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9 역전! 야매영약
의아해하기를 잠시.
다시 동굴 밖으로 나온 그녀는, 두 손으로 무언가를 소중하다는 듯이 꼭 쥐고 있었다.
그녀가 내 앞으로 다가와, 한껏 웃으며 내게 무언가를 내민다.
“자, 제자야! 선물이다!”
“이게 뭡니까?”
그녀가 내게 내민 것은, 흰 종이에 싸여 있는 동글동글한 무언가였다.
크기는 눈깔사탕보다도 약간 컸고, 색은 약간 갈빛이 도는 검은색이었다.
내 스승님, 앨리스 쉴러는 양 팔을 벌리며 내게 이것의 정체를 소개했다.
“무려 이 스승님이 직접! 손수! 제작한 야매… 아니, 수제 영약이다!”
“영약이요?”
나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아니, 여기 판타지 세계관 아니었냐고.
왜 스승님만 엮이면 무협스러운 것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아무튼.
“스승님, 그런 것도 만들 줄 아셨습니까?”
“어흠! 이 스승이 비법을 힘들게 훔치… 아니아니, 배운 것이다!”
스승님, 아까부터 계속 말이 헛나오시는 것 같은데요.
그녀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한다.
“글쎄, 여기 숲 깊은 곳에서 내가 무려 삼십 년도 넘게 자란 삼을 발견했다는 것 아니냐.”
“헤에…”
나는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설마 그런 게 있을 줄이야.
아카데미 숲, 생각보다 신기한 곳이다.
삼십 년도 넘은 삼에, 은거기인에…
“그걸 조심스레 캐서, 단으로 만들었지. 바로 우리 제자님을 위해서!”
“이런 걸 진짜로 주시는 겁니까?”
“물론!”
나는 감동받은 표정으로 그녀를 불렀다.
“스승님…!”
“제자야…!”
우리가 눈물겨운 포옹을 나눈 뒤.
그녀가 나를 자리에 앉혔다.
“그래, 그렇게 운기조식을…”
그녀가 영약에 대해서 설명한다.
“재료가 재료인지라 엄청나게 극적인 효과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공을 제법 늘릴 수 있을 것이야.”
참고로, 그녀는 마나를 내공이라고 부르더라.
“마나 말씀이십니까?”
“갈! 제국식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지, 제자야!”
내 머리를 한번 딱, 소리가 나게 치고 난 뒤.
그녀는 내게 어서 영약을 먹어보라고 했다.
하암.
나는 그녀가 손수 만든 영약을 한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솔직히 말해서, 더럽게 맛없다.
크기만 작았다면, 그냥 삼켜버리고 싶었을 정도.
쓰고, 비리고.
흙의 향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맛이다.
그녀가 내게 묻는다.
“맛이 어떻느냐, 제자야?”
그래도, 스승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것인데.
솔직하게 말하면 상처받겠지?
때로는 진실보다 거짓말이 더 좋기도 한 법이다.
나는 입에 남은 영약을 꿀꺽 삼키고서는, 구역질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대답했다.
“마, 맛있습니다…”
“어? 그러면 안 되는데? 분명 더럽게 맛없는 게 정상인데… 혹시 실수했나?”
아, 그런 거였냐.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에게, 나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아, 사실은 더럽게 맛없습니다. 하마터면 토할 뻔?”
“그런! 내가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데, 말이 심하느니라!”
아, 어쩌라고요.
다시 그녀를 달랠 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어? 어어?”
갑자기 당황하는 내 모습에, 스승님 역시 당황했다.
“어서 내공을 순환시키거라! 기운을 통제하지 못하면, 어쩌면 주화입마에…!”
그녀가 호들갑을 떨지만.
갑자기 솟아오른 뜨거운 기운은 순식간에 진정됐다.
“제, 제자야! 괜찮…”
“저 멀쩡합니다, 스승님.”
“아…”
툭툭 털고 일어나는 내 모습에, 그녀가 쪽팔리다는 듯이 얼굴을 붉힌다.
“하긴, 겨우 삼십 년짜리 삼을 가지고 주화입마는 아니겠지…”
나는 조심스레 마나를 운용해 봤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마나가 늘어나 있었다.
비록 그녀가 말한 것처럼 마나가 극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원래 이 루이 발렌슈타인의 몸뚱이가 하도 비루하기 때문일까.
남들이 보기에는 크지 않겠지만, 이 정도면 분명 도움이 된다.
특히, 내가 마나 관련해서 숨겨진 아이템을 대부분 먹기는 했지만.
원작의 주인공인 레오 엡실트의 마나 관련 재능이 하도 뛰어나기에, 마나를 늘려주는 기연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그러니, 더욱 고마운 것이었다.
“크흠… 네게는 늘 고마워서 그런 것이니, 그런 표정 짓지 말거라.”
그녀가 내 감동받은 표정을 보고서는, 쑥스러움을 감추려는 듯이 말한다.
“아무튼, 방학 잘 보내거라!”
“안녕히 계십쇼, 스승님!”
잠시의 시간 뒤.
우리는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언덕을 내려왔다.
그것보다도, 이번에는 폐관수련 이야기를 안 하시네.
이번에 이야기를 꺼내시면, 그래도 잠시 고민은 하려고 했었는데.
물론, 방학 동안에도 할 일이 잔뜩이었기에.
스승님께는 죄송하지만, 여기에 머무를 수만은 없다.
아카데미를 나서자, 가문에서 온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 짐을 넘기고, 마차에 올라서.
눈을 감자, 이내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
저택에 도착해서는, 쉴 틈도 없이 백작에게 불려갔다.
참고로 이 저택은 반역 사건 당시에 몰수당하지 않은 몇 없는 재산 중 하나로.
현재 우리 가문의 가세와는 달리, 굉장히 거대하고 쓸데없이 웅장하다.
저택에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이 큰 공간이 텅 비어 있으니 오히려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새로 가구를 들인다든가, 사람을 들인다든가 하는 일은 아무래도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는 무리다.
아무튼, 나는 백작의 집무실로 향하며 생각했다.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미 백작에게 대충 설명을 한 터였다.
아마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이야기하려 부르는 것이겠지.
똑똑.
노크를 하자, 곧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린다.
집무실 책상에 앉아있던 백작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정말로 밑도 끝도 없었다.
“이제 용돈은 없다.”
“에…?”
이 양반이 진짜?
나는 황당함에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이 말 하려고 나를 불렀다고?
물론 내가 1학년 때 돈을 조금.
아니, 많이 과하게 쓰기는 했다만.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가 외쳤지만, 백작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말한다.
“그렇게 알고, 대신 황실에서 잔뜩 뜯어내라. 지금 가문에 여유가 없다.”
“도대체 뭔 짓을 하시길래 돈을 그렇게 쓰십니까!”
무슨 비밀 조직 같은 거라도 만드나?
아니면, 무기를 잔뜩 사서 진짜로 반역을 꾸민다든가?
분명 가문에 돈이 아예 없는 건 아닐 텐데도 불구하고.
백작은 여전히 낡은 옷을 입고.
변변찮은 식사를 하고.
아들에게 용돈을 적게 준다.
이 정도면 진짜로 백작이 몰래 사병이라도 키우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되지만.
“알 거 없다.”
그 말로 끝이었다.
“하아… 됐고, 황실에서 뜯어내라는 소리는 뭡니까?”
“황녀가 그 자리에서 공언하지 않았었나. 황실 차원에서 네게 보상을 할 것이라고.”
아, 분명 그랬었지.
“네가 아카데미에서 뭔 짓을 하고 다니는지는 모르겠다만, 결과를 봐서는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면 돈을 조금…”
“그래도 가문에 돈은 없으니까, 대신 황녀한테서 잔뜩 뜯어내라. 그건 맘대로 써도 된다.”
“아니, 당연히 맘대로 써도 되죠! 제 돈인데!”
내가 억울한 표정으로 따졌다.
물론, 이번에도 백작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서 그에게 물었다.
“가주님은 안스베르크에서도 잔뜩 뜯어낼 생각 아니셨습니까?”
“내가 왜 그들에게 면죄부를 줘야 하지?”
와, 악랄하다.
“그것들은 욕을 좀 먹어야 해. 킬킬킬…”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하실 말씀은…”
“끝이다. 이제 가 봐도 된다.”
쯧.
나는 대놓고 혀를 차고서는, 백작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아무튼, 나름 집에 돌아온 환대도 받았고.
환대라고 하기에는 조금 눈물겹지만.
최근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관계로, 조금 쉬고 싶다만.
안타깝게도, 내게 휴식 따위는 허용되지 않았다.
방학이지만 내게는 여전히 할 일이 많았다.
그 빌어먹을 마왕을 잡고, 이쪽 세계에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려면 말이다.
그중 하나는, 바로 이 검.
레오 엡실트에게서 뜯어낸 엡실트 가문의 보검의 숨겨진 힘을 깨우는 일이다.
그걸 얻을 수만 있다면, 나는 확실하게 강해질 수 있다.
게임에 숨겨진 기연 중에서도, 이건 특별히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다른 하나의 일은, 레오 엡실트 본인과 관련된 것이었다.
사실 이게 보검보다도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게임 설정 상, 성검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오직 용사뿐이다.
그리고 그 성검과 용사의 힘으로만 마왕을 처치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강해진다 한들, 용사가 아니고서는 마왕을 처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용사 후보는 레오 엡실트.
가슴에 손을 얹고 당당하게 말하건대, 나는 그를 갱생시키기 위해서 진짜 엄청나게 노력했다.
원래는 내 원작 지식을 이용해서 비겁하게 그의 자리를 빼앗을 생각 따위 없었다.
놈에게 져주기도 했고.
친해지려고 노력도 했었고.
놈이 그 되도 않는 우두머리 노릇을 할 때, 따라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놈은 오히려 더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
나는 그를 타일러도 봤고.
놈을 두들겨 패서 치욕을 주고, 교육시키기도 했었다.
그리고, 전부 실패했다.
능력이 부족하면, 내 원작 지식을 이용해서 성장시키면 된다.
노력이 부족하다면, 옆에 달라붙어서 훈련시키면 되고.
그런데, 인성의 문제는 어떻게 안 되더라.
용사는 놈의 운명이니까, 나는 되도록이면 건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지난 결투에서 놈의 모습을 보고, 나는 확신했다.
놈이 용사인 이상, 마왕 처치는 불가능하다고.
결국 그를 만나고 1년도 넘게 지나고서야, 나는 결심했다.
‘용사를 교체한다.’
물론, 정확한 방법은 아직 모른다.
결국 또 나만 바빠지겠지.
왠지, 조금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