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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 옆에 예쁜 애-80화 (80/148)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80화

테런은 로제타의 말을 가늠하듯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왜 그러냐는 듯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신뢰하여 한 말인지, 아니면 제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한 말인지 쉽사리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이내 옅은 한숨을 내쉬며, 약간 자포자기하듯 입을 열었다.

“흥미가 없으시다면 굳이 설명해 드리지 않겠습니다.”

로제타는 자신의 대답이 테런에게 성의 없이 비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아, 그런 게 아니에요.”

그녀가 서둘러 변명하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제 말은, 공작님께서 곤란하실까 봐요. 제가 꼭 알아야 하는 일이라면 언제든 이유를 같이 설명해 주셨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했던 거예요.”

테런이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당신은 가끔…….”

그리고 말을 고르듯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나를 너무 지나치게 배려합니다.”

“제가요?”

로제타가 놀란 표정을 짓자, 테런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배려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내키시는 대로 막 대해 주셔도 괜찮고요.”

“하고 싶은 대로…….”

그가 건넨 말을 잠시 곱씹던 로제타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그러다 제가 패악이라도 부리면 어쩌시려고요?”

“그렇다면…….”

그저 가벼운 농담을 걸었을 뿐인데도, 테런은 진지하게 대답을 고민했다.

그러길 잠시, 그가 이내 생각을 털어 내듯 허리를 곧게 세우며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죠.”

서로 다른 질문을 건넸으나, 서로에게 돌려주는 대답은 결국 같았다.

그 사실을 눈치챈 것인지, 눈이 마주치자 둘 다 웃어 버렸다.

묘하게 딱딱하던 분위기가 그 별것 아닌 한순간에 유해졌다.

테런은 고개를 살짝 떨구고 피식했으며, 로제타는 입가를 살짝 가리었다.

그러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나저나 무슨 걱정거리가 있으세요?”

“네? 그게 무슨…….”

“요 며칠 바빠 보이셔서요.”

“아. 그게…… 사실 일이 좀 난항입니다.”

로제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전문적인 지식은 많이 없어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싶어 잠시 그녀를 바라보자, 로제타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때론 생각지도 못한 데서 답이 나오기도 하니…… 공작님께서 괜찮으시면 들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볼게요.”

그 마음이 참 예쁘다고 느껴졌다.

빈말이라도 감사하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말이 먼저 튀어나갔다.

“도로 사업 때문에 골치가 아프네요. 포장하는 문제보다 길을 고르게 파내는 일이 너무 어렵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일일이 곡괭이로 헤집고 있는데 지반이 무르다 보니까 영 쉽지 않네요.”

잠시 고민에 잠겼던 로제타가 이내 짧은 탄성을 흘렸다.

“그렇다면 말을 이용하는 게 어떨까요?”

“말이요?”

그녀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서 역사 공부를 할 때, 농민들이 소달구지를 이용해 논과 밭을 갈았다는 것을 배운 기억이 얼핏 났었다.

그것처럼 사람보다 힘이 센 동물의 힘을 빌리면 일이 조금 더 빠르게 진척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군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도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힌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큰 도움입니다.”

그런데 그때, 마차가 크게 덜컥거렸다.

뒤이어 말이 길게 목놓아 울더니, 큰 소리와 함께 그들이 타고 있는 객차가 오른쪽 앞으로 쏠려 기울어졌다.

“꺄악!”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깜짝 놀란 로제타가 소리를 질렀다.

테런이 재빨리 팔을 뻗어, 넘어질 듯 앞으로 쏠리는 로제타의 몸을 받듯이 붙잡아 안았다.

“괜찮습니까?”

로제타 못지않게, 테런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단정하게 넘긴 그의 머리가 살짝 흐트러졌다.

질끈 눈을 감았던 로제타가 다시 살그머니 눈을 떴다.

그런 뒤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 괜찮아요. 감사해요, 공작님.”

바깥에서는 아직도 말들이 투레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제타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테런이 서둘러 마부석으로 난 창을 열었다.

곧 마부의 해쓱한 얼굴이 작은 창 너머로 보여 왔다.

“무슨 일이지?”

“죄송합니다. 각하. 도로가 내려앉아 바퀴가 그만 빠져 버렸습니다.”

“피해는?”

“없습니다.”

테런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덧창을 닫았다.

그는 로제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전을 위해서 잠시만 내리시죠.”

“그렇게 할게요. 큰 문제는 아니겠죠?”

“그럴 겁니다. 바퀴가 빠진 것은 아닌 것 같으니까요.”

로제타는 테런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조심 마차 문으로 향했지만, 곧바로 내릴 수는 없었다.

마차가 균형을 잃어, 문 쪽이 상대 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마차 계단 없이 내리기에는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두도 신고 있고…… 뛰어내리면 발목을 뺄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테런이 먼저 훌쩍 아래로 뛰어내린 뒤 다시 문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이리로 와요. 날 믿고.”

로제타가 주저하다가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짚었다.

가볍지만 조금씩 제게 실리는 체중을 느끼며, 테런은 가녀린 그녀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가뿐히 그녀를 들어 올렸다.

순간 두 사람의 얼굴이 스칠 듯이 가까워졌다.

로제타는 숨을 멈췄고, 테런의 어깨체도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테런은 이내 그녀를 조심스럽게 땅 위로 내려놓았다.

로제타의 발끝부터 땅에 닿기 시작했다. 마치 발레를 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두 발이 완전히 땅에 닿고 나서야 테런은 그녀의 허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떼어 냈다.

마차에서 조금 멀어지자, 상황이 좀 더 눈에 확실하게 보였다.

“이걸 어쩌죠?”

로제타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말했다.

마부의 말대로 반듯한 길이 아래로 푹 꺼진 상태였다. 그 구덩이에 마차 앞바퀴가 빠져 있었다.

“방금 마차에서 말씀하신 게 저런 경우죠?”

“그렇습니다. 땅이 무르다 보니 저렇게 갑자기 길이 훅 꺼져 사람이 다치는 일도 제법 많습니다.”

“생각보다 큰일이네요.”

로제타가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 짧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일단은 우리 마차 말인데요. 들어 올릴 수 있을까요?”

심지어 네 마리의 말이 끌고 있는 큰 마차였기에 일반적인 것보다 무게가 훨씬 많이 나갔다.

차라리 뒷바퀴가 빠진 것이었으면 밀어서 빼내기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앞바퀴는 상대적으로 손이 많이 가고 위험했다.

말과의 간격이 가까워, 말발굽에 걷어차일 확률이 높은 탓이었다.

객차와 말 사이에 연결된 하네스를 풀고 빠진 마차를 들어 올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 연회 시각에 맞춰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사이 두 사람을 호위하기 위해 공작저에서부터 따라왔던 호위 기사들이 말에서 내려 다가왔다.

“각하, 그리고 영애. 어디 다치신 덴 없으십니까?”

“다행히도.”

로제타는 호위 기사들과 마부가 합심해 마차를 들어 올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제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고 상황만 살펴볼 뿐이었다.

로제타의 걱정 어린 얼굴과 달리 테런은 태연했다.

“그렇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금방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테런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마부가 눈치껏 하네스를 꽉 틀어쥐었다.

몇몇 호위 기사들 역시 말 쪽으로 다가가 고삐를 쥐며 진정시키려고 했다.

테런이 기울어진 마차를 향해 자신의 오른손을 뻗었다.

“실레스틴.”

그가 피르의 바로 아래 단계인, 최상급 정령을 불러내던 그 순간, 로제타의 눈이 동그래졌다.

테런의 손끝에서 강한 바람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굵은 줄기 같은 것이 뻗어 나왔다.

공기는 투명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번의 경우엔 달랐다.

테런이 불러낸 바람은 가장자리에 하얀 띠 같은 것이 있었고, 그래서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했다.

마치 밧줄처럼 꼬아진 바람이 이내 마차로 날아갔다.

바람의 밧줄은 커다란 마차를 동여매듯 칭칭 감았다.

마치 뱀이 먹잇감의 숨통을 죄는 모습과도 비슷했다.

테런은 앞으로 뻗었던 손의 위치를 바꾸었다.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한 다음, 네 손가락을 붙인 상태 그대로 위로 까닥, 움직였다.

그 순간 주위의 것을 모두 끌어오 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람으로 만들어진 밧줄 주변으로 강한 돌풍이 일어났다.

말들이 놀라서 날뛰려 하는 것을 마부와 호위 기사들이 간신히 달랬다.

“……세상에.”

로제타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졌던 커다란 객차가 천천히 위로 들리더니 푹 꺼진 구덩이에서 앞바퀴가 완전히 빠져나왔다.

마차가 균형을 찾은 것을 확인한 마부가 고삐를 가볍게 흔들며 방향을 살짝 틀었다.

“이랴! 저쪽으로 가자!”

그 신호에 네 마리의 말들이 천천히 걸으며 본래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뒷바퀴마저 지반이 단단한 쪽으로 완전히 이동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테런은 손을 말아 쥐었다.

그가 천천히 팔을 내려트리자, 바람의 밧줄이 소리도 없이 바로 흩어졌다.

로제타는 방금까지 자신이 본 광경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괜히 궁금증이 일어 구멍 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생각보다 깊이가 있었다.

‘여기서 저 마차를 들어 올리려면 엄청나게 강한 힘이 필요했을 텐데.’

그때, 테런이 말을 걸어왔다.

“위험합니다, 로제타 양. 이제 타시죠.”

“아, 네. 지금 갈게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구덩이를 살짝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칠 수 있으니까 빨리 보수를 하는 게 좋겠네.’

그녀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발을 땅에 비비듯 하며 흙이 일어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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