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2 기숙사 앞의 불청객
저녁, 식당에서 나오면서.
“잘 먹었다, 제자야!”
스승님이 말하신다.
“이제 배도 채웠으니, 수련을 하러 가자꾸나.”
“에…”
나는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딱히 다른 할 일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고.
“스승님, 오늘은 개학 첫날인데 그냥 쉬는 것이…”
그냥, 귀찮아서 말이다.
그러나.
“갈! 고수의 경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거늘! 솔직히 말하거라, 제자야.”
그녀가 내게 삿대질을 하며 캐묻는다.
“방학 동안에 내가 말했던 대로 매일같이 수련을 했느냐?”
“크흠.”
나는 헛기침을 하고서, 아카데미 숲 쪽 방향으로 그녀를 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하… 어서 하시죠, 수련…”
그녀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지만, 나는 그 시선을 살살 피했다.
“흐음…”
“어서 갑시다!”
잠시 뒤.
우리는 아카데미 숲 안의, 평소 연습을 하던 공터에 도착했다.
이제 그녀도 산에서 내려왔으니, 연무장을 써도 되겠지만.
아무래도 아무에게나 가르쳐주는 것이 아닐 텐데, 남들 보는 데에서 수련하는 것은 그녀가 꺼려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럼, 어디 한번 펼쳐보거라.”
스승님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는 내게 말한다.
저 표정,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제대로 못한다면 내 머리를 따악 소리가 나게 때리거나, 아니면 냥냥펀치를 날리겠지.
나는 집중을 해서 암영신보를 보였고.
이윽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흠… 뭐,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구나.”
평가에 가까스로 통과한 것 같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학 동안에 바쁘긴 했지만, 보법의 연습을 아예 놓지는 않았다.
제대로 배우면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 물건이니까.
물론, 그녀의 당부대로 매일 연습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렇지만, 아직 한참은 부족하다. 잘 보거라, 이것이 네가 배울 다음 단계니까.”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녀가 내게 보법을 선보인다.
아니, 그것은 겨우 보법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대단한 것이었다.
그녀가 발을 움직이기를 잠시.
그녀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사라지고.
다시 그녀가 나타난 곳은, 내 뒤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오싹했다.
“대박…”
내가 중얼거렸다.
심지어 이건, 게임에서는 배울 수 없는 단계였다.
“확실히 이거면, 강적의 앞에서도 몸을 숨길 수 있겠네요.”
이전에 스승님이 한 말을 떠올리며 말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
내 눈에는 전혀 안 보였는데?
아니, 뭐 나를 강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스승님이 이전에, 기척을 숨기려면 말이다. 숨소리는 물론이고 움직임, 심지어는 신체의 마나… 아니, 내공까지 전부 죽여야 한다고 했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도 아까 들은 마법 수업 때문인지, 이제 마나라고 부르는 것일까.
“방금 보여준 것은 조금 다르다. 내공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전신을 내공으로 덮는 것이야.”
그녀가 내게 원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음 차단, 인식 저해, 빛 흡수 등과 같은 은신 마법을 전신에 뒤집어쓰는 것이지.”
그 말을 듣자, 나는 지난번에 얻은 고양이 가면을 떠올렸다.
한마디로, 그 가면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말이네.
“물론 그게 끝이 아니다. 진정한 고수는 내공의 흐름을 알아볼 수 있는 법이기에, 초식을 발동하는 동시에 내공의 움직임을 주변 환경에 맞춰야 한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저게 가능한 건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법을 발동해서 움직여야 하기에 그 마법을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끝까지 들은 나는, 결국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이제 더 이상 보법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수준이잖아요!”
“이것으로도 아직 부족하다. 말했듯이, 강적이라면 내공의 흐름으로 네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니.”
전에, 그녀가 말했었지.
암영신보를 끝까지 익힌다면, 그 어떤 강적의 앞에서라도 몸을 숨길 수 있을 것이라고.
…대충 0.1초 정도.
뭐, 고수들의 세계에서는 그 차이가 승패를 가르겠지만.
아직 나는 그 정도의 위치는 아니고.
아무튼, 우선은 방금 본 것을 체득하는 데에 집중해야겠지.
그리고, 그러려면.
“자! 연습이다, 제자야!”
“네에…”
요즘 들어 격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나, 너무 열심히 살고 있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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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서 해가 떨어지고, 숲이 캄캄해졌을 무렵.
“오늘은 여기까지!”
“허억, 허억…”
나는 그대로 뻗어버렸다.
마나를 너무 많이 쓴 탓인지, 머리도 조금 지끈거린다.
밤하늘에 휘영청 뜬 달을 올려다보며, 스승님이 내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내일 보자꾸나.”
“예, 스승님. 잘 가세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인사를 하던 나는,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나 내가 그녀를 미처 잡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아니, 기숙사로 갈 거면 어차피 나랑 같이 움직여야 하지 않나?’
뭐지.
화장실이라도 급했나.
근데 생각해 보니까, 방금 사라진 방향은 기숙사 쪽이 아니었던 것도 같고.
내일 물어보기로 마음먹은 채로, 나는 기숙사로 향했다.
땀을 잔뜩 흘린 덕에 상쾌한 기분이면 좋겠다만.
전신에 마법을 발동한답시고 마나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 머리가 아픈 상태다.
아무튼, 그래서 빨리 씻고 침대에 눕고 싶었건만.
이 상냥하지 못한 세계는 어째서 내 휴식을 이리도 전력으로 방해하는 것일까.
남자 기숙사의 앞에는, 불청객이 하나 있었다.
그 불청객은 건물 입구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웅크린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불쌍해 보였다.
측은함이 들 정도로.
그치만 그건 그거고.
빨리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통과해 기숙사로 들어가려 했다.
물론, 실패했지만.
“잠깐만, 루이!”
그 불쌍한 모습의 불청객, 베로니카 엘트윈이 나를 붙잡는다.
“말했잖아, 사과할 생각 없다고.”
“그, 그게 아니야! 잠깐이면 되니까, 이야기 좀 해! 아니, 해주세요!”
음, 전보다는 조금 공손해졌군.
그렇지만 말이다.
“싫어.”
“제발, 루이!”
그녀는 이제 아예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놔!”
“못 놔!”
“미친년아, 바지 벗겨진다고!”
“벗겨지기 싫으면 이야기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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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결국 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고, 아카데미 공식 노출증 변태가 되지 않기 위하여.
나는 잠시 자리를 옮겨 베로니카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듣고, 적당히 욕을 박고 떠날 생각이었으나.
베로니카의 첫마디는 나를 벙찌게 만들기 충분했다.
“루이, 지금까지 진짜 미안했어. 저번에 한 것 말고도, 따로 제대로 사과해야 할 것 같아서…”
그녀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평소의 그 자존심 강하고 싸가지없던 베로니카가 하는 말이라기에는, 너무 믿기지 않았으니.
그래서 나는 결국 그녀의 긴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그 결과가 이거다.
나는 그녀의 앞에서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는 중이고.
베로니카는 내 앞에서 꼭 풀죽은 개처럼 내 눈치만 보는 중이었다.
‘진짜, 할 말이 없네.’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이야기라.
나는 우선 그녀의 말을 되짚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처음부터.
“일단, 네가 나한테 했던 짓들은 전부 장난이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항상 웃으면서 넘겨서, 괜찮은 줄 알았다고.”
“응…”
“씨발, 말이 되냐!”
처음부터 빡친다.
“그래, 1학년 초에는 그랬었겠지! 근데, 나중에 가서는 내가 계속 짜증 내고 그만 좀 하라고 그러지 않았었냐?”
소리를 질렀더니, 지끈거리던 머리가 더 아파온다.
두통에 얼굴을 찡그리자, 그녀가 몸을 벌벌 떤다.
“……”
“입이 있으면 말을 좀… 에휴, 아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서.
“그리고 너도 레오 놈을 싫어했는데, 엡실트 가문이 마탑의 고객이라 숙이고 들어갔다고?”
베로니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뭐 이거는 이해가 된다.
엡실트 가문이 마탑의 고객이라 숙이고 들어갔다는 부분 말고.
속으로는 레오 놈을 싫어했다는 부분이 말이다.
애초에, 제정신이 박혔다면 레오 놈을 좋아할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치면, 제정신이 아닌 놈이 아카데미에 몇 있는 것 같기는 하다만.’
아무튼, 다른 건 이해가 가는데…
“너, 항상 나랑 레오랑 비교하면서 나를 욕하지 않았었냐?”
나를 가장 화나게 만들었던 일 중에 하나가 그거였다.
베로니카는 꼭 죄를 지은 것처럼…
‘죄 지은 거 맞지, 뭐.’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건 왜 그랬는데.”
“그게에…”
그녀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한다.
“그, 그것도… 그냥 장난… 네 반응이 재밌어서… 절대, 절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어! 맹세할게! 나는 당연히 레오보다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
“하…”
그녀의 말은, 내 한숨 소리로 끊겼다.
“아까부터 하는 말이, 전부 장난이었다는 거네? 내가 그렇게 힘들어 하는 걸 봤으면서도 말이지.”
내 목소리는, 누가 듣기에도 차가웠다.
베로니카가 몸을 움찔한다.
“너는 그냥, 나를 친구가 아니라 장난감 비슷한 걸로 생각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