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 쓰레기들
“레오 님…? 무, 무슨 일인가요?”
레오를 위시한 귀족 생도들의 지속적인 괴롭힘 때문에, 자연스레 존대를 하는 아이네.
1학년 초의 모습과는 달리, 이미 많이 주눅이 들어 있었다.
“무슨 일이긴. 어째서 계속 반대를 하는 것이지?”
레오가 위협적으로 말한다.
얼마 전, 레오는 루이 발렌슈타인의 파티 추방 안건을 들고 나왔다.
베로니카, 에스더, 엘린, 펠리체까지 전부 찬성을 했지만.
유일하게 아이네만이 끝까지 반대를 하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감히 엡실트 공작가의 후계자가 명령하고 있는데, 네년 따위가 반대를 하는 것이냐? 평민, 그것도 부모도 없는 고아 주제에?”
차라리 다른 이들이 반대를 한다면, 기분은 나빠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물론 결국에는 자신의 뜻대로 밀어붙이겠지만.
그러나, 다른 파티원들과는 달리.
겨우 평민, 심지어 고아인 아이네 따위가 자신의 의견에 반대를 한다는 것에.
레오는 진심으로 불쾌해하고 있었다.
뭐, 제국의 고위 귀족으로서는 나름 흔한 사고방식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레오가 강하게 나옴에도 불구하고 아이네는 끝까지 버텼다.
“흥, 그런다고 해서 제가 겁먹을 것… 꺄악!”
철썩.
평소와 달리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아이네에게, 레오는 망설임 없이 뺨을 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네는 전혀 기죽은 기색이 아니었다.
그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이 발렌슈타인이었으니까.
반역자 발렌슈타인 가문의 후계자로,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루이 발렌슈타인.
평민 신분의 고아로, 아카데미에 겨우 들어올 수 있었던 아이네.
둘 모두, 다른 아카데미 생도들에게는 배척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그런 둘이 학기 초부터 친해진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동병상련이었을까.
루이와 아이네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특히, 루이는 레오가 아이네를 괴롭힐 때마다 그걸 막아줬다.
레오가 괴롭힐 때에도, 다른 귀족 자제 패거리들이 괴롭힐 때에도.
아이네는, 그 당당함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다른 생도들은 적어도 루이가 있는 동안에는 그녀를 건들지 않았고.
자신을 위해서 공작가의 자제에게 맞서는 루이를 보면서, 그에게 반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아이네가 그걸 티를 내는 일은 절대 없었다.
둘이 아카데미에서는 비슷한 처지라 서로 친해졌지만.
그렇다고 해도 루이는 백작가의 후계자.
자신은 아카데미를 졸업한다고 해도 여전히 평민 고아다.
평민 출신 중에도 뛰어난 실력으로 아카데미를 졸업해 이름을 날리는 이들이 여럿 있었지만.
냉정하게 평가해, 아이네 자신에게는 그런 실력도 없었다.
그러니, 혹시나 티를 냈다가 지금의 관계조차 어그러질까봐.
아이네는 루이와 그저 친한 친구로 남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그녀가 언니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서 계속 일을 하느라, 루이와 같이 다니는 시간이 엄청 줄었다.
몇 번이고 루이에게 언니의 상태를 말하고.
조금이라도 도와달라고 부탁할까 고민을 했지만.
돈을 빌려달라는, 그런 종류의 부탁을 하는 순간.
둘의 관계가 어그러질 것만 같았다.
또, 루이 역시 돈이 없었다.
그는 늘 장난처럼 돈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지만.
실제로 같은 파티원이었던 레오나 베로니카는, 늘 그에게 거지새끼라고 했었다.
다른 생도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어도, 발렌슈타인 백작가는 제대로 망했다고 하고.
교단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필요한 돈은, 적어도 아이네의 입장에서는 무지막지했다.
루이의 집안 사정이 어떤지.
치료를 위해 필요한 돈이 귀족에게는 어느 정도인 것인지 알 리가 없는 아이네였기에.
그걸 멋대로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근 루이의 성격이 변했다.
아이네와 있을 때에는 이전의 모습을 보이려는 것 같았으나.
어째서인지, 그의 성격이 훨씬 까칠하고 부정적으로 변했다.
물론, 그건 펠리체나 베로니카 등 다른 파티원들의 탓이었으나.
거기에 아이네 역시 일 때문에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며, 둘의 사이가 이전 같지가 않았던 때였다.
물론 둘은 여전히 서로를 아꼈지만.
그러던 때에, 레오가 루이의 추방 건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아이네는 당연히 반대를 했고.
결국, 오늘 레오가 아이네를 찾아온 것이다.
뺨을 맞고서도, 그에게 굴복할 생각이 없는 아이네였지만.
레오 엡실트는 엡실트 공작가의 후계자.
일을 귀찮게 만들지 않고서도 해결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가 짜증난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더니, 품에서 자루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이, 이게 뭔가요?”
“쯧… 루이 놈을 추방시키는 데에 찬성한다면, 그건 네 것이다. 천한 고아 년에게는 상상도 못할 돈이겠지.”
분명 굴욕적인 말이고, 당장 웃기지 말라며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지금,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네는 레오를 노려보면서도, 조심스레 자루를 열었고.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다.
‘이 돈이면… 언니도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루이를 배신해야 한다.
‘그건 안 되는데요…’
눈을 굴리며 고민하던 아이네가 말한다.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
차라리, 루이에게 전부 털어놓는다면 어떨까.
그런다면…
그러나, 레오는 말한다.
“지금 당장 결정해라. 이 나를 귀찮게 할 셈이냐?”
그가 또 덧붙인다.
“거절하겠다면… 일이 귀찮아지겠지만 어쩔 수 없지. 위에 손을 써서 네년을 퇴학시켜버리겠다.”
그 말에, 아이네가 벌벌 떤다.
저게 과연 그저 협박일지, 아니면 정말로 가능할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으니까.
결국 이 자리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아이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 아이네는 도대체 루이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었다.
특히, 최근 들어 어쩔 수 없는 일들로 둘이 조금 멀어졌기에 말이다.
루이의 성격은 훨씬 더러워졌고, 아이네의 일 때문에 둘은 이전처럼 같이 다니지 못했으니.
그렇게 그녀가 고민만 하던 와중에, 결국 일이 터졌고.
차라리 루이가 자신에게 따진다면 전부 사실대로 말하고.
어떻게든 사죄를 할 생각이었으나.
루이는 그러지 않았다.
그가 파티에서 추방되던 날.
루이가 그녀에게 짓던 슬픈 표정을 보고서야, 아이네는 깨달을 수 있었다.
‘제가 무슨 짓을 한 거지요?’
그 이후로 계속해서 루이의 곁을 맴돌던 아이네였다.
사과를 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났다.
비록 언니를 치료하기 위해서였으나.
돈을 받고서 그를 배신했다는 말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어차피 일은 돌이킬 수 없고, 이제 와서 하는 사죄는 그저 변명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
이유를 듣는다면, 루이가 자신을 혐오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그 때문에, 계속해서 그의 곁을 맴돌면서도 끝까지 사과를 하지 못한 아이네였다.
차라리 그가 먼저 화라도 내면, 전부 사실대로 털어놓으련만.
아무튼, 그렇게 어영부영하던 사이 방학이 되어버렸다.
‘그래. 우선은 언니의 치료가 먼저예요.’
그녀들이 도착한 제도의 신전은 거대했다.
“우와…”
“우와…”
자매가 똑같은 감탄사를 흘린다.
그러나, 그러던 리아가 다시금 피를 토하고.
아이네는 어서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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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고위 사제, 윌 하딩.
그는 신전에 온 환자를 치료하러 움직이고 있었다.
고위 사제의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든다.
평민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그러니, 처음 그는 환자의 옷차림을 보고서 의심했으나.
옆에 있던 보호자.
“부탁드려요, 사제님!”
그녀의 아카데미 생도복을 보고서는 나름 납득했다.
헬론 아카데미의 생도가 보호자라면, 납득이 가능하다.
아카데미 생도복을 입은 여자는, 정확하게 돈을 냈다.
그러니, 윌은 평소와 같이.
즉, 다른 환자들을 치료할 때처럼 정성을 들여서 성력을 이용해 치유 마법을 시전했다.
“여신 아리아 님의 가호가 있기를.”
그리 말하자, 리아의 몸에 성스러운 빛이 번쩍인다.
드디어 언니가 나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네가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리고 마침내, 빛이 사그라들고.
윌은 땀을 닦으며 말한다.
“끝났습니다. 여신…”
무언가 말을 하려던 윌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리아를 바라본다.
그야, 그녀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으니까.
“어… 어?”
윌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오고.
다시, 리아가 기침을 한다.
“커헉!”
튀어나오는 피.
아이네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한다.
“어, 언니?”
“말도 안 돼…”
윌이 중얼거린다.
다리가 잘린 사람도, 내장이 쏟아져 나오던 사람도, 병에 걸려 온 몸이 썩어가던 사람도 살렸다.
그런데, 어째서?
“사, 사제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아이네가 윌에게 매달린다.
그러나 윌도 그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주위의 다른 사제나 수녀들도 웅성거린다.
“이게 무슨…”
그러던 때.
“무슨 소란입니까.”
중후한 목소리가 들린다.
모두들 고개를 돌리면, 거기에는 윌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고위 사제 하나.
그리고, 성녀.
에스더 칼트가 있었다.
“아, 사제님.”
다른 사제 하나가 그들에게 달려가,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일의 전말을 들은 고위 사제가 눈을 찡그린다.
이건, 좋지 않다.
고위 사제의 치료 한 번에 얼마가 드는데.
만약 효과가 없다는 소문이라도 돈다면, 정말로 큰일이다.
“사, 사제님? 무언가 잘못된 것이겠죠?”
아이네가 덜덜 떨며 말한다.
이게 어떤 돈인데.
루이를 배신한 대가로 받은 돈의 전부인데.
효과가 없으면 절대로 안 된다.
그러나, 늙은 고위 사제가 말한다.
“치료는 제대로 끝났습니다. 이제 나가시길.”
“사제님…”
윌 하딩은,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입을 열려고 하지만.
늙은 고위 사제는 그의 말을 끊고서 말한다.
“아. 여신님에 대한 믿음이 깊지 않은 자들이나, 무신론자들에게는 가끔씩 치료가 듣지 않는 경우가 있지요.”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고위 사제는 리아의 옷차림을 확인했다.
어차피, 제대로 따질 수도 없는 인간이리라.
“아, 아니에요! 제발요!”
그녀들을 내쫓으려는 사제들에게, 아이네가 무릎까지 꿇고 애원하지만.
소용은 없다.
아이네는 마지막으로, 에스더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같은 파티원이었으니까.
“에스더 님, 제발…”
여기서 언니를 치료하지 못한다면, 희망이 없다.
이제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아이네는, 그녀에게 애원한다.
그러나 에스더는 방금, 여신님에 대한 믿음이 깊지 않다는 사제의 말을 들었다.
그렇기에, 에스더는 경멸의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며 말한다.
“쓰레기들. 여신님을 믿지도 않는 주제에, 치료는 받고 싶었나요? 어서 내쫓으세요.”
결국, 둘은 신전 밖으로 강제로 끌려나가고.
허망한 표정으로, 아이네는 굳게 닫힌 신전의 문을 바라본다.
“…콜록.”
기침이 나온다.
반사적으로 입을 막은 아이네.
이윽고 펴 본 그 손에는, 약간의 피가 묻어 있었다.
그걸 옷에 슥슥 닦고.
아이네는 자신의 언니를 본다.
리아 역시 기대를 했으리라.
그렇기에, 리아의 얼굴에도 눈물자국이 있었고.
리아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아이네를 껴안았다.
그렇게, 두 자매는 말없이 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