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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 옆에 예쁜 애-9화 (9/148)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9화

‘내가 줄 수 있는 보상을 요구해야 할 텐데.’

내심 걱정이 되었다.

이때껏 실프에게 준 보상은 과자 한 개와 꿀 한 스푼 같은 것들뿐이었다.

그런 소소한 것을 소원을 들어준 대가로 내어 줄 때마다, 실프는 일개 미처럼 단것을 품 안 가득 안고 행복 한 얼굴로 정령계로 돌아갔었다.

나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로제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실프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은 듯 로제타의 두 눈이 커졌다.

“응?”

그렇게 큰 힘을 사용했는데 왜 대가를 원하지 않는 것일까?

“왜?”

이해되지 않는 마음에 되물었다. 그러자 실프가 방긋방긋 웃으며 날갯짓 해 눈앞까지 떠오르더니 로제타의 콧대 위에 나비처럼 살포시 기대었다.

-로제타가 기분이 좋으니까 됐어, 괜찮아! 그게 대가야!

“……정말?”

-응!

“정말 꿀 같은 거 안 줘도 돼?”

그 물음에 실프가 아주 잠깐 고민했다.

단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정령이다 보니 더 없을 유혹이었기 때문이다.

-응! 괜찮아! 대가는 충분해!

실프는 아주 잠깐 고민하는 듯했지만, 이내 선심 써 준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이제 돌아가야 한다는 듯 로제타에게서 떨어졌다.

-그럼 로제타! 앞으로도 계속, 계속 기분 좋아지도록 해! 로제타가 웃으니까 정말 좋아!

“고마워, 실프.”

작은 정령이 퐁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로제타는 편안하게 웃고 있는 제 입꼬리가 낯설어 괜히 입가를 만지작댔다.

“그런데 뭐가 충분하다는 거지?”

자신은 아무것도 내주지 않았는데, 실프가 그 큰 힘을 쓰고도 대가를 사양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대체 뭘까.

궁금한 마음에 최대한 여러 가지 방면으로 생각해 보았지만, 여전히 답을 알 수가 없었다.

* * *

거의 쉬지 않고 달려온 덕에 로제타를 태운 마차는 예상보다 훨씬 일찍 에스테스 파크에 도착했다.

‘와…….’

마차에서 내린 로제타는 엄청난 규모의 에스테스 파크 저택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눈에는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크고 넓은 저택은 좁고 허름한 클리프 남작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클리프가의 저택은 이곳의 마구간 정도 되는 크기로 느껴질 정도야.’

그녀가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을 그때, 저택 본채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시종들이 주르륵 내려와 섰다.

“어서 오십시오, 클리프 영애. 에스테스 파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집사 콜린입니다.”

“하녀장 줄리아입니다.”

공작가에서 일하는 하녀장과 집사는 준남작 이상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것과 매한가지다.

로제타는 자신을 마중 나온 집사와 하녀장에게 예의를 차리기 위해 드레스를 넓게 펼쳤다.

그런 뒤 살짝 무릎을 굽히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어요. 클리프 남작가의 여식 로제타 클리프입니다.”

예의 바른 로제타의 인사에 집사와 하녀장의 눈에 놀람의 빛이 스쳤다.

그 뜻을 용케 알아차린 로제타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방금 전 반응으로 이들 역시, 자신에 대한 소문을 이미 들어 알고 있구나 하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하긴. 이미 소문이란 소문은 다 났는데, 이곳 사람들만 모를 리가 없지.’

클리프 남작가의 사생아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지난 15년간 에스테스 공작령에 심심찮은 안줏거리가 되어 오고 있었다.

그러니 집사와 하녀장 역시 로제타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신전에 갈 때마다 날 보고 쑥덕거리는 모습을 많이 봤는걸.’

그나마 로제타가 그 무성한 뒷소문들에 자주 노출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클리프 남작 부인이 내린 ‘외출 금지’ 명 덕분이었다.

남작 부인은 주말마다 신전에 가는 것을 제외하곤 로제타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미모가 남다르게 우월한 탓이었다.

남작 부인은 사람들이 로제타에게 어여쁘다고 칭찬하는 말을 듣기 싫어했고, 그녀에게 반한 남자들이 구애하는 것도 막고 싶었기에 그런 조치를 내린 것이었다.

그래서 로제타의 세상은 지난 15년간 클리프 남작가라는 매우 좁은 지옥이 전부였었고, 마음을 나눌 친구라고는 실프가 전부였다.

안 좋은 옛 기억에 로제타가 쓴물을 삼켰다.

그때, 하녀장이 살갑게 웃으며 말을 붙여 왔다.

“예법에 능숙하시군요. 공녀님께도 좋은 귀감이 될 듯합니다.”

“과찬이십니다.”

줄리아의 감탄에 로제타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사실 로제타는 예의 바름이 몸에 배어 있었다.

예법 수업을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클리프 남작가가 어떤 곳인데, 고작 ‘사생아 따위’에게 큰돈을 들여 예법 선생을 붙여 주겠는가.

그렇다고 로제타가 남작 부인의 행동거지를 보고 따라 해서 습득한 것도 아니었다.

‘빈말로라도 기품 있는 귀부인은 아니었으니까.’

그녀 역시도 궁금했다.

왜 자신의 몸이 귀족의 예법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를.

‘물론 내가 전생에서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많이 읽긴 했지.’

많이 읽었으니 간접 체험으로 체득한 것일 확률이 높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특히나 그녀의 경우는 예법이 몸에 익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옳았다.

만약 자신이 예법을 배운 적이 있다면 그것은 잃어버린 과거에 배웠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모가 가르쳐 준 것일까?’

야만인이라 불리는 파스트국의 사람이 윌셔스 왕국에서 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사는 것은 더더욱 힘들겠지.

그래서 그녀의 생모가 로제타를 클리프 남작가에 보낼 생각으로 일찍부터 예법을 가르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그저 추측일 뿐이라서 속 시원해지지는 않았다.

그녀의 기억은 눈보라 치던 날을 기점으로 뚝 끊겨져 있었다.

때때로 생각나지 않는 과거가 미칠 듯이 답답했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원작에서도 로제타에 대한 서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짬 나면 내가 알고 있는 원작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정리해 봐야겠어.’

바론과 제니스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부수적인 서술 중에서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붉은 머리, 야만인, 그리고 에스테스가와 얽혔으니 4가문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있는 편이 좋으리라.

물론 죽기 전에도 1년 가까이 읽지 않았던 소설이라 기억에 구멍은 많겠지만, 그래도 아예 정리를 안 하는 것보단 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

로제타가 짧게 심호흡하며 웃는 낯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이상해. 나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나를 귀한 아기씨인 공녀의 간병인으로 고용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짐가방은 제게 주십시오. 들어 드리겠습니다.”

풋맨이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며 로제타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로제타는 자신이 들고 있는 낡고 가벼운 가방을 주저하다가 건넸다.

“고마워요.”

하녀장 줄리아가 웃는 낯으로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왔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영애의 방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네, 감사해요.”

하녀장을 따라 막 걸음을 떼려고 하던 순간이었다.

“레이디 클리프!”

누군가 반색하는 목소리로 로제타를 부르며 타닥타닥, 빠르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에구, 공녀님!”

목소리의 주인공을 먼저 알아챈 하녀장이 침착함을 잃고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뛰지 마셔요, 공녀님!”

하지만 그 목소리를 귓등으로 듣는 것인지 타닥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클라리사구나.’

생각보다 빠른 대면에 로제타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시선은 도통 정면을 보지 못하고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뛰는 소리가 그치고 가쁜 숨을 몰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다소곳하게 모으고 서 있던 로제타의 양손이 덥석 잡히더니 그대로 위로 들렸다.

로제타는 너무도 당황해 작은 손에 잡힌 제 손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로 질 좋은 바다색 천으로 만든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레이디 클리프! 이렇게 제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조금 흥분한 듯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손꼽아 기다렸답니다. 오시는 데 불편함은 없으셨나요?”

“아……. 아? 아, 예. 배려에 편히 왔답니다.”

“정말 다행이어요!”

생각지도 못한 환대에 로제타는 연신 얼이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러길 잠시, 마른침을 삼킨 그녀는 예법에 맞춰 인사해야 한다는 생각에 짧게 숨을 들이켰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에스테스 공녀님. 인사부터 드릴게요. 클리프 남작가의 로제타 클리프라고 합니다.”

클라리사에게 두 손을 잡힌 상태라 무릎은 굽힐 수 없었기에, 로제타는 속사포처럼 빠르게 자기소개를 마쳤다.

그런 뒤, 마침내 제 시선을 정면으로 들어 올렸다.

‘……어라?’

하지만 제 눈앞에 클라리사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손은 여전히 잡혀 있는데……?’

그렇다면 키가 조금 더 작단 소린가?

로제타가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렸다. 그제야 달빛같이 빛나는 은발과 푸른 천으로 만든 커다란 리본을 정수리에 얹고 있는 작은 머리가 들어왔다.

‘세상에! 난 영락없이 내 또래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로제타가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제 앞의 클라리사 마리안느 에스테스 공녀를 바라보았다.

무릎 바로 아래까지 내려오는 드레스 길이에, 하얀색 스타킹. 그리고 메리제인 구두. 누가 봐도 눈앞의 에스테스 공녀는 ‘어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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