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35화 (35/69)

EP.35 입학 축하 연회에서의 첫 만남

저기, 사람들의 사이.

루이 발렌슈타인이 보인다.

그와 처음 만난 것은, 헬론 아카데미 입학을 축하하는 어느 연회에서였다.

제국 최고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헬론 아카데미였기에.

제국 내 귀족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자식을 아카데미로 보냈다.

돈깨나 있는 평민들 역시 어떻게든 자식을 헬론 아카데미에 보내려 노력했고.

제국 각지에서 영재로 소문난 이들 역시, 시험을 통해 아카데미에 어떻게든 합격하려 노력했다.

한마디로, 아카데미는 제국의 모든 부와 권력.

혹은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부모님의 명령, 혹은 자신의 선택으로 미리 인맥을 쌓으려는 생도들도 잔뜩이었고.

그중 귀족들이 미리 이런 연회를 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도 전에, 귀족 출신 생도들끼리 미리 친분을 다지는 자리.

그 연회도 그런 자리의 일종이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언니를 따라, 연회에 온 루시.

그녀의 언니는 천재로 소문나 유명했다.

실력도, 인지도도, 심지어 외모조차 자신보다 뛰어난 펠리체.

그런 그녀에 밀려, 루시는 늘 찬밥 취급이었다.

이런 연회 자리에서조차 말이다.

가족이 모두 참석하는 이런 행사장에서, 루시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모두들 루시가 아닌 펠리체에게 관심을 가졌으니.

루시 또한 외모만 보자면 다른 영애들에 비해 절대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언니가 너무나 유명한 탓이었달까.

심지어, 펠리체가 너무나 인기가 많아 대화의 기회를 잡지 못한 남자들이.

마치 대용품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 때면, 루시는 너무나도 비참했다.

그날의 연회에서는 그게 더욱 심했다.

애초에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이들을 위한 연회였고.

펠리체 외에도, 유명한 귀족 자제들이 잔뜩이었으니 말이다.

그 연회에서, 루시는 루이 발렌슈타인을 처음으로 보았다.

평소 연회 같은 데에는 절대 모습을 비추지 않던 그였으니, 루시는 그런 그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관찰했다.

망나니라는 소문에, 발렌슈타인이라는 이름값까지 더해져 평판이 최악을 달리고 있던 그.

그러나 소문과는 달리, 그는 굉장히 얌전했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중요한 사실.

‘잘생겼다…’

루시는 처음 그의 모습을 보고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실제로, 몇몇 영애들도 그를 몰래 힐끔거리는 중이었다.

만약 그가 발렌슈타인만 아니었다면, 다들 그와 친해지려 했으리라.

귀족 영애들 사이에서는 엡실트 공작가의 레오 엡실트가 미남으로 유명했으나.

루시가 보기에는, 저기 루이 발렌슈타인이 훨씬 곱상하고 잘생겼다.

그 역시, 자신처럼 외로워 보였다.

발렌슈타인과 친해지려 할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 말이다.

연회장 한구석에 있는 그의 모습에, 루시는 꼭 동질감을 느꼈다.

‘이야기라도 해보고 싶은데…’

그녀는 자기 언니를 보았다.

끊임없이 달라붙는 사람들에, 귀찮다는 듯이 무뚝뚝한 얼굴로 대꾸를 하는 그녀.

그걸 보자, 오기가 생긴 루시였다.

자신은 받지 못하는 관심을 가족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독차지하면서.

저렇게 귀찮다는 표정은 무엇인가?

아무도 자신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들은 전부 먼저 펠리체에게 갔다가, 사람들에 밀려 자신에게 오는 이들이었다.

꼭, 자신은 덤인 것처럼.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슬쩍 자리에서 빠져, 루이의 쪽으로 향했다.

마침내 그에게 다가가자, 살짝은 놀란 루이가 말한다.

“어… 루시 안스베르크 영애?”

루시 역시 살짝은 놀랐다.

“저를 아시나요? 처음 뵌 거 같은데…”

“아. 이런 자리는 나온 적이 없어서, 아마 처음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가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절대로 귀족답지 않은 태도였으나.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에게 다가와, 가증스럽게 예의를 차리는 놈들보다야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망나니라는 소문과는 달리 성격도 굉장히 좋아 보였고.

“왜 혼자서 계시나요?”

“그게, 사람들이 생각보다 발렌슈타인을 꺼려 하더라고요. 루시 영애는 괜찮으신가요?”

“예, 뭐 피차 외로운 처지 같으니까요.”

그녀가 약간은 허탈하게 말한다.

“음…? 도대체 어째서?”

“그야, 사람들은 저보다 언니에게만 관심이 있으니까…”

루시가 펠리체의 쪽을 고갯짓하며 말한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었지만.

지금 루시는 약간 흥분한 상태라, 말이 마구 나왔다.

그야, 그녀는 이렇게 잘생긴 남자와 단둘이 말하는 것이 처음이었으므로.

이렇게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마음에 드는 남자와…

“어, 그런가요?”

루이 발렌슈타인이 잘 모르겠다는 듯이 말한다.

“설마 제 언니를 모른다고 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건 아니고요. 루시 영애도 충분히 아름다우신데, 왜 언니분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인지 의아해서요.”

루시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렇게 말해주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심지어 어떤 놈들은, 자신의 앞에서 펠리체를 칭찬하는 말만 늘어놓기도 했으므로.

도대체가, 그러면 자신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아무튼, 루시는 갑자기 훅 들어오는 루이의 말에 당황했다.

절대로 기분이 나쁜 건 아니고, 오히려 너무 좋아서.

“아, 그, 그런가요…”

‘아, 쪽팔려. 왜 말을 더듬는 거야!’

그날의 연회가 끝나고.

루시는 두근거림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설마, 다른 영애들이 말하던 한눈에 반했다는 것이 이런 건가.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

부정하는 루시였으나.

그날 이후로, 루이와 루시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안스베르크 백작은 발렌슈타인과 절대 어울리지 말라고 했으나.

오히려 자신에게 관심도 주지 않는 아버지의 말을 어긴다는 것이, 루시에게는 일종의 쾌감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친분을 쌓은 둘이었기에.

이번 루이의 경고도, 루시는 바로 믿은 것이었다.

그런데, 루이가 무려 자신에게 직접 부탁한 일이었는데.

루이 발렌슈타인의 그 공로를 어머니는 펠리체에게 넘기려고 한다.

늘 자신에게서 모든 관심을 앗아가던 펠리체.

그게 펠리체의 잘못은 아니었기에, 뭐라 하지 못하던 루시였으나.

그러던 그녀가 이제는 루이 발렌슈타인의 공로까지 앗아가려 한다.

심지어, 이번에는 펠리체의 잘못이 맞았다.

이건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루이의 곁에 다다른 루시가, 잠시 갈등하다가.

꼭, 루이의 손을 붙잡았다.

“히익…! 루, 루시 영애?”

“루이 공자님, 잠시만 따라와 주시겠어요?”

그리 말하며, 루시는 생각한다.

‘놀라는 모습도 귀엽… 아니, 이게 아니지.’

사람이 없는 곳으로, 그녀는 루이를 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이 자신과 루이를 쳐다보는 것 같지만, 상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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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굉장히 당황한 상태다.

루시가 갑자기 내게 다가오더니, 무려 내 손을 잡았다!

이건 모태솔로인 나에게는 너무나 큰 자극인…

아무튼, 그녀는 나를 끌고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니, 루시? 지금 너희 아버지 흙에 파묻힐 타이밍인데…?’

그러나, 그녀가 워낙 빠르게 움직이기에.

결국 나는 그녀를 제지할 틈도 없이 끌려갔고.

마침내 그녀가 나를 데리고 온, 영주성의 어느 구석.

아무도 없는 그 자리에서.

루시는,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루이 공자님, 정말로 죄송해요.”

또다시, 당황했다.

“어, 루시 영애? 갑자기 왜…”

내 물음에 그녀가 답한다.

“공자님도 들으셨죠?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말을.”

“정확히 어떤?”

“제 언니… 펠리체 안스베르크가 미리 경고를 한 덕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루시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힌다.

그녀의 목소리도 기어들어가고.

하긴, 진실을 아는 입장에서는 나 같아도 쪽팔리겠다.

아무튼, 그 말을 듣자 내 얼굴이 굳었다.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루시가 다시금 고개를 숙인다.

“정말 죄송해요! 저는 전부 사실대로 말했는데…”

그녀의 말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대로 말했는데 어째서…”

“예. 그런데, 제 언니와 어머니가…”

이윽고, 루시는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고.

내 표정은 일그러졌다.

“하아… 그러니까.”

내 한숨에, 루시가 움찔 몸을 떤다.

“펠리체는 자기가 미리 경고를 했다고 거짓말을 했고, 백작부인은… 그냥 펠리체의 공로로 하기로 했다고…”

“죄송해요.”

“아니, 루시 영애가 죄송할 일은 아니죠. 어머니의 결정에 뭐라고 할 수는 없었을 테니…”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 발렌슈타인이라면, 이걸 빌미로 잔뜩 뜯어낼 수도 있다라… 씨발, 진짜.”

나도 모르게 욕설을 중얼거렸다.

루시의 표정이 게속해서 어두워진다.

“뭐, 어쨌든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래, 백작부인의 말도 틀린 건 없다.

우리 가문에 보상할 돈으로,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 영지민을 구호한다?

뭐, 그게 맞지.

근데, 나는 애초에 그런 보상을 바란 적이 없다.

루시 영애가 내게 한 것처럼, 그저 감사면 충분했다.

근데 백작부인은 내가 어디까지 뜯어낼지 모른다며 내 공을 펠리체의 것으로 돌렸다.

나는 눈앞의 루시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나는 조금 욱하는 마음에 그녀에게 물었다.

“루시 영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시험은 아니었고, 그저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루시는 잠시 망설이더니, 잔뜩 다짐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나중에 어떻게든 제가 보상을 해드릴게요. 그리고, 공자님이 원하신다면…”

그녀가 무언가 더 말을 하려 하지만.

그 말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끊겼다.

“그게 아니지 않나, 루시 안스베르크. 진실을 알았으면, 그대가 곧바로 사람들에게 밝혔어야지.”

우리가 흠칫하며 옆을 돌아보자, 그곳에는 황녀가 있었다.

“그대 역시 펠리체나, 그대 어머니와 다를 게 없어 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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