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6 여자화장실
아무튼, 수업과 더불어 스승님과 레온하르트에게서 받는 수련.
거기에 도서관에서의 조사까지, 요즘은 잠을 잘 시간조차 부족했고.
교실 한쪽에서 생도들이 펠리체를 괴롭히는 것 역시, 나를 계속해서 거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 이상으로 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것 하나.
1학년 말부터.
정확히 말하자면 내 파티 추방 이후로, 끊임없이 내 주위를 맴도는 백발의 여생도였다.
그래, 아이네 말이다.
하루는 그런 그녀가 짜증나서, 나를 힐끔거리는 그녀를 대놓고 쳐다봤지만.
아이네는 움찔거리더니,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또, 최근 알아챈 것인데.
아이네의 얼굴은 이전보다도 훨씬 초췌해져 있었다.
꼭 무언가 근심이라도 있는 듯한 모습.
어느 정도냐면, 무려 펠리체와 좋은 승부가 될 정도였으니.
사실 방학이 끝나고서, 내 전 파티원들의 꼴은 다들 비슷비슷하기는 했다.
우선, 잔뜩 화난 얼굴로 짜증을 내며 다니는 레오 엡실트.
원래도 약간 신경질적인 성격이기는 했으나, 내게 패배한 후에는 그 정도가 심했다.
생도들에게 괴롭힘을 받는 펠리체는 늘 죽은 눈을 하고서 조용히 있었고.
방금 말했듯이, 아이네도 무언가 근심이 있는 얼굴을 하고 다녔다.
베로니카도 비슷한 것이, 지난번의 사과 이후로도 내게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는 일은 당연하지만, 없었다.
마지막으로, 엘린과 에스더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엘린 역시 최근 표정이 어두웠다.
저건, 아마 맡은 임무가 제대로 안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 내가 레오에게 한 이간질 때문이리라.
아직 레오와 엘린의 관계가 박살나지는 않았다만, 나도 그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뭐, 가능만 하다면 좋겠지만.
원작 게임 지식의 덕에, 엘린이 어째서 레오 같은 구역질나는 놈에게 접근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건 이해할 수 있어도.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전부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이었기에, 현실이 된 그녀들과 친하게 지내려 노력한 나였다.
그러나 엘린이 나한테 하는 것을 보면…
뭐, 그녀도 1학년 초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엘린은 기본적으로 인간들을 깔보고 무시했으니.
그녀가 나한테 보이는 태도 역시, 다른 생도들에게 대하는 것을 보며 어떻게든 이해하려 노력해도.
지난번 결투 당시 그녀가 내게 물약을 먹이려고 한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 에스더만은 유일하게 멀쩡했다.
평소처럼 미소를 지으며 레오에게 매달리는 그녀.
볼 때마다 짜증이 확 솟구쳤다.
그렇게 내 전 파티원들의 대부분이 침울해 있는 와중에.
베로니카는 그날 이후로 다시 내게 오는 일은 일단은 없었고.
펠리체도 그녀를 괴롭히는 생도들이 문제였지, 본인은 조용히 있었던 반면에.
아이네는 나를 계속해서 거슬리게 했다.
수업이 전부 끝나고서나, 주말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도 내 주위에 없었다.
아니, 내 주위에서 얼쩡거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아카데미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침부터 시작해서 저녁 수업이 끝날 때까지.
쉬는 시간이고, 식사 시간이고 계속 내 주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그저 내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으나.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건 정말로 사람 피를 말렸다.
교실에서도 늘 그녀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아카데미 어디에서나.
식당에서도, 연무장에서도, 복도에서도, 정원에서도, 창문에서도, 천장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잠깐만.
화장실?
“이건 아니지!”
콰앙!
나는 화장실 변기 칸의 문을 거세게 걷어찼다.
분명, 분명 봤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흰색 머리칼을 분명 봤다는 말이다!
물론 그게 아이네가 아니라 백발의 남자 생도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알 바냐.
지금 나는 계속되는 스토킹에, 그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다.
거세게 밀려나는 문.
그리고 그 안에는, 내 예상대로 아이네가 있었다.
“이런 미친년아! 어디까지 따라오는 거… 냐…?”
…어라?
너, 도대체 왜 하의를 내리고 있냐.
아이네가 새빨개진 얼굴로 외친다.
“뭐, 뭐, 뭐, 뭐, 뭔가요!”
“아, 아니, 그, 아…”
“나가세요! 빨리!”
나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뒤편을 바라보았다.
어라.
왜 소변기가 없냐.
“죄송합니다아!”
그리 외치며, 나는 재빨리 화장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
잠시 후.
“루이 님, 설마 이런 사람일 줄은…”
아니, 나는 억울하다.
너 때문에 요즘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 정신을 놓고 있다가 실수로 여자 화장실에 들어온 거 아니냐.
거기다가, 화장실에 들어오기 전의 상황은 조금 급박했다.
한시도 빠짐없이 내 주위를 맴돌던 아이네의 기척이 갑자기 느껴지지 않아, 어디에 있는지 정신없이 주변을 살피던 중이었다는 말이다.
결국 그런 상황에서, 실수로 들어온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진지하게 아이네에게 말했다.
“아니, 이건 너 때문이잖아.”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내 말에 발끈하는 그녀였다.
“분명 제가 루이 님을 문틈 사이로 보고 있었지만, 그건 평소처럼 스토킹하는 게 아니라 어째서 여자 화장실에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거였습니다!”
“인정했겠다? 평소에는 스토킹이었다고 인정했겠다?”
“앗!”
아무튼, 나는 당황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 그 스토킹 말이다. 네가 자꾸 내 주위를 맴도는 탓에, 요즘 정신이 없어서 실수로 여자 화장실에 들어오게 된 거라고.”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래!”
나는 당당하게 외쳤다.
이럴 때는 오히려 뻔뻔하게 나가야지.
“그래서, 방금은 네가 화장실에서 나를 스토킹하는 줄 알고 문을 박차느라… 그… 본의 아니게 보게 된 거란 말이다!”
“보신 건가요!”
“아니, 상의로 가려져서 못 보기는 했지만 말이다!”
씨발, 갑자기 자괴감이 든다.
이게 도대체 무슨 변태 같은 대화란 말인가.
적어도 파티 추방 이후로 아이네와 처음 하는 대화가, 이런 식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다.
여전히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빨개져 있는 그녀에게,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된 일이기는 한데… 어쨌든, 미안하다.”
그래도 사과를 할 일이기는 했으니까.
내 사과를 들은 그녀가 대답한다.
“괘, 괜찮아요…”
물론 내가 사과를 한 이유는, 방금 일에 대한 미안함 말고도 또 있었다.
“그러니까, 너도 말 좀 해라.”
무슨 말을 하라는 것인지는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어차피 아이네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내게 할 말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내 곁을 맴돈 것이겠지.
아무튼, 내 말을 들은 아이네가 움찔한다.
원래 파티에서 추방당했을 때, 이제 그녀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아이네의 경우에는, 솔직히 이벤트 때문에 그게 불가능하기도 했고.
추방 직전까지만 해도 나와 친하게 지내던 이였다.
그래도 그녀가 내 추방에 찬성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아이네가 먼저 말을 하기 전까지 그녀에게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녀를 이대로 놔두면 계속해서 거슬릴 것 같아서…
아니, 겨우 거슬리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신경이 쓰인다.
그렇기에 내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그녀에게 말하라고 한 것이다.
아이네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닫았다, 망설이기를 반복했다.
하긴, 파티 추방 때부터 아직까지도 망설이기만 했는데 갑자기 말하라고 해도 어렵겠지.
나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이네가 내 눈을 피하지만, 나는 그녀의 눈만을 노려보았다.
결국 내 무언의 압박에, 아이네가 입을 연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행동에 나는 놀랐다.
‘도게자…!’
그녀가 바닥에 엎드린 채로 소리쳤다.
“죄송해요! 제가 루이 님을 팔아넘겼어요!”
그녀의 행동도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나는 그녀가 한 말에 의문이 들었다.
처음 아이네가 나를 배신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혹시나 레오가 나 몰래 그녀를 협박한 것은 아닐까.
그걸 걱정했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었다면 내게 말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눈을 피하거나 내 주위를 맴돌면서도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녀는 분명히 내게 찔리는 것이 있었다.
애초에 그녀들에게는 신경을 끄기로 했었고.
나를 배신한 사람에게 왜 그랬냐고 구차하게 묻기도 싫었기에, 그냥 있었는데.
대충 비슷한 것을 예상은 했었건만, 나를 팔아넘겼다는 소리는 무엇일까?
솔직히,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네에게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말이지.”
“그, 그러니까 그게에…”
“일어나서 말해, 일어나서.”
여전히 바닥에 엎드린 채로, 고개만 위로 들어 나를 힐끔거리는 그녀에게 말했다.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 아이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 레오가 저한테 와서, 루이 님의 추방에 찬성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계속 싫다고 했는데…”
그녀가 말한다.
레오가 그녀더러 돈을 받든지, 퇴학당하든지 결정을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니, 아무리 엡실트 가문이라도 네 퇴학은 무리야. 그리고, 왜 나한테 먼저 이야기를 안 했어?”
나는 약간의 섭섭함을 담아서 말했다.
“그, 레오가 바로 결정하라고 해서… 그리고 퇴학이 아니었더라도, 저는 그 돈을 선택했을 거예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