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쁜 애 옆에 예쁜 애-96화 (96/148)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96화

“……네.”

클라리사는 훌쩍거리며 체이스를 따라 저택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걸음을 떼기는 했으나 마음이 무거워 자꾸만 속도가 더뎌지는 모양이었다.

클라리사는 계속해서 테런과 로제타, 토토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아이들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애써 가다듬은 표정이 금세 풀어지며 참담함으로 물들었다.

로제타가 무겁게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힘겨운 숨을 이어 나가고 있는 토토의 안쓰러운 모습을 보자 가슴이 칼로 저미는 것처럼 아팠다.

클라리사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은데,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 또한 샘솟았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옆에서 테런이 넌지시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심지가 굳은 아이니까요.”

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여상한 목소리.

그 덕에 로제타의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테런이 괜찮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찌 그라고 충격을 받지 않았겠는가.

어쩌면 테런이 가장 크게 상심했을 수도 있다.

클라리사나 로제타보다도, 테런이 토토와 가장 긴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무척이나 아꼈으니, 토토가 나이가 들어 사냥개로서 더는 활동하지 못하고 은퇴하게 되었을 때도 여생을 편하게 살피고자 가솔에게 거두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공작님은…… 괜찮으세요?”

테런은 대답하는 대신 입꼬리에 호선을 그린 듯 만들어 내었다.

로제타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더더욱 참담함을 읽을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면 좋을까.

망설이는 사이, 와튼이 시종 둘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각하. 의사는 불렀습니다. 그러니 토토는 우선 마구간으로 옮기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테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세심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으니 조심하게.”

“예, 각하.”

시종들은 가져온 들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각자 조심스럽게 토토의 머리와 뒷다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자세가 조금씩 바뀌는 게 고통스러운 것이지 토토는 끼잉대며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낙 영리한 녀석이라, 그들이 자신을 도와주려 한다는 것을 알고는 반항하거나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와튼과 시종들이 토토를 데리고 마구간으로 사라졌을 때였다.

그제야 한숨 돌린 표정으로 테런이 로제타를 보며 말했다.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 것 같은데, 방으로 돌아가 좀 쉬겠습니까?”

로제타가 떨리는 숨을 들이마신 뒤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재차 심호흡한 그녀는 토토에게서 억지로 시선을 떼었다.

걱정이 되는 마음은 매한가지였지만, 지금은 그녀의 일을 해야 할 때였다.

‘잘 웃어야 해.’

긴장되는 마음을 달래듯 몇 번이나 입술을 오므렸다 펼치며 운동을 한 로제타는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사람들은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운 두 사람을 이해해 주었다.

각자 파트너와 함께인 데다가 또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다 보니 어색해하지 않고 잠깐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미안하다는 목소리로 운을 떼자, 사람들이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돌아오셨군요. 아까 그 소리는 대체 무엇이었나요?”

다퍼스 자작 부인의 물음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그게…….”

로제타는 바론의 만행을 이들에게 이야기할까 하다가 관두었다.

그녀는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였고, 테런에게 도움을 요청하듯 곁눈질을 했다.

그 사인을 알아들은 테런이 로제타를 대신해 짤막하게 설명을 이었다.

“저희 가문에서 기르는 사냥개가 좀 다쳤습니다. 자기도 제법 놀란 모양인지 목소리를 높인 것 같습니다. 모두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하군요.”

“아. 얼른 나아야 할 텐데요.”

사람들의 관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로제타는 여기서 대화가 끊긴 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제에 대해 계속 말을 이어 나갈수록 도저히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테런과 로제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연무장 바닥에는 크리켓 필드의 라인이 다 그려진 상태였다.

골대 역할을 하는 위킷도 제자리에 박혀 있었다.

하지만 부지런히 움직인 시종들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로제타와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일은 없었다.

바론이 사람을 시켜 ‘나오지 못하겠다’는 말을 전해 온 까닭이었다.

한번 드러눕자 다시 일어나기 귀찮았던 모양인지 일방적인 취소의 말을 전해 왔다.

왕세자가 나름 부상이라면 부상을 입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신하 된 도리로서 하하 호호 웃으며 자신들끼리 게임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래도 바론에겐 무슨 일마다 초를 치는 특출난 재능 같은 것이 있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로제타는 한숨을 삼켰다.

“그럼…… 아무래도 저택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죠?”

어린 영애가 무척이나 아쉬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모두의 의견을 물어 왔다.

날씨가 무척이나 좋은 데다가, 바깥으로 나온다고 가볍게 드레스도 바꿔 입었기에 다시 실내로 들어가는 것이 무척이나 서운한 눈치였다.

모두의 얼굴에 번져 나가는 아쉬움을 살피던 로제타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모처럼 나온 것이니 가볍게 근처 산책이라도 할까요?”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제안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원래 저택 뒤편으로 피크닉을 가려고 했잖아요. 잠깐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오후 티 타임 시간에 딱 맞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테런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사람들이 동조하듯 그러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테런과 로제타의 인도하에, 모두가 미련을 두지 않고 연무장을 떠났다.

바론이 없으니까 평화로웠다.

무척이나.

* * *

저녁 식사까지 마친 뒤에야 모임은 해산했다.

바론은 컨디션을 핑계로 석찬에도 참석하지 않고 방으로 따로 음식을 올려받았다.

하루 종일 제 방에서 두문불출하기에, 아까는 괜찮았지만 후에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싶었던 두 사람은 바론에게 의사를 올려 보냈다.

하지만 진찰을 해 본 그의 말에 따르면 딱히 다친 곳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계신다며, 저 정도면 어지간한 사람보다는 기운이 넘치는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보고를 받았다.

로제타와 테런은 1층에 서서 초대한 손님들이 모두 제 방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로제타는 몇 시간 동안 꾹 참았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늘 고생했습니다.”

“공작님이야말로요.”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하는 말을 짧게 주고받았다.

로제타는 오늘 종일 제 마음을 무겁게 만든 일을 살펴보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저는 지금 마구간으로 가서 토토를 좀 살펴볼까 하는데……. 공작님도 함께 가실래요?”

그녀의 제안에 테런의 얼굴에 미안한 빛이 떠올랐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아. 따로 일정이 있으시군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사실 아까 바론 님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잠깐 보자고 하시더군요.”

테런은 말을 하다가 중간에 품에서 시계를 꺼내 시각을 확인했다.

살짝 찌푸린 미간에서 그가 이 만남을 전혀 내키지 않아 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곧 내려오실 것 같은데 마주치고 싶지 않으시면 먼저 걸음을 옮기시는 게 좋을 겁니다.”

로제타가 어색한 얼굴로 웃었다.

“민망하네요.”

손등으로 양쪽 뺨을 번갈아 살짝 누르며, 그녀가 웅얼거리듯 물었다.

“제가…… 그분을 싫어하는 게 그렇게 많이 티가 나나요?”

“저 말곤 아무도 모를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테런은 그녀가 무안하지 않도록 입꼬리를 살짝 늘였다.

“공작님께만 싫은 일을 맡기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어른이 그렇죠. 싫어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테런은 껄끄러운 상황에 놓인 제 마음을 유쾌한 농담으로 포장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테런은 가볍게 로제타를 재촉했다.

“마구간엔 아마도 와튼이 가 있을 겁니다. 시종을 부를 테니 그와 함께 가도록 해요.”

로제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번잡스럽기만 한걸요. 혼자 갈 수 있어요.”

테런은 잠시 생각했다.

마구간은 어차피 공작저 안에 있고, 하우스 파티를 옆과 동시에 순찰하는 인원을 늘려 보안을 강화했다.

그러니 적어도 이 저택에서만큼은 그녀가 혼자서 어디를 가도 안전할 것이 분명했다.

테런은 시종과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굳이 이야기하여,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는 것보다 뜻대로 하게 두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괜히 왕세자 전하와 마주치게 해, 그녀의 기분을 지금보다 더 상하게 하는 것보다 낫겠지.’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주방 쪽의 덧문을 이용하면 조금 더 빨리 갈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해요.”

그때, 막 위에서 계단을 밟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테런과 로제타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위를 향했다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를 향해 한껏 낮춘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가요.”

짧게 고개를 끄덕인 로제타는 드레스를 살짝 들고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녀가 막 안으로 들어서자, 안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0