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64화 (64/69)

EP.64 우연이 아니다

“뭐, 들키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다.”

그렇게 말한 남자가, 순간 고개를 젓는다.

“아니지. 설사 들키더라도, 이번 실험만 성공한다면 적색 마탑 따위는…”

어딘가 음산한 웃음을 흘리는 그였다.

성공만 한다면, 적색 마탑조차 겁낼 필요가 없게 된다.

그렇기에 그들이 일견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제국의 사람들은 흑색 마탑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을 상징하는 흑색이라는 색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과 그들 마탑의 음산한 외견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이 연구하는 마법 때문인지.

사람들은 암암리에 흑색 마탑의 마법사들이 마기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의심을 했다.

물론 아무런 근거가 없는, 그저 편견일 뿐이었다.

만약 실제로 그런 짓을 했다면, 제국에서 가만 있지 않을 것이고.

교단에서, 아니 다른 나라들도 그들을 가만 놔둘 리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흑색 마탑의 마법사들이 사도에 가까운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고.

그들 중 몇몇은 제국의 법이 정한 울타리 안을 넘나들며 아슬아슬한 짓을 벌이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위험한 이들은 여태껏 흑색 마탑 내부에서 스스로 처리했기에, 아직까지 흑색 마탑이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었으나.

과연 이번 대의 흑색 마탑주가 그 당사자가 되었다는 것은 마탑에 있어 행운일까, 불행일까.

마법을 이용한 신체의 강화.

이번 대의 흑색 마탑주가 본래 연구하던 분야였다.

그리고 마탑주가 그걸 연구하던 와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마탑주 본인이 원하던 결과.

그건 마법을 이용한 신체의 강화보다는, 마기를 이용한 신체의 강화에 더 가까웠다는 것을 말이다.

마기를 이용해 신체를 강화한다는 발상은, 사실 대륙의 사람들에게는 제법 익숙했다.

힘을 원하던 자들이 마기에 타락한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흔했으니까.

문제는 두 가지였다.

마기의 힘을 이용하면서, 그 마기에 정신이 오염되지 않는 방법.

그리고, 마기를 사용한다는 것을 숨길 수 있는 방법.

마기의 기척을 감추는 일은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마기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들키기라도 하는 순간, 그들은 대륙 전체의 공적이 되는 거였으므로.

적어도 그들이 충분한 힘을 갖출 때까지, 이 사실을 들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의외로, 마기의 기척을 감추는 방법은 생각보다 쉬웠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흑색 마탑이 쌓아 온 연구 자료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부분은 마기로 인한 타락을 막는 방법이었다.

흑색 마탑주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힘이 될 강력하고 충실한 부하들이지.

마기에 잡아먹혀 피아 구분도 못하고 마구 날뛰는 괴물이 아니었으니까.

일반인은 물론이고 마나를 운용할 수 있는 모험가.

심지어는 마법사를 상대로도 실험을 했으나.

마기를 억제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흑색 마탑주 역시 일세의 천재라고 불릴 법한 자.

마탑주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성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마기와 인간을 연결할 그 중간 단계의 생명체.

그 생명체를 통해 조금 더 인간에게 친숙한 성질로 바뀐 마기를 자신의 부하들에게 이식한다는 것이 계획이었다.

물론 그 상태로도 안정적이지는 않기에, 우선은 팔 아니면 다리 정도를 강화할 예정이지만.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중간 단계의 역할을 맡아줄 실험체였다.

마기에 너무 빨리 타락해버리는 자들은 그 역할을 맡을 수가 없었다.

마기를 받아들이고서 안정된 상태로 만들 때까지, 마기의 침식을 버틸 수 있는 이가 필요했다.

마탑주는 주변의 강한 모험가들, 혹은 기사들.

심지어는 흑색 마탑의 마법사들까지 확인했지만 적당한 이가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샐리를 확인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실험체로써 적합한 이가 샐리, 그녀 딱 하나뿐이었다.

흑색 마탑의 측에서는 파견 마법사 하나 정도는 실종되더라도 충분히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납치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흑색 마탑 측에서 샐리를 납치하는 시기는 원작 게임과 약간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약간 빨라진 것이다.

애초에 샐리는 파견 마법사로서 흑색 마탑 내에서 생활했다.

보안을 위해서 외출은 물론이고 서신까지 확인받던 그녀였다.

그러니 마탑주는 원작 게임에서는 실험의 준비가 전부 끝나고서야 그녀를 납치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방학 동안에 샐리가 베로니카를 보러 적색 마탑으로 휴가를 떠나버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실험은 철저한 극비에 부쳐진 상태였다.

실험이 성공해서 신체 강화를 받은 마법사들을 양산한 상태에서조차도 드러내는 데에는 조심해야 하는데.

실험이 시작되기도 전에 떠들어댈 수는 없었으니.

그런 관계로, 샐리의 휴가 신청을 받은 마법사는 그걸 허가했다.

애초에 자신의 선에서 처리할 일이었으니 말이다.

이후에 그 보고를 받은 마탑주는 초조함에 며칠간 떨고 있었고.

샐리가 다시 흑색 마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를 납치한 것이었다.

참고로 원작 게임에서는 샐리가 방학에 적색 마탑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었다.

이번에 그녀가 적색 마탑으로 간 이유는, 베로니카에게 고민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와 주고받는 서신은 전부 보안을 이유로 검열되는 터라, 사적인 이야기를 세세하게 하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로니카에게 고민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원작에서는 베로니카가 레오를 좋아했지만.

그건 레오가 플레이어블 캐릭터여서 그랬던 것이다.

이 세계에서 레오라는 인간은 베로니카가 혐오해 마지않는 인간이었고.

베로니카가 좋아하는 것은 루이였다.

그러나 루이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기에, 원작에서는 없었던 고민을 샐리가 알아챈 것이다.

그리고 샐리가 적색 마탑으로 떠나자, 흑색 마탑주는 혹시나 샐리라는 유일한 실험체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했고.

원작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그녀를 납치한 것이다.

샐리가 주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혹시나 있을 바깥에서의 의심을 피하고자 샐리를 납치하는 시점은 실험 직전으로 정한 것인데.

조금 의심을 받더라도, 샐리를 놓치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한 마탑주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베로니카가 직접 찾아오고.

동시에, 적색 마탑주가 보냈다는 마법사까지 왔다.

“놈들의 움직임이 불안합니다. 혹시나 실험 전에…”

“걱정하지 마라. 실험체는 이미 옮기지 않았나?”

“예, 얼마 전에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놈들이 아무리 의심해 봤자, 증거는 없다.

놈들이 미쳐서 흑색 마탑에 쳐들어오거나 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어차피 실험체는 이제 여기에 없다.

이미 충분히 은밀한 곳으로 옮긴 후였으니.

“애초에 어둠숲 안에 숨겨진 연구실에…”

똑똑.

남자의 말을 노크 소리가 끊는다.

말을 하던 이가 약간 불쾌한 표정을 짓자, 다른 남자가 재빨리 움직인다.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그렇게 남자가 조심스레 문 밖으로 나가고.

문 너머에서 무언가 말소리가 들리더니, 곧 다시 남자가 들어왔다.

그러나 들어온 남자는 이상하게도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그 물음에, 남자가 약간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방금 밖에서 마법사 하나가 보고한 사실을 말했다.

“헤, 헬론 아카데미에서… 생도들을 데리고 어둠숲에서 실습 평가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뭐야…?”

그가 분노한 얼굴로 되묻는다.

“실습 평가? 그딴 건 들은 적도 없다.”

“이번에 새로 아카데미에서 시행한다는…”

“쯧. 왜 하필이면 이번에, 왜 하필이면 어둠숲이라는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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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숲에서 실습 평가를 진행하는 김에, 적당히 알아보면 되겠군.”

총장, 루이사 팔켄이 중얼거린다.

이 세상에는 우연도 많고, 공교로운 일도 참으로 많다.

그러나 루이가 알던 것과는 달리.

하필이면 이번 년도에 실습 평가가 새로 생기고.

하필이면 그 장소가 어둠숲이고.

하필이면 그 어둠숲에 흑색 마탑의 비밀 연구실이 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존 헤이튼 교수가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실습 평가 장소를 선정했다고 했으나.

애초에 존 교수가 어둠숲을 실습 평가 장소로 고른 것이 총장의 뜻이었으니.

원작 게임의 주인공은 레오 엡실트이다.

플레이어는 레오 엡실트를 조종하기에, 그 외의 시점은 게임에서 따로 보여주는 것 이외에는 알 방법이 없었고.

그렇게 나오지 않은 여러 장면 중의 하나가 루이사 팔켄의 실습 평가 준비였다.

게임 내에서는, 그녀가 움직이기도 전에 레오와 일행이 흑색 마탑의 연구실을 발견한다.

물론, 이건 우연이 맞다.

아무튼, 일이 그렇게 되기에 루이사 팔켄과 관련된 내용은 게임에 나오지 않으나.

지금은 이미 스토리가 상당히 틀어진 상황이다.

과연 이번에도 루이사 팔켄이 움직이지 않을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바뀐 상황이 루이와 일행에게 도움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녀가 책상 위에 놓인 서류 하나를 집는다.

“…참 재미있는 아이야.”

그녀가 집은 서류에는 루이 발렌슈타인의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책상 위에는, 같은 형식의 낡은 서류가 한 장 더 있었으니.

그 서류에는 프란츠 발렌슈타인의 사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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