가 않아서 눈물이 나오지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루시는 아버지라는 인간을, 심지어 저택의 하녀보다도 드물게 봤으니까 말이다.
안스베르크 백작은 완벽한 기사이자, 완벽한 가주였다.
그런 그가 자식들에게 할애할 시간은 별로 없었다.
다른 귀족 집안도 비슷하지 않냐 할 수 있겠지만, 안스베르크 백작은 특히나 심했다.
가끔 그가 자식들에게 내는 시간조차도, 대부분은 자신의 언니.
펠리체 안스베르크의 몫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펠리체 안스베르크는 어려서부터 검술에 재능을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펠리체를 칭찬했으며, 그녀를 영재라고 추켜세웠다.
자신의 아버지는 그런 언니를 가문의 후계자로 점찍고, 그녀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결국, 자신.
루시 안스베르크는 안스베르크 백작에게 있어 중요하지 않은 인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는 어땠을지 몰라도, 백작의 행동은 루시를 상처 입히기 충분했다.
그녀는 백작에게 애정을 받지 못했고.
자신의 언니에게 질투와 열등감을 느꼈다.
어머니 역시 아닌 척하면서도, 펠리체에게 더욱 관심을 쏟았고.
펠리체조차 검술 연습에 매진하며, 자신의 여동생과 어울리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 백작의 장례식에서 그녀가 크게 슬퍼하지 않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으리라.
오히려 지금 루시를 제일 거슬리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말이었다.
자신의 언니, 펠리체 안스베르크가 영지를 구했다는 것.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뻔뻔하게도 가만히 서서 해명을 하지 않는 펠리체가 너무나 가증스러웠다.
저기 저 멀리, 홀로 외롭게 서 있는 루이 발렌슈타인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꼭 그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만 같아.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모르겠으면서도, 그녀는 루이 발렌슈타인에게 향했다.
지금은, 무려 자기 아버지의 매장을 앞두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큰 상관은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차피, 저 자리에는 펠리체 안스베르크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