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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 옆에 예쁜 애-23화 (23/148)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23화

클라리사가 선창하자, 초대객들 모두 자신이 든 잔을 위로 들어 올리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위하여!”

주스를 한 모금 마신 클라리사는 다시 출입문 쪽에 서 있는 풋맨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전채 요리가 서빙되기 시작했다.

클라리사는 발 받침대에서 내려온 뒤 다시 자신의 의자에 착석했다.

로제타가 살짝 손을 내밀어 그녀를 도와주자, 클라리사가 고맙다는 듯이 눈짓을 해 보이며 웃었다.

곧 두 사람의 앞에, 메인 디시를 먹기 전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가 놓였다.

데친 새우와 문어를 얇게 저민 오이로 감아서 레몬 소스를 뿌려 낸 한 입 크기의 음식이었다.

“요리사의 솜씨가 무척이나 좋군요.”

“칭찬 감사해요.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이에요. 요리사가 좋아할 겁니다.”

모두가 전채 요리를 먹고 난 뒤, 시종들이 능숙하게 빈 접시를 물러 가지고 나갔다.

그런데 그때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시종들이 모두 접시를 내가고 난 뒤, 전혀 예상치 못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술렁임은 출입구와 가까운 말석 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시종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림을 한 남자가 출입구 쪽에 모자를 들고 서 있었다.

검은색 머리카락과 피콕블루색 푸른 눈동자.

남자를 알아본 귀족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남자는 이렇게까지 시선이 집중될 줄은 몰랐다는 듯 잠시 눈을 좌우로 굴리더니, 이내 멋쩍은 듯 웃었다.

그러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제게 인사하려는 귀족들을 향해 ‘쉿’ 하는 입 모양을 하며 검지로 그 위를 꾹 눌렀다.

그러곤 눈짓으로 클라리사를 가리켰다.

그러자 시선이 마주친 귀족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상석에 있던 클라리사와 로제타는 어뮤즈 부쉬를 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에 아직 낯선 남자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만찬회에선 건너편 사람이나, 옆자리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되는 행동도 아니었다.

그때. 남자가 입을 열었다.

“레이디 에스테스에게서 초대장은 받지 못했는데. 참석해도 되겠습니까?”

그 순간, 클라리사와 로제타의 시선이 동시에 출입구 쪽을 향했다.

자신의 빈 양손을 들어 올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능청스럽게 미소 짓고 있는 한 남자를 그제야 눈에 담았다.

‘저 남자는……!’

먼저 그를 알아본 로제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까 정원에서 마주친 그 남자잖아!’

초대를 받고 온 게 아니라고 했는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이렇게 들어와도 되는 건가?

머릿속이 혼란했다.

로제타가 당황해 그 남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옆이자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클라리사가 커트러리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라버니!”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

클라리사의 그 외침에, 로제타의 눈이 더없이 커졌다.

그녀는 동그래진 눈으로 클라리사를 보다가, 다시 문 쪽의 남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가신들을 상대할 적 보여 주었던 애어른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클라리사의 얼굴에 천진난만한 환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테런 오라버니!”

클라리사는 남자의 이름을 재차 부르며 도도도도, 빠른 걸음으로 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

로제타의 시선이 클라리사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다가, 다시 남자의 얼굴에 박힌다.

‘그럼 저 남자가 에스테스 공작? 세상에…….’

로제타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제 입가를 가렸다.

‘어떡해.’

정원에서 보였던 추태들이 밀물 몰려오듯이 떠올라 버렸다.

물론 거기에 로제타의 잘못은 0에 수렴한다.

하지만 못 볼 꼴을 보였다는 생각은 쉽사리 떨쳐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나 어떡해…….’

로제타는 금방이라도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때, 짧은 다리로 열심히 달려갔던 클라리사가 마침내 테런의 앞에 도착했다.

그는 근처에 선 시종에게 들고 있던 모자를 건네주었다.

“오라버니!”

클라리사가 두 팔을 한껏 벌린 채 그의 품으로 뛰어들자, 테런이 어서 무릎을 굽혀 몸의 위치를 낮췄다.

“어이쿠.”

그런 뒤 제게 달려드는 어린 동생을 힘껏 끌어안아 위로 들어 올렸다.

“꺄악!”

순식간에 눈높이가 높아지자 무서웠는지 클라리사가 맑은 탄성을 내지르더니, 이내 테런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안겼다.

“보고 싶었어요!”

“나도 보고 싶었단다, 클라리사.”

남매의 오붓한 상봉 장면에, 만찬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번졌다.

초대받은 대부분의 귀족들은 아이를 낳고, 손자 손녀까지 본 성인들이었다.

그들은 만찬 시작 시, 자신들을 대하던 의젓한 클라리사의 모습에선 대견함을, 그리고 오라비를 향해 뛰어가는 모습에선 사랑스러움을 한마음으로 느끼고 있는 듯했다.

한참을 테런의 목에 매달려 얼굴을 부비던 클라리사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사이 집사 콜린은 시종들에게 명령해, 만찬 테이블의 가장 상석에 테런의 자리를 세팅할 것을 지시했다.

“오라버니,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우리 클라리사가 너무 보고 싶어서 내려왔지.”

사실 내려온 지는 사흘 정도 되었고, 영지 사찰을 하느라 에스테스 파크엔 지금 도착한 것이었지만 그 이야기는 살짝 뺐다.

“정말요?”

클라리사가 홍조 띤 얼굴로 눈을 빛내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테런은 웃음을 터트리며 클라리사의 말에 대한 대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가 매번 보내는 편지만으론 더 이상 그리움을 달래기 힘들더구나. 어디 볼까? 음. 키는 고만고만한 것 같은데 그새 제법 무거워진 같구나. 이곳에서 맛있는 걸 잘 챙겨 먹은 것 같아서 오라비는 기쁘다.”

그 말에 클라리사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제 오라비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오라버니! 숙녀에게 무겁다니요! 실례예요.”

“그렇다면 이거 실례했습니다, 레이디.”

그사이 테런의 자리가 준비되었다.

클라리사는 테런의 품에서 내려와, 그의 손을 잡고 원래의 제 자리로 향했다.

테런은 클라리사를 번쩍 들어 의자에 앉혀 준 뒤, 자신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 테런은 클라리사의 옆에 앉은 로제타와 시선이 마주쳤다.

당황함이 여실히 묻어 있는 그녀의 초록빛 눈동자를 본 테런은 별다른 말 없이 그저 눈짓으로만 인사했다.

정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선 그저 자신만 아는 선에서 덮을 생각인 듯 보였다.

‘다행이다.’

로제타는 감사함을 담아 고개를 보일 듯 말 듯하게 끄덕였다.

혹시라도 그가 예의를 차린답시고, ‘정원에서 많이 놀라셨지요?’나 ‘아까 당황하셨을 텐데 지금은 좀 괜찮으십니까?’ 같은 말을 건네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이 만찬장에 자리를 채우고 있는 손님 중에 로제타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러니 앞뒤 사정을 모르더라도, 그저 그 한마디 말만으로도 억측할 가능성이 높았다.

제 뒤에 또 하나의 꼬리처럼 따라 붙어 다닐 소문이 내심 신경 쓰였는데, 잘된 일이었다.

깨끗하게 손을 닦은 테런은 냅킨을 펼쳐 다리를 덮었다.

“식사 중이었을 텐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끼어들어 미안하오. 나도 식전이라 염치 불고하였소.”

테런의 사과에 가신들이 저마다 입을 모아 대답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각하. 원체 바쁘신 분 아니십니까? 저희야 언제든 각하 얼굴 한번 뵙는 게 소원인 사람들인데, 이렇게라도 뵐 수 있게 되어서 영광이지요.”

“맞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들 그렇게 말해 주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군.”

식사는 다시금 재개되었다.

갑자기 인원이 하나 늘어났지만, 에스테스 파크의 요리사는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훌륭한 음식을 마련해 홀로 내보냈다.

가주의 등장은 만찬회에 더욱 활력을 불어넣었다.

몇몇은 테런을 자주 보기 힘든 만큼 만난 자리에서 일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당분간 에스테스 파크에서 머무를 생각이니, 그 이야기는 훗날 하지.”

그 말에 식사에 집중하고 있던 클라리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반색하며 테런에게 되물었다.

“오라버니! 진짜 여기서 머무르실 거예요? 참말이세요?”

“그래. 왜? 오라비 다시 수도로 갈까?”

그냥 가볍게 되물은 말인데도 클라리사는 붕, 붕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가시면 싫어요. 맨날 바쁘셔서 얼굴 뵐 시간도 정말 많이 없었는걸요. 그래서 머무르신다고 하니 기뻐서 되물은 거였어요.”

테런이 네 마음 다 안다는 듯 따뜻하게 웃으며 클라리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오라버니. 에스테스 파크에 얼마나 머무르실 예정이신가요?”

“으음. 글쎄.”

테런이 스테이크를 썰다 말고 생각에 잠기는 듯 잠시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 이내 멋들어진 미소를 지으며 두 눈을 싱긋 휘었다.

“긱스가 잡으러 올 때까지?”

클라리사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혹시 긱스 경 몰래 오신 거예요?”

“몰래는 아니야. 그냥 도망쳤을 뿐이지.”

테런의 능청에 클라리사가 가볍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뒤 짐짓 엄한 척, 제 오라비에게 훈계했다.

“긱스 경이 또 울었겠어요.”

“응, 크게 울었지.”

“그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가만 보면 오라버니 참 짓궂으세요.”

“칭찬 고맙구나, 클라리사.”

별로 무섭지도 않게 찌릿, 제 오라비를 노려보고 난 뒤, 클라리사는 로제타에게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테런이 등장한 이후부터 급격하게 말수가 줄은 로제타를 걱정해서였다.

“긱스 경은 오라버니의 보좌관이에요. 결혼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집에 못 가고 있어요.”

“그렇군요.”

로제타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고기는 계속 썰고 있는데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이상하리만치 심장이 자꾸만 두근대고 있는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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