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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 옆에 예쁜 애-65화 (65/148)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65화

“아. 저희는 소꿉친구였어요.”

레나가 씩 웃으며 말했다.

“저는 상인의 딸, 긱스는 관리의 아들. 어떻게 보면 작위를 얻긴 조금 힘들었죠.”

레나와 긱스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그 눈빛에 다정함이 가득해, 로제타는 조금 부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어쩐 일이야? 공작님께서 클리프 영애께 전언이라도 보내신 거야?”

긱스는 레나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그 동작에 로제타의 기분이 살짝 처졌다.

“오늘 좀 일찍 퇴근했어. 그래서 함께 돌아갈까 하고.”

“어머, 진짜?”

레나가 놀란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곱게 눈을 휘었다.

“잠시만 기다려.”

“나가 있을게. 천천히 볼일 봐.”

긱스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파티 홀 밖으로 나갔다.

그때, 로제타가 레나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레나. 뒷정리는 내가 할게요. 이만 들어가 봐요.”

“네? 하지만…….”

“괜찮아요. 레나의 말대로, ‘모처럼’이잖아요.”

레나의 눈동자가 감동으로 살짝 물들었다.

“그럼…… 감사한 마음으로 배려를 받을게요.”

로제타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별 인사를 했다.

“내일 봐요.”

“네, 영애. 남은 하루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요.”

레나가 고맙다는 듯 로제타의 손을 꼭 한 번 잡고는 파티 홀을 나섰다.

마지막까지 그녀를 웃는 낯으로 배웅한 로제타는 완벽히 혼자가 되자 그제야 연습용 구두를 챙겨 들었다.

“오랜만에 클라리사와 함께 저녁 먹어야겠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계속해서 출입문 쪽을 향해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 * *

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로제타는 클라리사와 함께 저녁을 먹고 약을 챙겨 주었다.

그런 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 주었다.

클라리사가 도로롱, 가볍게 코까지 골며 잠에 빠진 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야 로제타는 제 방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곧장 욕실로 향했다.

메이드 두 명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혼식 겸 데뷔탕트를 앞두고, 그녀는 매일 밤 메이드들에게서 피부 마시지를 받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향유로 하시겠어요?”

메이드들이 내민 트레이에는 라벤더와 민트, 장미 등 싱그럽거나 향긋한 오일이 올라가 있었다.

짧게 고민하던 로제타는 미안한 얼굴로 그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마사지는 괜찮아. 대신 뜨거운 물만 받아 줄래?”

메이드들을 내보낸 뒤, 로제타는 홀로 욕조에 들어갔다.

체온보다 살짝 높은 뜨거운 물이 굳은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 주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습기를 내보내기 위해 창문을 살짝 열어 둔 탓인지, 물은 생각보다 빨리 식어 갔다.

노곤함 탓인지 조금 더 몸을 풀고 싶었던 그녀는 조금 아쉬워졌다.

로제타는 붉은빛이 인상적이었던, ‘불의 정령석’을 떠올렸다.

“계속 넣어 두고 있으면 물 온도를 일정하게 맞춰 주기도 한다던데.”

하지만 그 감정은 잠시였다.

손끝에 닿았을 때, 제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았던 탓일까.

영 마음이 꺼림칙했다.

로제타는 욕조의 양옆의 벽에 팔을 걸치듯 하고 상체를 조금 세웠다.

그런 뒤, 거품이 풍성하게 올라와 있는 수면 위로 발을 슬쩍 들어 올렸다.

반은 수면 위로, 반은 수면 아래로.

그렇게 걸치듯 한 뒤 무릎을 펴며 슬쩍 밀자 부드럽게 물살이 갈라졌다.

그 느낌은 마치, 그녀가 인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호사네.”

로제타가 웃으며 말했다.

클리프 남작가에서 살 땐 더운물은커녕, 욕조를 이용할 수도 없었다.

그 거지 같은 집에서 그녀에게 허락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찰방, 물이 튀기는 소리가 제법 청아하게 들렸다.

어린애 같은 장난이었지만,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던 로제타는 몇 번 더 그 동작을 반복했다.

그러다 물이 더 식자, 그녀는 아쉬움을 접고 욕조에서 일어났다.

식은 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 봤자 감기밖에 얻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몸에서 은은한 꽃향기가 풍겼다.

로제타는 가운을 걸치고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꾹 누르며 물기를 빼냈다.

그러는 사이 몸이 대충 마르자, 그녀는 서둘러 네글리제로 갈아입었다.

그런 뒤 퇴창으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그다음 널찍한 창틀에 완전히 오른 뒤, 한쪽 창틀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후우, 이제 좀 살 것 같다.”

로제타는 무릎을 세워 다리를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네글리제의 치맛단이 살짝 위로 올라가고, 그 사이로 동그란 복숭아뼈가 살짝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의 발은 전체적으로 하얬으나, 발바닥에 가까울수록 피가 몰린 것처럼 붉은빛을 띠었다.

매일 몇 시간씩 구두를 신고 춤을 추다 보니 당연히 부을 수밖에 없었다.

로제타는 무릎 쪽으로 상체를 기대 듯 하며 팔을 뻗어 제 발을 조몰락거리며 만졌다.

딱딱한 구두를 신고 몇 시간이나 반복해서 춤을 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나 여성은 밑단이 긴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기 때문에 옷을 밟고 넘어질 확률이 남성보다 높아 더욱 조심해야 했다.

에스테스 하우스에 올라온 이후로 단 한 번도 끼니를 거르지 않았건만, 그럼에도 살은 쭉쭉 빠졌다.

운동량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어제 드레스 가봉을 위해 잠시 들른 마담 유리가 그녀의 치수를 다시 잰 뒤 미간을 찌푸렸다.

“아야.”

살짝 까진 뒤꿈치에서 따끔함이 느껴지자 그녀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손가락으로 상처 부위를 지그시 누르자 조금 쓰라리다가 이내 괜찮아졌다.

그렇게 통증을 가라앉히고 난 뒤, 로제타는 다시 무릎을 펴 다리를 쭉 뻗었다.

발가락 끝에 반대쪽의 창문 벽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딴, 따라라라, 딴, 따따.

딴, 따라라라, 딴, 따, 따.

미뉴에트의 곡조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그녀의 기분은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발가락을 까닥거리기도 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창밖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공작님은 어딜 가셨을까?”

저 멀리 연철문 쪽의 불이 아직 환했다.

그곳을 밝히는 불은 저택의 주인이 귀가하기 전까지는 절대 꺼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직 테런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했다.

로제타는 퇴창에 앉아 멍하니, 바깥을 내다보았다.

이 밤의 색깔이 꼭, 테런의 머리 색과 눈 색을 닮은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 연철문의 불빛이 어두운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길 잠시. 목덜미에서 찌릿한 아픔이 느껴졌다.

로제타는 까진 뒤꿈치에 그랬듯 이번에는 목 뒤로 손을 올려 아픔이 느껴진 부위를 손바닥으로 감싸듯 쥐며 꾹 눌렀다.

그제야 약간 멍하던 기분이 썰물처럼 밀려 나가고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릿속을 꽉 채운 테런의 생각을 모조리 털어 내기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잠이 안 오네.”

목소리에는 들뜸과 아쉬움이 가득했다.

사실 로제타는 오늘 처음으로 미뉴에트를 완곡으로 췄다.

스텝도 틀리지 않고 몸의 선도 예쁘다는 칭찬을 받아 너무도 들뜬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날은 축배를 들어야 하는데.”

함께 어울려 줄 사람이 없는 게 조금 슬펐지만, 그렇다고 자는 클라리사를 깨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 혼자 마시는 술도 괜찮지.”

로제타가 피식 웃었다.

자신이 언제부터 누군가와 감정을 나눴다고 이런 생각이 드는가 싶었다.

퇴창에서 내려온 그녀는 숄을 둘렀다.

방을 나서려던 로제타의 걸음이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손잡이를 다시 놓고 걸음을 되돌렸다.

화장대 앞으로 걸어온 그녀는 아직 젖어 있는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 한쪽 어깨로 늘어트렸다.

그런 뒤 손거울을 하나 들고 화장대 앞에서 뒤돌아섰다.

목 뒤의 초승달 모양 반점이 예전과 달리 선명하게 보였다.

“어째 좀 더 진해진 것 같기도 하고…….”

로제타가 확신이 없는 투로 중얼거렸다.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그녀는 기분 탓이려니, 생각하며 손거울을 든 손을 내려트렸다.

“뭐, 목욕도 했으니까.”

피가 빠르게 돌아 반점이 평소보다 더 진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로제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화장대에서 멀어졌고,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아직 머리카락이 다 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으슬으슬했다.

숄을 당겨 조금 더 가슴 앞을 여미며, 그녀는 조용히 계단을 밟아 1층으로 내려왔다.

술병이 어디에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두리번거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사용인들이 모여 식사하는 널따란 식탁이 바로 보였다.

그 위에는 저녁으로 먹고 남은 것 같은 음식이 몇 가지 있었다.

주변 정리가 잘된 것으로 보아, 남긴 것들은 다음 날 마저 먹기 위해 일부러 치우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괜찮겠지, 뭐.”

로제타는 3분의 2쯤 남은 포도주 한 병과 잔, 그리고 겉이 살짝 말라 딱딱해진 빵과 브리 치즈를 챙겼다.

그렇게 그녀는 한쪽 팔에 먹을 것을 가득 끼고 조용히 저택을 나섰다.

지난번 테런과 함께 산책한 쪽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3층 제 방 창문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그녀의 입에서 작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정말 예쁘다.”

분수는 마치 만개한 꽃송이를 포개어 놓은 것 같았고, 층층이 떨어지는 물줄기는 부드러운 바람에 살랑이는 커튼 같았다.

그녀가 들어선 정원 길의 끝에는 하얀 석조 가제보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연보랏빛 등나무 꽃이 만개한 인조 꽃 터널이 있었다.

위에서 볼 때와는 새삼 다른 분위기에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로제타가 밤의 에스테스 하우스에 취해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갑작스레 소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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