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8 세계 평화
“…네 녀석이 나를 보통 짜증나게 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실실 웃으면서도, 어째 내 시선을 피하는 레온하르트다.
꼭, 찔리는 구석이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방금 네놈이 내 힘을 받아들이면서 아파하는 걸 보니까, 어째 기분이 좋아서 말이지.”
“뭐요?”
이런 미친 사이코패스 같으니라고.
“왠지 그간 받았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내 힘을 너무 많이 집어넣어 버렸지 뭐냐? 아하하…”
하긴, 뭔가 이상하다 했다.
게임에서는 이렇게 아파하는 묘사가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니까, 정리하자면.
내가 지금까지 약간, 아주 약간 싸가지없이 굴었다고.
그거 복수하겠다고 힘을 엄청 집어넣었다는 소린가?
그것도 내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뭐, 업보라고 생각해라!”
“업보는 개뿔이!”
나는 투덜거렸다.
“그거 제대로 사용하려면 고생 좀 해야 될 거다.”
“예, 딱 봐도 그럴 것 같네요.”
우선 그에게서 넘겨받은 힘은 봉인을 해 둬야 하려나.
아니, 그래도 이 힘을 통제하려면 최대한 많이 써 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일 듯한데 말이다.
그래야 내 몸도 어서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딱히 근거는 없는 추측이었다.
“이거 다루는 데에 뭐 충고할 내용이라든가, 없으십니까?”
“그런 거 없다.”
“쳇!”
“아니, 그래도 말이지? 나는 겨우 그 정도 힘도 견디지 못해서 고생한 적은 없으니까…”
“예, 참 잘나셨습니다.”
말은 저렇게 얄밉게 하지만.
아무튼 그에게는 엄청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당장 엡실트 가문의 비전 검술을 그 창시자에게 배웠으니, 내 검술 실력이 월등히 상승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엡실트 검술의 경우, 지금 엡실트 공작가에서도 나보다 잘 다루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거기에, 그에게서 넘겨받은 힘.
당장 원작 게임에서도 이 기연은 아주 중요하다.
성검만큼은 아니긴 하지만, 거의 성검에 비견될 만큼 플레이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기연 중 하나이니.
원작에서 넘겨받은 힘만으로도 그 정도였는데, 레온하르트는 원작 게임보다도 더 많은 양의 힘을 내게 주었다.
비록 나를 골탕 먹이고,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약간의 낯부끄러움을 참아가며 말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잘 안 들린다! 더 크게 말해봐라!”
“아, 진짜!”
그가 웃는다.
나는 어쩐지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레온하르트를 보았다.
게임에서도 그의 힘을 넘겨받은 후에는, 다시 찾아오지 못했었지.
그러나 그건 그거고.
그와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길게 끌기에는, 내 팔이 너무 쓰라리고 아팠다.
이곳에서 다치거나 해도 저쪽 세계로 돌아가면 그 흔적이 남지 않으니까.
평소에는 여기서 잔뜩 수련해도 몸에 차이가 없기에 아쉬웠지만, 이럴 때에는 다행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런 시원섭섭한 감정을 담아 레온하르트에게 마지막이 될 인사를 했다.
“안녕히 계십쇼. 너무 시끄럽기는 했지만, 아무튼 감사했습니다.”
“끝까지 싸가지가 없구나, 네 녀석은.”
그가 피식, 웃는다.
이윽고 내 몸이 어딘가로 끌어당겨지는 느낌이 든다.
레온하르트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오고 벗어날 때마다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 몸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을 때.
나는…
‘아, 젠장. 너무 양심에 찔린다.’
그랬다.
처음에는 그저 챙겨야 할 기연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문제는 원작 게임과는 다르게, 내가 그와 제법 친해졌다는 것이려나.
그에게 내가 엡실트라고 속이고서 검술을 배운 것이, 왠지 그를 등쳐먹는 것 같았다.
지금 이후로는 다시 그를 볼 방법도 없으니.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저, 선조님… 아니지. 레온하르트.”
뒤를 돌아서 저편으로 가고 있던 그가 다시 내 쪽을 돌아본다.
“뭐냐? 마지막으로 한 대 맞고 싶다는 것이냐?”
“제가 전에 조금 거짓말을 한 게 있는데 말이죠…”
이번에는 내가 실실 웃으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이렇게 말을 하는 도중에도, 내 몸은 더욱 흐릿해지는 중이었다.
“거짓말? 그게 무슨…”
“제 이름, 루이 엡실트가 아니라…”
“어이, 잠깐만.”
그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루이 발렌슈타인입니다.”
우뚝, 그가 발걸음을 멈춘다.
휴, 드디어 말했다.
이제 양심의 가책도 전부 더는 느낌이군.
“야, 잠깐만. 너 거기 서.”
눈이 커진 채로, 잠시 내 말을 이해하려는 듯이 서 있다가.
그가 다시 내 쪽으로 향한다.
그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이윽고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이제 퇴장할 시간이다.
“뭐… 그래도 이 힘은 세계 평화를 위해 사용할 예정이니, 너무 화내지는 마세요. 나이도 있으신데, 혈압 조심해야죠.”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더니.
이윽고 내 시야에서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과, 나를 잡으러 달려오는 레온하르트의 모습이 흐릿해진다.
‘어후, 무서워라.’
그가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지막으로 작게 흥얼거렸다.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야, 이 새끼야!”
음, 들었나 보네.
그 외침을 끝으로, 내 시야는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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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나는 작게 숨을 내뱉었다.
스승님은 이미 자고 있으니, 깨우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나는 검을 챙긴 채로, 대충 옷을 입고서는 방 밖으로 나왔다.
레온하르트에게 고맙게도, 방금 얻은 힘.
그건 아무래도 실습 평가 전까지 어떻게든 쓸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습 평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안전하리라.
솔직히, 아까 힘을 사용하고 나서 아팠던 것을 생각하면 다시 겪기도 싫지만.
실습 평가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다.
‘분명 양호실은 24시간 열려있었지?’
나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이 시간이면 아마 아무도 없지 않을까.
레온하르트에게서 얻은 힘의 엄청난 위력도 그렇고.
그걸 쓰고 나서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것은 남에게 보이기 조금 그랬으니까 말이다.
스승님 역시 괜한 걱정을 할 것 같아서 굳이 깨우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레온하르트가 있는 공간과 이 세계의 감각이 조금 다른 느낌이었기에.
과연 이 세계에서 그 힘을 쓴다면 어떨지 빨리 확인하자는 속셈이었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연무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연무장에 오니, 갑자기 펠리체가 떠오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와 밤 늦게 연무장에서 만나 검술 연습을 하던 것이 말이다.
분명, 그때는 그녀하고 어울리는 게 즐거웠던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털었다.
그때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너무 많은 게 바뀌었다.
그때와 같은 감정은, 이제는 펠리체와는 느낄 수 없으리라.
‘결국 발렌슈타인 검술도 다 못 가르쳐주고, 안스베르크 검술도 못 배웠네.’
아무튼, 쓸데없는 생각은 관두자.
나는 연무장 한복판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나는 레온하르트에게 맞아가며 이제는 몸에 새겨진 자세를 잡고.
레오 놈에게서 빼앗은 엡실트 가문의 보검을 들었다.
어째, 엡실트 가문한테는 뭘 많이 받았다.
아낌없이 주는 가문인가.
나는 몸 안에 있는 마나를 조심스레 움직였다.
우선은 나의 것을.
그 다음으로는, 레온하르트에게서 받은 힘을.
“으읏…!”
그저 신체 안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된다.
이것을 밖으로 끌어내 사용하려니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겠지.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샐리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만전을 기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계속 다쳐가면서 적응해야 하려나?”
나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 루이의 신체는, 정말 빌어먹게도 재능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살면서, 이왕 빙의시켜줄 거라면 레오 놈의 몸에 빙의시켜줬다면 어땠을까.
그걸 바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근데 뭐, 그건 불가능하니까.
결국 내가 더 노력을 해야겠지.
그렇게, 약간의 억울함을 담아서.
나는 레온하르트에게서 받은 힘을 사용해, 최대한 강력하게 검을 휘둘렀다.
콰앙!
“끄으으으윽!”
신음을 참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오히려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이 세계에서 힘을 사용하니, 그 반동이 더 강력하게 찾아왔다.
레온하르트가 있는 공간에서 감각이 묘하게 달랐던 것이.
그곳에서는 감각이 더 둔감한 것이었다.
풀썩, 나는 무릎을 꿇었다.
고통, 그리고 그 뒤로 닥쳐오는 탈력감.
그 때문에 더 이상 서 있기조차 무리였으니 말이다.
나는 고통을 참으려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었다.
그나마, 위력은 엄청난 것이 다행이려나.
‘이 상태로는 딱 궁극기잖아.’
근데 문제는, 그 궁극기를 쓰고 나면 일반 공격도 하기 어려운 몸 상태가 된다는 것일까.
나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피가 흐르는 팔을 보았다.
검은 이미 놓친 후였다.
“하아, 하아, 이 망할 몸뚱이…”
누구에게 향하는지 모르는 원망을 내뱉고 있었을 때.
“루, 루이!”
연무장의 입구 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내가 잘 아는 목소리였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로 다시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나를 향해 달려오는 베로니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