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67화 (67/69)

EP.67 레온하르트의 힘

저번 고블린 토벌 이후로, 우리는 몇 차례 더 과제를 나갔다.

첫 과제를 빼고는 베로니카 역시 꼬박꼬박 우리를 따라왔다.

그녀는 무언가 고민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으나.

저번에 기숙사까지 나를 찾아왔을 때 이후로 주욱 저런 상태였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실습 평가 날은 하루하루 다가왔고.

나는 최대한 열심히 레온하르트에게서 검술을 배웠다.

전에 하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했기에, 요즘은 자유 시간이라고 할 것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실습 평가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비록 만만하게 볼 건 아니고, 무려 어둠숲에서 진행되는 평가이기는 하지만.

대륙 최고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헬론 아카데미인데, 허술하게 진행할 리가 없지 않은가.

혹시나 귀족 생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아카데미로서도 상당히 귀찮아진다.

거기에 이번 실습 평가를 담당한 존 헤이튼 교수도 그 성격과는 별개로 실력은 확실하다.

그러니 안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고.

성적도 내게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검술을 배우고, 실습 평가 이전까지 그의 힘을 받으려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적으로 베로니카의 이벤트 때문이었다.

우리 파티에 스승님이 들어오시기는 했지만.

그녀를 믿고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대비도 해야 하니까.

문제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는 것이다.

게임에서는 지금보다도 단기간 내에 수련을 끝내고, 그의 힘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뭐,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애초에 그 재능충 레오의 몸에, 게임 스토리가 시키는 대로 꾸준하게 수련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원작 게임에서는 훨씬 빨리 끝난 것이겠지.

‘이쪽 세계에서의 레오 놈은 그 재능만 믿고서 수련은 전혀 안 하는 것 같지만.’

물론 나 역시 게임에 나오는 기연을 챙길 수 있는 것들은 전부 챙기고.

수련은 원작 게임에서의 레오보다도 더 열심히 한 것 같지만.

결국 루이 발렌슈타인의 몸이 가진 재능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거기에 엡실트 가문의 검술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도 한몫했고 말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한동안은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런 일도 오늘로 끝이었다.

레온하르트 엡실트에게 수련을 받는 일도, 오늘이 이제 마지막이었으니까.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소파에 누워서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있는 스승님에게 말했다.

“흐아암… 요즘 되게 열심이구나… 피곤하지는 않느냐?”

“엄청요. 그래도 뭐, 이건 오늘로 끝입니다.”

“오, 그거 좋은 소식이구나!”

“엥? 왜요?”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 아니다! 어서 다녀오거라.”

그녀가 이상하게 허둥대며 내게 말한다.

“예, 뭐…”

나는 집어 든 검에 마나를 흘려 넣기 시작했다.

---

“루이 엡실트.”

“예, 선조님.”

나는 지금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서 앉아있다.

평소의 수다스럽고 폭력적이던 그의 모습과는 달리.

마지막 날이라 그런가, 오늘은 제법 엄숙한 모습의 레온하르트 엡실트였다.

그러니 그에 맞춰, 나 역시 오늘은 장난치거나 말대꾸를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지금까지 이곳에 온 놈들 중에, 내 검술을 모른다는 놈은 네 녀석이 처음이었다.”

“하하…”

나는 어색한 웃음만을 흘릴 뿐이었다.

“그리고 또…”

그가 갑자기 헛웃음을 내뱉는다.

“다들 내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기 바빴지, 네놈처럼 싸가지없는 놈도 처음이었고.”

“아하하…”

할 말이 없네요.

애초에 내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으니, 제국을 세운 그 레온하르트 엡실트라고 해도 크게 감흥은 없고.

엡실트 가문의 시조라고 해도, 나는 엡실트 가문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레온하르트가 너무 시끄러운 것도 있었다.

아무튼 나는 싸가지없다고 엄청 맞았으니까, 그걸로 된 거 아닐까.

“뭐 그래도… 솔직히, 그런 놈들보다는 네놈이 훨씬 재밌었다.”

“예?”

“아니, 여기에 한참을 틀어박혀 있다 보니까 말이지. 가끔씩 오는 놈들은 전부 나를 어려워하면서 네, 네 하고 대답하고만 있고. 처음에는 나름 네놈처럼 패기 가득한 놈들도 몇몇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없는 놈들만 찾아왔었지. 반면에 네놈은 나에 대한 존경심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차라리 그 덕에 떠들 인간이 생겨서 더 재밌었던 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 네놈은 또 엄청 오랜만에…”

아, 또 시작이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까, 오늘은 그의 말을 경청했다.

비록 귀에서 피가 날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다.

레온하르트의 말은 한참이 지나도록 이어졌다.

물론, 주제도 처음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고.

“…그래서, 차라리 처음에 아무나 한 놈을 꼬셔서 같이 데리고 들어왔어야 했다, 이 말이야. 이 지루함이라는 게 생각보다 엄청나게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아느냐? 아니, 네놈이 겪어봤어야 알겠지. 네가 할 일이 없어서 몇 년 동안 잠만 자는 그 심정을 알겠냐? 물론 세상의 법칙을 거스르고 불로불사를 시도하는 대가가 겨우 지루함이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까.

나름 후손(가짜이지만)된 도리로 경청하려고 했으나, 어째 이야기가 끝나지를 않는다.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는 했으나.

문제는 저 이야기를 몇 번씩이나 듣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 들었을 때에는 흥미가 생겨서 집중했었지.

원작 게임보다도 훨씬 자세하고, 게임에서 나오지 않은 정보들도 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원작 게임에서 레온하르트 엡실트는 그저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그러니 그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올 필요도 없었고, 실제로 자세히 나오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그에게 실제로 듣는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첫 번째로 들을 때만.

그가 설명하기를,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은 세상과 유리된 공간이라고 한다.

처음 그가 불로불사를 시도했을 때, 의외로 쉬워서 놀랐었다고 내게 말했다.

불사는 몰라도, 불로는 성공했다고 했으니까.

당장 그의 모습이 나보다도 어린 것 같은 소년의 모습이었으니 딱 봐도 성공하기는 했다.

그 말고도, 루이사 팔켄처럼 또 성공한 이도 있었고.

물론 쉽다는 기준도 그런 괴물들의 기준에서 쉬운 것이겠지만.

아무튼.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상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애초에 불로불사는 세계의 법칙을 거스르는 짓.

규칙에서 어긋난 존재인 그는 자신이 가진 엄청난 힘을 이용해서 버텼지만.

결국 비할 이가 없는 그 힘을 가지고서도 세계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은 한계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렇게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되었을 때.

그가 자신의 남은 힘을 모조리 쏟아부어 시공간에 균열을 내고.

그 사이로 만든 공간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그러니 세계와 단절된 이 공간에 존재하는 한, 그는 세계의 규칙의 영향을 받지 않기에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신체를 개조하고.

그걸 다시금 뜯어고치며, 세계의 규칙에 걸맞은 존재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겸사겸사 힘도 모으고, 자신의 후손들도 돕고 말이다.

내가 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던 사이.

어느새 레온하르트가 이야기를 끝마쳤다.

대부분 이미 들은 이야기였지만.

그가 나를 나름 재밌어했다는 것은 오늘 처음 들었다.

‘흠…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래도 다행이다.

아니, 반어법인가?

“그렇다면 이제, 내 힘의 일부를 네게 넘겨주겠다.”

“흐흐, 드디어…”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선조님!”

“방금 중얼거리는 거 다 들었다.”

“앗.”

그가 한숨을 쉬더니, 이윽고 레온하르트에게서 환한 빛이 내뿜어지기 시작했다.

“받아들여라. 아, 참.”

그 빛이 내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며,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나 역시 긴장을 풀며 그 빛에 몸을 맡기려 할 때.

‘아, 참’이라는 어째서인지 불길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파도 참아라.”

“네? 잠…”

화악!

“끄아아아악!”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임마!”

“끄아악! 꺄악! 뜨거워!”

---

잠시 후.

“허억, 허억…”

“쯧, 무슨 계집애처럼 소리를 지르냐.”

“아니, 미리 말이라도 해 주시지…”

“미리 했는데?”

미리 말을 해달라는 소리는 일이 벌어지기 1초 전에 경고해달라는 의미가 절대로 아닌데 말이죠.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겨우겨우 일으켰다.

“아무튼… 어디 써 보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암! 힘을 얻었으면 응당 시험은 해 보아야지!”

나는 검을 들고서,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자세를 잡았다.

그가 내게 충고한다.

“아직 내 힘과 네 마나가 제대로 섞이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아마 둘이 조화를 이루기까지는 한참 걸릴 테니까, 우선은 내 힘을 써 보거라.”

분명,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나는 엡실트 가문의 비전 검술.

그 첫 초식을 휘둘렀다.

방금 그에게서 받은 힘을 담아서.

그리고.

“크으으윽!”

콰쾅!

동굴 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한다.

효과는 확실했다, 문제는.

“끄아아아악!”

내 몸도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것이지.

“흐음…”

레온하르트가 피를 흘리는 내 팔을 관찰한다.

“역시,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인가? 아무래도 네놈은 지금까지 온 녀석들 중에서도 최고의 약골이었으니…”

“그런, 건, 미리 말씀 좀 해 달라고요! 그리고, 그게 끝입니까?”

나는 입술을 꽉 깨문 채로 물었다.

“사실, 그게…”

레온하르트가 실실 웃으며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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