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6 레오의 방학
짜악!
엡실트 공작이 레오의 뺨을 갈긴다.
자비 없이 전력을 다해 때리는 덕에, 레오의 몸이 휘청거렸다.
“으윽… 죄송합니다.”
레오가 그렇게 말하지만.
짜악, 짜악!
“이, 이 빌어먹을 놈이…!”
공작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렇게 한참을 더 때리고 나서야.
마침내 레오가 바닥에 쓰러지고, 그제서야 공작의 손찌검이 멈췄다.
“죄, 죄송합니다! 이제 제발 그만!”
“일어나라, 멍청한 놈.”
공작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의 말에, 레오는 재빨리 일어나서 바로 선다.
“후우… 네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는 있나?”
레오가 우물쭈물하자, 공작이 이를 간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레오가 재빨리 외친다.
“겨, 결투에서 패배하여 가문의 보검을…”
“그게 무슨 검인지는 알고?”
“그게…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그걸 아는 놈이 결투에 검을 걸어!”
퍼억, 분을 이기지 못한 공작이 레오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이런 멍청한 놈이! 그게 어떤 검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초대 가주께서 사용하시던 검이다, 이… 어억…”
한참 레오를 구타하던 공작이, 이윽고 뒷목을 잡는다.
“고, 공작 전하!”
공작의 뒤에 서 있던 가문의 집사가 즉시 달려온다.
“후우… 후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딴 일을 벌인 것이냐.”
겨우 진정한 공작에게, 레오가 잔뜩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그게… 당연히 결투에서 이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루이 발렌슈타인이 결투에서 간교한 수를 쓰는 바람에…”
“그 간교한 수는 네놈이 썼겠지. 가문에 요청한 물품이 어디에 쓰는 것인지, 내가 모르리라고 생각했나?”
“죄송합니다!”
레오가 즉시 고개를 숙인다.
여기에서 공작의 화를 더 돋우면, 정말 위험하다.
“물약에 스크롤까지 쓰고서도 패배해? 이런 쓸모없는 놈이…”
신성한 결투에 그런 편법을 사용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까지 하고서도 결국 패배했다는 것이 문제지.
레오가 공작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가주님, 그래도 저희는 엡실트 아닙니까? 발렌슈타인을 압박하거나, 아니면 사람을 풀어서 강제로 빼앗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레오 딴에는, 나름 해결책을 제시해서 공작의 화를 풀려 말한 것이지만.
“하, 강제로 빼앗는다라…”
짜악.
공작의 손이 다시 한번 레오의 뺨을 갈긴다.
“네 덕에 황녀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퍽이나 가능하겠구나.”
그게 문제였다.
발렌슈타인 백작가를 압박하거나.
혹은, 아예 사람을 보내 강제로 빼앗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문제는, 엡실트 공작가는 황위 경쟁에서 황자를 지지하는 상황이었고.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만약 발렌슈타인 백작가가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한다면.
발렌슈타인 정도는 무시할 수 있지만, 황녀가 그걸 문제 삼아 공격하리란 사실이었다.
공작 역시 영상에 담긴 자기 아들의 추태를 확인한 후였다.
황실로부터 경고와 문책이 있었고, 재건 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꽤나 많은 돈을 반강제로 내야만 했다.
이것 역시 황녀의 짓이었다.
황녀는 안스베르크 백작가로 갈 지원금을 왕창 깎은 것으로도 모자라서.
엡실트 공작가 역시 책임을 져야만 한다며, 남은 지원금을 황실 재산이 아닌 엡실트 공작가가 부담하게 하자고 했다.
황자는 반발했지만, 황실의 재산을 아끼게 되리라 생각한 황제가 그 안에 찬성했다.
결국 엡실트 공작가는 황실에 제법 큰 돈을 뜯기고.
황실은 그걸 안스베르크 백작가에 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하사하며 생색을 냈다.
아무튼, 황실에서 받은 경고와 문책을 지금 엡실트 공작가는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황녀 하나라면 모를까.
안스베르크 백작가의 몰락에는 분명 레오 엡실트의 책임도 있었는데.
문제는 안스베르크 백작가와 엡실트 공작가가 모두 황자의 편이라는 것이었다.
그 덕에, 현재 황자의 심기도 그리 좋지 않았다.
엡실트 공작가 정도면 황실에도 어느 정도 맞설 수 있는 힘이 있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너무 좋지 않은 것이었다.
즉, 자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검을 되찾는 일을 벌였다가.
혹시나 발렌슈타인 측에서 일을 크게 만들고, 황녀가 그걸 빌미로 공격한다?
그건, 위험했다.
그러니 엡실트 공작가로서도 멋대로 검을 회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레오 엡실트 때문에.
엡실트 공작이 앞의 레오를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본다.
“내가 아무래도… 너를 너무 믿고 맡긴 것 같다.”
레오 엡실트가 꿀꺽, 침을 삼킨다.
그가 잔뜩 긴장을 하면서, 공작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앞으로 한 번만 더 멋대로 일을 벌이면 가만두지 않겠다. 적당히 인맥이나 쌓으면서, 조용히 졸업해라.”
“네, 알겠습니다.”
레오가 재빨리 대답한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이런 치욕을 준 루이 발렌슈타인을 어떻게 가만히 놔둘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공작 역시 레오 엡실트가 어떤 인간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공작이 말한다.
“돈은 그대로 보낼 것이지만, 앞으로 가문에서 다른 일체의 지원은 기대하지 마라.”
“예?”
“가문의 사람을 멋대로 쓰는 일도 이제는 금지하겠다.”
“아, 아버지!”
레오가 다급하게 부르지만.
“이야기는 끝났다. 당장 꺼져라.”
“아버지! 잠시만요!”
레오가 간절하게 외친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
레오 엡실트가 저택의 복도를 걷는다.
그의 표정은 꼭 악귀와도 같았다.
방금, 엡실트 공작이 했던 말.
적당히 인맥이나 쌓으면서, 일을 벌이지 말고 조용히 졸업해라.
또, 금전 지원을 제외한 모든 지원을 끊겠다.
결국 자신더러 다른 평범한 아카데미 생도들처럼 아카데미 생활을 하고, 졸업을 하라는 소리였다.
지난번처럼 가문에 물품을 요구할 수도 없고.
가문에서 돈을 받아먹는 교수를 이용할 수도 없다.
“젠장!”
쾅!
레오가 저택 벽을 주먹으로 친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가 루이 발렌슈타인을 상대로 꾸미고 있던 복수.
아카데미의 교수를 조종해, 퇴학을 가지고 놈을 협박하거나.
아니면 아예 가문의 사람들을 이용해 놈을 반병신으로 만들거나.
보검을 빼앗고, 놈을 자신의 앞에 무릎 꿇려 빌게 만들거나.
그가 꾸미고 있던 계획 모두, 가문의 힘이 필요했다.
그야, 레오 엡실트 자신은 루이 발렌슈타인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으니까.
그러니, 가문의 격차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놈 개인이 얼마나 뛰어나든, 엡실트 공작가의 앞에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가르쳐줄 생각이었는데.
이제, 그게 불가능하게 됐다.
잔뜩 화를 내던 레오 엡실트가, 초조하다는 듯이 손톱을 물어뜯는다.
‘어,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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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죽여버릴까.”
내가 중얼거렸다.
물론, 그러면 큰일 난다는 것은 안다.
당장 제국 3대 공작가의 후계자이자, 용사 후보를 죽인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몰래 암살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였다.
레오 엡실트가 죽고, 성검이 바로 다음 용사 후보를 뽑아준다면 참 좋겠지만.
인생이 늘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아닌가.
멀쩡히 살다가 갑자기 게임으로만 알고 있었던 세상에 끌려온 내가 바로 그 산 증인이고.
아무튼, 막말로 레오를 죽였는데 성검이 다음 용사 후보를 안 뽑으면 어떡하냐.
아니면 뽑기는 뽑았는데, 너무 늦게 뽑는다든가.
예를 들어 마왕이 나타나서 제도까지 전부 박살났는데, 그제서야 성검이 다음 용사 후보를 정했다고 생각해봐라.
그냥 제대로 좆돼버리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조금 더 확실하게 용사를 바꿀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문제는, 여기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원작 게임 지식이 별 도움이 안 되었다.
그야, 게임에서는 용사인 레오 엡실트가 플레이어블 캐릭터였으니까.
레오가 죽으면 그냥 게임 오버인 것이다.
그 뒤에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따위, 게이머의 알 바 아니다.
세상이 마왕한테 전부 점령당했든, 아니면 다음 용사가 나타나서 세상을 지켜냈든 말이다.
궁금하다고 해도, 알 방법도 없었고.
그래서 최근 내가 집중하는 일 중에 하나는, 용사를 바꿀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이건 누구한테 함부로 물어보기도 위험한 주제다.
전에 발렌슈타인 백작에게 물었더니, 자기는 그딴 거 모른다는 답이 나왔었지.
발렌슈타인 저택에 있는 쓸데없이 거대한 도서관도 전부 뒤졌다.
내 황금 같은 방학의 상당수가 그 작업으로 삭제되었고.
그러나, 내가 원하는 정보는 도서관을 아무리 뒤져도 없었다.
물론 내가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나름 예상하는 바가 있었다.
분명 게임 설정에서, 마왕에 대비하기 위해 용사는 주기적으로 선정된다고 했다.
그러니 용사 후보인 레오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이번 대의 용사는 선정돼야 하므로.
용사 후보가 새로이 뽑히리라는 추측이었다.
나름 논리적이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현실.
혹시나 내 추측이 틀렸다면, 마왕을 죽일 방법이 아예 사라지기 때문에.
나는 확실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 도서관을 뒤지는 중이었다.
이제 가문의 도서관은 전부 확인했고.
여기에는 도움이 되는 내용이 없었으나, 나는 낙담하지 않았다.
아카데미에는 저택의 거대한 도서관보다도 몇 배는 더 큰 도서관이 있으니까.
그리고, 이것 말고도 내가 집중하고 있는 일이 있었다.
결투에서 승리한 덕에 얻은 바로 이 보검.
이 검의 힘을 깨우는 일 말이다.
여기에서는, 내가 가진 원작 게임의 지식이 엄청난 도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