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9 쥬라기 공원
“제자야, 이 스승님이 궁금한 게 있다.”
“저도 궁금한 게 있기는 합니다만…”
도대체 왜 여기에 계십니까?
“먼저 말해보거라!”
“도대체 왜 여기에 계십니까?”
“그것 참 무례한 질문이구나! 크흠, 수련은 충분하다. 이 스승님이 이제 다시 학업을 재개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니라.”
“그렇게, 현실에 치여 잠시 꿈을 접어야 했던 앨리스 쉴러 씨는 만학도로 다시금 학업에 복귀하여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따악!
“아, 아픕니다!”
뭐, 잠시 장난은 접어두고.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게임에서, 그녀는 아카데미 숲의 지박령 NPC였다.
물론 이 세계가 현실이 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도 그녀가 숲에서 나오는 일은 없을 터였는데.
도대체 어째서?
혹시나 내가 일으킨 나비효과라거나…
궁금할 땐, 그냥 물어보는 것이 제일 확실하지.
“그런 결심을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야, 우리 제자 때문이 아니겠냐!”
내가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고서 그녀를 바라보자.
스승님이 내게 뿌듯하다는 듯이 설명을 한다.
“네가 저번에, 파티원들을 전부 추방시켜버려 앞으로의 파티 활동이 문제라고 하지 않았더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래서, 이 스승님이 우리 제자의 파티에 들어가주려 하산을 했다는 말 아니냐!”
나는 입을 벌리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세상에, 진짜 감동이다.
“스승님…!”
“제자야…!”
눈물겨운 포옹을 나누려던 직전.
아까부터 같은 반 생도들이 우리들을 보고 있었기에, 나는 그녀를 막았다.
“어라? 제, 제자야?”
“그, 스승님… 지금 사람들이…”
나는 주변을 가리켰다.
원래부터 엄청나게 많은 관심, 주로 나쁜 쪽으로.
아무튼, 그런 주목을 받는 나였으니.
이미 나름 익숙해지기는 했으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누군가를 부끄럼 없이 껴안을 만큼 낯가죽이 두껍지는 않다.
“아, 알았다…”
그러나, 스승님의 시무룩한 얼굴을 보니 엄청나게 귀엽… 이 아니라 죄책감이 든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살짝 껴안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쁘게 웃음을 짓는 스승님.
좋아, 주변에서 우리 둘을 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시선은 무시하자.
“그건 그렇고, 아까 물어보시려던 건 뭡니까?”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아, 어째서 다들 이렇게 늦게 오는 것이냐?”
“예?”
나는 늦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혹시나 해서 스승님에게 물었다.
“스승님은 언제 오셨습니까?”
오랜만에 나오는 아카데미 수업이 긴장되고 설레서, 아침 일찍 온 것인가?
그렇다면 약간 귀여운데.
“나야 7시를 딱 맞춰 왔다만, 아무도 없더구나.”
아니, 그래도 그건 너무 이르죠.
“스승님, 수업 시작은 9시인데요?”
“그건 그렇지만, 0교시가 있지 않느냐.”
“예? 갑자기 존재하지 않는 교시입니까?”
0교시라니, 그게 무슨 끔찍한?
“아니, 원래 7시부터 나와서 자습을 하고 있어야…”
스승님, 도대체 어떤 아카데미를 겪으신 겁니까.
존경스럽습니다.
딱히 본받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아무튼, 나는 그녀에게 바뀐 세상의 법칙을 알려주었다.
“이제 그런 건 없습니다. 9시 전까지만 교실에 오시면 됩니다.”
“헉, 그게 정말이냐?”
“예. 0교시니, 자습이니 그런 건 없습니다. 좋지 않습니까?”
“에잉, 쯧쯧! 나 때는 말이야, 시키지 않아도 6시부터 나와서 자습하고 그랬어!”
그녀가 혀를 차며 내게 말한다.
“하여간에 요즘 것들은 말이야! 시키지 않아도 일찍 나와서 자습을 해야지. 제자야, 너는 앞으로 나와 같이 일찍…”
“싫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9시가 된 것인지, 교실 앞문이 열리며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기념할 만한 2학년 첫 수업의 교수는.
“다들 오랜만이군. 책을 꺼내라.”
헨리 윌스턴, 마법 담당 교수다.
첫날부터 수업 나가겠군.
…젠장.
그러나 무슨 일일까.
평소처럼 곧바로 출석을 부르고, 수업을 나갔어야 할 헨리 교수가 잠시 멈칫한다.
“앨리스… 앨리스 쉴러?”
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무튼, 교수의 호명에 스승님이 대답을 한다.
“네.”
스승님의 얼굴을 본 헨리 교수가 혼잣말을 내뱉는다.
“허허, 내가 드디어 성공한 것인가?”
사람들이 그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그는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수십 년간 연구한 내 시간 마법이… 드디어…!”
무언가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그치만, 분명 어제는 마법진을 만지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째서? 아니, 그런데 나머지 생도들은 분명 현재의 생도들이 아닌가?”
이윽고, 교수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설마, 시공간이 뒤틀린 것인가! 이런, 내가 무슨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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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스승님의 적극적인 해명으로, 헨리 교수님은 자초지종을 알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스승님의 유급 연수를 들은 생도들의 표정이 참 대단했었지.
아무튼, 잠시의 소란이 있기는 했지만.
모두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서, 헨리 교수님은 첫날부터 진도를 나갔다.
그것도 수업 종료 종이 칠 때까지.
나는 평소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이었으나.
그래도 개학 첫날부터 수업은 선 넘었지.
그리고, 집중해서 수업을 들으려고 해도 신경 쓰이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서 어려웠다.
당장 평소보다도 훨씬 더 잦은 빈도로 나를 힐끔거리는 같은 반 생도들.
아마 그 이유에는 내 옆에 앉은 스승님이 포함되겠으나.
어쨌든, 그런 시선에는 나름 익숙해진 차였다.
그러나 그걸 제하더라도, 우선 바로 옆의 스승님.
그리고 저기, 교실 구석에 죽은 눈을 하고서 앉아있는 펠리체 안스베르크.
이렇게 둘이 굉장히 신경 쓰였다.
특히, 펠리체 안스베르크는.
‘어째서 여기에?’
나는 잠시 생각했다.
게임에서, 히로인의 구원에 실패하면 그들은 자동으로 스토리에서 탈락한다.
펠리체의 경우.
그녀의 구원 이벤트에 실패할 경우, 영지가 박살나고 안스베르크 가문은 전멸한다.
물론, 그녀를 빼고 말이다.
그러니, 당장 가문을 책임져야 할 펠리체 안스베르크는 아카데미를 포기하고 영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
자연스럽게 용사 파티에서도 탈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알 수 있었다.
‘아, 또 나 때문이구나.’
게임은 결국 게임일 뿐이기에, 그녀의 구원에 실패하거나 성공하거나.
결과는 둘 중 하나다.
그러나 여기는 현실.
나는 가고일 떼를 막지 못했으나, 대신에 미리 경고를 했다.
결국 영지는 대충 망했고.
그녀의 구원은 반쯤 성공했고, 영지도 반쯤 박살 난 결과로 백작부인과 루시 안스베르크가 살았다.
그러니 영지와 가문을 책임질 사람이 있기에, 펠리체 안스베르크도 아카데미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과연 그게 펠리체에게 좋은 일일까.
나는 잠시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생도들이 오랜만에 만나 삼삼오오 모여 떠들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화제는, 안스베르크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어떻게 그렇게 추잡한…”
“상상도 못했어.”
“황실의 검? 저딴 사기꾼들이?”
생도들은 기회가 생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펠리체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특히, 몰락 전에는 다른 백작가들보다도 훨씬 큰 위세를 누리던 안스베르크였기에.
펠리체는 모두의 비난을 들으며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분명 방학 전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말을 걸려는 생도들이 잔뜩이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뒤바뀐 그녀의 처지를 보니, 어째 기분이…
“존나좋군?”
“뭐라고 했느냐, 제자야?”
“아닙니다.”
아, 진짜 시원하네.
내가 원래 남의 불행을 보고서 비웃는 인간은 아니지만, 그녀에게는 진짜 너무 당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비난은 펠리체 하나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그리고 펠리체 다음으로 사람들이 떠들어대기 시작한 것은.
“루시 안스베르크라고 했었나?”
“그래. 이번 1학년 차석으로 입학했대.”
“루시 안스베르크… 들어본 적은 없는데 말이지.”
“혹시 동생도 뭐 사기 친 거 아냐? 언니처럼 말이지.”
생도들이 대놓고 비웃지만, 펠리체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루시에 대해서 걱정하기 시작했다.
게임에서 루시는, 펠리체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다.
그러니 당연하지만, 재능이나 실력도 펠리체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지고.
그런 그녀가 1학년 차석으로 입학했다?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젠장, 결국 이렇게 됐나.’
물론, 나는 원작 게임 지식 덕에 그녀가 어떻게 차석 자리를 차지했는지.
그 진실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게임에서는 펠리체의 이벤트를 통해 처음으로 루시를 만나기는 하지만.
가고일 떼의 습격은 엄연한 펠리체 안스베르크의 이벤트.
루시 안스베르크의 이벤트는 따로 있었다.
‘늦기 전에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겠네.’
아무튼,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개학 첫날의 오전 수업이 끝나고.
종이 치자, 생도들이 다들 교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제자야, 다들 어디를 가는 것이냐?”
“이제 점심시간이니까요.”
“참, 그렇지. 우리도 어서 가자꾸나.”
그녀가 내 팔에 매달려서는, 나를 끌고 교실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던 우리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선다.
“잠깐, 루이 발렌슈타인. 나랑 이야기 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