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44화 (44/69)

EP.44 엘린의 방학

엘린은 현재 방학을 맞아 대수림으로 향하는 중이다.

위대한 엘프들의 국가.

정확한 국호는 알리스트리어-헬문드였으나.

어차피 엘프들이나 인간들이나 다들 대수림이라고 부르는 편이었다.

아무튼, 엘린 니디아는 대수림에서 제국의 헬론 아카데미로 모종의 임무를 위해 입학했다.

헬론 아카데미는 제국, 아니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 최고의 아카데미였다.

그 덕에 대륙 각지의 인재들이 헬론 아카데미로 모여들었고.

수인들이나 드워프들의 나라에서도 헬론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일이 많았다.

물론 엘프들은 늘 자신들이 최고라 생각하는 오만한 종족이었으니.

다른 종족들처럼 헬론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엘프는 드물었다.

그러나, 드물었다 뿐이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엘린이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에도 제국 측에서 크게 이상하게 보지는 않았다.

엘린 니디아, 그녀는 대수림에서도 굉장히 고귀한 존재였다.

엘프 원로원을 구성하고 있는 엘프 장로의 딸.

훗날 장로의 자리에 올라 원로원의 의석을 차지하게 될 그녀보다 고귀한 존재는, 엘프 여왕과 왕족 정도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고귀한 존재인 그녀가 직접 아카데미에 입학했다는 것 자체가, 그녀가 맡은 임무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임무가 잘 안 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두 인간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루이 발렌슈타인과 레오 엡실트.

이름도 비슷하고, 얼굴도 둘 다 잘생겼다.

그러나 성격은, 서로 그렇게 다를 수가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엘린은 루이를 좋아한다.

우선, 얼굴은 아름답기로 소문난 엘프들만큼이나 잘생겼다.

물론 고귀한 엘프가 겨우 얼굴만 가지고서 누군가를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루이는 또 착했다.

엘린이 아카데미에 입학하고서 가장 역겨웠던 것이, 인간의 추악함이었다.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비열했다.

그녀가 ‘하등한 인간’을 말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이유가 있었다.

엘프들이라고 해서 마냥 선하고 고귀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인간들은 그 정도가 심했다.

꼭 동물들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

그러니 그런 인간들 중에서, 루이가 돋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동시에, 그는 흥미로운 인간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이들에게도 굽히지 않고.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그 성장도 엄청나게 빨랐다.

엘프를 어려워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에게도 말대꾸를 하는 성격까지.

대수림의 지루한 엘프 남자들과는 달랐다.

엘린에게는 그가 훨씬 재미있었고, 친해지고 싶은 이였다.

다른 인간들보다 선하고, 엘프들보다 재미있는 남자.

그러나, 안타깝게도 엘린이 친해져야 하는 이는 다른 인간이었다.

레오 엡실트.

그의 외모 역시, 루이에 비할 정도로 잘생겼으나.

그 외의 모든 것이 끔찍했다.

모든 인간들이 하등하다면, 레오는 다른 인간들보다 더욱 하등했다.

루이가 엘린에게 있어서는, 엘프들보다도 친해지고 싶은 인간이었다면.

레오는 가까이 있기만 해도 불쾌한 인간이었다.

그의 성격은 구역질이 나고, 그의 속은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그래도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처음에, 엘린은 임무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루이와도 친해지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오가 루이를 증오했기 때문에.

역겨운 열등감이라고 엘린은 생각했다.

아무튼, 어차피 루이도 인간.

엘린은 루이에게 신경을 끄려고 했지만.

놀랍게도, 그게 쉽지가 않았다.

계속해서 루이의 생각이 났다.

그를 보면 심장이 자꾸만 뛰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대수림에 있을 때는 전혀 겪지 못한 일이었다.

아무리 잘생겼다는 엘프 남자를 봐도 말이다.

엘린으로서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자신이 엘프도 아니고, 겨우 인간 남자에게 이러다니.

루이가 그녀에게 한마디를 던질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 따위를 앞세우기에, 이번 임무는 너무나 중요했으니까.

엘린은 루이를 다른 인간들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즉, 하등한 인간이라고 욕을 했다는 소리다.

그에게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특히, 그를 욕할 때마다 레오가 좋아했다.

레오에게 붙어서 그와 친해지는 일은 정말로 구역질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오가 루이의 파티 추방 건을 들고 왔다.

엘린이야 뭐, 레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당연히 찬성했다.

그러나 일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기어코, 루이의 퇴학을 걸고서 둘이 결투를 하기로 했다.

혹시나 레오가 패배하여, 그의 마음이 꺾이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

레오의 성장은 엘프 모두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으니.

그리고, 레오가 그에게 일을 맡겼다.

추잡한 일이었다.

루이에게 결투 직전에 물약을 먹이는 작업.

이딴 것이 용사라니, 구역질이 났지만.

그것보다도 앞서 든 생각은, 루이에 대한 걱정이었다.

너무나도 미안했지만, 엘린은 마음을 다잡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은 엘프를 위해.

차라리 루이가 퇴학을 당한다면, 그를 볼 일이 없고.

엘린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결심을 했고, 실행을 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실패했다.

분명 좋지 않은 일이었고, 그녀의 계획이 틀어진 것이었으나.

어째서인지 안도하는 자신에 놀란 엘린이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계획에 문제가 생겼다.

레오가 자신을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맡긴 일을 실패했다고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분명 무언가 더 있는데, 그걸 알 수가 없으니.

엘린으로서는 답답할 뿐이었다.

아무튼, 그녀는 역겨움을 참으며 레오에게 더욱 다가가려 했으나.

레오는 계속해서 그녀를 멀리하는 중이었다.

‘도대체 어째서죠…? 하등한 인간 따위가…’

그녀가 두 남자에 대해 생각하며.

마침내, 엘린은 대수림 한복판.

세계수의 바로 옆에 있는, 엘프 장로인 자신의 어머니.

티엘 니디아의 집에 도착했다.

“다녀왔어요, 어머니.”

티엘이 엘린을 환영한다.

“돌아왔나요, 엘린?”

둘이 그간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서로 안부를 묻기를 잠시.

이내 엘린이 티엘에게 묻는다.

“세계수의 상태는… 어떤가요.”

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껏 목소리를 낮추는 엘린.

그녀의 질문에, 티엘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그대로… 아니, 더 심해졌답니다.”

엘린이 입술을 질끈, 깨문다.

세계수는 엘프들의 지주이다.

단순히 정신적 지주일 뿐만 아니라.

이 거목이 자체적으로 발하는 마법의 힘은, 대수림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한다.

그 덕에, 대수림 밖의 종족들이 전화에 휩싸이는 와중에도.

엘프들은 세계수의 보호를 받으며, 그들끼리 홀로 고고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세계수에 문제가 생겼다.

처음에는 극히 미미해서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엘프 여왕과 장로들이 그걸 숨기려 어떻게든 노력하는 중이었다.

세계수가, 마기에 오염되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고, 전례도 없는 일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당황한 엘프들은 백방으로 해결책을 찾아 나섰고.

마기를 정화하는 데에는 결국 실패했으나, 엘프들의 노력이 아예 헛된 것은 아니었다.

옛 선조들이 남긴 고문서 중 하나에, 같은 현상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문서에는 해결책 또한 기록되어 있었고.

그 해결책은 참으로 간단했다.

마기에 의한 세계수의 침식은, 오직 ‘용사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용사의 힘.

성력과 비슷하고, 실제로 그걸 성력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결국 그것은 성력과는 조금 다른, 오직 용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이번 대의 용사 후보는 제국의 3대 공작가.

엡실트 가문의 후계자였다는 것이고.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정화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기간도 얼마나 걸리는지 제대로 나와있지 않았고.

당장 제국에서 용사 후보를 대수림으로 보내주리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

거기에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작업 기간 내내 용사가 대수림에 있는다?

제국이 절대 그걸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단 한 가지 경우.

만약 용사가 스스로 자청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기에, 레오가 스스로 엘프들을 돕게 만들기 위해.

포섭, 혹은 최악의 경우에는 그를 유혹하는 것이 엘린의 임무였다.

이는 엘프 원로원의 결정이었다.

“그래서, 잘 돼가고 있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문제가 생겼지만.

그 정도는 아직 괜찮다.

엘린은 티엘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예.”

그리고 엘린이 생각하기에는 그것 외에도 문제가 있었다.

엘린 역시 그 고문서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문서에는, 세계수의 마기 침식 이후에 마왕의 침공이 있었다고 했다.

엘린이 조심스레 묻는다.

“저, 어머니… 다른 종족들에게, 미리 마왕에 대해서 경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티엘이 고개를 젓는다.

“엘린, 마왕이 나타나지 않은 지 벌써 수백 년이 지났답니다? 마기야 원래, 마왕 없이도 발생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만, 고문서에 따르면…”

티엘이 얼굴을 굳히고서, 조금 엄하게 말한다.

“엘린. 마왕에 대해서 경고를 하려면, 결국 세계수에 일어난 일을 설명해야 해요. 우리가 대충 얼버무리더라도, 바깥의 종족들이 알아낼 수도 있죠.”

엘린 역시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바깥의 종족들이 세계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나요? 엘린, 놈들은 모두 비열합니다.”

다시, 싱긋 웃으며 말하는 티엘이다.

“걱정 마세요, 마왕은 나타나지 않으니까. 그리고 마왕이 나타난다 해도, 우리 엘프들에게는 세계수가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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