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4 푹신푹신한 침대
스승님의 거취에 대한 고민을 하며, 나는 수업 시간을 보냈다.
이번 시간은 역사.
역사학 담당 교수, 글래디스 아일.
그녀가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수업은 하지 말고 간단하게 이야기나 나눠보죠!”
그녀의 말에 생도들이 환호한다.
이번 실습 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
“보자… 이미 존 교수한테 실습 평가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죠?”
“네.”
몇몇 학생들이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고.
“그러면, 오늘은 수업은 없는 대신에 간단하게 베어른 섬의 역사를 알아봅시다!”
이 말을 듣고서, 나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글래디스 교수는 생도들 사이에서까지 유명한 역덕.
‘당황하지 마라, 루이! 이건 글래디스 교수의 함정이다!’
그녀가 말한다.
“그러면, 교과서 192쪽을 펴시고…”
간단하게 이야기만 나눈다면서, 왜 교과서를 펴라는 것일까.
“베어른 섬은 그 유명한 칼 대제 시기에 이 루치아 제국의 영토…”
그렇게 시작되어버린 수업.
결국 그녀는 수업 종료 종이 칠 때까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음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진도를 나가죠!”
해맑게 웃으며 교실을 나가는 그녀의 뒤로, 학생 몇이 한숨을 내쉰다.
그 심정, 나도 잘 알겠다.
“후냐아… 끝났느냐?”
내 옆에서 졸음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스승님은, 이미 한숨 푹 자고 난 후였고.
쯧쯧, 저러다가 또 유급하지.
아무튼, 적당히 오전 수업이 전부 지나고.
오늘의 점심에도, 나는 회장님과 스승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좋은 점은, 이제 외롭게 혼자 밥을 먹을 일이 없다는 것이고.
나쁜 점이라면, 차라리 혼자 먹을 때가 마음은 더 편했다는 것이다.
딱히 스승님과 회장님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저, 둘 모두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는 듯하다는 것이 문제지.
그 덕에 우리의 식사 시간은 조용했다.
나와 있을 때에는 잘만 이야기하는 양반들이, 셋이 있으니까 더럽게 어색했다.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채로 밥만 먹고.
그 사이에 낀 나야…
양심적으로, 이 둘보다도 사회성이 떨어지는 듯하니까.
내가 빙의하기 전의 망나니 루이든.
아니면, 내가 빙의한 후의 루이든 말이다.
거기에,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분명 어제는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아이네는, 또다시 내 주위를 얼쩡거리기 시작했다.
식당 어딘가에서 분명하게 느껴지는 시선의 탓에, 체할 것만 같다.
그렇게 불편한 식사가 끝나고.
오후에도 몇몇 수업이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마수학 수업이었다.
베어른 섬.
특히, 그 안 어둠숲의 식생과 존재하는 마수의 종류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간고사 대신 있을 실습 평가에 대비해, 수업들의 내용도 그쪽에 맞춰지고 있다.
아무튼, 그런 사소한 일들을 제외하면.
내 하루는 오늘도 나름 평온했다.
수업을 전부 끝마치고, 저녁식사도 한 후에.
오늘분의 스승님과의 수련을 마치며 스스로 내린 평가였다.
물론, 계속해서 누군가가 내 주위를 맴도는 듯한 기분이 들기는 했으나.
최소한 내게 달라붙는 베로니카라든가 베로니카라든가 베로니카 같은 건 없었다.
“제자야, 내일 보자! 좋은 밤 되거라!”
그리 말하고서 사라지려는 스승님의 목덜미를 나는 붙잡았다.
“엥? 이건 무슨 뜻이냐?”
“스승님, 동굴에서 주무십니까?”
“그렇다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결정이야, 아까 수업 시간에 계속 고민하며 대충 내리기는 했으나.
그건 그거고, 이걸 입 밖으로 내기 위해서는 제법 많은 용기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아니, 이건 이상한 의미가 절대 아니니까 말이지.’
그렇게 속으로 몇 번이고 자신을 납득시키며.
나는 입을 열었다.
“스승님, 혹시 제 방에서 주무실래요?”
“그, 그건 무슨 의미냐…?”
어째서인지, 스승님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 같다.
어둠 속에서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게,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비록 해는 떨어졌지만, 달이 밝은 밤이라 아예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만…
아니, 이게 아니라.
나는 여기에서 상황이 한층 더 어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스승님이 혹시라도 무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재빨리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아니, 그러니까 혹시 제 기숙사 방에서 같이 생활하실 생각은 없으신가 해서 말입니다.”
무언가 당황해서 말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것도 같고.
“너, 너랑 나랑 같이… 말이냐?”
스승님이 몸을 꼼지락거린다.
젠장, 이건 글렀다.
방금의 부연 설명은 딱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나는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 스승님도 따뜻한 물로 씻으시고, 옷도 세탁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주무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뭐 이상한 뜻이 아니라 말이죠…”
“이상한 뜻이라니! 나, 나는 그렇게 받아들인 적이 없다, 제자야!”
펄쩍 뛰는 그녀.
그건 그렇고.
내 제안을 생각하던 그녀의 눈이, 곧 몽롱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 푹신한 침대…”
동굴에서 사는 자연인 생활이 편한 줄로만 알았더니.
그녀도 역시 문명의 맛이 그립기는 했나 보다.
아무튼, 황홀한 표정으로 내 제안을 생각하던 스승님.
그녀가 곧,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제, 제자야. 그러면 네가 너무 불편하지는 않겠느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 불편하기야 하겠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스승님한테 배우는 게 있는데, 이 정도야 당연하죠.”
이건 진짜다.
그녀가 가르쳐준 것은 굉장히 귀한 기술이다.
거기에, 말은 안 했지만.
아침의 일처럼, 다른 생도들이 스승님을 더럽다고 욕하는 건 다시 보기 싫고 말이다.
그래도 그녀가 내 눈치를 보며 주저하는 기색이길래, 나는 해맑게 말했다.
“자, 그러면 어서 동굴로 가죠! 가서 짐 챙겨야죠, 스승님!”
그리 말하며 앞서가는 내게, 스승님이 평소답지 않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고, 고맙구나, 제자야… 진짜로…”
곧 동굴에 도착해서, 그녀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이내 봇짐을 꾸려서는 나무 막대기에 매달고 나온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참 고전적인 분이시다.
기숙사로 향하며, 나는 그녀에게 주의 사항을 말했다.
“절대 들키시면 안 됩니다. 기숙사에 출입할 때에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아니면 그 은신술을 써서…”
내 거듭되는 당부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 말거라, 제자야! 이 스승님의 은신술은 아카데미 제일!”
과연 그녀의 말대로.
기숙사 건물 입구에서 내 방까지 은신해서 이동한 그녀는, 옆에 있던 나조차 놓칠 정도였다.
그렇게 방에 도착해서는, 둘이 순서대로 씻고.
문제는 의외의 부분에서 생겼다.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하, 아까 푹신푹신한 침대 이야기 나오자마자 눈을 반짝이시던 분이 뭐라십니까.”
“그, 그런 적 없다! 나는 소파에서 잘 테니까! 제자야, 침대는 네가 쓰거라!”
역시 제국, 아니 대륙 최고의 아카데미답게.
일개 생도의 기숙사 방에도 따로 소파가 있었다.
그러니 잠자리는 문제가 아닐 줄 알았는데.
스승님이 격하게 내게 양보하겠다고 주장하는 중이었다.
잠시의 설전 후.
스승님이 첫 번째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제자야, 조금 좁겠지만 같이…”
그리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잔뜩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내 얼굴도 불게 달아오르는 것 같아서, 나는 재빨리 소파에 얼굴을 박고 누웠다.
“아, 제가 먼저 찜했습니다! 알아서 하십쇼!”
“나, 나오거라! 그래도 내가 손님인데, 그렇게 민폐를 끼칠 수는…!”
“집주인이 괜찮다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여기 집주인은 엄연히 말하면 총장 아니느냐!”
“갑자기 뭔 논리입니까, 그건!”
그렇게, 스승님이 내게 달려들어 소파 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하기를 잠시.
결국 우리는 하루씩 번갈아가며 침대를 쓰기로 합의를 봤다.
그렇게 불을 끄고서 소파에 누우니 떠오른 생각.
‘아, 오늘도 검술 연습 안 했네.’
내일 레온하르트, 그 양반이 또 지랄하겠군.
뭐,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도록 할까.
나는 곧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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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베로니카가 혼자서 훌쩍인다.
오늘, 루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울음이 나올 거 같은 것을.
겨우겨우 참다가, 결국 저녁이 다 되고.
혼자 기숙사로 돌아와서야, 울음이 터진 것이다.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고양이 수인 생도가 루이와 함께 다니는 것을 보며.
이전에, 자신이 그와 함께 다니던 것을 떠올리며 더 슬퍼진 베로니카였다.
‘사, 사과는 했는데…’
사과만 하면.
그리고, 그 사과를 루이가 받아주기만 한다면.
그와 이전처럼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베로니카였다.
이제는 그에게 최대한 잘 해주리라 다짐한 그녀였는데.
설마 사과는 받아주니까, 이제 남남으로 지내자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도대체 어떻게 루이와 남남으로 지내라는 말인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새하얘진다.
이대로 루이와 남으로 지낸다니, 너무 끔찍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무엇을 더 해야 루이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계속 훌쩍거리며 자기 방으로 돌아온 베로니카.
그녀는 문 앞을 살피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이전처럼 문틈에 끼어 있을 편지였다.
샐리와 베로니카는 원래 주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베로니카의 방학이 끝나기도 전에 흑색 마탑으로 떠난 샐리.
평소처럼 아카데미로 편지를 보내겠다는 말에, 당연히 개학하고 아카데미에 오면 편지가 있을 줄 알았으나.
이미 개학하고 하루가 지났는데도, 그녀의 편지가 없었다.
지금까지 원래 보내던 날에서 단 하루도 빼먹은 적이 없었던 샐리였다.
그렇기에, 베로니카는 불안감을 느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방으로 들어와, 그녀는 걱정을 담아 스승님에게 편지를 적기 시작했다.
혹시나 샐리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