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40화 (40/69)

EP.40 에스더의 방학

“오셨습니까, 성녀님.”

복도 곳곳에서 마주친 사제와 수녀들이 에스더에게 인사를 건넨다.

에스더 역시 그런 이들에게 방긋방긋 웃으며 답례를 건네지만.

그녀가 평소 레오에게 보이는 살가움은 없었다.

어찌 보면, 꼭 인형과 같은 영혼이 없는 반응.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오싹할 수도 있겠으나.

신전의 사람들 중,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신전의 거대하고 화려한 복도를 지나서, 그녀가 도달한 곳은 어느 방이었다.

에스더가 문을 열고서 들어간다.

“아, 성녀님!”

방 안에는, 여러 아이들이 있었다.

신전의 방식으로 신의 말씀과 교리에 대한 교육을 받고.

훗날 사제나 수녀, 혹은 성기사가 될 아이들.

신전에서 특별 교육을 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 성녀에게 인사를 한다.

조금 과한 비유일 수도 있겠으나, 아이들의 눈은 마치 광신도의 그것과 같이 반짝였다.

성녀 역시 그런 아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물론, 진심은 담기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방금까지 아이들을 보살피던 수녀가 있었다.

“오셨습니까, 성녀님!”

“보고 싶었어요, 앤 수녀님!”

에스더가 그녀에게 인사를 한다.

방금까지의 기계적인 인사와는 다른, 진짜로 반가움을 담은 인사였다.

잠시 아이들을 놔두고, 둘은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 제가 성력을 번쩍!”

수녀에게 아카데미에서의 일을 이야기하는 에스더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잔뜩이었다.

“즐거우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수녀, 앤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안도했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신전에 있을 때에는, 자신과 있을 때 외에 늘 무표정한 얼굴로 있었던 에스더였다.

아카데미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었다.

수녀가 말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루이라는 분이 참 좋은 사람인 것 같네요?”

그러나, 에스더는 고개를 젓는다.

“그건 아니에요.”

“예? 루이라는 분께 고마웠다고 말씀을 하셨…”

“그건 그런데, 용사님이 그 남자를 싫어하세요.”

수녀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면 성녀님은…”

“그러니까, 저도 그 남자를 싫어해요. 그 남자를 욕하면, 용사님이 좋아하세요.”

“어…”

“특히, 얼마 전에는 교단을 욕하기까지 했어요. 정말 최악이에요.”

용사님이 싫어하기 때문에, 자신도 그 남자를 싫어한다.

앤은 그 말이 너무나 슬펐다.

“그러면, 그 용사라는 분은 어떠십니까?”

그녀가 에스더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에스더에게 있어, 그건 가장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혹시나 용사가 좋지 않은 인물이라면…

그러나, 수녀의 걱정은 쓸모가 없었다.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용사님이니까.”

“하아…”

앤은 에스더가 듣지 못하게,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차라리 좋아해야 하는 일일까.

좋지 않은 표정의 앤에게, 에스더는 안심시키려는 듯이 말한다.

“괜찮아요, 수녀님. 저는 용사님을 위해서 존재하니까요. 용사님도 저를 좋아해 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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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가 도착했습니다.”

“그래, 지금은 뭘 하고 있지?”

“앤 수녀를 만나러 갔습니다.”

젊은 사제의 보고에, 노년의 남자가 잠시 고민한다.

“음… 앤이라면…”

“그녀의 어린 시절에 담당을 했던 수녀입니다. 왜, 그…”

목줄 말입니다, 사제가 말한다.

“참, 그랬었지. 나이가 드니 자꾸 깜빡깜빡하는구먼. 허허허…”

인자하게 웃는 노인의 정체는, 무려 성황의 바로 아래.

교단의 추기경이었다.

그저 온화하게 생긴 노인이었으나, 사제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잘 관리하도록. 비록 지금은 우리의 말을 잘 듣지만, 혹시 모르니 말일세.”

이어서, 사제는 그녀의 아카데미 생활에 대해 보고한다.

“…따라서, 용사 후보와의 관계 역시 예상 이상으로 보입니다. 이 상태라면, 계획에도 차질이 없을 것 같습니다.”

추기경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성녀, 에스더 칼트에 대해서 떠올렸다.

교단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교육’시킨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외부 출신의 사제나 수녀, 성기사보다도 훨씬 뛰어나고.

훨씬 광신적인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번 대의 성녀가 교단에서 ‘교육’시키던 아이들 중에서 나타난 것은, 참으로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녀와 달리 이번 용사 후보는 교단의 사람들 중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만약 용사 후보가 평민 중에서 탄생하는 경우.

그 후보가 탄생한 국가와, 교단 사이에서 늘 힘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하필이면 용사 후보가 탄생한 곳이 제국의 3대 공작가 중 하나였다.

교단으로서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성녀, 에스더 칼트였다.

쉬운 작업이었다.

애초에 태어나서부터 교단에서 자란 그녀였고.

그녀가 가진 모든 상식과 지식은 교단에서 가르친 것이었으니까.

성녀가 용사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새로이 ‘교육’받은 에스더였다.

교단에서는 그녀를 이용해 용사 후보를 포섭할 생각이었다.

“이번 용사는 어떻게든 우리 교단이 손에 넣어야 하네.”

최근 들어서, 대륙 내에 교단에 대한 불만이 심심찮게 튀어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걸 전부 짓밟기도 벅찬 실정.

용사가 교단에 합류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다.

본디 용사란 마왕을 물리치고, 대륙에 평화를 가져오는 존재.

그러나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약간 달랐다.

용사는 주기적으로 탄생한다.

그러나, 용사가 탄생할 때마다 마왕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여신조차 마왕이 언제 나타날지는 모른다.

그렇기에,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마왕에 대비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용사를 선정하는 것이다.

마왕이 나타나고 나서야 용사를 뽑는 것은 너무 늦다.

용사가 탄생하는 과정은 복잡했다.

우선, 여신이 직접 내렸다고 전해지는 성검이 단 한 명의 용사 후보를 선정한다.

용사 후보로 선정된 자에게는, ‘용사의 힘’이라는 것이 나타난다.

이윽고 용사 후보가 성검을 다룰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날.

마침내 용사 후보가 성검을 들 수 있게 되면, 진정한 용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탄생하는 용사였으니, 대륙 전체에 의미하는 바도 컸다.

그런데, 그런 용사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왕이 없다면 어떨까.

대륙 각지의 권력자들은 용사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두 집단이 바로 교단과 황실이었고.

용사는 간판으로 이용되거나.

혹은 전쟁에 있어서 명분, 아니면 무력 어느 쪽이든 이용하기 좋았다.

성녀 역시 교단에 큰 의미기는 하지만, 용사보다는 덜한 존재다.

마침 이번 성녀는 교단의 입맛대로 성장한 인간.

그녀는 용사를 확보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추기경이 잠시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사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저, 추기경 전하…”

“음? 무엇이지?”

사제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한다.

“혹시나, 이번 대에 마왕이 나타난다면…”

추기경이 너그러운 미소를 짓는다.

“자네는 다 좋은데,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아.”

“죄송합니다.”

사제가 즉시 고개를 숙인다.

어조는 평온했지만, 그 내용은 경고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으로 마왕이 나타난 지 기백 년은 지나지 않았나. 장담컨대, 이제 마왕은 없어. 허허허…”

추기경이 말한다.

그리고 그의 말은, 대륙 사람들 대부분의 인식이기도 했다.

수백 년 전의 마지막 침공을 끝으로, 마왕은 자취를 감췄다.

그 이후로, 처음 백 년은 도대체 언제 다시 나타나는 것인지.

오지 않는 마왕에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으나.

다시 백 년이 지나고, 또 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마왕은 진짜로 사라졌다고.

몇백 년동안 나타나지 않은 마왕이 지금 갑자기 나타날 리는 없다.

그리고 마왕이 없는 세상에서, 용사란 형편 좋은 허울일 뿐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교단의 결정을 욕해도, 용사가 교단의 결정을 지지한다면 사람들은 따르리라.

교단이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성전을 일으키고자 해도.

용사가 그 앞에 서기만 한다면, 그 자체로 명분이 될 것이다.

고로 용사는, 놓칠 수 없는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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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베로니카는 작게 기합 소리를 내며,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녀가 체구에 비해 훨씬 거대한 가방을 짊어지고서, 마탑으로 향한다.

물론 그 안에는 그녀 전용의 실험 도구들이 잔뜩이었다.

“누구십… 아!”

마탑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마법사들은, 베로니카의 얼굴만 보고서 곧바로 문을 연다.

별다른 확인 절차도 없었지만, 베로니카는 당연하다는 듯이 마탑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온 적색 마탑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곳곳에서 폭발 소리가 들리고, 이곳저곳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이곳.

그리운 고향이자, 집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탑 로비의 한가운데.

그곳에는 분명 흑색 마탑으로 파견을 가 있어야 할 샐리가 있었다.

“베로니카아!”

샐리가 로비 저편에서 손을 흔들며, 베로니카를 부른다.

“샐리!”

베로니카 역시 소리를 지르며, 한달음에 그녀에게 달려갔다.

“샐리이…”

베로니카가 샐리의 품에 안긴다.

“잘 있었어?”

그리 묻는 샐리의 말에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최근 너무 힘든 일이 많아서, 그녀의 품이 너무나도 포근했다.

베로니카는 마음먹었다.

자신의 스승님과 샐리에게 조언을 구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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