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53화 (53/69)

EP.53 고양이 세수

“아, 아니야! 절대 아니야!”

고개를 저으며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그녀.

그 모습이 너무 처절해 보여서, 하마터면 믿을 뻔했으나.

‘적당히 당했어야 믿든 말든 하지.’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아니긴 뭐가 아냐. 그리고, 네가 다른 사람들한테는 나한테 하는 정도로 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그거야… 너랑 제일 친했으니까…”

진짜, 가슴이 답답하다.

여기서 그녀의 행동이 장난이 맞는지 따지기에는 끝이 안 날 것 같았으므로.

나는 우선 이건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 뭐 그건 일단 그렇다 치고.”

“그렇다 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아니야!”

“어디서 목소리를 높여!”

“미안…”

아직 중요한 건 한참 남았다.

“나를 추방시킨 것도 장난이었다고?”

그녀는 이번에는 진짜로 할 말이 없는지, 꼼지락거린다.

그 모습이 답답해서 다시 한숨을 내쉬자, 베로니카가 화들짝 놀라며 외친다.

“자, 장난이라기보다는 요즘 너랑 사이가 조금 안 좋아진 것 같아서…”

“그래, 누구의 ‘장난’ 덕분에 말이지.”

그녀가 고개를 더 숙인다.

“그, 그래서… 아까도 말했다시피… 네가 부탁하면 추방에 반대할 생각이었어!”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올 정도다.

그래서 나는 이걸 따지기보다는.

“아니다, 뭐. 솔직히, 이건 나름 고맙게 생각하니까.”

“응…?”

내 대답에, 베로니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다가.

이윽고, 무슨 착각을 한 것인지 얼굴이 조금 밝아진다.

“아, 아니야! 당연한 거지! 내가 설마 진짜로 널 추방하겠…”

“뭔 말이람. 안 그래도 니들 데리고 파티 활동하는 거 짜증 났었는데, 내가 그냥 때려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아, 아아…”

베로니카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뭐… 지금 와서 사실은 추방에 반대할 생각이었다나, 말해봤자 믿기지도 않지만 말이지.”

“정말이야, 믿어 줘!”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 와서 뭘.

“내가 너랑 같이 파티 활동하면서 얼마나 즐거웠는데!”

“즐거웠겠지. 나를 장난감 비슷한 걸로 생각했던…”

“진짜, 진짜 아니야! 맹세할게, 루이!”

그녀가 그렇게 말해도, 큰 감흥은 없다.

“다시는, 다시는 안 그럴게!”

“응, 알았어.”

내가 그리 대답하자, 베로니카의 표정이 다시 조금 밝아지는 듯하다.

“고마워! 다시는…”

“어차피 앞으로 남남으로 지낼 텐데, 그럴 기회도 없겠지만 말이야.”

“뭐…?”

베로니카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한 것 같다만.

내 입이 다시 열리는 게 더 빨랐다.

“그리고, 결투에서의 일 말이지…”

내가 그 일을 입에 꺼내자마자, 베로니카는 사색이 되었다.

“그것도 진짜로 몰랐어!”

내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그녀가 소리치듯이 변명한다.

“정말이야, 루이! 찾아보면 알겠지만, 우선 일반 스크롤을 만든 다음에 그걸 저주 스크롤로 바꾸는…”

그녀가 필사적으로 무언가 마법에 관련된 지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적당히 듣다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건 알겠어. 근데, 네가 그걸 하필이면 결투 직전에 말한 이유는…”

“루, 루이 네가 먼저 사과를… 미안…”

그래도 부끄러운 것은 아는지, 그녀가 고개를 숙인다.

얼굴도 붉어지고, 목소리도 기어들어가고.

‘설마 저게 연기는 아니겠지…?’

그렇게 조금의 의심을 하면서.

“너, 진짜 뻔뻔하네.”

“미안…”

결투 당시의 일도, 그녀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레오 놈이 베로니카한테 일반 스크롤의 제작 부분만 맡기고.

저주 스크롤로 만드는 과정은 혼자서 했다면, 베로니카가 모르는 것도 이해가 간다.

어차피 그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았기에, 레오의 부탁을 들어줬다는 것도 납득은 되고.

처음부터 사실을 말해줄 생각이었는데, 내 사과를 기다렸다는 것도 뭐…

베로니카의 성격을 생각하자면, 의외로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후우…”

나는 작게 키득, 웃었다.

뭐, 그래도 사과는 해 주러 왔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늦은 것 같기는 하다만.

내 앞에 서서, 대답을 기다리며 내 눈치를 보고 있는 베로니카에게.

나는 입을 열었다.

“그래, 베로니카. 우선은 잘 들었고 말이지.”

“응…”

“근데, 전부 장난이었다. 그럴 의도는 없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이 말이잖아? 딱히 증거도 없고.”

“그, 그게에…”

나는 그녀가 무언가 말하기를 기다려줬지만.

딱히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베로니카도 잔뜩 고민을 하지만.

결국 자신이 방금 한 이야기의 본질은 그게 전부라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나로 말하자면…

모르겠다, 저걸 믿어줘야 할지.

근데, 내가 저걸 믿든 말든.

어차피 내가 할 행동은 바뀌지 않을 것 같았기에, 나는 의외로 간단하게 결론을 냈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베로니카.”

“으응?”

“네가 방금 한 말들, 전부 믿을게. 솔직히 말해서, 너랑 전에 같이 놀던 건 나도 좋았었고…”

“지, 진짜…?”

베로니카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에.

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줬다.

“고마워, 루이! 나, 앞으로는 절대…”

그녀는 기쁜 것인지,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근데,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 믿어 줄 테니까 말이지, 사과도 받았고…”

베로니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전부 깨끗하게 정리됐으니까, 앞으로는 남남으로 지내자.”

“므, 뭐?”

“어차피 이제는 같은 파티도 아니고. 너를 볼 때마다, 기분 나쁜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아서 말이지.”

“자, 장난이지, 루이? 하하…”

“그러니까, 사과는 받아 줄 테니까. 앞으로는 내 앞에 이렇게 나타나지 말아 줘.”

“잠깐만, 루이!”

무언가 소리치려고 하는 그녀에게 나는 말했다.

“미안하다며? 그러면 좀 부탁할게.”

그리 말하고서, 나는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베로니카가 내 옷 소매를 잡는다.

“가, 가지 마…”

그녀가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부탁하지만.

“놔.”

그 말에, 그녀는 결국 손을 떨궜다.

“흐윽… 훌쩍!”

뒤편에서 베로니카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다시 내 기숙사 방으로 향했고.

방으로 돌아와서, 아까 흘린 땀으로 몸이 찝찝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찝찝한 기분을 털어내고자, 우선 씻었다.

따뜻한 물로 씻으니, 그나마 기분이 괜찮아지는 것 같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는 아까 방 한편에 둔 검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고민하기를 잠시.

“에휴, 오늘은 좀 쉬자.”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나는 검술 연습은 내일로 미루고,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그러자, 아까 만났던 베로니카의 모습이 계속 머리에 떠올랐다.

특히, 그녀가 훌쩍이던 모습이…

“에이, 씨!”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장 이번 이벤트부터가 문제이기는 하다.

이번 이벤트를 클리어하려면 베로니카가 있는 편이 낫다.

제법 높은 마법 지식을 요구하니까 말이지.

근데, 또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베로니카가 방해가 되기도 하는데 말이지.

내 머릿속으로 갖가지 시나리오들이 돌아간다.

‘몰래 들어가서 샐리만 빼내는 건, 역시 불가능하려나.’

더럽게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혹시나 걸린다면 지금 내 실력으로는…

“아, 진짜!”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머리를 붙잡고 침대에서 뒹굴었다.

진짜로 정석대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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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좋은 아침이다, 제자야!”

“예, 스승… 님?”

나는 스승님의 모습을 보고서 의아함을 느꼈다.

아니, 왜 어제는 이걸 알아채지 못했지?

너무 익숙해서 그랬나?

그러니까, 내 말이 무슨 뜻이냐면.

지금 스승님의 상태가 상당히 꼬질꼬질했다.

다 해진 교복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솔직히, 조금 더럽…’

왜, 안 씻은 것인가?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물었다.

“저, 스승님…?”

“무슨 일이냐?”

“크흠… 오늘 아침에 씻고 나오셨습니까?”

“제대로 세수하고 왔다!”

고양이 세수…?

어제, 그녀는 분명 기숙사 말고 다른 방향으로 갔었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어디서 씻으셨습니까?”

“늘 이용하던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스승님.”

“응?”

“혹시 기숙사 신청 안 하셨습니까?”

“돈이 없다!”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이마를 짚었다.

참, 그랬었지.

마침, 지나가던 생도 하나가 코를 붙잡고 얼굴을 찡그린다.

“무슨 냄새…”

내가 눈을 부라리자, 말을 멈추고 재빨리 도망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뒤에서 나를 씹는 것도 빼먹지 않고.

‘냄새 거의 안 나는데…’

조금 꼬질꼬질해 보일 뿐이지.

아무튼, 이게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귀족들이 많고, 그게 아니더라도 기숙사 방마다 욕실이 있는 이 아카데미다.

방금과 같은 생도가 또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나는 잠시 이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식사는 내가 사준다지만.

기숙사 신청을 할 돈은 없는 데다가.

황실로부터 포상이 들어온다고 해도, 애초에 학기가 시작했는데 신청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녀를 계속 동굴에서 지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차라리, 몰래 내 방에서 재운다면…’

나는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갑자기 왜 그러느냐, 제자야?”

나를 걱정스런 눈으로 보는 그녀를 쳐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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