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37화 (37/69)

EP.37 황녀의 폭로

“우욱… 우웨에엑!”

아무도 없는 영주성 정원의 한구석.

홀로 외로이, 펠리체는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영지의 몰락.

아직 아카데미조차 졸업하지 못한 소녀가 견디기에는 버거운 일이었다.

특히, 자신이 존경하던 아버지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도 있다면 말이다.

장례식 내내, 그녀는 쓰러질 것 같은 상태로 겨우 서 있었다.

그런 그녀였는데, 주변에서는 계속 이야기가 들려왔다.

펠리체, 자신이 미리 경고를 한 덕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각오는 했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입에서 그 말을 듣자니, 정말로 토할 것만 같았다.

처음 어머니의 계획을 듣고서.

펠리체는 즉시 반대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녀에게 말했다.

비록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펠리체 너 역시 실제로 경고를 했으니 문제는 없는 거 아니냐고.

비록 뻔뻔한 말이었지만, 펠리체는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그게 거짓말이었다고 털어놓을 수는 없으니.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부터, 되돌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루이에게 도움을 받은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느냐 말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발렌슈타인 백작가가 얼마나 뜯어낼지 모른다고 말했다.

전부 가문을 위해서라는 말에, 펠리체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자신의 탓에 가문이 이 꼴이 났다.

그런 가문을 살리기 위해서라는데, 그녀가 반박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오늘.

사람들이 주변에서 자신을 칭찬한다.

실상은, 그나마 가문을 살린 것은 루이 발렌슈타인.

오히려 자신은 가문이 몰락한 데에 책임이 있는데.

주변에서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계속해서 그녀에게 일깨웠다.

네가 조금만 더 열심히 싸웠다면.

네가 어떻게든 가고일을 잡았더라면, 아버지가 죽지 않았을 것 아니냐고.

가문의 사람들, 영지민들이 살 수 있지 않았느냐고.

미칠 것만 같았다.

“우욱…”

그녀가 다시 구역질을 하지만, 이제는 신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최근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태로, 아침부터 계속 토만 하고 있었으니까.

스윽, 그녀가 힘겹게 입가를 닦는다.

자신은 안스베르크 백작가의 장녀이다.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가 없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니, 그녀의 눈에는 루이 발렌슈타인이 보였다.

차라리, 오지 말기를 바랐었는데.

처음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말을 듣고, 그녀는 급히 주위를 살피며.

혹시 루이가 왔는지부터 확인했었다.

만약 그가 이 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분하고 허탈할까.

아카데미를 떠나기 직전, 그에게 말했었다.

다음에는 꼭 이야기를 하자고.

다음에 만나는 날.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날, 제대로 사죄를 할 작정이었는데.

만약 루이가 지금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이 소리를 듣는다면, 사죄는 물 건너가는 것이다.

그녀가 급히 그의 모습을 찾으며, 속으로 빌었다.

‘제발, 루이. 여기 오지 말았기를…’

그녀는 약간의 희망을 가졌다.

원래 안스베르크와 발렌슈타인은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그러나, 여신님도 무심하시지.

펠리체는 결국 루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특히, 그는 이미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다리가 풀릴 뻔한 것을, 겨우 주저앉지 않았다.

“하하… 그래, 전부 들었구나…”

그녀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전부 자신의 잘못이었다.

사람들이 자신과 어머니에게 한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래도, 펠리체 영애가 큰 일을 했어요.”

아니다.

자신은 이런 칭찬을 들을 자격이 없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자랑스러워하실 거예요.”

펠리체는 그저 굳은 얼굴로 가만히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으니.

부끄러움 때문에, 자괴감 때문에, 그리고 슬픔 때문에.

이제 곧 하관식이었다.

펠리체는 천천히 이동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그녀에게는 끔찍이도 길게 느껴진 의식이 끝났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그녀는 정원 한구석에서 구역질을 한다.

다시 자리로 돌아오던 그녀는, 역시 어딘가에 다녀온 듯한 루이 발렌슈타인을 보았다.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국의 1황녀이자 헬론 아카데미의 학생회장.

칼리아 슈펠츠와 함께 오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둘이 무슨 관계인지 약간의 궁금증이 생겼지만.

아무튼, 지금 그딴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아카데미 측의 배려로, 그녀는 방학까지 굳이 아카데미에 복귀할 필요 없이 영지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즉, 둘 중 하나가 서로의 저택을 찾지 않는 이상.

2학년이 되기 전까지 루이 발렌슈타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소리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사죄, 해명, 감사… 무엇이 먼저일까.

정하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홀린 듯이 루이에게 다가갔다.

비록 느낌이었지만.

지금 그에게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둘의 관계는 확실하게 끝날 것 같았기에.

루이는 황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펠리체가 천천히 다가가자, 둘이 그녀를 바라본다.

황녀의 쪽은 어째서인지 약간의 경멸을 담아 그녀를 보는 것 같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중요하지 않았다.

루이 발렌슈타인은…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는 혐오의 감정을 담아, 그녀를 보고 있었다.

가슴이 아팠지만, 자신이 마땅히 감내해야 할 일이다.

그녀가 용기를 내서 말한다.

“루이…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제발 부탁이다.”

지난번, 그의 방 앞에서 한 말과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 그녀에게 거절의 뜻을 전하는 것은 루이가 아니었다.

“펠리체 영애, 내가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 했건만… 너무 예의가 없는 것 아닌가?”

황녀, 칼리아 슈펠츠가 약간은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굳이 내게 예의를 보이라고는 하지 않겠다만…”

그제서야, 펠리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루이에게 정신이 팔려, 황녀에게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으니.

여기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아카데미 안이 아니다.

칼리아 슈펠츠는 황족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것.

그런데, 펠리체 자신은 그녀에게 마땅히 갖춰야 할 예의를 보이지 않았다.

황녀가 말을 이어간다.

“루이 공자는 지금 본녀와 대화 중이지 않은가? 대뜸 나타나서 그를 채 가려 하다니, 조금 불쾌하군.”

“…죄송합니다, 황녀 전하.”

“됐다. 지금 그대의 심정도 이해는 가니.”

내키지 않았지만, 펠리체는 우선 황녀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다시 루이에게 말을 하려 하는데.

“루이, 잠시라도 좋으니 나와…”

“그만.”

이번에도 그녀를 제지하는 것은, 루이가 아니라 황녀였다.

루이가 입을 열려 했지만, 황녀의 말이 더 빨랐다.

펠리체는 입술을 짓씹으며 황녀를 본다.

이제 장례식도 끝났고, 곧 손님들도 떠날 것이다.

시간이 없는데, 어째서 이 여자는 자신을 방해하지?

‘제발… 시간이 없다고…’

그녀가 황녀를 향해 속으로 외친다.

그러나, 황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가관이었다.

“루이 공자는 그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다만?”

펠리체는 상대가 황녀라는 사실도 잊고, 그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자기가 뭐라고, 루이와의 사이에서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가?

그런데, 황녀가 한껏 목소리를 낮춰 나지막하게 말했다.

“펠리체 안스베르크… 사람들은 어째서인지, 그대의 덕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하더군.”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황녀의 무뚝뚝한 얼굴에 서린 감정은, 분명한 경멸이었다.

“아이네라는 생도였나? 그녀가 아카데미에 도착할 때까지 녹화 중지를 잊었던 것 같더군. 그 덕에, 둥지 조사 당시의 일을 본녀는 전부 확인할 수 있었다네.”

펠리체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다.

그녀가 미처 뭐라 말하기도 전.

황녀가 갑자기 어조를 바꾸며, 주위의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게 말한다.

“루이 발렌슈타인, 훌륭해! 이번 일은 황실 차원에서 확실하게 보상을 할 것이다. 제국의 백작령을 지켜냈는데, 그 정도는 충분하지.”

황녀의 입에서 나오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

주위 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그쪽으로 쏠렸다.

창백해진 펠리체를 옆에 둔 채로, 황녀가 말을 이어간다.

“그대가 미리 안스베르크 영지에 경고를 한 덕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제국에 대한 충성 아닌가!”

사람들이 경악한다.

상대는 바로, 반역자 발렌슈타인 가문의 인물.

루이가 아무리 떠들어도 절대로 믿지 않을 사람들이었으나.

다른 사람도 아닌 황녀의 말은, 그 자체로 권위가 있었다.

이 소란에, 백작부인이 재빨리 황녀의 쪽으로 온다.

그녀의 눈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화… 황녀 전하, 방금의 말씀은 무엇이신지…”

그러나, 칼리아는 여기서 백작부인과 사실 여부를 따지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대신에, 그녀는 말을 바꿨다.

“아, 안스베르크 백작부인. 아까는 경황이 없어 미처 말을 하지 못했지만, 이번 가고일 습격에 대한 황실의 자체 조사 결과가 나왔다.”

펠리체가 후들후들 떤다.

그러나 지금, 펠리체에게 눈길을 주는 이는 없었다.

황녀가 정체불명의 둥지 조사라는 의뢰.

그것이 사실 가고일의 둥지였다는 것.

영상 녹화 아티팩트까지 전부 설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여기 루이 발렌슈타인 공자는 이 사실을 예측하고 가고일을 토벌함으로써 미리 막고자 했으나, 같은 파티원들의 반대로 결국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경고를 해서,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

백작부인이 그 경고에 대해 무어라 말을 하려 하지만.

황녀가 마치 그녀를 위한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한다.

“백작은 제국의 충신이었다. 그런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을 가만 둘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모두들 납득하고 있는 와중.

“영상으로 확인한 바, 가고일 토벌에 반대를 해 백작령에 피해를 끼친 레오 엡실트, 베로니카 엘트윈, 에스더 칼트, 엘린 니디아, 그리고… 펠리체 안스베르크에게는 충분한 처벌을 내리도록 하지.”

끝이다.

‘모두… 알게 됐구나…’

어떻게든 숨기고 싶어서 한 거짓말이었는데, 결국 최악의 결말로 돌아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역시 거짓말 따위 하는 게 아니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펠리체는, 그렇게 모두의 앞에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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