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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 옆에 예쁜 애-17화 (17/148)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17화

일단 이 골목부터 벗어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속력을 더 내려던 참이었다.

내내 그녀의 뒤를 따라오던 발소리 중 하나가 별안간 빠르게 걷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을 지나쳐 가려나 보다, 그렇게 안심했을 때였다.

“이봐, 너.”

남자가 가까이 와 붙더니 로제타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 돌려세웠다.

“역시 반반하네. 얼핏 봤을 때도 예쁘다 싶었는데.”

히죽 웃는 목소리가 소름 끼쳤다.

“이것, 놔요.”

로제타가 그의 손에 잡힌 몸을 빼내기 위해 거칠게 어깨를 돌렸으나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었다.

“내 이름은 찰스야.”

“안 물어봤으니까, 이것 좀, 놓으라고!”

“하지만 놔주면 그냥 갈 거잖아?”

안 놔주면 정강이를 걷어차서라도 갈 거다!

추파를 던지는 불량배의 목소리가 역겨웠다. 로제타는 이를 악물며 더욱 몸을 비틀었다.

“어이, 그러지 말고…… 응? 얘기만 잠깐 하자고. 한 시간에 1골드씩 줄 테니까.”

“당신한테 팔 웃음과 시간 같은 거 없어.”

“좋아, 그러면 1골드 50실버. 어때? 쏠쏠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때였다.

피식 바람 빠지는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돈이 없어서 쫓겨난 주제에, 1골드가 퍽이나 있겠군.”

다소 경박한 불량배의 목소리와 달리 무게감 있는 중저음의 음성이 들려왔다.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어느덧 지척에 온 그 남자가 로제타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불량배의 손을 덥석 잡고 힘을 주었다.

“으, 윽……!”

그러자 로제타의 힘으로는 결코 떼어 낼 수 없었던 손이 거짓말처럼 떨어졌다.

얼마나 악력이 강한지, 불량배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그 짧은 새 새하얗게 질리기까지 했다.

“으윽! 뭐야, 넌!”

“진심으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묻긴 뭘 물어?”

“하, 미친 새끼. 좋은 말할 때 이거 안 놔? 놔! 내가 누군지 알고……!”

“별로 알고 싶지 않으니까 굳이 설명은 안 해 줘도 되네.”

로제타를 구해 준 남자는 자신이 잡은 사내의 손을 천천히 허공으로 더 들어 올렸고, 이내 꺾듯이 비틀었다.

“아악!”

그런 뒤 로제타와 불량배의 사이를 벌리며, 자신이 그 중간에 끼어들어 그녀를 보호하듯 막아섰다.

“레이디의 의사에 반해 함부로 신체에 손을 댔으니, 부녀자 강제 추행죄지. 현행범인 거 인정하나?”

“크윽. 너 뭐야? 치안대 놈이냐?”

“그건 알 것 없네.”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는 것을 보아, 일단 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불량배의 팔을 꺾은 채로 몇 걸음 앞으로 걸었다.

뒤에서부터 떠밀듯이 하다 보니 불량배도 주춤거리며 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불량배를 앞으로 떠다밀며 거칠게 꺾었던 팔을 놓아주었다.

그런 뒤 다시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 무릎 뒤를 지그시 짓밟았다.

“아아악!”

고통에 울부짖는 불량배의 목소리와 달리, 남자의 음성은 너무나 산뜻했다.

“보통 이렇게 하면 걷지를 못합니다. 체포할 때 제법 유용하죠.”

“아, 네……. 그렇군요.”

로제타가 얼떨결에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그녀에게로 다가온 남자는 불량배를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정중한 태도로 물음을 건넸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아뇨, 괜찮아요.”

로제타의 목소리가 가느다랬다.

상체를 숙이는 그녀의 행동이 어딘가 다쳐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남자가 그녀의 상태를 확인 하기 위해 허리를 살짝 굽혔다.

그에 깜짝 놀란 로제타가 자신의 머리카락 색을 들킬까 봐 더욱 고개를 숙였다.

괜히 자신의 정체를 들켰다가, 신세를 지고 있는 에스테스 공작가에 민폐를 끼치게 될까 염려한 까닭에서였다.

“실례했습니다, 레이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그녀의 기색을 읽은 모양인지, 남자가 사과의 말을 전해 왔다.

“이자는 제가 처리할 테니 먼저 가시죠.”

“치안대에서 근무하시는 분이신가요?”

“음. 뭐,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죠.”

로제타는 주저했다.

차마 고개는 들어 올리지 못했고, 땅끝만 바라보며 말했다.

“저, 그러시면 성함을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나중에 사례하겠습니다.”

“사례는 괜찮습니다. 이런 쓰레기를 정리하는 게 제 일이라서요.”

남자가 고개를 흔드는 모양인지, 바닥에 진 그림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러니 어서 가십시오. 괜히 더 휘말리지 마시고요.”

로제타는 얼굴을 가리고 있는 후드를 두 손으로 꼭 쥐며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짧게 숨을 들이켠 뒤 남자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말 감사하고, 또 죄송해요. 언젠가 귀하를 다시 뵙게 된다면 그때 오늘의 은혜를 갚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보답받은 듯 뿌듯합니다.”

하지만 로제타의 걸음은 도통 떨어질 줄 몰랐다.

도움을 받고서 입만 싹 닫고 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사례를 하는 편이 좋겠어.’

그녀는 환전소에서 바꿔 온 돈이 든 주머니를 서둘러 열었다. 얼핏 동그랗게 생긴 노란 것이 눈에 들어와 얼른 그것을 집어 꺼냈다.

“저 그럼 이거라도 받아 주세요.”

“뭡니까? 그게?”

로제타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그의 손에 노란 것을 덥석 쥐여 주었다.

그런 뒤 후드를 꼭 잡고 꾸벅 인사했다.

“작은 답례니 부디 사양하지 말아 주세요. 그럼 오늘 감사했습니다. 부디 남은 시간, 평온한 하루 되시길 빌어요.”

그런 뒤 로제타는 도도도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리듯 골목을 빠져나갔다.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남자가 주먹을 폈다.

로제타가 두고 간 물건을 본 남자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뭐야?”

그녀 딴엔 금화라고 생각하고 꺼낸 물건은 노란색 카지노 칩이었다.

“이것 참.”

남자가 칩을 위로 살짝 던졌다.

허공에서 공중제비라도 돌 듯 핑그르르 돌며 다시 떨어지는 칩을 날쎄게 잡아채던 그가 콧노래를 부르며 불량배 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쓰레기 더미 위에 엎어져 있는 그의 목덜미를 성의 없이 틀어 쥐어 일으켜 세웠다.

“치안대장은 잘 있으려나 모르겠군.”

* * *

로제타는 골목을 빠져나왔다.

“이쯤이면 괜찮겠지?”

어두웠던 하늘이 밝아지고, 눈앞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비로소 한 숨이 놓였다.

바로 에스테스 파크로 돌아갈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미리 주문해 놓았던 클라리사의 선물을 찾아 돌아가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아까 제게 도움을 준 남자는 단숨에 불량배를 제압했다.

그것을 보면 상당한 실력자인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중간에 불량배를 놓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불안하니, 최대한 빨리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기로 한 로제타는 미리 봐 두었던 가죽 공방으로 들어갔다.

신전에 나올 때마다 들렀던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주문해 놓은 것 찾으러 왔어요.”

문을 밀고 들어가자 귀엽게 딸랑,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 * *

로제타는 클라리사에게 줄 선물을 사 들고 에스테크 파크로 돌아왔다.

마차에서 내리니 집사 콜린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외출은 즐거우셨습니까?”

로제타는 싱긋 웃는 것으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클라리사는요? 일어났나요?”

콜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로제타의 미간이 걱정으로 좁아졌다.

자신이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인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손수 초대장을 적고 계신 중이라 지금 아주 바쁘십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로제타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며 조용히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와 클라리사의 선물을 화장대에 숨기고 막 옷을 갈아입었을 때였다.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클라리사의 얼굴이 빼꼼 나왔다.

“어서 들어오렴.”

로제타가 웃는 낯으로 맞이하자, 클라리사가 쪼르르 달려왔다.

“초대장 작성은 끝났니?”

클라리사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그녀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니. 정말 참석 안 하실 거예요?”

서운한 기색이 역력한 클라리사의 얼굴에, 로제타는 잠시 갈등했다.

그러다 난처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되레 물음을 건넸다.

“내가 그 만찬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네 면이 서지 않게 될까?”

클라리사가 크게 얼굴을 구겼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클라리사가 억울한 목소리로 외치자 로제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저 언니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해서 그런 거지, 제 체면을 차리기 위해서 언니께 참석을 강요하는 게 아니었어요!”

“응, 알아. 오해하지 않았단다. 클라리사.”

로제타는 퉁퉁 부풀린 클라리사의 볼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그저, 내 마음의 문제야.”

아직 어린아이인데도 가끔씩, 로제타는 제 속을 클라리사에게 털어놓을 때가 많았다.

아이는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를 속 깊게 들어 주고 제 일처럼 함께 고민해 주곤 했다.

좋은 친구였다.

“언니, 마음의 문제요?”

“그래.”

로제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그사이 어수선한 기분을 진정했는지, 그녀가 부드러운 어조로 속마음을 꺼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시크가 온다니 참석은 하고 싶지 않아.”

그 순간 클라리사의 작은 손에 힘이 실리더니 동그란 주먹이 쥐어졌다.

‘역시 그놈이 문제였어.’라고 이를 악물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뒤따라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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