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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 옆에 예쁜 애-59화 (59/148)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59화

그와 동시에 보석에 닿아 있는 손 가락에 온몸의 신경이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보석과 손가락 사이에 마치 진동이 울리는 것 같아 로제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지? 이 기분은…….’

입 안이 바싹 마르며 마음이 술렁였다.

무엇인가 속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파동이 보석에서 흘러나와 그녀를 뒤흔들어 놓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녀는 점점 더 손을 뻗었다.

그렇게 보석에 손이 닿는 순간, 마치 보석에 정기를 다 빼앗기듯 온몸의 힘이 쑥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로제타는 그만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카밀라 대부인이 한쪽 눈썹을 치켜 들며 로제타를 바라보았고, 올리비아 역시 당황한 시선을 그녀에게 던졌다.

“언, 아니. 클리프 영애. 괜찮으세요?”

걱정이 잔뜩 묻은 클라리사의 목소리만이 사위를 울렸다.

뒤에서 자신의 옷을 슬그머니 잡아 끄는 손길에 제정신이 들었지만, 일어날 힘은 없었다.

쿵, 쿵, 쿵!

결코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마치 발끝으로 추락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식은땀이 등골을 적셨다.

‘이, 이게 다 뭐야?’

그녀는 주저앉은 상태로 마른침을 삼켰다.

몸은 응접실에 있었지만, 로제타는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손이 닿자마자 붉은 보석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그것은 마치 그녀를 집어삼킬 듯 무섭게 그 기세를 뻗쳤다.

하지만 로제타는 자신이 환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불길의 크기에 비해 전혀 뜨겁지 않은 데다 함께 있는 다른 세 사람에게서 놀란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내가 지금 환영을 보고 있는 걸까?’

당황이 한결 가시고 나자 눈앞에서 일렁이는 붉은 기운이 반투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길은 마치 무엇인가를 탐욕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었다.

‘대체 뭘…….’

반투명하다 보니 불길에 일렁이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가느스름하게 눈을 뜬 로제타는 이내 불길에 휩싸여 있는 것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그것은 커다란 저택이었다.

‘어디지? 누구의 집이지?’

어딘지 눈에 익으면서도 영 모르겠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심장이 꽉 조여들어, 로제타는 올리비아가 가져온 붉은 보석을 더욱 힘껏 손에 쥐었다.

“……윽!”

그 순간 또 한 번 목 뒤에 강렬한 통증이 느껴지며, 그녀의 입술 사이로 더운 숨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로제타가 이를 악물던 순간이었다.

“왜 그렇게 앉아 있는 겁니까?”

익숙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러기 무섭게 그녀의 허리를 감는 단단한 팔이 느껴졌고, 순식간에 몸이 위로 들렸다.

마치 뒤에서부터 끌어당기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순간, 그녀가 보고 있던 환영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마치 거센 바람에 떠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가요?”

“공, 작님…….”

로제타가 저도 모르는 사이 참고 있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테런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로제타를 일으켜 세웠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에겐 여전히 혼자 설 힘이 없었다.

혹시라도 그녀를 놓쳐 다시 넘어질까 싶었던 테런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제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런 뒤 그녀의 몸을 자신의 쪽으로 가깝게 붙여 지탱하듯 섰다.

그는 해쓱한 로제타의 얼굴을 한번 살펴본 뒤 마른 눈빛으로 응접실의 티 테이블에 앉아 있는 두 여자, 카밀라와 올리비아를 건너다보며 물었다.

“왜 로제타 양이 이렇게 바닥에 앉아 있는 것인지,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너, 지금 그게 무슨……. 허, 참.”

카밀라가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책임의 소재가 당연히 자신에게 있을 것이라고 함부로 재단한 제 손자에게 적잖이 화가 난 듯 보였다.

무례한 질문에 답하고 싶지 않다는 듯, 카밀라는 대꾸하지 않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런 뒤 화가 난 눈빛으로 고개를 돌린 채, 연신 거친 숨만 터트렸다.

올리비아가 눈치를 보다가 용기를 내 대답을 대신했다.

“제, 제가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 주시려다가가, 갑자기 주저앉으셨어요.”

진짜냐고 묻듯 테런이 클라리사를 돌아보자, 어린 동생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테런이 숨을 들이켠 상태 그대로 호흡을 멈추며 다시 로제타의 뒷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염려 섞인 시선이었다.

지금 상태에선 그녀의 표정을 미처 살필 수가 없기에 조금 조바심이 들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본 카밀라가 내심 놀라 얼굴을 굳혔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마주한 손자의 얼굴에서, 그 자신은 미처 자각하진 못한 것 같은 미묘한 감정의 싹을 읽어 냈기 때문이었다.

‘저 아이…….’

테런의 표정을 유심히 눈여겨보던 카밀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테런은 조금 더 조심스럽게 로제타를 부축했다.

“일단 방으로 돌아가시죠.”

그녀가 메스꺼움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바로 돌아서지는 않았다.

마른침을 삼킨 그녀가 카밀라와 올리비아를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대부인. 그리고 리스턴 영애.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서요.”

“……돌아가서 쉬시게.”

테런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서 있던 로제타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클라리사에게 손을 뻗었다.

“공녀님, 이것 좀…….”

올리비아가 흘린 붉은 보석을 건네받은 클라리사는 쪼르르 제 할머니에게로 달려가 그것을 전해 준 뒤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로제타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방금 전까지 엉망진창으로 뛰던 심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제 속도를 찾았고, 메스꺼웠던 속도 한결 괜찮아졌다.

보석을 손에서 놓는 순간, 몸 상태가 급격히 회복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뭐지, 저건?’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로제타가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들어, 카밀라의 손에 들어간 붉은 보석을 눈에 담았다.

보석에 닿았던 카밀라도, 그리고 클라리사도 멀쩡하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만 그 반응을 보인다는 것.

그 이유에 대해선 조금도 짐작되는 바가 없어 의구심만 더 커졌다.

로제타가 그렇게 붉은 보석을 노려보듯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시야가 갑자기 꽉 막혔다.

뒤에 서 있던 테런이 반 바퀴 돌아 그녀의 눈앞을 가리듯 선 뒤, 양팔로 어깨를 감싸듯 쥐고는 로제타의 몸을 돌려세웠다.

“가시죠.”

“네? 아, 네…….”

그렇게 그녀는 테런의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방 밖에 서 있던 메이드가 테런을 보자 묵례하며 인사를 했다.

방문객이 든 응접실 앞에는 자잘한 심부름을 위해 언제든 대기 인원이 있기 마련이었다.

로제타를 부축해 나온 테런은 서 있던 메이드에게 말했다.

“클라리사를 방으로 데리고 가도록.”

“예, 공작님.”

테런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 메이드가 ‘같이 올라가요, 공녀님.’ 하고 말하며 클라리사의 손을 잡았다.

옛날부터 클라리사가 허약했기 때문에 공작저의 사용인들은 부축의 개념으로 종종 그녀의 손을 잡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클라리사는 주저하다가 메이드를 따라 뒤돌아섰다.

그러나 로제타가 걱정되는지 몇 걸음 걷다가 돌아보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로제타가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

진심이었지만,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있는 땀 때문에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듯 보였다.

그렇게 아이는 걸음을 옮기는 내내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고, 한참 만에야 3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밟았다.

클라리사의 모습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테런이 참았던 숨을 나직하게 토해 내었다.

그 소리에 로제타가 반사적으로 옆을 살짝 돌아본 뒤 말했다.

“이제…… 괜찮아요. 감사해요, 부축해 주셔서.”

자신이 그에게 안기듯 서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에, 로제타는 그에게 어깨를 잡힌 채로 반걸음 떨어졌다.

눈썹이 맞닿을 정도로 미간을 좁히던 테런은 그녀가 괜찮은지 꼼꼼하게 살핀 뒤 조심스레 놓아주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허공에 어정쩡하게 떠 있었다.

여차할 경우 곧바로 그녀를 붙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로제타가 두 발로 꼿꼿이 바닥을 딛고 서는 것을 확인하자 이내 팔을 자연스럽게 떨어트렸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 있었다.

로제타는 자신을 곧게 바라보고 있는 테런의 시선을 살짝 비끼듯 피했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잠시 어지럼증이 일었을 뿐이에요. 걱정을 끼쳐 드렸네요.”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걱정해 주는 상황이 어색했다.

어리광을 부려 본 적도, 누군가의 관심을 받아 본 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힘들거나 아픈 것을 내색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생활을 어렸을 때부터 해 왔었다.

그래서 그 언제나 모든 감정을 홀로 감내하듯 삼키기만 해 왔는데…….

‘누군가가 날 걱정해 주는 거…… 썩 나쁜 기분이 아니구나.’

그러나 이 상황이 어색한 만큼 어떻게 반응하는 게 좋은지 알지 못했다.

결국 로제타가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렸다.

“정말…… 일찍 오셨네요.”

“무슨……. 아.”

무심코 반문하려던 테런은 그녀가 오전에 자신이 했던 약속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입술을 다물었다.

그런 뒤 한 번 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러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에스코트해 주겠다는 듯 로제타에게 손등을 내밀었다.

주저하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손끝을 올리자, 단단하게 그 손가락을 감싸듯 쥐고 살짝 그녀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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