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5 고블린 토벌
“도착했습니다, 생도님들!”
마부가 경쾌한 목소리로 외친다.
“읏차!”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스승님을 시작으로, 다들 각자의 짐을 들고서 내린다.
마지막으로 내린 나는 마부에게 요금을 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는 저기에서 기다리고 있지요.”
마부가 마을 저편에 보이는 여관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서 술이라도 한잔하려는 것일까.
“네, 부탁드립니다.”
내가 말했다.
“끄으응…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구나.”
스승님이 기지개를 켜며 말한다.
동감이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쪽 세계의 마차는 너무 불편했다.
나 역시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신음소리를 냈다.
“으으으… 힘들었어요.”
아이네조차 고개를 끄덕인다.
펠리체야 뭐, 늘 그렇듯이 가만히 있었고.
솔직히 말해서, 저렇게 늘 침울하게 있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당장 같은 파티인 상황에서, 그녀가 저런 분위기니까 우리까지 덩달아 우울해지는 기분이라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한테 매달리는 것보다야 나았기에, 우선은 가만히 있었다.
“그러면, 어서 움직여서 고블린 따위 후딱 끝내자꾸나!”
“아니, 우선 작전 정도는 짜야죠…?”
“작전이 뭐 필요하겠느냐! 겨우 고블린 따위를 상대하는 일인데!”
스승님이 허리에 손을 얹고서는 당당하게 말한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기는 했다.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우리 넷이 각자 아무렇게나 싸워도 문제는 없으리라.
아이네 정도만 조심한다면 괜찮겠지.
그러나 애초에 이번 과제의 목적은 과제 그 자체가 아니라 미리 합을 맞춰보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각자의 실력이나 전투 방식을 확인한다는 의미로, 대형 정도는 맞추고 움직이죠.”
그리고 내가 곧 깨달은 사실.
‘이거, 구성이 절망적인데?’
검사 둘에 암살자 둘.
유일한 원거리 딜러인 마법사 베로니카까지 빠지니 이 모양이다.
거기에 아이네는 도적, 사실 암살자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실력이고 말이다.
“뭐… 이거는 어쩔 수 없네. 저랑 펠리체랑 정면으로 맞부딪히면, 동시에 스승님이 아이네하고 뒤에서 하나씩 처리해 주세요. 스승님하고 아이네는 도망치는 놈들을 우선해서 부탁할게요.”
이 상황에서는 이게 가장 정석에 가까우리라.
애초에 다른 대형을 생각하기도 어려웠지만.
“혹시 다른 아이디어 있는 사람?”
내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지만,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대형은 이렇게 하기로 하고, 다시 출발하죠.”
“그래, 어서 가자!”
스승님이 앞장선다.
‘뭐, 여기에 베로니카까지 추가되면 조금 나으려나?’
그나마 베로니카는 실력이 있는 원거리 딜러이니.
힐러가 없다는 사실이 약간은 아쉽다만…
솔직히, 성녀하고 같이 다닐 바에야 내 돈 털어서 포션이나 사고 말지.
고블린이 나타난다는 숲으로 이동하며, 나는 나도 모르게 에스더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았다.
에스더 칼트, 교단의 성녀.
내가 이 세계에서 그녀를 보고서 놀란 점은, 그녀의 레오에 대한 태도가 게임과 똑같았다는 것이다.
그게 왜 놀랍냐고?
당연한 일이다.
이쪽 세계의 레오는 정말로 인간 말종이라는 말조차 아까운 놈이었으므로.
게임에서 성녀는 처음부터 레오를 좋아하는 캐릭터로 나왔다.
구원 이벤트 이후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고.
그러나 이쪽 세계의 레오 놈이 하도 쓰레기였기에, 당연히 성녀의 태도도 원작 게임과는 다를 줄 알았다.
그러나 참으로 놀랍게도, 성녀의 레오에 대한 태도는 원작 게임에서나 이 세계에서나 똑같았다.
처음에, 나는 그 모습에 상당한 위화감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도, 그녀에 대해 신경을 끄는 것이 더 빨랐다.
어째서냐면, 그래야 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았으므로.
나와 성녀가 처음 만났을 때에, 그녀는 나에게도 여타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대했다.
그러나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나를 심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징조도 없었고,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으나 제대로 된 이유도 들을 수 없었다.
애초에 내가 보기에는 제대로 된 이유도 없었지만.
비록 그랬어도, 원작 게임에서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는 나였기에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유도 알 수 없고,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너무 힘들었다.
결국 그녀를 계속해서 신경 쓰다가는 나부터 미칠 것 같아서.
에스더는 내가 가장 먼저 포기한 히로인이 되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구원 이벤트는 별개로 생각하고 있었기는 했다.
그녀와 다른 이들이 나를 추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아무튼, 비록 나라는 존재가 끼어들었어도 원작 게임의 큰 줄기는 많이 바뀌지 않으리라 생각을 했지만.
내가 루이가 되었고, 레오는 인간 쓰레기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는 성녀의 태도는 나를 오싹하게까지 만들었다.
엘린의 경우에는, 레오가 어떤 인간이든지 간에 그에게 잘 보여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니 엘린의 태도가 바뀌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엘린은 레오뿐만 아니라 루이에 대한 태도도 바뀌지 않기는 했지만.
그거야 뭐, 원작의 루이나 지금의 나나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하더라도.
문제는 에스더이다.
그녀는 그럴 이유도 없는데, 어째서 인간 쓰레기 레오에게 게임과 다를 것 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인지.
만약 에스더가 나를 그렇게 괴롭히지만 않았더라면.
나도 그녀에게 신경을 끄지 않고 어떻게든 알아봤을 텐데 말이다.
“…제자야.”
다시 말하지만, 그녀에게 신경을 끄지 않으면 내가 못 버틸 것 같았…
“제자야!”
“느, 네?”
깜짝이야.
“도착했다! 무슨 생각에 그리 빠져있는 것이냐?”
“암것도 아임다.”
나는 대충 대답했다.
내가 에스더의 생각을 하던 사이, 우리는 어느새 고블린이 나온다는 숲에 도착해 있었다.
‘도대체 어느새…?’
역시, 에스더는 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여기까지 온 길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군.
“그러면, 들어갈까?”
내가 모두에게 물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는 숲 안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숲이 예쁘네요…”
아이네가 중얼거린다.
그녀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카데미 숲도 괜찮느니라. 혹시 구경한 적 있느냐?”
스승님의 물음에, 아이네가 고개를 젓는다.
“호오, 다음에 내가 한번 구경시켜 주겠노라!”
“앗, 고맙습니다.”
그렇게 떠들던 그녀들에게 내가 말했다.
“이쯤이면 되겠죠?”
“충분할 것 같구나.”
나는 가지고 온 가방에서 작은 자루를 하나 꺼냈다.
입구를 열자, 확 풍기는 혈향.
나는 자루 안에 있는 고깃덩이를 바닥에 쏟았다.
“으으… 뭔가 아깝구나.”
그 소리에 무심코 옆을 보니, 스승님이 침을 흘리며 그리 말하시는 중이었다.
“…아카데미에 돌아가면 고기 사드릴게요.”
“그거 진짜냐! 고맙구나, 제자야!”
내게 감사를 표하고서, 스승님이 수풀 저 너머를 보며 말하신다.
“오는구나.”
스승님이 아이네에게 작게 손짓을 하고, 이윽고 그 둘은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수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발소리와 케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펠리체.”
나는 그녀를 보며 작게 말했다.
펠리체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꺼내고, 나 역시 검을 들었다.
“키에에엑!”
마침내, 역겨운 괴성을 지르며 나타난 고블린.
“그르르… 칵!”
서걱.
나는 가장 앞서 달려오는 놈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냈다.
역시, 괜히 엡실트 가문의 보검이 아닌가.
뭐랄까, 전에 쓰던 검보다 손맛이 좋았다.
“키아아아악!”
고블린들은 지능이 낮다.
어차피 놈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둘.
당연히 달려든다.
방금 놈들의 동료가 하나 죽기는 했지만, 놈들은 그걸 보고서 분노를 불태울 뿐이다.
콰득!
옆을 힐끔거리니, 펠리체가 검으로 고블린 하나를 박살냈다.
하긴, 그녀의 실력이라면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지.
촤악!
“생각보다 많은데…”
달려드는 놈들을 베어내며 내가 중얼거렸다.
뭐, 그렇다고 해서 문제는 없다.
“케르륵?”
그렇게 고블린들을 도륙하기를 잠시.
마침내 놈들도 이상함을 느끼고서는, 무모한 돌진을 멈춘다.
“펠리체, 멀쩡하지?”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딱히 걱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확인은 해야 하니까.
“으, 응… 괜찮다.”
그녀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게 묻는다.
“루이, 그대는… 괜찮은가?”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고블린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놈들의 뒤편에서도 수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키에엑!”
작게 놈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스승님과 아이네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리라.
“크르르…”
촤악!
고블린들이 우리, 그리고 뒤편을 번갈아 두리번거리며 움찔거리고 있기에.
나는 친히 앞으로 튀어나가 몇 놈의 목을 떨어뜨렸다.
“키에에에엑!”
괴성을 지르며, 결국은 달아나는 놈들.
나와 펠리체는 이미 상당한 수를 죽인 후였으니.
달아나는 놈들의 수는 별로 되지 않았기에, 나는 굳이 쫓지 않았다.
애초에 도망치는 놈들의 처리는 스승님과 아이네가 맡기로 했었고.
또 우리 중에서 가장 실전 경험이 필요한 이는 아이네였으니, 양보해야지.
그래도 머뭇거리는 몇몇 놈들은, 내가 재빨리 처리했다.
“후우… 의뢰서에 나와있던 것보다는 약간 많았…”
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무심코 펠리체의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야!”
나는 그리 외치며, 펠리체의 쪽으로 검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