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8 연하고 야들야들한
꼭 안스베르크 영지처럼, 장례식도 난장판이 되었다.
상황을 수습해야 할 안스베르크 백작부인은, 딸이 쓰러졌기에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다.
물론, 안 그래도 큰 충격을 받았던 딸이 쓰러진 것이니.
어머니로서 펠리체를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방금의 사태를 겪고 난 사람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꼭, 그녀가 펠리체를 핑계로 자리를 피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황녀의 말이 진실이기에, 반박할 거리가 없어서 말이다.
사람들이 다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안스베르크 백작부인의 말이 거짓이었냐고.
설마 진짜로 그 발렌슈타인이 안스베르크 백작가를 구한 것이냐고.
심지어는 그걸 주장한 것이 황녀였다.
만약 백작부인이 이 자리에서 즉시 뭐라 말을 했더라면 모를까.
펠리체를 데리고 도망을 갔다고 사람들은 느꼈고.
사태를 수습할 적기를 놓쳤기에,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황녀의 입에서 나온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에게는 자극적인 소재였고.
“그러니까, 생도들의 실수로 이 사태가 벌어진 거라고?”
“실수라고 하기에는 어렵겠지요. 루이 발렌슈타인 공자가 미리 예상하고서 가고일의 토벌을 주장했다고 하니까…”
“허, 루이 공자가 실은 망나니가 아니었던 것인가?”
“에이, 설마요. 그냥 운이었겠죠.”
이렇듯, 모두의 입에서 갖가지 추측이 나왔다.
루이에 관해서, 혹은 다른 파티원들에 대해서.
“황실에서 진짜로 엡실트 가문에 처벌을 내릴까요?”
“설마. 아카데미 차원에서 징계로 끝내겠지.”
“그렇다기에는, 백작가 하나가 이렇게 박살났는데…”
“황실에서도 공작가나 마탑은 섣불리 건들기 어렵겠지.”
“니디아 가문은 처음 듣는다만…?”
“에스더 칼트라면, 혹시 성녀인가?”
그렇게 다들 자기의 생각을 말했으나, 곧 전부 한 가지 사실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백작가가 박살나고 안스베르크 백작이 죽은 데에는, 펠리체 영애의 책임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그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뻔뻔하게 서 있었다고?”
“사람들이 칭찬하는 것을 들으면서?”
“아니, 사실을 전부 알면서도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아닌가.”
아까까지, 사람들이 펠리체에게 보여주던 위로의 표정은 없었다.
정도만 다를 뿐.
모두들, 펠리체에게 짙은 경멸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보며, 황녀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할 것이지, 오라버니? 안스베르크 백작가는 이름만 남아 있었는데, 이제 그 명예까지 사라진 것 같군.’
완벽했다.
딱 하나 찔리는 것은…
그녀는 옆의 루이를 힐끗 쳐다봤다.
그에게 제대로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이용한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루이에게도 좋은 일이 아닌가?’
자신의 말 한마디로 묻힐 뻔한 그의 공적을 확실하게 공언했다.
루이에게도 좋은 일인 것이니, 이걸로 됐다.
다들 무거운 분위기로 웅성거리는 와중.
“아하하하핫!”
혼자서 박장대소를 하는 이가 있었으니.
다들 그 남자를 미친 놈 보듯이 쳐다봤다.
물론, 본인은 신경도 쓰지 않았으나.
루이 발렌슈타인은, 굳이 그쪽을 보지 않고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뭐, 프란츠 발렌슈타인 백작이겠지.
그가 루이의 곁으로 와서, 크게 말한다.
“잘 했다, 루이 발렌슈타인!”
그 쪽팔림을 견디다 못해, 루이가 작게 중얼거린다.
“제발 닥쳐주세요, 가주님…”
프란츠 역시 루이에게 속삭인다.
“자세한 일은 나중에 들어야겠지만, 훌륭하다! 안스베르크 놈들에게 한 방 먹였어! 뭐, 그걸 말한 게 황녀라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제가 그렇게 훌륭하면, 돈이라도 조금…”
“닥쳐라.”
그렇게, 그들 부자는 웃으며 서로에게 속닥거렸다.
다들 괴상한 것을 보듯이 발렌슈타인 백작을 보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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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아암…”
나는 크게 하품을 했다.
요즘 들어 몸에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둥지 조사 때부터 시작해서 쉴 틈도 없이 돌아다녔으니까.
최근에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뭐, 그런 이유도 있었고.
신경에 거슬릴 정도로 내 주변에서 계속 나타나는 백발의 여생도 또한 내 피로에 일조했다.
역시 도적인 것일까.
아이네의 은신술 또한 날이 갈수록 진일보하는 것 같아, 날마다 새로이 오싹했다.
이제는 슬슬 짜증나려고 한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도대체 주변에서 뭐 하는 짓인지.
아무튼, 오늘은 드디어 방학이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다들 집에 돌아가기 전에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 같았지만.
나한테는 그런 인사를 나눌 친구 따위 없다!
슬프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굳이 저런 데에 쓸 시간을 아껴서, 더욱 효율적으로 방학 날을 보낼 수 있으니.
혹자는 내가 아카데미 공식 왕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이 아니다.
아카데미 생도들이 나를 왕따시키는 게 아니다.
내가 아카데미를 왕따시키는 것이지.
“어라? 나, 어째서 눈물이…?”
내가 중얼거렸다.
나는 아직도 프란츠 발렌슈타인 백작이 내게 한 말을 잊지 못한다.
“루이, 세상이 우리 발렌슈타인을 따돌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세상을 따돌리는 것이지.”
키야, 역시 악역 아버지다운 카리스마 있는 대사였지.
아무튼, 그렇다고 해서 작별 인사를 나눌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아까 황녀와도 잠시 인사를 나눴고.
그녀는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뭐가 그리 바쁜지 일을 하러 가야 한다고 했었다.
내게 미안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었지.
또, 매점 점원도 있다.
저번에 내가 가면을 잔뜩 산 점원 말이다.
아, 물론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어서 오세요오…”
평소의 늘어지는 말투다.
듣는 사람까지 힘 빠지게 하는.
쾅!
나는 카운터 위에 고양이 가면이 든 박스를 전부 올려놓았다.
“이게 무스은…”
“환불해 주세요.”
“안 됩니다.”
아니, 뭐가 이렇게 단호해?
“환불해 달라니까요?”
“안 됩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늘어지는 말투를 쓰더니, 지금만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째서!”
생각해 보니까, 환불이 가능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거, 나 진짜로 멍청이인가?
뭐, 그런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나는 그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아니, 원래 아카데미 매점에서 산 물건은 환불이…”
“그건 저쪽 매점 얘기이고… 여기는 환불 불가입니다…”
“아니, 원래는 그런 거 없었잖아요!”
내가 그렇게 따지자,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카운터 밑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더니, 무언가를 쓱쓱 적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가 종이를 카운터에 세운다.
‘상품 구매 후 개봉을 하시면 교환 및 환불이 불가합니다.’
분명 이쪽 세계에 떨어지기 전, 대한민국에서 많이 봤던 문구다.
그건 그렇고.
“방금 만들었잖아요! 그것보다도, 이건 애초에 포장도 안 되어 있었고!”
내가 박스를 가리키며 소리친다.
그러자, 그녀가 말한다.
“박스… 뜯으셨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개봉하셨네요… 환불 불가입니다…”
“아아악! 그니까, 그거 방금 만들었잖아요! 아니, 그쪽 그냥 직원 아니에요?”
“점장입니다…”
아, 점장이셨구나.
그녀가 나를 잠시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말한다.
“그으, 손님…?”
“예?”
“요즘 누가 고양이 가면을 사겠습니까… 손님 덕에 재고 털었는데, 환불해 드릴 리가…”
거, 쓸데없이 솔직하시네.
결국, 나는 고양이 가면 박스를 들고서 다시 매점을 나섰다.
“잘 가세요, 호… 손님…!”
나는 이를 아득바득 갈며, 혹시나 이쪽 세계에는 소비자보호원 같은 게 없나 잠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돈이 좀 생기나 했는데, 실패했네.
나는 잠시 지갑을 확인했다.
이제는 진짜로 황폐화된 내 지갑이었다.
그리고, 그 남은 돈도 오늘 전부 소멸할 예정이다.
나는 다른 매점으로 들어가, 남은 한 줌의 돈으로 먹을거리를 잔뜩 샀다.
뭐, 잔뜩이라고 하기에는 돈이 부족했지만 말이다.
그걸 보따리로 짊어지고서, 나는 아카데미 속 숲으로 들어가 언덕을 올라 마법의 성을 지나 늪을 건너 어둠의 동굴 속…
“오, 제자구나!”
아, 보따리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다 보니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딴 생각을.
“스승님! 그… 손에 그건 무엇입니까?”
“마침 잘 왔다! 오늘은 제법 맛 좋은 풀뿌리에, 연하고 야들야들한 나무껍질을 구했다!”
꼭 자랑하듯이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그만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말았다.
무슨 나무껍질을 고기 설명하듯이…
“흑…”
“제자야, 왜 그러느냐!”
솔직히 말해서, 아까 남은 돈을 전부 털어 음식을 살 때에는 조금 아깝기도 했지만.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역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에, 그녀는 손에서 풀뿌리를 후두둑 떨어뜨리고서는 내게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아, 아닙니다. 그것보다도, 이거 받으세요.”
나는 그녀에게 보따리를 내밀었다.
그걸 의아한 표정으로 풀어보던 그녀는…
“허억!”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꼬리를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저걸 보면, 꼭 고양이가 아니라 개같은데…
아니, 욕이 아니다.
아무튼, 기뻐하던 그녀는 갑자기 내게 달려들었다.
달려들어, 나를 꽉 껴안는다.
“네가 최고다, 제자야!”
“떠, 떨어지세요!”
내가 말을 더듬지만, 신경 쓰지 않고서 나를 꽉 껴안고 있던 그녀가 말한다.
“참! 제자야, 네게 줄 선물이 있다! 잠시만 기다리거라!”
그 말을 남기고서, 그녀는 순식간에 동굴 안으로 사라졌다.
‘선물?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