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8 개학
헬론 아카데미의 학생회실.
그 안에서는 두 여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이 개학이었기에, 그들을 제외하고서는 아무도 없는 학생회실이다.
“잘 지냈나, 사샤?”
“그리 잘 지내지는 못했답니다. 회장님과는 달리, 말이죠.”
“……”
“농담입니다. 잘 지냈습니다.”
“정말인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회장님께서 이 답을 듣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 한 말입니다.”
“그대와 대화할 때마다 내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군.”
“조금 봐주시지요. 저는 회장님의 덕에 제 정체가 들킨 것은 아닌지, 방학 내내 걱정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잤답니다.”
“아아, 또 그 얘기인가! 실수였다고,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를 했잖나!”
황녀가 소리친다.
사샤가 말하는 것은 지난번, 연금술 재료의 일로 황녀가 루이를 처음 소개해 줬을 때.
하마터면 황녀가 사샤의 성까지 말할 뻔한 일이다.
“진짜로… 몇 번이고 말했다시피, 그건 실수였다.”
“제가 보기에는 회장님의 루이를 파벌로 끌어들이기 위한 계획의 일부였던 것 같지만, 우선은 넘어가겠습니다.”
“아! 진짜 실수였다고!”
평소의 말투도 버리고, 황녀가 빼액 소리를 지른다.
참고로 황녀는 진짜로 억울했다.
그때는, 루이와 대화를 하면서 어째서인지 조금 긴장을 해서.
자신도 모르게 사샤의 가문명까지 입에 담을 뻔했다.
물론 중간에 사샤가 황녀의 말을 끊으며 적당히 수습했지만.
사샤.
전체 이름은, 사샤 류리케.
제국의 3대 공작가.
아니, 이제는 2대 공작가이긴 하지만.
아무튼, 제국의 초대 황제를 도와 이 루치아 제국을 세운 세 공작가.
발렌슈타인, 엡실트, 류리케 중 류리케 가문의 영애였다.
그러나 현재 그녀는, 그저 사샤라는 이름만 가지고 아카데미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사샤 류리케는, 현 류리케 공작의 사생아였으므로.
현재 사샤가 류리케 공작가의 영애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 아카데미에서 단둘뿐이었다.
황녀, 칼리아 슈펠츠.
그리고 사샤 류리케 본인.
그러니, 지난번 황녀가 한 실수는 정말로 큰일이었다.
그렇기에 황녀는 사샤에게 거듭하여 사과를 했으나.
…사샤의 뒤끝은 생각보다 길었다.
“아무튼 말이다, 루이 발렌슈타인…”
“굉장히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하시는군요. 이번에는 봐드리겠습니다.”
“계속 생각하는 것인데, 그대는 너무 예의가 없다. 지금 대화하는 상대가 제국의 황녀라는 것을 조금 기억해 줬으면 고맙겠군.”
“흠, 논리에서 밀리니까 신분으로 찍어누르시려는 것입니까? 알겠습니다, 황녀 전하.”
황녀가 한숨을 내쉰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샤는 황녀에게 꼭 필요한 존재.
둘이 거래를 했으니, 저런 태도는 참아야겠지.
아니, 애초에 생각해 보면 황녀는 아카데미 생도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든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이였다.
아무리 예의 없이 굴어도, 화내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그런 황녀를 처음으로 짜증나게 만든 사샤가 오히려 대단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루이 발렌슈타인 말입니까. 확실히, 회장님이 신경을 쓰시는 이유가 있는 남자더군요.”
“분명 그대라면 알아보리라 생각했다. 그의 실력이나 인품은…”
“굉장한 미소년이더군요. 역시 회장님도 한 명의 여자…”
“아니다!”
“농담이었습니다. 근데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도 있지요.”
황녀가 사샤를 노려본다.
“방금도 농담이었습니다. 아무튼, 그의 입학 시험 성적. 그리고 목걸이에 담긴 얼마 전의 전투 모습을 비교해 보자면… 분명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입니다.”
“그래, 본녀의 말이 바로 그거다.”
“입학 시험 당시 실력을 숨겼다… 라는 일도 가능하기는 하겠으나. 마나 측정 같은 시험은 그것도 불가능하겠지요.”
사샤의 말대로였다.
대륙의 모든 인재가 모이는 헬론 아카데미였으니, 당연히 루이보다 강한 이들도 있었으나.
루이와 같은 엄청난 성장 속도를 보이는 이는 없었다.
“분명 망나니라는 소문을 들었었는데 말이지…”
황녀가 중얼거린다.
“거기에 인성도 훌륭하고, 외모도…”
“그건 아니라고 했다!”
사샤의 말에 황녀가 외친다.
“걱정 마십시오, 회장님. 제게 그를 뺏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소년이긴 하지만, 제 취향은 아니니까요.”
“본녀가 어째서 그런 걱정을 한다는 말이냐!”
황녀가 기어코 책상을 쾅, 하고 친다.
“뭐, 말장난은 이쯤 하고…”
사샤의 얼굴은 처음부터 무표정했으나.
분명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은 진지해졌다.
“…장례식에서의 일은 들었습니다. 회장님도 꽤나 악질이시군요.”
“그대의 취향이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이걸로 안스베르크는 재기 불가능, 황자 파벌에 큰 타격을 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짝, 짝, 짝, 짝.
사샤가 박수를 친다.
축하한다는 말과는 다르게, 그 어조는 잔뜩 비꼬는 듯했다.
“그래, 뭐가 불만이지?”
“그 자리에서 발렌슈타인을 공개적으로 치하하지만 않으셨다면, 저도 진심으로 기뻐했을 텐데 말입니다.”
“필요한 일이었다.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회장님도 아시겠지요.”
사샤가 황녀에게 묻는다.
“루이 발렌슈타인의 가치가, 과연 발렌슈타인을 받아들였을 때의 손해 이상이라고 확신할 수 있으십니까?”
“그렇다.”
칼리아 슈펠츠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황녀가 루이 발렌슈타인에게 접근하고, 그에게 계속해서 호의를 보이는 이유.
그녀는 망나니라 불릴 적의 루이 발렌슈타인을 보았었고.
입학식 때의 루이 발렌슈타인을 보았고.
얼마 전까지,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성장한 루이 발렌슈타인을 보았다.
그녀는 장담하고 있었다.
루이 발렌슈타인은 천재다.
이대로라면, 그는 엄청난 사람이 되리라.
거기에, 그녀는 루이 발렌슈타인과 다른 파티원들의 모습도 관찰하고 있었다.
그 남자라면, 절대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 꼭 필요한 인재였다.
황녀는 루이 발렌슈타인이라는 사람 그 자체를 봤다.
반역을 일으킨 발렌슈타인 백작가를 파벌에 들인다면, 그 손해가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루이 발렌슈타인이라는 남자만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 손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리라는 계산이었다.
황녀가 다시 혼잣말을 한다.
“내가 황제 자리에 오르면… 발렌슈타인 백작가를 복권시켜주는 것도 괜찮겠지…”
그렇게, 발렌슈타인이 다시 공작가가 되고.
루이가 공작의 자리에 오른다면, 황제의 남편으로도 격이 맞는…
“아악!”
그녀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사샤가 황녀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황녀는 격하게 고개를 흔든다.
‘어째서 자꾸 이상한 생각이…’
그녀는 아직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1년 내내 몰래 루이를 관찰하며.
그리고 결정적으로, 최근 그와 잠시 어울려 다니며.
그에 대해 조금씩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 황녀였다.
뭐, 아직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격하게 부정하는 그녀였지만.
“흠,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미심쩍어하는 사샤의 모습에, 황녀가 제안한다.
“사샤, 그렇다면 그대가 직접 확인하는 것은 어떤가.”
“무슨 말이십니까?”
“마침 그의 파티원들이 전부 추방당한 상태라, 루이 발렌슈타인의 파티 활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대가 그의 파티에…”
“그건 싫습니다.”
“아직 내 말은 끝나지도 않았다만?”
“귀찮습니다.”
너무나도 단호한 사샤의 태도에, 황녀는 슬쩍 제안하려던 것을 포기했다.
“뭐, 알겠다…”
슬슬, 찻잔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면, 저는 이만. 어디 사는 누구씨가 제게 맡긴 학생회 일이 너무 과중해서 말입니다.”
그리 말하며 일어나려는 사샤를 황녀가 부른다.
“참. 이번 학생들을 확인하던 도중에, 이상한 것을 발견했는데…”
“개학 첫날부터 일이십니까? 회장님도 참 열심이시군요.”
그리 말하며, 사샤는 황녀가 건네는 문서를 받았다.
“음…? 이건 2학년 아닙니까?”
사샤가 작게 의문을 표한다.
이번 학생들이라길래, 당연히 신입생이리라 생각한 그녀였기에.
잠시 문서를 읽던 그녀가 표정을 찡그린다.
“무슨… 입학 년도가…”
입학 년도가 십몇 년 전으로 기록되어 있다.
잠시 서류를 살피던 사샤가 간단하게 말한다.
“오류겠지요. 행정실은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딱히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서 넘기고는.
둘은 간단하게 이야기를 끝마치고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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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개학.
마침내 이 헬론 아카데미의 2학년이 시작되는 날이다.
새로운 학년의 시작을 알리는 날답게,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특히나, 게임 스토리를 떠올려 보자면.
굉장히 많은 이벤트가 있는 학년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게 각오를 다지거나, 마음을 다잡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야, 지금 이 반에는.
있으면 안 될 사람이 무려 둘이나 있었으니.
이 헬론 아카데미에서는, 학년이 바뀌더라도 반은 바뀌지 않는다.
내가 속한 1학년 A반의 경우, 똑같은 인원 그대로 2학년 A반.
그리고 3학년 A반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반에는, 분명 빠졌으리라 생각한 사람 하나.
그리고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새로 추가된 사람이 하나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