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8 레온하르트의 검술 시간
“예. 아이네라고…”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아이네… 아이네라…”
그녀가 아이네의 이름을 입 안에서 굴린다.
“분명 들어본 것 같은데…”
“아, 그…”
내가 미처 설명하기도 전.
“앗! 아이네라고! 그거 혹시 네 전 파티원 아니느냐!”
그녀가 펄쩍 뛰면서 소리친다.
“예, 맞아요.”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너를 배신한 년이다!”
스승님, 주변에서 쳐다봅니다.
나는 우선 방방 뛰는 그녀를 진정시키고서.
아이네의 사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내가 친했다는 것이야 전에 스승님한테 말했으니 아실 테고.
그녀의 언니가 아프다는 사실.
약도, 의원도 소용이 없어서 신전에서 치료를 받으려는데, 그게 또 더럽게 비싸다는 사실.
레오 놈이 퇴학이냐, 돈이냐 결정하라고 협박했다는 것까지 전부 말했다.
사실 아이네의 언니가 아픈 것은 나름 개인사니까, 이렇게 멋대로 말해도 되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사정을 전부 설명하지 않으면 스승님이 끝까지 결사반대를 하실 것 같아서 말이다.
내 설명을 전부 들은 스승님이 중얼거리신다.
“불쌍한 아이구나…”
“그러면, 파티에 들여도 괜찮을까요?”
“음… 제자랑 단둘이 있는 것도 좋았다만… 이대로는 파티 활동이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겠지…”
내 질문에, 스승님이 무언가를 잔뜩 중얼거리신다.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겠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네라고 했었지?”
“예.”
“전에 네 이야기를 들어도 괜찮은 아이였던 것 같고. 사정도 불쌍한데, 그러면 들이자꾸나!”
스승님의 동의도 받아냈다.
세 명이면, 이제 받을 수 있는 과제가 있으려나.
“근데 그 레오 놈은 도무지 용서가 안 된다. 이 스승님이 손을 봐 주면 안 되겠느냐?”
내가 이전에 레오 놈의 이야기를 할 때에도, 늘 비슷한 반응이셨지.
“아무리 생각해도, 저번 결투에서는 네가 너무 자비로웠다! 이 스승님이었다면 팔모가지 한둘 정도는 확!”
“하하…”
“웃지만 말고, 안 되겠느냐?”
“예, 아직은 좀…”
“어째서 자꾸 막는… 잠깐. 방금 아직은, 이라고 했느냐?”
나는 말없이 웃음만을 지었다.
스승님이 그런 짓을 하셨다가, 엡실트 가문에서 보복이라도 들어오면 어쩌시려고.
아직은 때가 아니다.
뭐, 나 역시 저번 결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중이고.
스승님과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교실 앞문이 열리고서 교수가 들어온다.
보자, 이번 시간은…
“반가워요, 여러분! 우리 다 같이 즐거운 역사에 대해서 탐구해 볼까요?”
글래디스 교수님이 들어오신다.
뭐, 솔직히 말해서 헨리 교수님의 마법 강의보다는 재밌으니까.
그러나 이번 시간에는, 나는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렇게 류리케 가문이 1차로 공세를 막아내는 동시에, 제국 중앙군이…”
오늘은 흥미로운 전쟁 이야기였으나.
그녀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와중에, 나는 아까 아이네가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언니가 아프다는 말이지…’
아이네가 아픈 언니 때문에 돈이 필요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물론, 나는 그녀의 언니가 아플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녀의 언니가 훨씬 일찍 아팠다는 것이지.
원작 게임에서는, 2학년 여름축제 이후에 암흑가 스토리가 있다.
그게 바로 아이네의 이벤트.
여름방학 전부터 조금씩 아프기 시작해서, 2학기가 되면 누가 보더라도 병색이 완연해지는 아이네다.
사정을 파악하는 와중에 그녀가 말하기를, 자신의 언니도 똑같은 증상으로 아프다고 한다.
게임에서는 그 정도만 나온다.
그렇기에, 나는 당연히 아이네의 언니 역시 비슷한 시기에 아프기 시작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 훨씬 일찍부터 아팠을 줄은 몰랐다.
‘하긴, 게임에서 전부 알려줄 수는 없었을 테니까.’
내가 게임과 같은 세계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기는 더 이상 게임이 아니라, 현실 세계다.
이번처럼, 게임에는 생략되거나 나오지 않아서 내가 제대로 모르는 일들도 있다는 것을 다시 명심해야겠다.
아니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틀렸다거나.
아무튼, 이걸 미리 알았더라면 아이네를 진작에 신경 써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이네에게 내가 언니의 일을 해결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아이네 역시 나를 굳게 믿고 있는 듯했지만.
큰 걱정은 없다.
그녀들을 고칠 방법은 잘 알고 있으니까.
아이네의 언니 역시, 그때까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아이네의 일은 잠시 머리 뒤편으로 밀어놓고.
우선은 당장 닥친 실습 평가 이벤트부터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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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좋은 밤 되거라, 제자야!”
“아. 저도 그러고 싶은데, 아직 수련할 게 남아서 말이죠.”
나는 스승님에게 검을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참, 그랬었구나. 그 검은 언제 보더라도 신기하단 말이지.”
그녀에게는 이 검에 대해서 전부 설명한 후였다.
물론, 내가 어떻게 이 검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지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녀가 말한다.
“흐암… 그러면 나도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노라!”
길게 하품을 하며 말하는 그녀의 눈은, 이미 졸음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한참 걸립니다. 먼저 주무세요.”
“그럴 순 없… 냥!”
내가 갑자기 그녀를 들어올리자, 스승님이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무슨…”
나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서, 제대로 이불까지 덮어줬다.
“얼굴에 ‘나 졸려요’라고 써 놓고서는 무슨 말이십니까. 먼저 주무세요.”
“아, 알겠다…”
어째서인지, 그렇게 대답하는 스승님의 얼굴은 약간 붉었다.
뭐지, 더운가.
이불을 다시 벗겨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그냥 검을 들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기숙사 방의 불을 끄고.
나는 엡실트 가문의 보검에, 각인된 길을 통해 천천히 마나를 흘려 넣기 시작했다.
이윽고 자물쇠에 열쇠가 맞물리듯이 내 마나가 검의 길을 알맞게 채우자.
묘한 느낌과 함께, 내 몸은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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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세게 휘두르거라! 더 세게!”
“아, 시끄럽습니다!”
나는 내 옆에서 연신 재잘거리는 레온하르트 엡실트에게 소리쳤다.
그에게 검술을 배우며 느낀 사실.
이 양반,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고수다.
뭐, 그야 당연하겠지만.
거기에, 원래 천재는 남에게 가르치는 것을 잘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 인간은 그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엡실트 가문의 비전 검술을 배우면서, 나는 내 검술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뽑자면…
“엡실트의 검술은 패도적인 검술이다! 앞을 가로막는 것은 전부 부숴버릴 기세로 휘두르라는 말이다!”
이 인간, 심히 시끄럽다.
“그딴 유려한 검술은 개나 줘라! 휘두르는 것은 강맹하게! 네놈의 검은 무슨 발렌슈타인 놈이나 쓸 법하구나!”
뜨끔.
‘와, 예리하다.’
아무튼, 그의 말마따나 발렌슈타인과 엡실트의 검은 서로 너무나도 달랐다.
내가 배운 발렌슈타인의 검은 유연하고, 보기에 아름다운 검이었다면.
엡실트의 검은 곧고, 그 기세가 주위를 짓누르는 강인한 검이었다.
만약 이 둘을 전부 배울 수 있다면, 내 검술도 진보하리라.
유려한 검과 강인한 검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근데 말이지.
“허억, 허억… 저, 선조님?”
“겨우 이거 했다고 숨을 헉헉대냐. 뭐, 어디 말해보거라.”
“도대체 언제 다 배울 수 있습니까? 빨리 그 선조님의 힘이라는 것도 받고 싶은데…”
내가 이렇게 매일같이 와서 열심히 수련을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중간고사 기간에 있을 실습 평가.
그 이전에 내 실력을 확실히 키우고 싶어서 말이다.
그 이벤트는, 절대로 호락호락한 난이도가 아니었으니까.
창시자에게 직접 배우는 엡실트 가문의 비전 검술도 분명 대단한 것이지만.
이 기연의 진정한 중요성은 바로 레온하르트에게서 넘겨받을 그의 힘 일부였다.
그것만 있다면, 아마 실습 평가 이벤트도 안정적으로 깰 수 있으리라.
아무튼, 내 질문에 레온하르트가 분통을 터뜨린다.
“네놈 때문이잖냐! 가문 검술이라고는 딱 한 초식밖에 모르는 놈을 가르치느라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구만!”
“아니, 그게 왜 저 때문입니까! 한참 전에 가문 검술이 실전된 걸 저보고 어쩌라고요!”
“아윽, 뒤, 뒷목이… 이런 한심한 후손 놈들…”
레온하르트가 오늘도 뒷목을 잡는다.
참고로, 그에게는 엡실트 가문의 비전 검술이 실전되었다고 적당히 말을 해뒀다.
당연하지만, 나는 엡실트 가문의 비전 검술 따위 모르니까.
그러나 엡실트 가문의 보검을 물려받은 후손이 그걸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렇기에 나는 아예 가문 검술이 실전되었다고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 보검의 힘을 깨운 사람은 몇백 년 만에 내가 처음이었으니 가능한 거짓말이었다.
그러면 첫 초식은 어떻게 알고 있냐는 예리한 질문에는, 딱 그것만 전해졌다고 말했고.
어쨌든, 나는 뒷목을 잡은 그에게 며칠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바를 밝혔다.
“선조님.”
“…또 뭐냐.”
“그 왜, 검술을 전부 배우고 나면 받을 수 있다던 힘 말입니다.”
“그래.”
“그거, 미리 받을 수는 없겠습니까? 왜, 월급 가불하는 것처럼 말이죠.”
“억… 이, 이 미친 새끼가… 내 힘을 가불…”
저 표정 안다.
진짜 어이가 없어서 정신이 나갈 것 같은 표정이다.
나는 그의 주먹이 날아오기 전에 재빨리 외쳤다.
“아니, 미리 힘을 받으면 검술 연습에 도움이 될 것 같… 악! 죄송합니다! 아악! 잠깐! 뼈! 뼈 맞았어요!”
“그냥 죽어라, 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