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6 황실의 후계 다툼
제국의 1황녀, 칼리아 슈펠츠는 오늘 안스베르크 백작의 장례식의 참석하기 위해 왔다.
그냥 백작가도 아니고, 황실의 검이라 불리는 안스베르크 백작가이다.
마침 황녀도 헬론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겠다.
황실에서는 그녀를 보내는 것으로 백작가에 성의를 보이기로 했다.
누가 뭐래도, 안스베르크 백작가는 황실의 충견이었으니.
물론 여기에 칼리아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다른 부분, 예를 들어 사람을 대하는 법 같은 부분에서는 약간 떨어지는 그녀였으나.
최소한 정략에 관해서는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평가하기에, 이번 가고일 떼의 습격에는 좋은 점도.
또, 나쁜 점도 있었다.
우선, 안타까운 점이라면 역시 황실의 충견이었던 안스베르크 백작가가 몰락한 것.
이건 황실의 힘이 줄어드는 것이고.
그녀가 훗날 황제가 되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패가 하나 사리진 것이었으니.
그러나 좋은 점이라면, 현 안스베르크 백작은 자신의 오라버니.
1황자를 제국의 후계자로 지지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도 터무니없었다.
제국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굳이 분란을 일으킬 필요 없이 적장자를 후계자로 삼아야 한단다.
‘하! 진정 제국을 위한다면, 능력이 뛰어난 자를 후계자로 밀어야지.’
최소한 자신이 자신의 오라버니보다는 뛰어나다고 확신하는 그녀였다.
아무튼, 안스베르크 백작은 죽고.
안스베르크 백작가는 이제 몰락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제 이름값 말고 안스베르크 백작가에 남은 것은 별로 없었다.
당황한 1황자는 당장 안스베르크 백작가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제의 뜻 역시, 1황자와 비슷한 것 같았고.
그러나 칼리아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루이가 선물한 패가 있었으니까.
과연 목걸이의 영상이 공개된 후에도.
다들 펠리체 안스베르크의 추태를 본 후에도, 반대 의견이 없을까.
황자는 이번 기회에 안스베르크 가문을 복구할 수 있을 정도의 지원을 해서.
안스베르크 백작가에 큰 은혜를 입혀, 후계 다툼에서 백작가가 확실히 자신의 편에 서게 하려는 것 같다만.
칼리아가 목걸이의 내용을 공개한다면, 적어도 그런 엄청난 수준의 지원은 막을 수 있으리라.
반대로, 칼리아가 안스베르크 백작이 죽은 틈을 타 안스베르크 백작가를 손에 넣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 그러기에는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판단한 그녀였다.
아까 말한대로, 안스베르크 백작가는 몰락했고.
백작가에 대한 지원이라는 카드는 이미 황자가 먼저 주장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현재 심혈을 기울여 영입하려 하는 남자.
루이 발렌슈타인이, 그걸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았다.
마침 말이 나온 김에.
오늘의 장례식에는, 루이 발렌슈타인도 왔다.
황녀는 주변에서 들리는 말의 내용에 얼굴을 찡그렸다.
사람들은 펠리체가 백작가에 미리 경고를 해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거짓말이리라.
애초에 영상 속에 나온 펠리체의 반응으로 봐서는, 절대 그럴 일이 없었다.
루이는 자신이 파티원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가고일이 도망친 직후에 영상을 중지했으나.
아이네라는 생도는, 아예 아카데미에 도착하기 전까지 녹화 중지를 까먹었다.
그 덕에, 그들이 여유를 부리며 아카데미로 오는 것까지 확인했다.
시간 상, 펠리체는 절대 가문에 경고를 할 수 없었다.
과연 루이 발렌슈타인은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들으며 뭐라고 생각할까.
그런 의문을 지닌 채로, 그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그를 끌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황녀는 눈을 찌푸렸다.
방금은, 안스베르크 백작가의 둘째 영애가 아니었던가?
“황녀 전하, 어디 가십니까?”
“잠시 기다리도록.”
그 말을 남기고서, 황녀 역시 급하게 그를 쫓았다.
그리고 그녀가 보게 된 것은, 루이에게 사과하는 루시 안스베르크.
또 그녀가 말하는, 펠리체와 안스베르크 백작부인의 계략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황녀는 다시금 결심했다.
안스베르크 백작가 따위, 자신의 오라버니가 가지라고 하자.
이딴 것들은 개나 줘라.
절대로 자신의 파벌에 끌어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녀는 이제 나서기로 했다.
그녀가 보기에, 저 루시 안스베르크라는 여자 역시 착한 척을 하면서.
그저 교묘하게 루이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딜, 루이에게… 내가 먼저 찜한 남자인데…’
그렇게 생각하고서는, 황녀는 순간 흠칫했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어쨌든, 그녀는 루시의 말을 끊으며 앞으로 나섰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나중에 어떻게든 제가 보상을 해드릴게요. 그리고, 공자님이 원하신다면…”
“그게 아니지 않나, 루시 안스베르크. 진실을 알았으면, 그대가 곧바로 사람들에게 밝혔어야지.”
둘이 놀라며 자신을 바라본다.
“그대 역시 펠리체나, 그대 어머니와 다를 게 없어 보이는군.”
“화, 황녀 전하?”
루이가 말한다.
그에게 작게 미소를 지은 후, 그녀가 다시 루시에게 말한다.
“나중에 어떻게든 보상을 한다라… 말은 쉽지. 꼭 제국 외교관들이나 사용할 법한 수사로군.”
“황녀 전하, 말이 심하십니다.”
상대의 황녀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루시가 그리 말한다.
루시는 억울했다.
방금.
‘그리고, 공자님이 원하신다면 제가 직접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려 했기에.
근데, 끝까지 듣지도 않고 황녀가 끼어든 것이다.
“루이 공자님이 원하신다면, 저라도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말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 아까는 그렇게 말하려 했었겠지.”
황녀가 순순히 인정한다.
“그런데 말이지, 그대는 루이가 자네에게 부탁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상하고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정곡을 찔린 루시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루시는 루이가 자신더러 사람들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으니.
“내가 아는 루이 발렌슈타인은, 남에게 그런 잔인한 일을 맡길 성격이 아니지.”
꼭 루이를 잘 안다는 것 같은 말에, 루시가 발끈했으나.
황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그대 역시 루이와 제법 친해 보이던데. 그의 성격을 알고서, 결국 그의 친절에 기대려 한 것은 아닌가.”
루시가 부들부들 떤다.
반박을 하고 싶은데, 양심에 찔렸다.
“사실을 알고서도 남에게 알리는 것이 아니라, 루이에게 물었다는 것부터가 실격이다.”
반박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분해서, 루시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황녀의 말이 맞았다.
자신이 사람들한테 사실대로 말한다면, 어머니가 자신을 혼낼 것이 두려워서.
가족과, 가문의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두려워서.
자신이 받을 처벌이 두려워, 루이에게 그 역할을 떠넘길 의도가 그녀에게는 있었다.
자신은 안스베르크 가의 인물이고, 루이는 반역자 발렌슈타인 가문의 사람이다.
그러니 자신이 아니라 루이가 말한다면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그래도, 루이라면 어떻게든 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그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은 다한 것이라는 심정으로.
그에게 선택을 넘긴 것이다.
그라면, 절대 자신에게 사실을 알린다는 잔인한 역할을 넘길 리가 없다는 것을 예상하고.
황녀의 말에 반박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비참해서.
그녀가 고개를 떨구고서는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마침내, 루이가 입을 열었다.
“…황녀 전하. 백작부인의 결정이었으니, 루시 영애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제게 사실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저는 고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려 황녀의 앞에서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루이에게, 루시는 감동했다.
심지어 방금 황녀에 의해 자신의 비겁한 의도가 낱낱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루시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루이를 쳐다본다.
동시에, 황녀는 약간 섭섭해졌다.
“루이 발렌슈타인. 나는 그대를 도와주려 하는데, 어째서…!”
아니, 방금 루이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었지만.
그를 도와주려는 자신의 앞에서, 루시의 편을 든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섭섭했다.
“칫… 따라오거라.”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서는, 뒤를 돌아 움직인다.
그에게 섭섭하기는 했지만, 화난 것은 아니었으므로.
동시에, 안스베르크를 확실히 꺾어놓고 오라버니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서는 이 장례식장이 최고의 무대였으니.
루시에게 짧게 인사를 한 뒤, 루이는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약간의 침묵 뒤, 루이가 먼저 입을 연다.
“황녀 전하… 아까는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됐다. 그대가 그런 성격이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니.”
황녀가 약간은 퉁명스럽게 루이에게 말한다.
자신도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아무튼, 황녀 전하라고는 그만 불러라. 차라리 학교에서처럼…”
“회장님이요?”
“그래, 차라리 그게 낫군. 루이 발렌슈타인, 혹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이 있나?”
“아… 대충 계획은 있습니다만…”
루이가 약간은 즐겁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게 혹시 안스베르크를 용서하고, 그냥 이대로 넘어가려는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다행이었다.
만약 루이가 그냥 넘어가려 했으면, 자신은 어떻게 할까 고민이었는데.
황녀가 루이에게 씩, 웃는다.
“무슨 계획인지는 모르겠다만, 이번에는 본녀에게 맡겨보지 않겠는가? 아무래도 그대보다는 본녀의 말이 더 파급이 클 것 같다만?”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저야 좋습니다만…”
“훗, 내가 먼저 친해지자고 부탁하지 않았나? 이 정도야 충분하지.”
“진짜 감사합니다. 보답으로 뭐든…”
좋다.
이 기회에 루이에게 황녀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은 그녀였다.
오라버니의 계획을 망치려 한다, 따위의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겸사겸사, 그에게 소소한 은혜도 베풀어 그를 자신의 파벌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도 있었으니.
마침내, 그녀가 루이와 함께 매장이 거행되고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주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잔뜩이었다.
황녀가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