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55화 (55/69)

EP.55 공자님 말고 선배님

“으그극!”

어딘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파도 제법 푹신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평소 자던 침대에 비할 바는 아니었기에.

몸이 약간 뻐근함을 느끼며, 오늘은 평소보다도 일찍 깼다.

마침 아침의 햇살이 창가로 들어오고.

이윽고 침대에 누워서 곤히 자고 있는 스승님을 비춘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곁으로 갔다.

스승님이 깨지 않게 조심하며, 우선 그녀의 꼬리를 만져본다.

…부드러운 것이, 되게 보들보들하다.

그녀의 꼬리가 흔들린다.

나는 이어서, 그녀의 귀로 손을 가져갔다.

푹신한 고양이 귀를 쓰다듬기를 잠시.

“하읏!”

뭔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움찔거리는 스승님의 모습에, 곧바로 손을 뗐다.

‘깜짝이야!’

설마 깬 건 아니겠지.

방금은 뭐였을까.

뭔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가 꼭 만져보고 싶었다.

왜, 고양이나 강아지를 보면 쓰다듬고 싶은 유혹이 들지 않는가.

그런 비슷한 느낌이었달까…

아무튼, 나는 모른 척 씻으러 욕실로 향했다.

이윽고, 물소리에 스승님이 일어나시고.

다시금 요란스러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

“루이 공자님!”

뒤를 돌아보니, 루시가 있었다.

“아, 루시 영애!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안색은.

솔직히 말해서, 전혀 좋지 않았다.

애초에 집안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안색이 좋을 리가 없고.

거기에 우리 반 생도들이 펠리체에게 하는 것으로 봐서는, 루시도 아마 비슷한 일을 당하고 있으리라.

정도는 펠리체에 비해 덜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 말고도 조금 다른 이유를 의심하고 있었다.

뭐, 루시에게 대놓고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제야 찾아와서 죄송해요. 당장이라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나는 손을 내저었다.

딱 봐도 알겠다.

아마 이번에도 백작부인 쪽이 루시를 막은 것이리라.

어차피 형식적인 사과라든가, 그런 일은 가주들의 선에서 끝났으니 말이다.

나는 그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은 내게 사과하는 그녀를 만류하는 것이었지만.

백작부인이 결정했는데, 루시 혼자서 어쩌겠는가.

나는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가문의 사정은… 많이 어렵나요?”

물론 안스베르크 백작가에 대해서는, 루시를 제외하고는 전부 정나미가 떨어진 후였으나.

아무래도 회장님이 내 공을 공개적으로 치하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됐기에, 조금 신경이 쓰였다.

‘아니, 애초에 그걸 자초한 게 백작부인이지만.’

아무튼, 루시는 힘없이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다른 가문들한테서 도움을 받고 있어요.”

그녀가 말한다.

“참, 저번에는 적색 마탑에서도 지원금이 왔어요.”

“적색 마탑에서?”

나는 의문을 표했다.

“네. 베로니카 엘트윈 선배님이 영지민들의 구호에 써달라며…”

그 말에, 나는 약간 놀랐다.

베로니카가 그랬다고?

뭐 그렇게, 우리는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했다.

“참, 루이 공자님. 이제는 같은 아카데미 생도인데, 편하게 대해주셔도 괜찮아요.”

편하게 대해도 괜찮다고 하지만.

어째서인지 편하게 불러달라고 요구하는 것 같은 느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그녀가 내게 묻는다.

“루이 공자님, 그러면…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어째서인지, 얼굴을 약간 붉히며 이야기하는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내 대답을 들은 그녀가 기쁘다는 듯이 말한다.

“그러면 다음에 봐요, 선배님!”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고민에 잠겼다.

루시가 말한 베로니카의 이야기도 의외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도.

‘역시, 맞겠지? 근데 괜히 자극했다가 잘못되면 큰일인데…’

우선 루시의 일은 천천히 추이를 지켜보기로 결정한 나였다.

---

학기가 시작하고서, 시간도 제법 지났다.

그간 많은 일이… 있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제법 많은 일이 있기는 했으나.

문제는 그 대부분이 사소한 일이었다는 것이지.

물론 이 사소하다는 기준도, 마왕의 침공이라든가 세계를 구한다든가 그런 일들에 비하면 사소하다는 이야기였다.

나에게는 충분히 짜증나는 일들이었고.

우선, 용사 교체의 건에 대해 말하자면…

아직까지 큰 소득은 없었다.

수업을 듣고, 스승님에게 수련을 받고, 레온하르트에게서도 수련을 받고.

그러면서 동시에 도서관까지 뒤지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건만, 아직 건진 건 없었다.

그 외에 내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라면, 펠리체 안스베르크가 있었다.

딱히 그녀가 무슨 일을 벌인 건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꼭 죽은 사람처럼 침울하고 오싹한 눈빛으로 조용히 있었다.

문제는 다른 생도들이었지.

회장님이 장례식에서 한 폭로 이후로, 그녀의 몰락은 예정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아카데미의 생도들은.

이번 일을 빌미로 나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는 않겠지만, 펠리체를 깎아내리는 일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할 이들이었으니.

펠리체를 향한 괴롭힘은 상당히 잔인하고 집요했다.

생도들이 뒤에서 나를 욕하던 건 아무것도 아닐 정도라고 느낄 만큼 말이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싸잡아서 욕하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안스베르크 백작가를 시기하던 몇몇 생도들은, 펠리체의 앞에서 그녀의 아버지를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겨우 가고일한테 당하냐고.

네가 아버지를 죽인 거 아니냐고.

솔직히 말해서, 펠리체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나조차도 심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그런 괴롭힘을 펠리체가 견딜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역시나, 아니었다.

우연찮게 보게 된 그녀의 울고 있는 모습은, 펠리체가 멀쩡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서서 그녀를 위로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만.

나는 약간 고개를 돌려, 펠리체의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책상에는 오늘도 낙서가 가득했다.

안 봐도, 그녀에 대한 조롱이 잔뜩이겠지.

저건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왜냐하면, 나도 작년 초에 당한 일이었으니까.

게임에서는 생략된 것일 수도 있겠으나, 아무튼 루이 발렌슈타인이 그런 일을 당하는 장면은 없었다.

원작에서는 없던 일이 어째서 내게 일어났는가.

그걸 고민하자니,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원작의 루이 발렌슈타인이 워낙에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던 망나니였으니, 무슨 짓을 당할지 몰랐겠지.

애초에 발렌슈타인 가문은 이미 몰락했다고 하지만.

원래 잃을 게 없는 놈이 가장 무서운 거 아닌가?

거기에, 신분으로만 따지자면 루이 발렌슈타인보다 고귀한 이들은 생각보다 많이 없었고 말이다.

제국의 백작은, 그렇게까지 흔한 신분도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그런 양아치 망나니 원작 루이 발렌슈타인에 비해.

내가 너무 얌전하게 있으니까, 이런 짓을 했다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낙서가 가득한 책상을 바라보는 나를 비웃던 놈 하나.

딱 하나를 책상을 들어서 내리찍으니까, 다시 그런 일은 없었다.

…물론 뒤에서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소리는 훨씬 늘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랬던 일을 지금 펠리체가 똑같이 당하는 중이었다.

펠리체가 무슨 짓을 당하든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았고.

이제는 딱히 그녀를 위해 나서 줄 의리도 없었다만.

하필이면 그녀가 당한 짓이 나도 한번 당했던 일이라, 기분이 나빴다.

“크큭, 표정 봐라.”

생도들 몇몇이 펠리체를 보며 비웃음을 내뱉는다.

펠리체의 우울한 표정이 깨지더니, 곧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그걸 놓칠 리가 없는 생도들이었다.

펠리체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묵묵히 낙서를 지우기 시작했다.

그녀가 힘겹게 책상의 낙서를 지우자, 생도들은 그녀가 보는 앞에서 다시금 책상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한다.

그걸 보면서도, 그만하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펠리체였다.

스승님 역시 내게 이야기를 들어 펠리체를 싫어하셨으나.

그런 스승님조차 중얼거린다.

“저건… 조금 심한 거 아니느냐.”

솔직히, 동감이다.

특히 저기에 앞장서서 펠리체를 조롱하고 있는 놈.

저 자식은, 분명 작년에 나한테도 똑같은 짓을 했던 놈이지.

기분이 확 나빠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천천히 펠리체의 쪽으로 향했다.

펠리체가 책상을 닦고 있지만.

생도들은 그녀의 주위에 서서, 낄낄거리며 책상에 욕설을 적는다.

“그, 그만… 멈춰다오…”

펠리체가 작게 말한다.

“하하하!”

“얘 말하는 거 봐!”

“야, 멈추라는데?”

물론, 그녀의 부탁 역시 생도들의 조롱거리였다.

그렇게 낄낄거리는 이들의 사이로, 내가 꼈다.

“완전 웃겨… 어?”

“그렇네. 재밌어 보이는데?”

생도들이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지난번 레오와의 대결 이후로, 한층 더 나를 경계하는 생도들이었다.

아무튼, 내 말을 들은 펠리체가 나를 슬픈 눈빛으로 쳐다본다.

아마, 나 역시 그녀를 조롱하러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려나.

그녀가 몇 번 입을 달싹거리다가, 결국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쾅!

“야, 저번에도 그러더니 정신을 못 차렸네.”

쾅, 쾅!

“PTSD 온다, PTSD. 알아들어, 임마?”

쾅, 쾅!

“내가 저번에 이 짓을 당하고 트라우마가 생겨서, 아직까지 밥도 제대로 못 먹어요. 엉?”

쾅, 쾅!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이딴 짓을 하던 놈의 머리통을 펠리체의 책상에 박았다.

곧, 놈의 코에서 나온 피가 낙서를 적당히 가렸다.

나는 그의 머리채를 흔들면서 말했다.

“이딴 짓은 적당히 하자, 응?”

좋아, 이 정도면 지난번에 책상으로 내리찍은 것보다는 한층 신사적인 해결이다.

이번에는 책상’에’ 내리찍었으니까.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이번에는 회장님한테 부탁할까.

아무튼, 다른 생도들이 놈을 부축하고서는 순식간에 도망쳤다.

결국, 교실 구석.

자리에 남은 것은 나와 펠리체, 둘뿐이었다.

“……”

펠리체는 다시금 입술을 달싹거리지만.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도, 계속해서 망설였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고, 기다려주고 싶지도 않았다.

“쯧.”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 그리고…

감동한 것으로 보이는 눈빛.

그녀가 나를 보는 눈빛이 기분이 나빠, 나는 혀를 차고서는 내 자리로 돌아갔다.

“잠깐…”

장례식 이후로, 펠리체가 처음으로 내게 말을 했으나.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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