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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 옆에 예쁜 애-13화 (13/148)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13화

로제타는 문가에 시선을 주었다.

문이 열리더니 그 사이로 빼꼼, 누군가의 얼굴이 쑥 빠져나왔다.

“언니! 저 들어가도 돼요?”

발그레한 두 뺨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클라리사였다.

로제타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따라서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럼. 어서 들어와.”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강아지처럼 쪼르르 제게로 달려오는 클라리사를 보며 로제타는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에스테스 파크에 온 이후로 로제타는 소리 내어 웃는 법을 배웠고, 더 이상 그런 자신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다.

로제타의 대답에 클라리사가 환한 얼굴로 쪼르르 그녀에게로 달려왔다.

“오늘은 내가 먼저 찾아가려고 했는데.”

“앗, 정말요? 1분만 더 기다려 볼걸!”

“다음엔 꼭 내가 먼저 찾아갈게.”

“좋아요!”

클라리사가 웃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예법 따윈 새카맣게 잊은 듯, 로제타가 앉은 의자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듯, 앉자마자 입술을 열었던 그때.

클라리사가 격렬하게 기침을 토하기 시작했다.

“언……, 콜록. 콜록!”

“클라리사!”

로제타가 얼른 그녀의 등을 부드러이 쓸어 주었다. 조금이라도 진정되길 원하는 마음에서였다.

“괜찮아. 천천히, 천천히 심호흡하자.”

클라리사는 심장이 좋지 않았다.

어지럼을 자주 느끼고, 자주 기침을 했기에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그녀에게 동년배인 말동무가 아니라 연상의 간병인이 필요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제 좀 괜찮니?”

“하아, 네.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숨이 차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클라리사가 말했다.

그런 클라리사의 행동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로제타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클라리사, 몸도 안 좋은데 요즘 너무 바쁘지 않아?”

“바빠요. 그래서 너무 싫어요. 언니랑 놀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걸.”

로제타는 습관처럼, 제 다리 위에 기대고 있는 클라리사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 주었다.

피곤해 보이는 클라리사의 얼굴이 마음 쓰였다.

“내가 도와줄 일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말해 줘, 클라리사. 나도 네게 힘이 되고 싶으니까.”

“언니는 존재만으로도 언제나 든든한걸요.”

클라리사가 고개만 빼꼼 들어 로제타와 시선을 맞추고는 배시시 웃었다.

5일 후, 클라리사가 주관하는 파티가 열린다.

「파티를? 하지만 클라리사. 아직 여덟 살밖에 안 되지 않았니?」

「에스테스엔 안주인이 아직 없으니까요.」

파티를 열 거라는 말에 로제타가 놀라서 되묻자, 클라리사가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수도에선 할머님께서 주관하시겠지만, 이곳 영지에선 제가 제일 윗사람이라 제가 해야 한대요.」

얼마 전 클라리사는 할머니인 카밀라 에스테스 대부인으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다.

편지의 내용은, 아무리 요양차 내려갔어도 그렇지 정말 영지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느냐, 에스테스 공녀로서 책무를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가신 가문과 인근 귀족들을 초대하여 사교 활동을 하라는 꾸지람이었다.

그날부터 클라리사는 파티에 초대할 인사들을 선별하고 파티 준비 과정을 살피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아직 여덟 살인 이 아이에겐 벅찬 일일 텐데. 게다가 몸도 좋지 않고……’

로제타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클라리사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얼마간 있었을까.

지친 듯 로제타에게 기대어 손길을 느끼고 있던 클라리사가 쭈뼛거리다가 다시 시선을 들어 올렸다.

“왜?”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로제타가 먼저 부드럽게 물었다.

그러자 클라리사가 머뭇거리듯 잠시 입술을 뻐끔하다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언니. 언니는 정말 파티에 참석하지 않으실 건가요?”

“아…….”

순간 로제타의 얼굴에 미안함이 스쳤다.

에스테스 파크에서 처음으로 주관하는 파티이니만큼, 친동생처럼 아끼는 클라리사의 곁에서 미력하나마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로제타는 일찌감치 불참하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로제타가 속으로 이를 갈았다.

‘망할 클리프.’

이복 오라버니, 이시크가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사교 모임이라고는 칭하나, 사실상 공적인 행사다.

그러니 클라리사의 입장에선 영지 내에서 한 장원을 맡고 있는 클리프 남작가의 사람을 아무도 부르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로제타가 부탁을 하면 초대장을 회수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처리를 해 주었을 테다.

‘하지만 그건 예법에 맞지 않아. 클라리사에게 두고두고 오점이 될 행동이야.’

그래서 로제타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느새 진심으로 아끼게 된 클라리사에게 나쁜 소문이라곤 조금도 따라 붙지 않게 해 주고 싶었다.

로제타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신전에서 보는 것도 싫은데, 더 마주치고 싶지 않아.’

에스테스 파크로 거처를 옮겼으나, 클리프 남작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로제타는 5개월 전 마을 신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 * *

로제타는 독실한 신자인 클라리사와 함께 주말마다 마을의 신전에 방문했다.

클라리사가 처음 로제타를 발견한 곳이 신전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로제타 역시 신자인 줄 알고 제안한 것이었다.

“언니! 같이 신전에 가실래요?”

“신전?”

“네! 예배 드린 뒤 점심은 같이 외식해도 좋고요.”

“그래, 좋아.”

딱히 신앙심이 깊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로제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클라리사와 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많은 것을 같이 해 왔다.

둘은 함께 책을 읽었으며, 친한 하녀들을 모아 낭독회도 열었다.

낮엔 산책을 즐겨 했으며, 때로는 에스테스 뒤편의 호수에서 나룻배를 타며 피크닉을 즐기기도 했다.

그래서 로제타는 신전에 가는 일 역시 클라리사와 가볍게 마을 나들이를 가는 것 정도라고 생각하며 수락했다.

‘신전이야 매주 가던 곳이기도 하고.’

한데 그 사실을 알고 클리프 남작 부인과 이시크가 뻔질나게 신전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너무도 속이 훤히 읽히는 두 사람의 행동에 로제타는 그들을 볼 때마다 입 안의 여린 살을 힘껏 깨물며 화를 참았었다.

‘지난 15년 동안, 평소엔 발가락 하나 디밀지 않았으면서!’

그동안 클리프가에서 신전에 나갔던 이는 오로지 로제타 한 명이었다.

신앙심이 독실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그녀는 일주일 중 단 하루, 고작 몇 시간만이라도 끔찍한 남작가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매주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신전에 나갔었다.

처음엔 우연이겠지 했는데, 그다음 주도, 그다다음 주도, 다다다음 주도 남작 부인과 이시크를 마주해야만 했다.

그들은 예배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저 로제타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클리프 남작가에서 살 적에 그토록 주말만 기다렸었는데.’

지금은 마치 악몽처럼 끔찍하게 싫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리 말을 섞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예배 시간에는 신전에서 에스테스에 내어 준 자리와 클리프가에 내어 준 자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

클라리사와 그녀의 동행인들에게는 가장 앞자리의 상석을 내어 주었으나, 클리프 남작가처럼 한미한 가문은 출입구 쪽과 가장 가까운 말단 중의 말단 석이 배정되었다.

예배가 끝난 뒤, 그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빠르게 돌아가려고 했으나 로제타는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언니, 저 잠시 사제님과 얘기를 나누고 와도 될까요? 다음 분기 기부금에 관해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시네요.”

어지간하면 클라리사 쪽에서 먼저 같이 가자고 권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가자고 말을 꺼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신전 쪽에서 미리 클라리사만 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온 것이려니 싶었다.

“아, 그래…….”

로제타는 자신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클라리사만 내버려 두고 먼저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로제타는 남작 부인과 이시크만이라도 마주치지 말자고 결심했다.

“그럼 난 먼저 마차에 타 있을게. 볼일 보고 오렴, 클라리사.”

“네, 언니. 양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클라리사가 금방 오겠노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며 고사리 같은 손을 휘휘 저었다.

로제타는 그런 그녀를 애써 웃으며 배웅해 주다 완전히 모습이 사라지자 얼굴을 굳히고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에스테스의 마차가 세워져 있는 마구간 쪽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그녀는 제 뒤에서부터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 두 개를 눈치채고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로제타.”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로제타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기어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로제타가 뒤를 돌아보자, 눈빛에 날이 선 남작 부인과 팔짱을 낀 채 건들거리며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이복 오라비 이시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어, 로제타. 오랜만이다?”

재수 없게 느끼한 목소리에 당장이라도 귀를 파고 싶었다.

뒤이어 남작 부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로제타를 힘껏 노려보며 비꼬듯이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로구나.”

하지만 로제타는 대답 없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그저 고개만 까딱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자 남작 부인이 기가 차다는 듯 숨을 토해 내며 짜증스레 내뱉었다.

“아주 기고만장해서는! 에스테스 파크에 살더니, 네가 뭐라도 된 줄 착각하느냐!”

로제타에게 더욱 분노한 남작 부인이 눈에 힘을 주고 부라렸다.

로제타는 두 사람을 얼른 쫓아내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들으라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두 분이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새삼스레 제 안부가 궁금해서 오신 건 아닐 것 같고.”

“너, 정말 말본새가 고약하구나! 내가 네 버릇을 잘못 들였어!”

남작 부인이 낮게 잇새로 올렀다.

“네가 에스테스 파크로 떠난 지 벌써 한 달이다! 얼마나 더 그곳에 머물며 공작가에 폐를 끼칠 셈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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