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9 같은 반 친구
“무슨… 끄으윽!”
난데없이 나타난 베로니카에 놀라, 무심코 몸을 확 움직이자.
여지없이 찾아오는 고통에, 이번에는 아예 연무장 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그러고서도 고통 때문에 몸을 움찔거렸다.
“루이!”
베로니카가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온다.
“으, 씨이…”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엄청 쪽팔리는데, 아프기는 더럽게 아프고.
몸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를 않는다.
“루이, 도대체 무슨 일이야!”
마침내 그녀가 내 곁으로 왔다.
“괜찮…”
“손대지 마.”
“미, 미안.”
나는 후들후들 떨리는 팔로 지탱하며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봤자 연무장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최대였지만 말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베로니카가 주저하며 내게 묻는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내 팔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것도 아냐.”
나는 대충 대답했다.
레온하르트의 일부터 시작해서, 내가 다루기 힘든 힘을 받았다는 것.
전부 설명한다고 해도 믿기조차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현재 엡실트 공작가가 가지고 있는 위세를 생각한다면, 멋대로 떠들고 다닐 수도 없는 이야기이고.
당장 그들 가문의 보검, 그리고 선조와 숨겨진 힘에 관한 일이다.
함부로 떠들고 다니다가는 진짜로 놈들의 눈이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빼앗으려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로니카는 그걸로 납득하지 못한 것일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잖아! 몸이 이 꼴이 됐는데! 도대체 방금 그건 뭐였어!”
그녀가 소리를 빼액, 지른다.
나름 나를 걱정해주는 것이려나.
아니면, 내가 그녀를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쁜 것이려나.
“뭐야, 처음부터 훔쳐보고 있던 거야? 그것보다도, 애초에 네가 이 시간에 왜 연무장에 있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베로니카는 대답이 궁해진 것인지, 갑자기 입을 다문다.
설마 진짜로 미행이라도 한 것일까.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지, 지금 그게 중요해?”
그렇지만, 그녀도 곧 맞받아친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면 몸이 이 꼴이 되는데! 너, 혹시 금지된…”
“그런 거 아니다. 멋대로 말하지 마라.”
내가 표정을 굳혔다.
“그러면 무슨 일인지 말해 달라고!”
다시 말하지만, 말해봤자 믿을지도 미지수고.
멋대로 떠들고 다닐 만한 일도 아니다.
“내가 왜.”
“아니, 나는 네가 걱정이 돼서…”
“네 걱정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그리고, 멋대로 미행해서 훔쳐보던 주제에 무슨…”
이 상황이 짜증이 나서 조금 심하게 말했다만.
베로니카는 내 말에 상처받은 표정을 짓는다.
“그래! 내가 미안해! 내가 미안하다고!”
그녀가 소리친다.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잠이 안 와서 기숙사 주변에서 산책하다가, 네가 나오는 걸 봤어! 남들이 없는 데에서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조용히 따라가다가, 보게 된 거라구! 흐윽…”
베로니카가 울먹거리면서 소리친다.
“멋대로 봐서 미안해! 훌쩍… 그래도, 난 네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라구!”
“아니, 그, 왜 울고 그러냐…”
생각해 보면, 아무튼 그녀는 내가 걱정이 돼서 달려온 것인데.
그녀가 나를 미행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또 그녀가 말하기 곤란한 걸 자꾸 캐물어서.
내가 조금 예민했던 것 같다.
“그러면 이제 안 물을 테니까, 양호실까지만 데려다줄 수 있게 해 줘. 제발 부탁이야.”
그녀가 피로 물든 내 생도복을 보며 말한다.
나는 울상인 베로니카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가, 도움을 주는 쪽이 제발 부탁한다고 하는 것은 뭘까.
“……”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던 베로니카.
그녀가 내 옆에 나란히 서며, 내게 말한다.
“자. 부, 부축해 줄게, 루이…”
“필요 없… 아윽!”
그건 싫어서, 혼자서 일어나려 했지만.
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 어서!”
결국, 나는 베로니카에게 팔을 두른 채로 기대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으, 응.”
짜증나게도, 옆에서 보는 베로니카의 귀는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진짜 짜증나게도, 나 역시 그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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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양호 선생님은 내 꼴을 보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생도, 무슨 일이지?”
“아하하… 그게 말이죠, 수련을 하다 보니 어쩌다…”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에휴… 조심 좀 하지.”
그녀는 한숨과 함께 내 치료를 시작했다.
잠시 뒤.
“외상은 치료했지만, 아직 안까지 전부 나은 것은 아니니 당분간은 조심하도록.”
“네, 감사합니다!”
나는 양호 선생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말대로,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몸은 여전히 아팠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제는 적어도 피가 안 나고 쓰라림도 사라졌기에 아까보다는 괜찮았다.
몸이 여전히 아프다고 해도, 아까처럼 혼자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도 아니었고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서, 양호실을 나섰다.
양호실 문 바로 밖에는 베로니카가 걱정하는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으… 괜찮아?”
“응.”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아직 다 나은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그걸 말할 필요는 없었으니.
잠시, 우리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고마워.”
내가 작게 말했다.
설마 레온하르트에게서 받은 힘을 쓰는 것.
그 반동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에, 만약 혼자였으면 조금 곤란할 뻔했다.
베로니카에 대한 내 감정과는 별개로.
오늘은 분명 도움을 받았으니, 감사는 해야겠지.
“아, 아냐… 당연한 일인걸. 내가 너한테 했던 일들이 있으니까…”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루이.”
내 반응이 없자, 베로니카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네가 나한테 아직 화나있는 건 알아. 나, 내가 했던 짓들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으니까… 쉽게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도 이제는 알고.”
베로니카가 고개를 푹 숙이고서, 손을 꼼지락거린다.
“저번에 네가 사과를 받아준다는 말이 진짜 사과를 받겠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내 행동이 겨우 사과만으로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도 이제 알아.”
…조금 늦게 깨달은 것 같지만 말이다.
“아까,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미행했다고 했잖아. 그거, 지금 해도 될까?”
솔직히, 그녀에게 당했던 짓들은 아직까지도 치가 떨리지만.
오늘은 분명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루이. 전에 네가 남남으로 지내자고 했었잖아. 앞에 나타나지 말아 달라고도 했었고.”
“응.”
그녀는, 그걸 전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같은 파티가 되었으니까…”
이안 교수하고 빌어먹을 레오 놈 때문에 말이지.
“네가 나를 차갑게 대하는 것도 알고 있어. 너도 기분이 나쁘겠지. 내가 했던 일들이 있으니까. 그래도…!”
그녀가 내 앞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는다.
설마 그 자존심 센 베로니카가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기에, 나는 굉장히 놀랐다.
“적어도, 적어도 같은 반 친구 정도로만 대해주면 안 될까? 나도 이전처럼 지내고 싶다는 염치없는 말은 하지 않아! 제발, 부탁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간절했다.
“내가 너한테 했던 짓들은 겨우 사과로 끝낼 수 없다는 것도 알아! 그러니까, 네 곁에서 어떻게든 갚을게! 루이, 제발…”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울먹거리는 것으로 바뀐다.
하아, 젠장.
그녀가 나한테 했던 짓들이 전부 장난이었다는 말.
나를 파티에서 추방시킨 것도, 결투 당시에 레오를 도운 것도 전부 사정이 있었다는 말.
그걸 전부 믿더라도, 베로니카에게 당한 일은 쉽게 용서할 수 없다.
그래도, 어쨌든 샐리를 구하는 데에는 베로니카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베로니카가 있어야 샐리를 더 확실하게 구할 수 있으리라, 아마.
그리고, 어차피 그녀와 파티를 하는 것도 실습 평가 때까지만이다.
그 이후에는 알아서 하라고 존 교수도 말했으니까.
전처럼 지내겠다는 것도 아니고, 같은 반 친구 정도로만 대해달라고…
결국, 나는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걸로도 베로니카에게는 충분했나 보다.
긴장이 풀린 것인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그녀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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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베로니카 엘트윈! 이 빌어먹을 년!’
레오 엡실트가 이를 간다.
자신의 전 파티원이었던 펠리체 안스베르크, 베로니카 엘트윈, 그리고 그 평민 고아 년.
거기에 처음 보는 수인 하나까지 루이 놈의 파티에 들어갔다.
그 평민 고아야 얼굴은 제법 반반했지만, 자신의 격에 맞지 않는 이였으니 괜찮다.
그딴 하등한 년이야말로 다 몰락한 발렌슈타인에 어울리겠지.
펠리체 안스베르크는, 주제넘게도 자신이 내민 손을 거부하고서 루이 놈에게로 갔다.
그나마 안스베르크 백작가가 몰락한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아깝지는 않았다만.
아무튼 펠리체 역시 상당히 괜찮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년에게는 자신 대신 루이를 택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그 끝에, 제발 봐달라고 애원한다면 마지못해 받아들일 것이다.
자신은 관대하니까.
그러나 베로니카 엘트윈.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배가 아팠다.
도대체 왜 루이 놈의 파티에?
그게 전부 자신이 멋대로 파티를 짰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레오였다.
아무튼, 베로니카는 비록 귀족 가문은 아니지만.
무려 자신의 아내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기까지 했던 년인데.
레오는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그 분노는 돌고 돌아, 결국 루이에게로 향했고.
어둠숲은 굉장히 위험한 장소이다.
거기에, 실습 평가라는 것조차 이번에 새로 생긴 시험.
혹시나 중간에 사고가 터지더라도,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