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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 옆에 예쁜 애-30화 (30/148)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30화

로제타는 속 시원하게 확답해 주지 않는 테런을 살짝 흘겨보았다.

그러다 뒤늦게 제 행동이 예법에 어긋났음을 깨닫고 서둘러 사과했다.

“어머, 죄송해요.”

“무엇이 말씀입니까?”

“음. 방금 노려본 거요?”

“그게 노려보신 거였습니까?”

테런이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다 이런 자신이 어색해 멈칫했다.

멋들어진 웃음이 어정쩡해졌다.

테런의 성격은 철두철미했다.

하지만 남들 앞에선 주로 유들유들하게 굴었다.

위압적으로 제가 가진 권위를 내세워서 상대가 자신에게 괜한 반발심이 들게 하는 것보다 유하게 구는 편이, 때로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진행하는 것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아주 어린 나이부터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즉, 테런은 필요한 상황에서만 웃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진심으로 웃음이 터져 나오다니.

‘얼마 만이지?’

자신이 너무나도 어색하고 낯설어 테런은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방금 전까지 웃었던 제 얼굴을 가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정말 이상해.’

잘 웃고 다닌다고 한들, 어디까지나 일적으로 만난 사람들에게 한해서다.

행여라도 오해를 심어 줄까 봐, 사교계에서나 어쩌다 마주친 여성에게는 늘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호의를 호감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일 따윈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오늘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이렇게 무장 해제되다니.

스스로도 그런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바짝 세운 신경줄이 느슨해지며 모처럼 편하게 쉬는, 그런 기분이었다.

‘썩 나쁘진 않군.’

테런은 입가를 가린 손을 내렸다.

그런 뒤, 딱딱하게 굳은 입매를 다시 부드럽게 휘어 끌어 올렸다.

“만져 보십시오. 저와 피르에게 적의를 가진 자가 아니면 절대 해코지 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 로제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는 더는 참기 힘들다는 듯, 테디 베어만 꼭 쥐고 있던 손 중 하나를 다시 천천히 뻗었다.

폭신.

그녀의 손이 피르의 털 속으로 쑤욱 들어갔다.

거의 팔꿈치까지 피르의 털에 묻혔다.

피르의 깃털은 너무나도 폭신하고 부드러워, 마치 구름 속에 손을 넣은 것만 같았다.

“어쩜 이렇게 부드러울까요?”

“푸르르릉.”

갑작스레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로제타가 깜짝 놀라며 돌아봤다.

저를 쓰다듬는 그녀의 손길이 마음에 드는지, 피르가 눈을 감고는 고양이처럼 기분이 좋은 듯한 그르렁 소리를 내고 있었다.

“기분 좋니? 어디? 여기 만져 주는 게 좋아?”

로제타는 열심히 손을 움직이며 피르를 만져 주었다.

피르는 더 만져 달라는 듯, 고개와 부리를 더욱더 낮게 만들었다.

그 모습에 테런은 옆에서 웃음을 삼켰다.

‘보통은 경외하기 마련인데, 저렇게 그냥 큰 동물 취급을 할 줄이야. 여러 의미로 신기한 여자군. 그리고 피르 저 녀석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저렇게까지 따르다니…… 처음 보는 일이야.’

로제타도 웃겼고, 피르도 웃겼다.

그때 로제타가 헉헉 숨을 몰아 내쉬며 말했다.

피르의 몸이 너무나도 크다 보니, 거의 온몸을 사용해서 쓰다듬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져 주는 게, 너무, 좀, 힘드, 네요.”

“아뇨. 쉽습니다.”

“네? 쉽다, 고요?”

“예.”

“아하, 노하우가 생기셨나 보다. 그러면, 후, 저한테도 좀, 가르쳐 주실래요? 쉽게 만지는, 방법.”

큼, 큼. 짧은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은 테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그런데 뭐, 방법이라고 할 것도 없이 쉽습니다. 피르는 크기도 조절할 줄 아니까요.”

양팔을 다 피르의 털 속에 파묻은 로제타가 고개만 돌려 테런을 돌아봤다.

그녀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져 있었다.

“정말요?”

테런은 웃음기가 가득 묻은 눈으로 로제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제 말이 영 미덥지 못한가 봅니다.”

“네? 그게 무슨……?”

“제가 뭘 말씀드릴 때마다 영애께선 ‘정말요?’ 하고 되물으시거든요.”

“아……. 실례하였어요. 너무 믿기지 않는 일의 연속이라.”

테런이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직접 보여 드리죠. 영애께서도 조금 멀리 떨어져 계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로제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피르에게서 멀어졌다.

그녀가 이동한 것을 확인한 테런이 이번엔 자신이 자리를 옮겼다.

꽤 멀리 걸어간 뒤 멈춰 선 그는 오른팔을 쭉 편 채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는 손바닥을 하늘로 펼쳤다.

그때까지 눈을 감고 로제타의 손길을 느끼고 있던 피르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피르. 이리 와.”

테런의 말에 피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때마침 부드러운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오더니, 마치 빨려 들어가듯 피르에게로 몰려들었다.

전혀 위협적인 바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제게로 쏠리는 바람을 헤치며, 피르가 커다란 몸을 이끌고 한 발자국 내디디며 날개를 폈다.

제대로 펼친 그 날개는 이 드넓고 큰 에스테스 파크 저택을 모조리 품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했다.

피르가 날개를 펄럭이자, 강한 바람이 불었다.

“으윽.”

로제타는 흩날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 손으로 잡으며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테런의 앞머리도, 옷도 엄청 세게 흩날리고 있었다.

피르의 날갯짓은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몸이 너무도 가볍게 둥실 떠올랐다.

산처럼 큰 푸른 새가 자신을 향해 날갯짓하며 날아오는데도, 테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공작님……!”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를 불렀을 때.

로제타는 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다음 말을 잊어버렸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피르의 몸이 테런에게로 다가갈수록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거센 바람이 점점 잦아든다.

그리고 마침내, 피르가 테런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

신수의 몸은 손바닥보다도 작은 파랑새로 바뀌어 있었다.

저 멀리 서 있던 로제타가 테런에게로 총총 뛰어왔다.

“세상에…… 정말 작아졌네요?”

로제타가 홀린 듯이 테런의 손 위에 앉아 있는 피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뀨?”

“어머. 목소리도 달라진 거야?”

고개를 갸웃하며 귀여운 소리를 내는 피르의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로제타는 그만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로제타는 한 손으로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며, 다른 손의 검지를 폈다.

그러고는 피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짝살짝 쓰다듬었다.

“뀨! 뀨!”

“영애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나 봅니다. 본디 이렇게 수다스러운 녀석이 아닌데 말이죠.”

테런의 말에 로제타가 눈을 가늘게 접어 웃었다.

“다행이네요. 이렇게 귀여운 애가 절 싫어하면 속상할 뻔했거든요.”

“한번 데리고 가 보시겠습니까?”

“그래도 되나요?”

“물론.”

테런이 피르가 앉아 있는 제 손을 내밀었다.

머뭇거리던 로제타가 그 근처에 자신의 두 손을 나란히 붙여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것을 본 피르가 ‘뀨? 뀨?’ 귀여운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길 잠시, 이내 두 발을 모아 콩, 콩 뛰어 테런에게서 로제타의 손 바닥으로 옮겨 갔다.

“어머, 어떡해…….”

로제타는 피르가 제 손바닥에 완전히 올라타자 조심스럽게 제 눈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하지만 피르가 가만히 있는 것은 잠깐이었다.

로제타의 손바닥에 배를 깔고 앉기 무섭게 다시 일어난 신수는 기지개를 켰다.

로제타가 맞은편의 테런을 건너다보았다.

“왜 이러는 걸까요?”

“그만 돌아갈 생각인가 봅니다.”

“아…….”

로제타가 아쉬움에 자신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섭섭한 기색을 지우고 피르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잘 가. 다음에 또 보자.”

“뀨!”

마치 대답하는 것처럼 소리를 낸 피르가 작아진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위로 천천히 날아오른 피르는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마치 나선형 계단처럼, 천천히 빙글빙글-.

그렇게 조금씩 위로 솟구치자 손바닥보다도 작았던 피르의 몸이 갈수록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피르가 본래의 제 몸 크기를 찾았을 때, 하늘에서 반짝 이는 빛 가루가 눈처럼 포슬포슬 내리기 시작했다.

“와아…….”

실프가 사라질 때마다 남기던 빛 가루는 여러 번 보았으나, 이렇게 많은 양은 처음이었다.

높아지는 피르를 따라 점점 고개를 치켜들던 로제타는 어느새 제 눈앞이 너무나도 새하얘져 시야가 번져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더욱 황홀하게 느껴졌다.

로제타는 그 빛 가루를 만지려는 듯 양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런 뒤 빙글빙글 그 자리에서 돌았다.

“정말 예쁘다…….”

갈수록 그녀의 얼굴이 환해지며 웃음꽃이 피었다.

그녀의 표정, 그녀의 움직임…… 그 하나하나가 너무도 가볍게 나풀거려 마치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느껴진다고, 테런은 생각했다.

그러길 잠시, 핑글핑글 돌던 로제타의 걸음이 꼬였다.

“……아앗.”

그녀가 휘청하는 그 순간, 테런은 넘어지려는 로제타의 손을 서둘러 단단히 부여잡고는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꺅!”

그 힘에 로제타가 작게 소리를 질렀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몸이 맞붙었다.

“괜찮습니까?”

“아……. 네.”

나직한 테런의 목소리에 로제타가 떨리는 입술을 열어 대답했다.

테런의 한 손이, 로제타의 허리를 단단히 지탱하고 있었다.

마치 그녀를 끌어안고 춤을 추는 모양처럼.

쿵. 쿵쿵. 쿵

로제타의 심장이 갈수록 빠르게, 그리고 크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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