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1 실습 평가
존 헤이튼 교수가 느긋하게 교실 안으로 들어온다.
“흐아암… 다들 잘 지냈냐.”
그가 하품을 하며 우리에게 하는 말이 가관이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수업은 없다.”
생도들 사이에서 작은 환호가 일어난다.
특히, 1교시부터 꽉 채워서 수업을 들은 우리였으니.
“대신에, 잠깐 설명할 게 있다. 집중해라.”
그가 박수를 치며 우리의 주의를 끌어모은다.
“아, 귀찮아…”
그렇게 중얼거리고서.
“잘 들어라. 이건 니들 중간고사 대체용이니까.”
그 말에, 생도들이 눈을 빛내며 존 교수에게로 시선을 보낸다.
물론, 나는 이게 무슨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존 헤이튼 교수는 아카데미의 전투 실습 수업 담당.
이미 1학년 때부터 파티 활동을 통해 갖가지 실습을 겪은 우리였지만.
“이번 중간고사는 실습 평가로 대체한다. 참으로 귀찮게도… 아니, 안타깝게도… 아니, 이것도 아니고. 아무튼, 여차저차해서 내가 담당을 하게 되었고.”
그 말에, 생도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번져나간다.
실습 평가라는 말에 걱정을 내비치는 생도들도 있는 것 같고.
또, 오히려 기대를 하는 것 같은 생도들도 보였다.
그러던 와중에, 누군가 교수에게 묻는다.
“실습 평가는 어디에서, 무슨 내용으로 진행됩니까?”
그 질문에, 존 교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위치는 어둠숲, 내용은…”
만사 귀찮다는 듯한 표정은 어디 가고, 그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생존이다.”
“예?”
몇몇 생도들이 당황해서는 되묻는다.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웅성거림이 커진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내 기억으로, 2학년 중간고사 대체 실습 평가는 올해 새로 생긴 것이니까.
부모님이나 형, 누나에게 들은 바도 없으리라.
거기에, 그 내용.
남쪽의 베어른 섬, 거기에 위치한 그 악명 높은 어둠숲.
거기에 생존이라는 단어 선정조차 참으로 암울하다.
“이게 갑자기 무슨…”
방금까지 실습이라는 말에 기대를 표하던 생도들조차 불만을 털어놓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 우리들에게 존 교수가 말한다.
“참고로 수학여행도 겸해서, 실습 이후에는 옆의 루테른 섬에서 휴식을 취할 거다.”
그 말에도, 학생들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루테른 섬이라면 휴양지로 나름 이름이 높은 곳이었으나.
그 직전, 베어른 섬에서의 실습이라는 이야기가 너무 강렬했기에 말이다.
그건 그렇고.
아까 분명 존 교수가 이 실습 평가를 담당했다고 했었지?
나는 순간 의심을 했다.
혹시나 귀찮은 일을 도맡게 되어 기분이 나빠진 존 교수가.
홧김에 우리를 어둠숲에 몰아넣고, 자기는 루테른 섬에서 쉬면서 우리가 고통받는 모습을 구경하려는 것은…
‘에이, 설마.’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고로, 장소 선정은 내가 했다. 니들이 잔뜩 구르는 동안, 나는 최선을 다해서 루테른 섬에서 쉬고 있겠다.”
“아, 교수님!”
진짜였냐!
“원망하려면 이딴 일을 나한테 맡기신 총장님을 원망하고. 참, 실습 평가 역시 파티별로 진행된다.”
그 말에, 나는 눈을 찡그렸다.
스승님이 내 파티에 들어와 주시겠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원은 한참 부족했기에.
“내가 잠깐 확인했는데, 이 반은 파티 상태가 개판이더만. 최대한 빨리 해결해라.”
여기까지 말하고서, 존 교수는 칠판에 커다랗게 ‘자습’이라고 적었다.
“그러면, 본 교수는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그가 교실을 나가고, 생도들은 다시 웅성거리며 떠들기 시작했다.
“제자야! 제자야!”
아까까지 내게 대꾸조차 하지 않으시던 스승님이 나를 붙잡고 흔든다.
“여행이란다! 바다! 휴양지! 해변! 기대되지 않냐!”
“으어어어… 네, 그렇네요…”
내 목소리가 잔뜩 흔들린다.
아무튼, 흥분한 스승님이 내 몸을 흔들게 놔둔 채로.
나는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이번 어둠숲에서의 실습 평가.
이건, 베로니카 엘트윈의 구원 이벤트이다.
“후우… 어떡할까.”
처음 그녀들에게 배신당하고, 파티에서 추방당했을 때.
나는 이제 그녀들을 신경 안 쓰고, 혼자서 잘 살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말이지.
예를 들어 엘린 니디아의 구원 이벤트 같은 경우, 내가 진짜로 신경을 꺼도 문제가 없다.
허나 베로니카의 구원 이벤트는.
‘내가 포기하면, 샐리가 죽잖아.’
흑색 마탑으로 파견을 간 적색 마탑의 마법사.
동시에, 스칼렛 마르슈와 함께 베로니카의 부모 같은 존재.
이 세계는 현실이니, 이제 그녀도 NPC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이다.
그러니, 그대로 죽게 둘 수는 없는데…
심지어 그냥 죽는 것도 아니다.
이번 이벤트의 실패 결과는.
베로니카가 자신의 손으로 샐리를 죽이고, 결국 망가지는 비극이니까.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까지 해결해야 할까.
그냥, 샐리만 몰래 빼내?
과연 가능할까?
아니, 그것보다도 정석대로 성공하지 않으면 보상도 못 얻는데.
여전히 스승님이 내 몸을 흔드시는 채로.
나는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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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이런 망할 년들이!”
레오 엡실트가 외친다.
주변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오는 파티원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이를 박박 갈았다.
발단은, 아까 존 교수가 말한 실습 평가였다.
물론 실습 평가까지는 아직 시간이 제법 남았으나, 어쨌든 파티 활동의 문제도 있고.
존 교수가 말을 꺼낸 김에 파티 문제를 해결할 참이었다.
레오는 우선 평소 자신의 편의를 봐주던 이안 덱스터 교수를 찾았다.
레오의 아버지인 엡실트 공작이 경고한 바가 있었으나.
이안 교수에게 따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은 것인지, 교수는 레오가 원하는 대로 파티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레오는 자신의 원래 파티원들을 찾았다.
성녀야 당연히 그와 같은 파티에 들어가겠다 말을 했지만.
문제는 다른 이들이었다.
당연히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던 베로니카가 거절을 했다.
“하, 내가 미쳤어? 그럴 생각 없으니까 꺼… 아니, 미안. 파티에는 못 들어가겠네.”
당장 꺼지라고 소리를 지르려던 베로니카였으나.
안 그래도 자신 때문에 자금난을 겪고 있을 마탑과 스승님이 생각나서,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여기에서 레오의 심기를 거슬렀다, 자신 때문에 엡실트 가문에서도 적색 마탑과의 거래를 끊으면 큰일이니까.
그러나, 베로니카로서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한 것이었으나.
자존심이 강한 레오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거절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다음은 펠리체 안스베르크였다.
그녀에게 가기 전에, 레오는 잠시 고민을 했다.
최근 귀족 사회에서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는 것이 안스베르크였다.
특히, 그 중심에는 펠리체 안스베르크가 있었고.
과연 그런 펠리체 안스베르크를 자신의 파티에 넣는 것이 맞을까.
격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고민을 했으나, 결국 그는 펠리체에게로 갔다.
아무튼 1년 동안 같이 파티 활동을 했고, 또 자신은 관대했으니까.
지금 최악의 상황에 몰린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면, 그녀가 감사해하며 자신에게 복종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레오의 예상과는 달리.
펠리체 안스베르크조차 자신의 제안을 거부했다.
“병신 같은 년! 기껏 생각해서 기회를 줬더니! 하여간에, 이렇게 멍청하니까 그 꼴이 났지.”
베로니카에 이어 두 번째 거절로 잔뜩 기분이 나빠졌고.
또, 적색 마탑이 뒤에 있는 베로니카와는 달리 펠리체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녀에게 폭언을 쏟아낸 레오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펠리체에게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약간 오싹하기까지 해서, 레오는 분통을 터뜨리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녀에 이어서, 레오는 다음으로 아이네를 찾았다.
원래, 파티에는 허드렛일을 맡을 평민도 하나쯤 필요하니.
그리고 그 자리에서, 레오는 세 번째로 거절당했다.
짜악!
머리끝까지 화가 난 레오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조차 신경 쓰지 않고 아이네의 뺨을 올려붙였다.
그러나 방학 전보다 훨씬 우울해진 분위기의 아이네도, 펠리체처럼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혼자서 화를 내는 레오였다.
뭐, 아직 제안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 남았긴 하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결투가 끝나고 난 직후, 루이가 자신에게 했던 말.
‘루이 놈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만…’
문제는, 물약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과 가문의 사람.
그리고 엘린이 전부였다.
그랬는데, 루이 놈이 물약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어쩌면 엘린이 임무 중에 루이 놈에게 걸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엘린 그녀는 그 사실을 모르고.
그런데, 만약에 루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진짜로 엘린이 배신을 한 것이라면?
그가 고민을 하던 사이.
어느새, 마침 그가 생각하고 있던 엘린 니디아가 레오의 곁으로 왔다.
“무슨 일이지?”
레오가 짐짓 차갑게 묻는다.
엘린은 이빨을 꽉 깨물었다.
레오가 다른 파티원들에게 파티에 들어오라고 제안을 하고 다닌 것.
거기에, 자신에게만 제안을 하지 않은 것까지 전부 알고 온 그녀였다.
겨우 하등한 인간 따위에게.
그리고, 특히 그 인간 중에서도 최악의 남자에게 비굴하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했지만.
엘프들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
엘린은 너무나도 비참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고서 레오에게 애원했다.
“레오…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실패하지만 않았어도, 그럴 일은 없었을 텐데…”
“갑자기 뭐지?”
모른 척 묻는 그에게, 엘린이 부탁한다.
“제발, 저를 파티에 끼워주면 안 될까요…?”
아까까지의 일로 자존심에 타격을 입은 레오에게, 역시나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엘프가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제법 기분이 좋았다.
‘그래, 가까이 두고 감시하면 되잖아?’
속으로 그리 생각하는 레오였다.
뭐, 그렇다 해도 그녀가 애원하는 것은 더 보고 싶으니.
바로 허락할 생각은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