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47화 (47/69)

EP.47 루이의 방학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른다.

그러나 그 검로나, 휘두르는 방향이 평소 연습하던 것과는 다르다.

지금 내가 연습하고 있는 검술은 발렌슈타인 가문의 비전 검술이 아니었으니까.

다시, 검을 내리 휘두른다.

아까부터, 아니.

방학이 시작됐을 때부터 나는 이 한 자세로만 검을 휘둘렀다.

연습용 목검이 아니라, 레오에게서 받은 엡실트 가문의 보검으로 말이다.

내가 지금 휘두르는 검은, 엡실트 가문의 비전 검술.

그 가장 기본이 되는 첫 번째 자세였다.

당연하지만, 루이 발렌슈타인이 절대 알 리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검술이었으나, 내게는 원작 게임의 지식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엡실트 가문의 비전 검술을 전부 아는 것은 아니었으나.

최소한 이 첫 번째 자세만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야, 화면 속의 게임 캐릭터도 이 동작을 질리도록 반복했으니까.

즉, 나는 게임 화면으로 본 자세를 계속해서 연습하는 중인 것이다.

휘익!

“후욱… 후욱…”

나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이번이 몇 번째 휘두르기였는지, 이미 진작에 잊었다.

내가 얻은 이 엡실트 가문의 보검에는 숨겨진 힘이 깃들어 있다.

그걸 제외한다면, 이건 그저 조금 더 화려하고 조금 더 단단하고 조금 더 날카로운 검일 뿐이다.

그리고, 원작 게임에서 엡실트 가문의 사람들은 이 검의 숨겨진 힘을 모르는 채로.

그저 조금 더 화려하고 단단하고 날카로운 검으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게임 스토리에서 주인공이 이 검의 힘을 밝혀내는 과정은 그저 운이었고.

지금 나는 현실에서 그걸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검에 숨겨진 힘을 깨운다고 해서, 갑자기 검에 불이 붙거나.

아니면 베인 적들을 즉사시킨다든가, 갑자기 또 다른 성검으로 변한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보검에 숨겨진 힘은, 검 그 자체가 아니라 검의 사용자를 강화하는 힘이다.

사용자를 영구적으로 강화하며, 그건 이 검을 놓아도 마찬가지이다.

나중에 성검으로 갈아타야 하는 주인공에게는 최적의 기연인 것이다.

아무튼, 검에 숨겨진 힘을 깨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엡실트 가문 비전 검술의 첫 번째 자세.

그 간단한 휘두르기를 제대로 된 자세로, 이 검을 쥐고서 하면 된다.

…딱 1만 번만 말이다.

“젠장!”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보검을 바닥에 던졌다.

“도대체 언제 되냐고!”

혼자서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른다.

무려 만 번이다, 만 번!

처음에는 성실하게 하나, 둘 숫자를 세면서 휘둘렀지만.

이천 번쯤 되었을 때에는 그냥 때려쳤다.

분명 그때도 숫자는 한참 어긋났을 것이다.

거기에, 이건 진검이었다.

보통의 검보다도 무겁고, 심지어 장식까지 화려하게 달려있다.

간단한 자세였지만, 체력을 더럽게 많이 소모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검의 힘을 깨우는 조건은, 엡실트 가문 비전 검술의 첫 번째 자세를 ‘제대로’ 1만 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걸 게임으로만 봤지, 현실에서는 본 적이 없다.

당연한 것이, 레오 놈을 불러다가 니네 가문 비전 검술 좀 보여달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그랬기에, 검을 휘두르면서도 계속 불안했다.

혹시 내가 휘두르는 게 ‘잘못된 자세’로 판정돼서, 혹시나 삽질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뭐, 나는 다시 방금 내던진 검을 집어들었다.

이제 방학도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한 일이라고는 도서관에 박혀있거나, 아니면 검을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내가 제대로만 했다면, 아마 만 번은 거의 채워졌으리라.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젠장…’

그렇게 이를 갈며, 나는 다시 검을 아래로 휘둘렀고.

조금 짜증이 났었기에, 이번에는 약간 불량한 자세로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어? 어어?”

갑자기, 검에서 새하얀 빛이 나기 시작했다.

“서, 성공인… 으어어.”

---

눈을 뜨니, 나는 동굴 안에 있었다.

“드, 드디어…!”

나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외쳤다.

이 동굴, 분명 게임 안에서 본 그대로다.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기 직전.

“뭐가 드디어라는 것이냐.”

동굴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의 목소리였으나.

나는 잔뜩 긴장을 했다.

그야, 저 목소리의 주인은.

헬론 아카데미의 총장인 루이사 팔켄, 그녀 이상의 노괴였으니까.

분명 게임에서는, 엡실트 가문은 이 검의 숨겨진 힘에 대해서 모르는 모양새였지.

그러니 나 역시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이 맞으리라.

나는 연기를 시작했다.

“드디어 미쳐버린 것인가. 여기가 어디지.”

음.

스스로 평가하자면, 나쁘지 않은 연기였다.

아무튼, 동굴 저편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외양은 나보다도 어려 보이는 소년.

상당한 미소년이지만, 레오의 얼굴이 약간씩 보이는 것 같아 조금 불쾌했다.

‘유전의 힘은 강하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흐음… 이게 몇백 년 만인가. 아무튼, 나는 레온하르트 엡실트라고 한다. 네놈도 엡실트 가문의 말예라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그리고 나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선조님을 뵙습니다.”

소년의 정체는, 레온하르트 엡실트.

엡실트 가문의 시조.

엡실트 공작가를 세운 남자, 동시에 제국의 초대 황제와 함께 이 루치아 제국을 세운 남자이다.

그가 내 주위를 돌며, 나를 관찰하며 말한다.

“호오, 네 녀석은 제법 담대해 보이는구나? 네 조상들은 다들 놀라 자빠지기 바빴는데 말이야.”

음, 그야 전부 예상하고 있었던 일들이니까.

“훗, 마음에 들어. 어쨌든, 속으로는 엄청나게 놀라고 있을 네 녀석을 위해 이 내가 친히 설명을 해 주지.”

됐다, 이 엡실트는 나 역시 엡실트라고 생각하고 있다.

들키지 않았으니,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지.

“네가 휘두르고 있었을 그 검은, 이곳의 입구를 여는 열쇠다. 내 검술의 첫 번째 초식을 1만 번 휘두르는 싹수 있는 녀석만이 여기로 올 수 있지.”

그렇기에, 나는.

“이것은 말하자면, 이 몸이 후손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그러나 내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어중이떠중이들까지 전부 줄 수는 없는 법. 내 시험을 통과한 녀석들만이 선물을 받을 수 있지. 이곳에서 너는, 내게 직접 가문의 비전 검술을 배울 것이다. 무려 그 검술의 창시자에게, 직접! 말이다. 물론 검술의 가르침이 끝나면, 다른 선물도 있다. 참, 아직 내가 이 공간을 만든 이유를 설명을 안 했군. 너희에게 줄 선물이라는 것은 사실 부차적인 이유고, 진짜 이유는…”

“알겠으니까, 그러면 어서 검술이나 가르쳐 주세요. 선조님.”

그의 말을 끊었다.

“너… 무, 무슨…”

그가 입을 떡 벌리고서는 경악하며 나를 삿대질한다.

“아, 어서요.”

안 그래도 방학 거의 끝나가는데, 시간 없다.

거 양반 말 참 많네.

게임에서는 첫 회차 플레이만 빼고 대충 스킵했었는데, 현실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니.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

잠시 뒤.

“내 지금까지 많은 녀석들을 가르쳤건만, 네 녀석처럼 싸가지없는 놈은 처음이구나.”

그의 명령에 따라, 나는 검을 들고서 자세를 잡았다.

“어디, 우선 실력부터 확인할까?”

어, 잠깐.

게임에서는 이거 아니었잖아.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끼기도 잠시.

눈 깜짝할 새에 내 앞으로 다가온 레온하르트가, 주먹을 날린다.

“잠…”

콰직!

“끄어어어억…”

동굴 벽에 처박힌 나는 단말마의 비명을 내뱉었다.

“뭐야, 약하군.”

“끄어어… 댁에 비하면, 그 누가 안 약하겠습니까…”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나는 따졌다.

“뭐야, 말하는 걸 보니 멀쩡하네? 그러면 다시…”

“죄송합니닷!”

“훗, 진작에 그럴 것이지.”

아무튼.

이제서야 놈은 제대로 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의 말에 따라 검을 휘두르는 내 옆에서.

“내가 말이야, 그 뺀질이 발렌슈타인 놈이랑 골렘인지 사람인지 분간도 안 되는 무뚝뚝한 류리케 놈. 거기에 그 망상가 자칭 황제 녀석 사이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검술을 전부 배우고 나면, 내 힘을 나눠 받을 수 있다. 근데 후손이랍시고 죄다 나눠주기에는 아까우니까, 일부러 작은 시험을 내 검을 통해서 냈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발설 불가다. 자동으로 마법에 걸리게 했으니까, 헛된 시도는 하지 말고.”

“근데 말이지, 역시 네 녀석처럼 버릇없는 후손은 처음인…”

“아, 알겠으니까 좀 닥치십쇼! 집중 안되네, 진짜.”

“므… 뭐? 다, 닥치라고?”

결국, 내가 소리쳤다.

아 진짜, 말이 많아도 너무 많다.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그래도 고마운 인간이니까 웬만하면 들어주려고 했지만, 이건 검술에 집중을 하지 못할 정도다.

아무튼 그렇게 말한 직후에, 자세 교정이란 명분으로 레온하르트에게 잔뜩 맞으면서 검술을 배우고.

“오늘은 이 정도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흐음… 뭐, 알겠다. 이미 검의 힘을 깨웠으니, 이제 네 녀석이 원할 때마다 이곳으로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서, 마치 지금 생각났다는 듯이 그가 내게 묻는다.

“참. 아까 네 녀석의 패륜적인 발언에 충격을 받아, 미처 물어보는 것을 잊었구나. 네 녀석의 이름은 무엇이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나는 대답했다.

“루이 엡실트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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